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며
Ⅱ. 상대의 일본문학
1.개관
2.운문문학
3.산문문학
Ⅲ. 중고의 일본문학
1.개관
2.운문문학
3.물어문학
4.역사물어 와 설화문학
5.일기문학과 수필
Ⅳ. 중세문학
1.개관
2.운문문학
3.산문문학
4.극문학
Ⅴ. 근세문학
1.개관
2.운문문학
3.산문문학
4.극문학
Ⅵ. 나가며
Ⅶ. 참고문헌
Ⅱ. 상대의 일본문학
1.개관
2.운문문학
3.산문문학
Ⅲ. 중고의 일본문학
1.개관
2.운문문학
3.물어문학
4.역사물어 와 설화문학
5.일기문학과 수필
Ⅳ. 중세문학
1.개관
2.운문문학
3.산문문학
4.극문학
Ⅴ. 근세문학
1.개관
2.운문문학
3.산문문학
4.극문학
Ⅵ. 나가며
Ⅶ. 참고문헌
본문내용
센류(川柳)도 유행했다. 한편 소설에서는, 가나 조시(名草子) 우키요 조시(浮世草子) 샤레봉 곡케이봉(滑稽本) 닌죠봉(人情本) 요미홍(讀本) 기뵤시(黃表紙) 아와세마키(合卷) 등, 각종 형태의 문학이 급하게 변천하여, 「스이(粹)」「쓰우(通:단순한 관능적인 것을 떠나서 도시적인 세련된 놀이의 풍격)」「이키(에도후기의 문화가 창출한 미적 이념으로 발랄하면서도 도시적인 세련된 미)」 등의 서민적인 미를 기조로 하여, 의리나 권선징악 사상 등의 도덕적인 이념과, 대립하거나 또는 서로 융합하면서, 근세 상인 문학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근세 문학 속에 일관해서 흐르는 것은 익살과 풍자가 겻들인 서민성이라 하겠다.
2. 韻文文學
俳諧
중세 말기에 크게 알려지고 보급되고 있던 하이카이 렌가, 즉 단시인 하이쿠(俳句)는, 근세에 이르러서 마쓰나가 데이토쿠가 하나의 문예로써 독립시켜 세상에 널리 보급시켰다. 이 데이토쿠 일파를 데이몬이라고 불렀으며, 보수적인 데이몬파에 대항하여 17세기 후반 단린파가 일어나서 죠닌(町人)의 생활 감정을 자유롭게 하이카이로 읊었다. 그러나 하이카이를 짓는 사람들의 사회인 하이단(俳壇)은 단린파의 자유로운 작법에 만족하지 않고 하이카이의 예술성을 추구하였다. 마쓰오 바쇼가 대표적인 사람인데 17세기 말의 중세 문예의 전통을 기반으로 하는 근세 문예의 서민적 정서를 살려서 하이카이를 고급스럽고 우아한 예술의 경지로까지 끌어 올렸다.
바쇼의 사후에 그가 세운 하이카이의 예술성은 점차 그 모습을 잃어갔지만 18세기 후반의인 덴메이 천황 시절에 이르러 하이카이의 부흥을 외치는 소리가 높아졌고, 이를 ‘덴메이(天明)의 중흥’이라고 한다. 덴메이의 중흥 이후 하이카이느 널리 보급은 되었지만 내용적으로는 신선미가 부족한 진부하고도 평범한 작법에 안주하는 매너리즘에 빠졌다. 하지만 19세기의 고바야시 잇사는 서민적인 생활 감정을 솔직하게 읊은, 인간미가 풍부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川柳
하이쿠가 보급하게 되자 거기에서 파생한 さつばい라는 놀이가 유행하게 되었는데, 이는 문자 그대로 잡다한 형색, 내용의 유희적 문학이다. 이것은 먼저 제시된 관제에 대해 け를 다는 형식으로서 け라고 하는 연구(連句)의 앞구(77의구)인 과제에 이어 575의 け를 달아서 잘 되고 못된 것을 겨루는 것이다. 센류는 이 さつばい 중에서 け가 독립된 것이다.
이 센류는 홋구와는 달리, 계절을 나타내는 기다이의 약속이나, 구의 끝에 와야하는 조사나 조동사 등의 기레지의 제약도 받지 않으며, 일상 용어를 가지고 세정이나 인정의 기미를 포착하여 세태상의 핵심을 찔러 이를 풍자하고 빈정대고, 고전이나 역사상의 인물을 골계화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취향은 경쾌한 에도 죠닝들의 기풍에 적합해서, 和기에 걸쳐 질이 높은 작품을 남기면서 널리 유행했다.
센류는 표현이 단순하고 그 태도가 방관적이라고 한다. 인간사를 다룬 구가 많으면서도 열정과 감동에 치우치는 일도 없고, 인생의 모순과 결함도 광정하려 하기보다는 그대로 관망하는 여유로 인해 구의 재미를 느끼게 한다. 특정한 작가에 의하지 않고 세상사 속에서 자연히 생성된 서민의 문학인 센류는 그만큼 당시의 세상을 선명하게 묘사했으며, 예술적인 향기라기 보다는 서민의 의욕을 단적으로 묘사해 냈다는 점에서 일본 문학사상 드문 예라 할 수 있다.
狂歌
교카의 문체는 와카와 같고 형식은 단가와 같지만, 오로지 속어를 사용하여 기지에 의한 익살을 그 안에 읊어 넣으려고 하는 것이다. 특히 앞서 나온 문자를 흉내내어 빈정댐이나 풍자를 띤 골계를 담은 것이 많은 점으로 해서 일종의 유희문학이라고 보겠는데 이와 같은 익살스런 와카는 이미『万葉集』에서도 볼 수 있다.
에도 시대에 들어와서는 많은 교카 독자가 나타나 일반에까지 퍼지게 되어, 기발한 착상과 멋있는 표현을 가지고 독자적인 가치와 세계를 확립시킨다. 이와 같은 교카는 1780년경에 이르러 이른바 天기 전성기를 맞게 된다.
3. 散文文學
(1) 庶民의 小說
名草子
17세기 초부터 약 80년 동안 쿄토를 중심으로 가나조시가 쓰였다. 가나조시란 주로 일본의 문자인 가나로 쓰인 평이한 내용의 읽을 거리란 뜻인데 귀족, 승려, 무사와 같은 지식계급의 작자가 주로 부녀자를 대상으로 하여 계몽, 교훈, 오락을 목적으로 쓴 것이다. 인쇄술의 발달과 더불어 대량으로 값싼 서적의 출판이 가능해진 시대 배경에 따라 서민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독자층이 넓어져 갔다.
가나조시는 실용적이고 오락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진 탓에 문학성은 결여된 소설이었다. 서민들의 지식욕을 만족시켜 줌과 동시에 문학의 독자층을 넓혔고 서민으로 하여금 문학에 친숙하게 하였다. 그 내용이나 양식은 매우 잡다하여 중세의 『徒然草』와 같은 수필풍의 작품이 있는가 하면, 무사나 세상을 풍자하는 작품도 있고, 인과응보를 깅조한 교훈적 우화집도 있다. 현세에 대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세의 소설과는 다른 성격을 가지며, 이 점이 후에 우키요조시로 이어진다는 면에서 근세적인 소설의 맥을 엿볼 수가 잇다.
浮世草子
우키요조시(浮世草子)는 가미가타를 중심으로 17세기 후반부터 약 100여 년 간 출판되어졌는데 조닌들의 호색 행위와 돈벌이에 얽힌 희비극을현실의 상황에 입각해 묘사해 낸 소설들이다. 당시의 조닌들은 경제 활동을 통해 부유해지기는 했지만 엄격한 신분제도의 틀에 묶여 있었으므로, 이런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점차 향락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인생의 즐거움을 찾게 되었는데, 우키요조시는 이러한 조닌의 세태와 안정을 묘사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2) 支配階級의 學問
근세는 일본의 한시문(漢詩文)이 가장 번성한 시대이기도 하다. 초기에는 유학자들이 여기(餘技)로 한시를 지었는데 후기가 되자 유학자의 문필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고, 한시문은 서민 사이에도 침투하게 되었다. 특히 근세 후기에 들어서 한시를 즐기는 사람들의 결사(結社)가 각 지방에서 결성되어 한시는 더욱 융성하게 된다.
와카와 고쿠가쿠(國學), 그리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한 시대상을 반영한 각양 각색의 수필(오리타쿠시바노키, 다마카쓰마, 우케라가하나,
2. 韻文文學
俳諧
중세 말기에 크게 알려지고 보급되고 있던 하이카이 렌가, 즉 단시인 하이쿠(俳句)는, 근세에 이르러서 마쓰나가 데이토쿠가 하나의 문예로써 독립시켜 세상에 널리 보급시켰다. 이 데이토쿠 일파를 데이몬이라고 불렀으며, 보수적인 데이몬파에 대항하여 17세기 후반 단린파가 일어나서 죠닌(町人)의 생활 감정을 자유롭게 하이카이로 읊었다. 그러나 하이카이를 짓는 사람들의 사회인 하이단(俳壇)은 단린파의 자유로운 작법에 만족하지 않고 하이카이의 예술성을 추구하였다. 마쓰오 바쇼가 대표적인 사람인데 17세기 말의 중세 문예의 전통을 기반으로 하는 근세 문예의 서민적 정서를 살려서 하이카이를 고급스럽고 우아한 예술의 경지로까지 끌어 올렸다.
바쇼의 사후에 그가 세운 하이카이의 예술성은 점차 그 모습을 잃어갔지만 18세기 후반의인 덴메이 천황 시절에 이르러 하이카이의 부흥을 외치는 소리가 높아졌고, 이를 ‘덴메이(天明)의 중흥’이라고 한다. 덴메이의 중흥 이후 하이카이느 널리 보급은 되었지만 내용적으로는 신선미가 부족한 진부하고도 평범한 작법에 안주하는 매너리즘에 빠졌다. 하지만 19세기의 고바야시 잇사는 서민적인 생활 감정을 솔직하게 읊은, 인간미가 풍부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川柳
하이쿠가 보급하게 되자 거기에서 파생한 さつばい라는 놀이가 유행하게 되었는데, 이는 문자 그대로 잡다한 형색, 내용의 유희적 문학이다. 이것은 먼저 제시된 관제에 대해 け를 다는 형식으로서 け라고 하는 연구(連句)의 앞구(77의구)인 과제에 이어 575의 け를 달아서 잘 되고 못된 것을 겨루는 것이다. 센류는 이 さつばい 중에서 け가 독립된 것이다.
이 센류는 홋구와는 달리, 계절을 나타내는 기다이의 약속이나, 구의 끝에 와야하는 조사나 조동사 등의 기레지의 제약도 받지 않으며, 일상 용어를 가지고 세정이나 인정의 기미를 포착하여 세태상의 핵심을 찔러 이를 풍자하고 빈정대고, 고전이나 역사상의 인물을 골계화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취향은 경쾌한 에도 죠닝들의 기풍에 적합해서, 和기에 걸쳐 질이 높은 작품을 남기면서 널리 유행했다.
센류는 표현이 단순하고 그 태도가 방관적이라고 한다. 인간사를 다룬 구가 많으면서도 열정과 감동에 치우치는 일도 없고, 인생의 모순과 결함도 광정하려 하기보다는 그대로 관망하는 여유로 인해 구의 재미를 느끼게 한다. 특정한 작가에 의하지 않고 세상사 속에서 자연히 생성된 서민의 문학인 센류는 그만큼 당시의 세상을 선명하게 묘사했으며, 예술적인 향기라기 보다는 서민의 의욕을 단적으로 묘사해 냈다는 점에서 일본 문학사상 드문 예라 할 수 있다.
狂歌
교카의 문체는 와카와 같고 형식은 단가와 같지만, 오로지 속어를 사용하여 기지에 의한 익살을 그 안에 읊어 넣으려고 하는 것이다. 특히 앞서 나온 문자를 흉내내어 빈정댐이나 풍자를 띤 골계를 담은 것이 많은 점으로 해서 일종의 유희문학이라고 보겠는데 이와 같은 익살스런 와카는 이미『万葉集』에서도 볼 수 있다.
에도 시대에 들어와서는 많은 교카 독자가 나타나 일반에까지 퍼지게 되어, 기발한 착상과 멋있는 표현을 가지고 독자적인 가치와 세계를 확립시킨다. 이와 같은 교카는 1780년경에 이르러 이른바 天기 전성기를 맞게 된다.
3. 散文文學
(1) 庶民의 小說
名草子
17세기 초부터 약 80년 동안 쿄토를 중심으로 가나조시가 쓰였다. 가나조시란 주로 일본의 문자인 가나로 쓰인 평이한 내용의 읽을 거리란 뜻인데 귀족, 승려, 무사와 같은 지식계급의 작자가 주로 부녀자를 대상으로 하여 계몽, 교훈, 오락을 목적으로 쓴 것이다. 인쇄술의 발달과 더불어 대량으로 값싼 서적의 출판이 가능해진 시대 배경에 따라 서민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독자층이 넓어져 갔다.
가나조시는 실용적이고 오락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진 탓에 문학성은 결여된 소설이었다. 서민들의 지식욕을 만족시켜 줌과 동시에 문학의 독자층을 넓혔고 서민으로 하여금 문학에 친숙하게 하였다. 그 내용이나 양식은 매우 잡다하여 중세의 『徒然草』와 같은 수필풍의 작품이 있는가 하면, 무사나 세상을 풍자하는 작품도 있고, 인과응보를 깅조한 교훈적 우화집도 있다. 현세에 대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세의 소설과는 다른 성격을 가지며, 이 점이 후에 우키요조시로 이어진다는 면에서 근세적인 소설의 맥을 엿볼 수가 잇다.
浮世草子
우키요조시(浮世草子)는 가미가타를 중심으로 17세기 후반부터 약 100여 년 간 출판되어졌는데 조닌들의 호색 행위와 돈벌이에 얽힌 희비극을현실의 상황에 입각해 묘사해 낸 소설들이다. 당시의 조닌들은 경제 활동을 통해 부유해지기는 했지만 엄격한 신분제도의 틀에 묶여 있었으므로, 이런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점차 향락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인생의 즐거움을 찾게 되었는데, 우키요조시는 이러한 조닌의 세태와 안정을 묘사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2) 支配階級의 學問
근세는 일본의 한시문(漢詩文)이 가장 번성한 시대이기도 하다. 초기에는 유학자들이 여기(餘技)로 한시를 지었는데 후기가 되자 유학자의 문필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고, 한시문은 서민 사이에도 침투하게 되었다. 특히 근세 후기에 들어서 한시를 즐기는 사람들의 결사(結社)가 각 지방에서 결성되어 한시는 더욱 융성하게 된다.
와카와 고쿠가쿠(國學), 그리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한 시대상을 반영한 각양 각색의 수필(오리타쿠시바노키, 다마카쓰마, 우케라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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