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무속의 개념 및 역사 그 유형
(1)개념
(2)역사
(3)유형
1)우리나라 대표적 무속 의례 중 그 종류와 내용
ㄱ굿
1)무당(만신) 박수(박사)
ㄴ.풍수
1)풍수사와 풍수
ㄷ.장례
3.오늘날 올바르게 무속을 받아들이는 바른 자세와 마음가짐
(1)개념
(2)역사
(3)유형
1)우리나라 대표적 무속 의례 중 그 종류와 내용
ㄱ굿
1)무당(만신) 박수(박사)
ㄴ.풍수
1)풍수사와 풍수
ㄷ.장례
3.오늘날 올바르게 무속을 받아들이는 바른 자세와 마음가짐
본문내용
있다.
용과 맥의 흐름은 물을 만나면 멈춘다 멈춘 그 자리에 기가 모인다. 집이든 묏자리이든 이 생기 처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풍수는 바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풍수는 곧 생기를 얻는 것인데 생기는 바람을 타면 흩어진다. 생기가 흩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바람을 막는 병풍 같은 것이 필요 하다 바람이 휘몰아치는 곳이라면 아무리 명혈이라도 생기가 모일 수 없으니 이른바 명당이라고 알려진 땅 주위에는 반드시 기의 흩어짐을 막아주는 산이 있게 마련이다.
풍수에서는 기의 집산과 방위는 따질지언정 남향이니까 좋고 북향이니까 나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묘를 쓸 때는 풍수 이치에 맞기만 하면 북향이든 동향이든 서향이든 가리지 않고 쓰는 것이다.
이것은 서울 국립묘지를 보면 알 수 있는데 국립묘지는 빼어난 명당 임에도 불구하고 북향이다. 무덤에 시신을 안치 할 때에는 묘의 방향이 북향 이든 서향이든 상관없이 주산 쪽 으로 머리를 두기만 하면 북쪽으로 머리를 둔 것으로 여긴다. 즉 주산 쪽이 북쪽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풍수 에서는 물이 매우 중요 하다.
중국 풍수 에서는 산 보다는 물을 더 중요시 했다고 한다. 이는 풍수설이 흥성 하였던 중국 북부 지방의 자연 환경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 지역은 강수량이 적어 물이 무엇보다도 중요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풍수에 반영된 것이라 할 것이다.
“산은 천리의 근원을 바라보고 물은 천리의 끝을 바라본다”라는 말이 있듯이 산은 그 성질이 움직이지 않아 ‘정’ 이며 물의 성질은 ‘동’ 이다. 산은 음이고 물은 양이다. 산수가 서로 어울리면 음양이 화합하고 생기를 발하게 마련이다.
산수가 서로 만나는 곳은 길지가 되는 것이다. 물이 없다면 기의 흐름을 알 수 없고 또 어디에서 멈추었는가를 살피기도 어렵다.
즉 물을 통하여 기의 흐름과 멈춤을 알아 낼 수 있다고 하였다.
풍수를 음양론에서 본다면 산과 물이 상응 하면 음양이 화합 하고 양자가 상극하면 음양이 떨어져 불화를 이루게 된다 고 했다.
그러므로 산수가 화합하는 곳에 생기가 모이고 그곳이 바로 명산 길지 인 것이다.
ㄷ. 장례
상은 조상숭배에서 비롯된 체제의 일종으로 제와 함께 선인에 대한 의례로서 상례를 흉례, 제례를 길례라 하였다. 이 중 상례는 유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영역으로 그 절차와 형식은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변화가 가장 심하지 않다고 한다.
상의 순으로는 초종, 습렴, 치장, 흉제로 이어진다.
나는 여기서 일반적인 장례를 논하기보다 우리나라 조상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장례의 무속적인 면과 관련을 맺는데 초점을 두었다.
시신을 매장 할 때에는 시신을 묶어서 변형 되지 않도록 매장을 하는데 시신이 온전하게 보존되지 않고 머리와 다리의 위치가 바뀐다든지 벌레들이 시신을 훼손시킨다든지 하는 경우가 있다. 무덤 속에서 일어난 이러한 현상을 우리 선조들은 귀신과 악귀의 소행이라고 여겼다.
예로부터 상사에는 귀신이 많이 모여든다 하여 이를 물리치는 습속이 행해졌다. 장사 때 시신을 방에서 내올 때 관의 머리 쪽을 방의 네 귀퉁이에 세 번씩 맞추고 나온다.
그리고 문지방을 넘을 때는‘양밥’ 이라 하여 바가지를 엎어 놓고 관으로 눌러 깨고 나온다고 한다. 이는 줄초상을 피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살을 겹쳐 맞아 또 한 번 초상을 치르게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처럼 박을 깨고 관을 내오는 풍습은 박이 귀신을 물리치는 벽사의 상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박이 가졌다는 그 벽사적 힘은 무엇이며 왜 하필이면 박을 선택 했을까?
그것은 바로 박이 깨질 때 나는 소리이다.
귀신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사람은 신이 되고 싶어 하듯 귀신은 사람과 성정이 비슷해 인간이 싫어하는 금속성의 마찰음이나 시끄러운 소리를 혐오한다. 그래서 박을 깰 때 나는 소리로써 귀신을 쫓는 것이다.
정월 대보름날 집 안 여기저기서 폭죽을 터뜨리는 습속도 바로 소리로써 부정과 잡귀를 쫓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박은 새로운 탄생과 부활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사자가 알을 상징하는 바가지를 깨고 다시 태어나라는 염원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무덤의 모양에서도 찾을 수 있다.
무덤의 외형을 박처럼 둥글게 만든 것은 엄마의 자궁에서 아기가 탄생 하고 새가 알을 깨고 부화하듯 무덤 속의사자도 다시 소생하기를 바라는 마음 엠서 비롯된 것이라 할수 있다.
또한 무덤 주위에 소나무나 잣나무를 많이 심는데 그 이유는 홍만선의 ‘산림경제’에 나오는데 “무덤 속 에는 죽은 사람의 간과 뇌를 먹는 망상과 은이라는 벌레가 있다”고 해서 이들은 호랑이와 잣 나루를 가장 무서워 한다는 것이다.
고구려에서는 돌을 쌓아 봉분을 만들고 소나무와 잣나무를 주위에 심었다. 지금도 서남해 도서 지방에서는 초분에 소나무 가지를 꽂는데 이것은 잡귀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여 유골을 잘 보존 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또 남해의 청산도 같은 곳에는 초분에 솔가지를 꽂으면 물이 잘 빠진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손들이 성묘를 하고 갔다는 표시로 솔가지를 꽂아 놓기도 한다.
수 백 년 된 묘를 파 보면 관 속에서 북두칠성 모양의 구멍이 뚫린 관 크기의 판자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이를 칠성판 이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보통 관 속에 칠성판을 깔고 차조를 태운 재를 4cm 정도 깐 다음 그 위에 시신을 안치 했다.
판 바닥에 이렇게 조를 태운 재와 칠성판을 까는 이유는 재는 수 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으며 사물로서 정령이 없기에 시신에게 해가 되는 개미나 벌레 등과 같은 생물의 침입을 막아주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또 덜 탄 재 에는 화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물기가 스며들지 않는다고 한다. 하여 습기를 없애주고 나무뿌리의 침범을 막아 시신을 온전하게 보전 하고자 하였다.
또한 입관 후 시신에서 분비 되는 수액을 흡수 해 주고 매장 후에는 유골이 썩어 없어지지 않도록 하였다 고 한다. 칠성판에 북두칠성 모양의 구멍을 뚫는 것은 북두신 에게 빌어 죽음을 구제 받기 위한 것이며 북두는 죽음을 관장하고 남두는 산 자를 관장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관 바닥에 칠성판을 깔아 죽음을 구원 받고 묘광의 사귀를
용과 맥의 흐름은 물을 만나면 멈춘다 멈춘 그 자리에 기가 모인다. 집이든 묏자리이든 이 생기 처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풍수는 바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풍수는 곧 생기를 얻는 것인데 생기는 바람을 타면 흩어진다. 생기가 흩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바람을 막는 병풍 같은 것이 필요 하다 바람이 휘몰아치는 곳이라면 아무리 명혈이라도 생기가 모일 수 없으니 이른바 명당이라고 알려진 땅 주위에는 반드시 기의 흩어짐을 막아주는 산이 있게 마련이다.
풍수에서는 기의 집산과 방위는 따질지언정 남향이니까 좋고 북향이니까 나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묘를 쓸 때는 풍수 이치에 맞기만 하면 북향이든 동향이든 서향이든 가리지 않고 쓰는 것이다.
이것은 서울 국립묘지를 보면 알 수 있는데 국립묘지는 빼어난 명당 임에도 불구하고 북향이다. 무덤에 시신을 안치 할 때에는 묘의 방향이 북향 이든 서향이든 상관없이 주산 쪽 으로 머리를 두기만 하면 북쪽으로 머리를 둔 것으로 여긴다. 즉 주산 쪽이 북쪽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풍수 에서는 물이 매우 중요 하다.
중국 풍수 에서는 산 보다는 물을 더 중요시 했다고 한다. 이는 풍수설이 흥성 하였던 중국 북부 지방의 자연 환경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 지역은 강수량이 적어 물이 무엇보다도 중요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풍수에 반영된 것이라 할 것이다.
“산은 천리의 근원을 바라보고 물은 천리의 끝을 바라본다”라는 말이 있듯이 산은 그 성질이 움직이지 않아 ‘정’ 이며 물의 성질은 ‘동’ 이다. 산은 음이고 물은 양이다. 산수가 서로 어울리면 음양이 화합하고 생기를 발하게 마련이다.
산수가 서로 만나는 곳은 길지가 되는 것이다. 물이 없다면 기의 흐름을 알 수 없고 또 어디에서 멈추었는가를 살피기도 어렵다.
즉 물을 통하여 기의 흐름과 멈춤을 알아 낼 수 있다고 하였다.
풍수를 음양론에서 본다면 산과 물이 상응 하면 음양이 화합 하고 양자가 상극하면 음양이 떨어져 불화를 이루게 된다 고 했다.
그러므로 산수가 화합하는 곳에 생기가 모이고 그곳이 바로 명산 길지 인 것이다.
ㄷ. 장례
상은 조상숭배에서 비롯된 체제의 일종으로 제와 함께 선인에 대한 의례로서 상례를 흉례, 제례를 길례라 하였다. 이 중 상례는 유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영역으로 그 절차와 형식은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변화가 가장 심하지 않다고 한다.
상의 순으로는 초종, 습렴, 치장, 흉제로 이어진다.
나는 여기서 일반적인 장례를 논하기보다 우리나라 조상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장례의 무속적인 면과 관련을 맺는데 초점을 두었다.
시신을 매장 할 때에는 시신을 묶어서 변형 되지 않도록 매장을 하는데 시신이 온전하게 보존되지 않고 머리와 다리의 위치가 바뀐다든지 벌레들이 시신을 훼손시킨다든지 하는 경우가 있다. 무덤 속에서 일어난 이러한 현상을 우리 선조들은 귀신과 악귀의 소행이라고 여겼다.
예로부터 상사에는 귀신이 많이 모여든다 하여 이를 물리치는 습속이 행해졌다. 장사 때 시신을 방에서 내올 때 관의 머리 쪽을 방의 네 귀퉁이에 세 번씩 맞추고 나온다.
그리고 문지방을 넘을 때는‘양밥’ 이라 하여 바가지를 엎어 놓고 관으로 눌러 깨고 나온다고 한다. 이는 줄초상을 피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살을 겹쳐 맞아 또 한 번 초상을 치르게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처럼 박을 깨고 관을 내오는 풍습은 박이 귀신을 물리치는 벽사의 상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박이 가졌다는 그 벽사적 힘은 무엇이며 왜 하필이면 박을 선택 했을까?
그것은 바로 박이 깨질 때 나는 소리이다.
귀신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사람은 신이 되고 싶어 하듯 귀신은 사람과 성정이 비슷해 인간이 싫어하는 금속성의 마찰음이나 시끄러운 소리를 혐오한다. 그래서 박을 깰 때 나는 소리로써 귀신을 쫓는 것이다.
정월 대보름날 집 안 여기저기서 폭죽을 터뜨리는 습속도 바로 소리로써 부정과 잡귀를 쫓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박은 새로운 탄생과 부활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사자가 알을 상징하는 바가지를 깨고 다시 태어나라는 염원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무덤의 모양에서도 찾을 수 있다.
무덤의 외형을 박처럼 둥글게 만든 것은 엄마의 자궁에서 아기가 탄생 하고 새가 알을 깨고 부화하듯 무덤 속의사자도 다시 소생하기를 바라는 마음 엠서 비롯된 것이라 할수 있다.
또한 무덤 주위에 소나무나 잣나무를 많이 심는데 그 이유는 홍만선의 ‘산림경제’에 나오는데 “무덤 속 에는 죽은 사람의 간과 뇌를 먹는 망상과 은이라는 벌레가 있다”고 해서 이들은 호랑이와 잣 나루를 가장 무서워 한다는 것이다.
고구려에서는 돌을 쌓아 봉분을 만들고 소나무와 잣나무를 주위에 심었다. 지금도 서남해 도서 지방에서는 초분에 소나무 가지를 꽂는데 이것은 잡귀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여 유골을 잘 보존 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또 남해의 청산도 같은 곳에는 초분에 솔가지를 꽂으면 물이 잘 빠진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손들이 성묘를 하고 갔다는 표시로 솔가지를 꽂아 놓기도 한다.
수 백 년 된 묘를 파 보면 관 속에서 북두칠성 모양의 구멍이 뚫린 관 크기의 판자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이를 칠성판 이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보통 관 속에 칠성판을 깔고 차조를 태운 재를 4cm 정도 깐 다음 그 위에 시신을 안치 했다.
판 바닥에 이렇게 조를 태운 재와 칠성판을 까는 이유는 재는 수 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으며 사물로서 정령이 없기에 시신에게 해가 되는 개미나 벌레 등과 같은 생물의 침입을 막아주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또 덜 탄 재 에는 화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물기가 스며들지 않는다고 한다. 하여 습기를 없애주고 나무뿌리의 침범을 막아 시신을 온전하게 보전 하고자 하였다.
또한 입관 후 시신에서 분비 되는 수액을 흡수 해 주고 매장 후에는 유골이 썩어 없어지지 않도록 하였다 고 한다. 칠성판에 북두칠성 모양의 구멍을 뚫는 것은 북두신 에게 빌어 죽음을 구제 받기 위한 것이며 북두는 죽음을 관장하고 남두는 산 자를 관장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관 바닥에 칠성판을 깔아 죽음을 구원 받고 묘광의 사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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