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며
Ⅱ. 성경에 나타난 성령의 여러 가지 호칭들
1. 아들의 영(靈)
2. 보증과 인(印)
3. 물
4. 기름과 기름부음
5. 불
6. 하나님의 손
Ⅲ. 성령의 인격성과 신성
1. 성령의 인격성
1) 성령님은 인격적 특성인지 정의를 가지신다
2) 성경에서 성령님을 말할 때 지시대명사(it)를 사용하지 않고 인칭대명사를 썼다
3) 성령님은 인격을 가지신 분만이 할 수 있는 활동을 하셨다
4) 성령을 보혜사(Paraclete) 즉 돕기 위해 옆에 있는 자란 뜻으로 표현하였다
2. 성령의 신성
Ⅳ. 성령세례
Ⅴ. 구원․중생과 성령의 역사
Ⅵ. 성령의 내주와 성령의 감화감동
Ⅶ. 성령과 그리스도의 영
Ⅷ. 성령론의 새로운 접근에 대한 비판
Ⅸ. 결론
Ⅱ. 성경에 나타난 성령의 여러 가지 호칭들
1. 아들의 영(靈)
2. 보증과 인(印)
3. 물
4. 기름과 기름부음
5. 불
6. 하나님의 손
Ⅲ. 성령의 인격성과 신성
1. 성령의 인격성
1) 성령님은 인격적 특성인지 정의를 가지신다
2) 성경에서 성령님을 말할 때 지시대명사(it)를 사용하지 않고 인칭대명사를 썼다
3) 성령님은 인격을 가지신 분만이 할 수 있는 활동을 하셨다
4) 성령을 보혜사(Paraclete) 즉 돕기 위해 옆에 있는 자란 뜻으로 표현하였다
2. 성령의 신성
Ⅳ. 성령세례
Ⅴ. 구원․중생과 성령의 역사
Ⅵ. 성령의 내주와 성령의 감화감동
Ⅶ. 성령과 그리스도의 영
Ⅷ. 성령론의 새로운 접근에 대한 비판
Ⅸ. 결론
본문내용
하셨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그 후반부에서는 하갈과 사라, 이스마엘과 이삭의 비유를 풀어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즉 율법도 하나님의 말씀이요 복음도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율법을 받은 자는 종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종이요, 복음을 받은 자는 아들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아들임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말씀은 종의 영이 아니라 아들의 영(양자의 영)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구원받고 거듭난 상태이다.
이렇게 복음 곧 아들의 영을 받은 우리를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셔서 인치시고 보증하심으로, 우리가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고(롬8:16) 또한 땅끝까지 예수를 증거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시는 것이다(행1:8). 그러므로 로마서 8:9의 그리스도의 영은 아들의 영 곧 복음을 말한다. 실제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요건은 성령을 받았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복음 곧 말씀 곧 아들의 영을 받았는가의 여부라는 사실은 신앙의 상식에 속한다.
Ⅷ. 성령론의 새로운 접근에 대한 비판
논자는 언급된 글에 대하여 몇 가지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성령의 사역을 무제한적으로 적용시킬 경우 잘못된 현실은 성령의 인도를 떠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무조건적인 판단은 현실의 불합리한 화가 단순한 죄의 결과라는 율번적인 사고에 이르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곧 성령의 조명을 벗어날 때 성령은 부정적으로 사역한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해석은 성령의 사역의 결과가 악일 수 있고 또 성령의 자기 사역의 의도가 악할 수 있다는 경우가 생긴다. 따라서 성령이 부정적으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인도를 떠난 인간의 피조자적 제약성과 의도의 선하지 못함의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셋째 성령의 사역은 전 우주적인 그리고 초 우주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좋지만 과대하게 범위를 확장하여 모든 인과 과정에 적용할 때 모든 책임은 성령에게 돌아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분명 사단도 이 세상에서 우리를 유혹하며 그 유혹의 결과 일어나게 되는 재난에는 그것을 불러들인 인간의 책임과 결과를 유도한 사단의 책임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넷째 성령의 사역을 피조계의 생물과 무생물의 질서유지 및 발전에 두었을 때 성령의 인격성이 무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성령은 자의적 결정을 하며 그의 의지로 섭리 하시고 계시는데, 너무 우주 질서의 유지적 측면에서 조명할 경우 단순한 우주적 생물적 법칙으로만 그 분의 본질을 유도하게 될 수도 있다. 다섯째 인간 문명의 발전 방향을 설정할 때 신앙적 기초 위에서 윤리적 이성적 접근을 하면---즉 성경적인 토대위에서 노력하면 성령의 협력으로 유토피아가 될 것이라는 희망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성령의 사역의 중심은 현대 문명의 발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 완성에 있다. 따라서 한계를 가진 물질적 토대위에 세원진 문명이 궁국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며 따라서 문명의 완성에 조력자로서 성령을 이해하기 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인 완성을 가져다주는 구원자로써 성령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Ⅸ. 결론
그 동안 성령 운동이 교회에 긍정적인 측면에서 공헌하였고 앞으로도 공헌할 수 있는 점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회의 율법주의나 형식주의로부터 탈피시킨다. 교회는 그 자신의 목적과 뜻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기구나 조직, 제도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 목적과 뜻은 잃어버리기 쉽고, 제도화되거나 조직화되어 경직화되므로 생명력을 상실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은사 체험은 이렇게 경직화된 조직이나 제도에서 벗어나게 한다. 내면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함으로 열정적인 신앙에 이르게 한다. 제도나 조직, 교리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살아 있는 새로운 신앙의 세계에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율법주의나 형식주의 교리에서 벗어나게 한다.
둘째, 성령 운동은 공동체에 헌신적으로 봉사하도록 한다. 카리스마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가능해진 사건이요, 행동이다. 즉 카리스마는 개체를 통해서 특별한 결과를 성취한 하나님의 에너지이며, 이 하나님의 힘은 공동체를 형성한다. 은사는 인간의 여러 가지 이해관계를 떠나 삶 속에 나타난 성령의 임재를 강조하므로 다른 모든 차이점은 무시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공동체를 형성한다.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여 시간과 재산과 재능을 바침으로 살아 있는 공동체 형성에 이바지한다.
셋째, 기독교 신앙에 확신을 주며 활동적인 신앙이 되게 한다. 우리는 때때로 신앙을 지나치게 지적으로나 합리적으로 생각하여 이것이 신앙에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할 때가 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냉정하고 차분하게 사리에 맞게 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장로교인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현상으로 체험적이며 활력적인 신앙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성령 운동은 체험을 통해서 활력적인 신앙으로 변화시키며 말씀을 듣기만 하는 신앙에서 말씀을 증거하는 신앙으로 변화를 가져온다.
넷째, 성령 운동은 개인에게 삶의 의미를 발견케 하며 기쁨과 평안을 가져온다. 인간은 기본적 욕구 충족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이같은 기본적 욕구와 함께 정신의 만족을 얻게 될 때 충족된 삶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가장 근본적인 길은 은사 체험을 통한 신앙과 회개에 있다. 여기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스도의 구원을 체험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게 되고 더 나아가 그의 삶은 기쁨과 평안을 얻게 된다.
다섯째, 성령 운동은 교회를 활성화시키고 확대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다. 성령 운동을 통하여 교인들의 신앙이 활력화되고 적극적으로 될 때 교회를 봉사하고 섬기게 되며 교회는 성장하게 된다. 그러므로 은사를 통한 교회 성장은 대단히 중요한 요건이 된다. 각각 받은 은사를 잘 활용할 때 교회는 다양성을 유지하게 되며 보다 단단하고 왕성한 교회로 자라게 된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말씀은 종의 영이 아니라 아들의 영(양자의 영)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구원받고 거듭난 상태이다.
이렇게 복음 곧 아들의 영을 받은 우리를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셔서 인치시고 보증하심으로, 우리가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고(롬8:16) 또한 땅끝까지 예수를 증거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시는 것이다(행1:8). 그러므로 로마서 8:9의 그리스도의 영은 아들의 영 곧 복음을 말한다. 실제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요건은 성령을 받았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복음 곧 말씀 곧 아들의 영을 받았는가의 여부라는 사실은 신앙의 상식에 속한다.
Ⅷ. 성령론의 새로운 접근에 대한 비판
논자는 언급된 글에 대하여 몇 가지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성령의 사역을 무제한적으로 적용시킬 경우 잘못된 현실은 성령의 인도를 떠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무조건적인 판단은 현실의 불합리한 화가 단순한 죄의 결과라는 율번적인 사고에 이르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곧 성령의 조명을 벗어날 때 성령은 부정적으로 사역한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해석은 성령의 사역의 결과가 악일 수 있고 또 성령의 자기 사역의 의도가 악할 수 있다는 경우가 생긴다. 따라서 성령이 부정적으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인도를 떠난 인간의 피조자적 제약성과 의도의 선하지 못함의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셋째 성령의 사역은 전 우주적인 그리고 초 우주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좋지만 과대하게 범위를 확장하여 모든 인과 과정에 적용할 때 모든 책임은 성령에게 돌아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분명 사단도 이 세상에서 우리를 유혹하며 그 유혹의 결과 일어나게 되는 재난에는 그것을 불러들인 인간의 책임과 결과를 유도한 사단의 책임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넷째 성령의 사역을 피조계의 생물과 무생물의 질서유지 및 발전에 두었을 때 성령의 인격성이 무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성령은 자의적 결정을 하며 그의 의지로 섭리 하시고 계시는데, 너무 우주 질서의 유지적 측면에서 조명할 경우 단순한 우주적 생물적 법칙으로만 그 분의 본질을 유도하게 될 수도 있다. 다섯째 인간 문명의 발전 방향을 설정할 때 신앙적 기초 위에서 윤리적 이성적 접근을 하면---즉 성경적인 토대위에서 노력하면 성령의 협력으로 유토피아가 될 것이라는 희망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성령의 사역의 중심은 현대 문명의 발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 완성에 있다. 따라서 한계를 가진 물질적 토대위에 세원진 문명이 궁국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며 따라서 문명의 완성에 조력자로서 성령을 이해하기 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인 완성을 가져다주는 구원자로써 성령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Ⅸ. 결론
그 동안 성령 운동이 교회에 긍정적인 측면에서 공헌하였고 앞으로도 공헌할 수 있는 점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회의 율법주의나 형식주의로부터 탈피시킨다. 교회는 그 자신의 목적과 뜻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기구나 조직, 제도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 목적과 뜻은 잃어버리기 쉽고, 제도화되거나 조직화되어 경직화되므로 생명력을 상실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은사 체험은 이렇게 경직화된 조직이나 제도에서 벗어나게 한다. 내면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함으로 열정적인 신앙에 이르게 한다. 제도나 조직, 교리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살아 있는 새로운 신앙의 세계에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율법주의나 형식주의 교리에서 벗어나게 한다.
둘째, 성령 운동은 공동체에 헌신적으로 봉사하도록 한다. 카리스마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가능해진 사건이요, 행동이다. 즉 카리스마는 개체를 통해서 특별한 결과를 성취한 하나님의 에너지이며, 이 하나님의 힘은 공동체를 형성한다. 은사는 인간의 여러 가지 이해관계를 떠나 삶 속에 나타난 성령의 임재를 강조하므로 다른 모든 차이점은 무시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공동체를 형성한다.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여 시간과 재산과 재능을 바침으로 살아 있는 공동체 형성에 이바지한다.
셋째, 기독교 신앙에 확신을 주며 활동적인 신앙이 되게 한다. 우리는 때때로 신앙을 지나치게 지적으로나 합리적으로 생각하여 이것이 신앙에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할 때가 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냉정하고 차분하게 사리에 맞게 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장로교인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현상으로 체험적이며 활력적인 신앙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성령 운동은 체험을 통해서 활력적인 신앙으로 변화시키며 말씀을 듣기만 하는 신앙에서 말씀을 증거하는 신앙으로 변화를 가져온다.
넷째, 성령 운동은 개인에게 삶의 의미를 발견케 하며 기쁨과 평안을 가져온다. 인간은 기본적 욕구 충족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이같은 기본적 욕구와 함께 정신의 만족을 얻게 될 때 충족된 삶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가장 근본적인 길은 은사 체험을 통한 신앙과 회개에 있다. 여기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스도의 구원을 체험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게 되고 더 나아가 그의 삶은 기쁨과 평안을 얻게 된다.
다섯째, 성령 운동은 교회를 활성화시키고 확대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다. 성령 운동을 통하여 교인들의 신앙이 활력화되고 적극적으로 될 때 교회를 봉사하고 섬기게 되며 교회는 성장하게 된다. 그러므로 은사를 통한 교회 성장은 대단히 중요한 요건이 된다. 각각 받은 은사를 잘 활용할 때 교회는 다양성을 유지하게 되며 보다 단단하고 왕성한 교회로 자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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