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와 예배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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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교회와 예배 신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하는 위치에 서 있기도 하다. 마땅히 하나님이 영광을 받아야 할 자리에 인간이 박수 받고 인간이 높임을 받는 예배 행위는 비일비재하다. 둘째 예배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적인 삶 자체이다. 기독교의 예배란 공동체의 공식적인 행위로서 실현되는 의식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초월하여 그리스도인들이 활동하는 땅에서의 삶 전체가 예배라는 새로운 이해를 얻게 된다. 이것은 봉사로 나타나는데 그 봉사는 언제나 세상과 이웃과의 관계에서 섬김의 삶으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섬김과 봉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요 그를 경배하는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며 그의 다스림 가운데 있는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봉사가 된다. 특히 현대의 한국의 대부분의 교회는 예배를 의식적인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예배생활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오해는 그것을 삶에 적용시키는데 걸림돌이 된다. 셋째로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과 교제가 이루어지는 장이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며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며 하나님과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사건이 된다. 예배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구조는 질문과 대답 부르심과 응답의 상관관계이다. 말씀에 근거한 하나님의 질문과 우리의 대답의 상호작용은 예배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지금까지 예배란 무엇인지 정의를 내렸는데 이 정의에 따라 한국교회의 예배 모습을 살펴 바른 예배모범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이제 한국교회의 예배는 교회의 공 예배와 삶으로서의 예배가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관점에서 그 기본 방향이 설정 되어야 한다. 이것은 이미 받은 축복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신학적으로는 그리스도를 통한 새 언약에 근거하여 공적인 예배에서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다시금 그의 말씀과 성찬 가운데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그의 위로와 은혜를 힘입고 세상 가운데서 그의 뜻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일에 봉사자로 헌신의 결단을 가지며 다시금 모든 일에 그의 은혜와 자비와 긍휼을 바라는 것이 예배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예배를 의식에 국한 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계속적으로 욕을 먹기 위해 노력하는 처사이다. 그런 의미에서 에른스트 랑게의 예배신학은 한국의 예배갱신에 하나의 근거표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는 예배를 언약갱신의 축제 또는 축제행위로 예배를 정의했다. 그는 주일예배와 일상예배를 연결시키기 위해 예배의 기본 구성요소를 신앙의 증언과 신앙고백으로 규정하고 예배형식의 틀을 3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다. 첫째는 죄의 사면의 부분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언약의 부분이고 셋째는 파송의 부분이다. 이것을 다시 설명하자면 예배의 전반부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부분으로 이부분에는 죄의 고백과 용서의 선언이 중심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며 두 번째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과 함께 그 가운데서 하나님과 교제가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하고 셋째는 그 말씀가운데서 우리가 세상 속에서 실천하고 헌신하며 결단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게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교회 안에 만연되어진 기복주의적인 예배 형식과 모범에 아주 도전 할 만 하며 이러한 사고와 의미대로 예배가 진행된다면 한층 더 삶과 연결된 예배의 모습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특히 한국교회의 예배현식 가운데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예배 속에서 행해지는 성찬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앞서 성찬의 부족문제를 다루었는데 이제 성찬이 함께 이루어지는 예배의 모범으로는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앞서 말한 랑게의 3단계 중에 바로 세 번째의 헌신과 결단에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구체적으로는 헌금 순서 후에 바로 진행시키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원래 성찬은 헌신의 결단을 갖게 하는데 아주 놀라운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 본다. 어떤 이는 그리스도를 위한 헌신을 강조하는 100번의 설교보다 한번의 성찬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약간 과장된 것 같기도 하지만 그 효과는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성찬을 게을리 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실은 이러한 사고를 한번쯤 더 생각해 봐야 할 것이고 성찬의 더 많은 횟수를 추구해 볼만도 하다. 특히 우리가 경계해야 할 일은 많은 성찬횟수로 인해 그것이 형식과 의식에 빠져 버리지 않게 주의해야 할 것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일년에 보통 2번씩 시행하는 성찬의 횟수를 츠빙글리가 말한 4회로 넓혀봄이 어떨지 생각한다. 앞서 한국교회가 이러한 일체감이 결여 되었다는 것을 살펴보았는데 예배 속에서 회중과 인도자의 일체감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부분이다. 예배는 인도자와 순서를 담당한 역할 자와 참여자인 회중과 일체감이 이루어 져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일체감을 조성하기 위해서 현재 한국의 강단은 약간의 조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사회대를 없애고 설교단과 성찬의 식탁을 중심으로 예배의 중심점을 만들고 예배 인도자도 평신도와 같은 위치에 자리를 만들고 자신의 역할 순서에만 나가서 예배를 인도하는 질서가 새롭게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예배에서는 사회대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고 무리 없는 흐름을 위해서는 오히려 사회대와 사회자는 방해물이 되기도 한다. 꼭 있어야 한다면 설교단과는 분리해서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사회자가 예배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자리를 지배하지 않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성찬의 식탁을 예전의 중심에 놓고 말씀 선포의 강단을 조금 높은 위치에 두어 설교 때에만 사용하게 하는 것도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바른 예배를 위해 한국교회가 정신 차릴 부분은 한국 교회 안에서 기복신앙을 부추기는 예전적인 모습과 그 실상들에 대해 개혁하는 일이다. 만연된 축복사상과 축복의 사도로 이해되는 성직자들, 물질적이며 물량적인 것으로 상관 지워져 버린 하나님의 축복의 문제는 심각하게 예배의 기초를 흔들어 놓는다. 한국의 예배가 복을 받기위한 수단으로 전락되어지고 있으며 속죄를 위한 제사 행위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더욱이 모든 질병은 귀신의 장난으로 해석하여 귀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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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8페이지
  • 등록일2006.03.11
  • 저작시기2006.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39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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