목차
▣ 초기 르네상스 회화 (15세기)
▣ 전성기 르네상스 회화(16세기)
▣ 르네상스 3대작가 -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 후기고딕(북구의 르네상스)
▣ 야수파에 대한 기본적 이해
▣ 야수파운동의 특징과 진행과정
▣ 야수파의 미술적 가치
▣ 대표적 야수파 화가들
▣ 입체주의 미술의 탄생
▣ 입체주의 미술의 특징
▣ 입체주의 미술의 발전단계
(1) 초기 입체주의(1910 - 1909)
(2) 분석적 입체주의(1910 - 1912)
(3) 종합적 입체주의(1913 - 1914)
▣ 입체주의 미술의 대표 작가들
▣ 신인상주의
▣ 후기인상주의
▣ 전성기 르네상스 회화(16세기)
▣ 르네상스 3대작가 -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 후기고딕(북구의 르네상스)
▣ 야수파에 대한 기본적 이해
▣ 야수파운동의 특징과 진행과정
▣ 야수파의 미술적 가치
▣ 대표적 야수파 화가들
▣ 입체주의 미술의 탄생
▣ 입체주의 미술의 특징
▣ 입체주의 미술의 발전단계
(1) 초기 입체주의(1910 - 1909)
(2) 분석적 입체주의(1910 - 1912)
(3) 종합적 입체주의(1913 - 1914)
▣ 입체주의 미술의 대표 작가들
▣ 신인상주의
▣ 후기인상주의
본문내용
작하였다. 17세기 네덜란드 풍경화의 전성시대를 이어받아, 18세기 후반에는 특히 영국에서 풍경 그 자체의 미와 위대함을 그리는 것이 유행하였다. 그 중에서 J.M.W. 터너·J. 컨스터블·R.P. 보닝턴 등의 유채(油彩)와 수채의 스케치에는 야외에서 직접 자연을 관찰하여 얻은 빛의 상태가 묘사되어, 인상파의 초기작품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것들은 습작의 단계에 그쳤고, 실제 유채작품의 제작에서는 대폭 수정을 하였다. 프랑스에서는 아카데미의 성채에 틀어박혀 있던 신고전주의의 풍경화가들 까지도 인상파를 연상하게 하는 참신한 스케치를 보여주었다. P.H. 발랑시엔은 저서 《실용원근법입문(1800)》에서 자연의 모든 계절·시간·빛의 상태를 분석하였을 뿐 아니라, 구름과 산을 덮는 안개 등을 단시간에 포착한 유채스케치를 남겼다. 이와 같은 스케치 단계에서는 일찍부터 야외의 밝은 빛을 보이는 대로 그려내려고 노력하였는데, 그것을 실제 완성작품에 부분적이나마 응용한 화가가 F.V.E. 들라크루아이다. 그는 베네치아파 연구를 통해서 밝은 색채를 추구하였으며, 색채를 특별히 밝게 보이게 하기 위해 보색을 색반(色斑)으로 늘어놓는 연구를 하였다(일설로는 컨스터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J.B.C. 코로는 야외에서 제작할 기회가 많아서 화면이 밝은 뉘앙스로 차 있다. 독립된 자연을 갖가지 양상으로 다룬 바르비종파는 자연관찰의 측면에서 인상파에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젊은 그들을 격려하고 지도한 인물은 G. 쿠르베·C.F. 도비니·J.B. 용킨트·E.L. 부댕 등이었다. 쿠르베는 아카데미와 여론에 대한 감투정신으로 모범을 보였고, 역사화·신화화·종교화와 같은 전통적 장르를 떠난 현대적 주제를 인상파에게 가르쳤다. 도비니·용킨트·부댕은 인상파에 앞서서 강과 바다 등, 빛이 충만하고 대기가 변화하기 쉬운 장소에서 정확한 자연관찰을 한 뒤 밝고 생생한 화면을 완성하였으며, 특히 부댕은 소년시절의 C. 모네를 직접 지도한 스승이었다. ▣혁신 내용인상파는 다양하게 혁신을 시도하였는데, ⑴ 색채 ⑵ 구도법 ⑶ 주제 등 3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⑴ 색채 : 19세기가 되어 색채와 빛의 원리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M.E. 슈브뢸·H. 혤름홀츠 등의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서 화가들이 직관적으로 느끼고 있던 것이 체계화되었다. 인상파는 의학생이었던 J.F. 바질을 통해서 이 지식을 얻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신인상파에서처럼 이들 이론을 흡수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사용한 기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색이란 3원색 중의 2가지를 섞으면 새로운 색이 되는데, 섞을수록 명도를 잃게 된다. 따라서 어떤 색을 보다 밝은 상태로 만들려면, 화면 위에 점묘(點描)로 2색을 나란히 찍고(디비조니슴), 조금 떨어져서 보면 이것이 혼합되어 보이므로(시각혼합), 필요한 색을 보다 밝은 상태로 얻게 된다. 이처럼 밝은 화면을 얻기 위한 집요한 노력은 그들이 야외제작을 한 결과였다. 즉 빛 속에는 원래 검정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빛이 풍부한 야외에서는 모두가 밝게 보인다. 따라서 사물에는 각각 고유색(local color)이 있다는 종래의 사고방식은 타파되고, 빛이 물질에 반사되어 그것이 눈에 들어올 때 색이 보인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⑵ 구도법 : 구도법에서 그들은 사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사진은 네모난 틀로 시야를 잘라내는 식으로 대담한 구도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측면과, 대상을 <영원한 상(相)에서>가 아니라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발상이 인상파의 대상을 포착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쳤다. ⑶ 주제 : 주제의 선택에서는 1세대 전의 사실주의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종교화·신화화·역사화에 등을 돌리고, 그들은 특히 같은 시대의 풍속과 초상·정물 등의 시민적 장르, 주변의 흔한 풍경 등을 주제로 채택하였다.
▣신인상주의 인상주의의 경험적·본능적 특성을 계승하면서, 색채론과 광학이론을 도입하여 인상주의회화의 과학화·이론화를 추구한 것이 신인상주의이다. 쇠라·P. 시냐크 등으로 대표되는데, 이들은 들라크루아·슈브뢸·헬름홀츠 등의 색채이론을 받아들여 색채와 광선표현의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화면이 최고도의 광채를 얻기 위하여 색채는 당연히 원색 내지 순색으로 분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켄버스 위에서 색을 직접 혼합하지 않고, 화면에 순색 또는 원색의 작고 균일한 크기의 점을 찍어 순도 높은 빛과 밝음을 얻어 혼색 효과를 내는 디비조니슴이 신인상주의의 특징적 기법이다.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1886)》는 이러한 신인상주의 화법의 특징을 살린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는 C. 앙리의 상징주의적인 미학에 공감하여 그것을 실제작품에 실현시킴으로써 신인상주의를 보다 완벽하게 확립하려 했으나, 1891년 그의 죽음으로 이 운동은 쇠퇴하게 되었다. H. 크로스·C. 앙그랑·A. 뒤부아피·M. 뤼스 등이 쇠라의 기법에 공명하여 이 유파를 이었다. 과학성과 이론성의 추구라는 특성은 큐비즘과 미래파에 영향을 주었다. ▣후기인상주의 빛을 색채로 환원시키는 인상주의의 감각 추구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출발하여 새로운 방향을 개척한 것이 후기인상주의이다. 이는 영국 비평가 R. 프라이가 인상주의 이후에 다양한 양식들을 표현해 낸 작가들에게 편의상 붙인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주로 세잔·고갱·V. 고흐 3명을 가리키는데, T. 로트렉·르동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세잔은 형태 감각이 결여된 인상주의의 화면에 대해 견고하고 질서감 넘치는 화면을 구축하고자 하였고, 고갱은 인상주의의 섬세한 필치 위에 강력한 장식성과 심리적인 화면구성으로 상징주의적인 정신성을 표현하려 했으며, 고흐는 격렬한 감정으로 밝은 색채를 철저히 주관화하여 화면에 쏟아 부음으로써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였다. 세잔을 제외한 후기인상주의 작가들의 작품은 색채와 형태를 상징적으로 이용하는 상징주의회화와 중복되는 부분이 많은데, 이는 <인상파 이후>의 화가들이 의미내용의 상징화를 목표로 설정한 데 기인한다. 즉 객관적 빛의 묘사에 치중하는 인상주의에 대한 반발로 그들은 주관적 내면세계의 형상화를 추구하였던 것이다.
▣신인상주의 인상주의의 경험적·본능적 특성을 계승하면서, 색채론과 광학이론을 도입하여 인상주의회화의 과학화·이론화를 추구한 것이 신인상주의이다. 쇠라·P. 시냐크 등으로 대표되는데, 이들은 들라크루아·슈브뢸·헬름홀츠 등의 색채이론을 받아들여 색채와 광선표현의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화면이 최고도의 광채를 얻기 위하여 색채는 당연히 원색 내지 순색으로 분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켄버스 위에서 색을 직접 혼합하지 않고, 화면에 순색 또는 원색의 작고 균일한 크기의 점을 찍어 순도 높은 빛과 밝음을 얻어 혼색 효과를 내는 디비조니슴이 신인상주의의 특징적 기법이다.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1886)》는 이러한 신인상주의 화법의 특징을 살린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는 C. 앙리의 상징주의적인 미학에 공감하여 그것을 실제작품에 실현시킴으로써 신인상주의를 보다 완벽하게 확립하려 했으나, 1891년 그의 죽음으로 이 운동은 쇠퇴하게 되었다. H. 크로스·C. 앙그랑·A. 뒤부아피·M. 뤼스 등이 쇠라의 기법에 공명하여 이 유파를 이었다. 과학성과 이론성의 추구라는 특성은 큐비즘과 미래파에 영향을 주었다. ▣후기인상주의 빛을 색채로 환원시키는 인상주의의 감각 추구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출발하여 새로운 방향을 개척한 것이 후기인상주의이다. 이는 영국 비평가 R. 프라이가 인상주의 이후에 다양한 양식들을 표현해 낸 작가들에게 편의상 붙인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주로 세잔·고갱·V. 고흐 3명을 가리키는데, T. 로트렉·르동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세잔은 형태 감각이 결여된 인상주의의 화면에 대해 견고하고 질서감 넘치는 화면을 구축하고자 하였고, 고갱은 인상주의의 섬세한 필치 위에 강력한 장식성과 심리적인 화면구성으로 상징주의적인 정신성을 표현하려 했으며, 고흐는 격렬한 감정으로 밝은 색채를 철저히 주관화하여 화면에 쏟아 부음으로써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였다. 세잔을 제외한 후기인상주의 작가들의 작품은 색채와 형태를 상징적으로 이용하는 상징주의회화와 중복되는 부분이 많은데, 이는 <인상파 이후>의 화가들이 의미내용의 상징화를 목표로 설정한 데 기인한다. 즉 객관적 빛의 묘사에 치중하는 인상주의에 대한 반발로 그들은 주관적 내면세계의 형상화를 추구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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