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목차
Ⅰ.서론
Ⅱ.본론
1) 작가소개
2) 작품 줄거리
3) 백년 동안의 고독과 폭풍의 언덕 비교연구
1. 왜곡된 사랑의 형태
2. 근친상간과 그 의미
3. 인물들의 심리학적 분석
4. 추리극의 성격
5. 관련된 역사적 사건
6. 작품의 제작 배경
7. 이야기 속의 이야기
8. 작품에 드러난 사실 요소 & 환상적 요소들
9.‘죽음’으로 나타내려는 것
10. 두 작품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것
Ⅲ.결론
Ⅰ.서론
Ⅱ.본론
1) 작가소개
2) 작품 줄거리
3) 백년 동안의 고독과 폭풍의 언덕 비교연구
1. 왜곡된 사랑의 형태
2. 근친상간과 그 의미
3. 인물들의 심리학적 분석
4. 추리극의 성격
5. 관련된 역사적 사건
6. 작품의 제작 배경
7. 이야기 속의 이야기
8. 작품에 드러난 사실 요소 & 환상적 요소들
9.‘죽음’으로 나타내려는 것
10. 두 작품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것
Ⅲ.결론
본문내용
소식이 없자 그녀는 에드거와 결혼했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히스클리프는 힌들리에게 복수하기 위해 말끔하게 차려입고 나타났다. 그는 힌들리를 파탄하게 만들고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이 되고 에드거의 누이동생 이사벨라를 꾀어 결혼하려고 한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지만, 딸 캐시 린튼을 낳다 죽는다. 한편 히스클리프가 자기와 결혼한 이유를 알게 된 이사벨라는 런던으로 가서 히스클리프의 아들 린튼을 낳는다. 힌들리는 술로 죽고 그의 아들 헤어튼은 히스클리프에게 학대받는다. 히스클리프는 그의 아들 린튼과 캐서린의 딸 캐시를 결혼시키고 이런 일 때문에 에드거의 건강이 악화돼 죽고 만다. 캐시가 스러쉬크로스 그레인지를 상속하였다가 병약한 린튼 히스클리프가 죽게 되자, 히스클리프는 워더링 하이츠와 스러쉬크로스 그레인지 모두의 주인이 되었다. 런던에 살던 로크우드가 워더링 하이츠에 들렀을 때는 히스클리프는 죽어서 캐서린의 무덤 옆에 묻혀 있었다.
3) 백년 동안의 고독과 폭풍의 언덕 비교연구
1. 왜곡된 사랑의 형태
‘백년 동안의 고독’과 ‘폭풍의 언덕’에서는 공통적으로 소설 속 인물들에게 있어서 일상적인 사랑과는 거리가 먼, 왜곡된 사랑의 형태가 나타난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정상적인 사랑을 영위해나가기보다는 왜곡되고 엇갈린, 때로는 비도덕적인 사랑의 행태를 보인다. 우선, 아마란타의 사랑은 정상적이라고 볼 수가 없다. 누군가와 좋은 감정을 유지하다가도 막상 고백을 받고나면 결정적으로 그 사랑을 거부하고야마는 아마란타는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없는‘자폐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미녀 레메디오스는 살인적인 매력으로 수많은 남성들을 매혹시켰지만 단 한번도 플라토닉한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하였을 뿐더러, 그녀 자신도 그런 사랑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녀는 사랑 이전에 기본적으로 성에 관하여서도 무지한 여자였다. 몇몇 남자인물들에게서 볼 수 있는, 어머니와 사랑을 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사랑’이라기보다는‘사랑행위’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형태도 마찬가지로 비정상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근친상간적 요소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언급하겠다.
이렇게‘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뿐만 아니라‘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인물들에게 있어서도‘사랑’이라는 것은 힘들고, 계속 엇갈려서 뒤틀린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선, 캐서린의 히스클리프에 대한 사랑이다. 그녀는 분명 히스클리프를 어린시절부터 강렬하게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에드거 린튼과 결혼을 한다. 곧, 본래 마음과 행위,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불운한 사랑을 하는 것이다. (심리학적 용어로는 이중구속 double bind라고 한다.) 그뿐 아니라 이사벨라는 히스클리프를 진정으로 사랑하여 결혼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히스클리프에 대한 비이성적이고 과격한 모습에 대해 일종의 환상을 갖고 서둘러 결혼한 실수에 불과 하였다. 또한 히스클리프는 이사벨라와 결혼을 하여, 아내를 아껴주고 사랑해야할 의무를 져버리고 성취욕과 복수심에 불타올라 그녀를 마구 학대한다.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도 근친상간이 나타나는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두 소설 속에는 근친상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여 파국으로 치닫는 사랑, 신성한 결혼의 의무를 져버리는 허구적 사랑의 형태가 드러난다. 제대로 된 사랑을 못하고 이렇게 왜곡된 사랑의 형태를 보이는 인물들은 결국 그것으로 인하여 직,간접적으로 파국으로 치닫고 마는 것이다.
2. 근친상간과 그 의미
위에서 언급한 왜곡된 사랑의 형태 중 가장 대표적인‘근친상간’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1대인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슬라는 본래 사촌간이다. 이렇게 1대에서 시작된 근친상간의 역사는 2대에선 형제인 호세 아르카디오와 아우렐리아노가 창녀인 필라르 테르네라에게서 각자의 애를 만들어내는 형태로 나타난다. 또한 레베카는 본래 부엔디아 집안 사람이 아니었지만 우르슬라 부부의 양녀가 됨으로써 결국 오빠라 할 수 있는 호세 아르카디오와 결혼을 한다. 3대에서는 아르카디오가 자신의 출생을 모르고 어머니인 필라르 테르네라와 그런 모습을 보이며, 아우렐리아노의 아들 아우렐리아노 호세는 2대의 아마란타가 양자로 키우지만 의붓 어머니와 위험한 수준까지 간다. 이것은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한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5대의 아마란타 우르슬라와 6대의 아우렐리아노는 결국 돼지꼬리 기형아를 만들어내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원형적 부부가 근친혼으로 맺어졌고, 집안의 많은 사람들이 강박적으로 근친상간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으며, 처음의 원형적 부부가 갖고 있었던‘돼지꼬리를 달고 태어날 자식’에의 두려움은 마지막 부부의 근친상간에 의해서 실현됨으로서 재앙이 내려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히‘한 집안 사람들의 근친상간의 역사’라고 해석하기 보다는 역사적 사실과 결부시켜서, 부엔디아 가문은 라틴아메리카 세계로, 100년간에 걸친 근친상간과 그로 인한 고독은 라틴아메리카의 자폐적인 성향에 비유할 수가 있겠다.
반면에‘폭풍의 언덕’에서 드러난 근친상간은 작품의 결말부에서 볼 수가 있다. 캐서린의 딸 캐시와 히스클리프의 아들 린튼은 강제로나마 결혼을 하는데 이것은 결국 이종사촌과 결혼을 하게 되는 셈이다. 그 후에 린튼이 죽자 캐시는 힌들리의 아들과 결혼을 하는데, 역시 이종사촌과 결혼을 하는 것으로서‘백년 동안의 고독’과 마찬가지로‘근친상간’으로 끝맺는다. 두 작품다‘근친상간’으로 작품이 끝나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 다르다.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의 근친상간은 라틴아메리카 세계의 자폐성을 비유하는 동시에 작품 속에서는 부엔디아 가문의 멸망과 소멸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이 작품에서의 근친상간은 결과적으로 비극을 초래하는 셈이다. 그런데‘폭풍의 언덕’에서는 다르게 생각할 수가 있다. 이야기 속의 거의 모든 인물들이 죽고나서 마지막에 이종사촌인 캐시와 힌들리의 결합은 비록 근친상간이긴 하지만 ‘백년 동안의 고독’과 같이 파멸과 멸망을 초래하기 보다는 오히려‘새로운 시작과 평화’를 의미한다. 광폭하고, 거칠고, 자기 중심적인 인간들의 얽히고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히스클리프는 힌들리에게 복수하기 위해 말끔하게 차려입고 나타났다. 그는 힌들리를 파탄하게 만들고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이 되고 에드거의 누이동생 이사벨라를 꾀어 결혼하려고 한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지만, 딸 캐시 린튼을 낳다 죽는다. 한편 히스클리프가 자기와 결혼한 이유를 알게 된 이사벨라는 런던으로 가서 히스클리프의 아들 린튼을 낳는다. 힌들리는 술로 죽고 그의 아들 헤어튼은 히스클리프에게 학대받는다. 히스클리프는 그의 아들 린튼과 캐서린의 딸 캐시를 결혼시키고 이런 일 때문에 에드거의 건강이 악화돼 죽고 만다. 캐시가 스러쉬크로스 그레인지를 상속하였다가 병약한 린튼 히스클리프가 죽게 되자, 히스클리프는 워더링 하이츠와 스러쉬크로스 그레인지 모두의 주인이 되었다. 런던에 살던 로크우드가 워더링 하이츠에 들렀을 때는 히스클리프는 죽어서 캐서린의 무덤 옆에 묻혀 있었다.
3) 백년 동안의 고독과 폭풍의 언덕 비교연구
1. 왜곡된 사랑의 형태
‘백년 동안의 고독’과 ‘폭풍의 언덕’에서는 공통적으로 소설 속 인물들에게 있어서 일상적인 사랑과는 거리가 먼, 왜곡된 사랑의 형태가 나타난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정상적인 사랑을 영위해나가기보다는 왜곡되고 엇갈린, 때로는 비도덕적인 사랑의 행태를 보인다. 우선, 아마란타의 사랑은 정상적이라고 볼 수가 없다. 누군가와 좋은 감정을 유지하다가도 막상 고백을 받고나면 결정적으로 그 사랑을 거부하고야마는 아마란타는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없는‘자폐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미녀 레메디오스는 살인적인 매력으로 수많은 남성들을 매혹시켰지만 단 한번도 플라토닉한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하였을 뿐더러, 그녀 자신도 그런 사랑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녀는 사랑 이전에 기본적으로 성에 관하여서도 무지한 여자였다. 몇몇 남자인물들에게서 볼 수 있는, 어머니와 사랑을 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사랑’이라기보다는‘사랑행위’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형태도 마찬가지로 비정상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근친상간적 요소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언급하겠다.
이렇게‘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뿐만 아니라‘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인물들에게 있어서도‘사랑’이라는 것은 힘들고, 계속 엇갈려서 뒤틀린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선, 캐서린의 히스클리프에 대한 사랑이다. 그녀는 분명 히스클리프를 어린시절부터 강렬하게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에드거 린튼과 결혼을 한다. 곧, 본래 마음과 행위,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불운한 사랑을 하는 것이다. (심리학적 용어로는 이중구속 double bind라고 한다.) 그뿐 아니라 이사벨라는 히스클리프를 진정으로 사랑하여 결혼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히스클리프에 대한 비이성적이고 과격한 모습에 대해 일종의 환상을 갖고 서둘러 결혼한 실수에 불과 하였다. 또한 히스클리프는 이사벨라와 결혼을 하여, 아내를 아껴주고 사랑해야할 의무를 져버리고 성취욕과 복수심에 불타올라 그녀를 마구 학대한다.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도 근친상간이 나타나는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두 소설 속에는 근친상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여 파국으로 치닫는 사랑, 신성한 결혼의 의무를 져버리는 허구적 사랑의 형태가 드러난다. 제대로 된 사랑을 못하고 이렇게 왜곡된 사랑의 형태를 보이는 인물들은 결국 그것으로 인하여 직,간접적으로 파국으로 치닫고 마는 것이다.
2. 근친상간과 그 의미
위에서 언급한 왜곡된 사랑의 형태 중 가장 대표적인‘근친상간’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1대인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슬라는 본래 사촌간이다. 이렇게 1대에서 시작된 근친상간의 역사는 2대에선 형제인 호세 아르카디오와 아우렐리아노가 창녀인 필라르 테르네라에게서 각자의 애를 만들어내는 형태로 나타난다. 또한 레베카는 본래 부엔디아 집안 사람이 아니었지만 우르슬라 부부의 양녀가 됨으로써 결국 오빠라 할 수 있는 호세 아르카디오와 결혼을 한다. 3대에서는 아르카디오가 자신의 출생을 모르고 어머니인 필라르 테르네라와 그런 모습을 보이며, 아우렐리아노의 아들 아우렐리아노 호세는 2대의 아마란타가 양자로 키우지만 의붓 어머니와 위험한 수준까지 간다. 이것은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한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5대의 아마란타 우르슬라와 6대의 아우렐리아노는 결국 돼지꼬리 기형아를 만들어내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원형적 부부가 근친혼으로 맺어졌고, 집안의 많은 사람들이 강박적으로 근친상간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으며, 처음의 원형적 부부가 갖고 있었던‘돼지꼬리를 달고 태어날 자식’에의 두려움은 마지막 부부의 근친상간에 의해서 실현됨으로서 재앙이 내려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히‘한 집안 사람들의 근친상간의 역사’라고 해석하기 보다는 역사적 사실과 결부시켜서, 부엔디아 가문은 라틴아메리카 세계로, 100년간에 걸친 근친상간과 그로 인한 고독은 라틴아메리카의 자폐적인 성향에 비유할 수가 있겠다.
반면에‘폭풍의 언덕’에서 드러난 근친상간은 작품의 결말부에서 볼 수가 있다. 캐서린의 딸 캐시와 히스클리프의 아들 린튼은 강제로나마 결혼을 하는데 이것은 결국 이종사촌과 결혼을 하게 되는 셈이다. 그 후에 린튼이 죽자 캐시는 힌들리의 아들과 결혼을 하는데, 역시 이종사촌과 결혼을 하는 것으로서‘백년 동안의 고독’과 마찬가지로‘근친상간’으로 끝맺는다. 두 작품다‘근친상간’으로 작품이 끝나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 다르다.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의 근친상간은 라틴아메리카 세계의 자폐성을 비유하는 동시에 작품 속에서는 부엔디아 가문의 멸망과 소멸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이 작품에서의 근친상간은 결과적으로 비극을 초래하는 셈이다. 그런데‘폭풍의 언덕’에서는 다르게 생각할 수가 있다. 이야기 속의 거의 모든 인물들이 죽고나서 마지막에 이종사촌인 캐시와 힌들리의 결합은 비록 근친상간이긴 하지만 ‘백년 동안의 고독’과 같이 파멸과 멸망을 초래하기 보다는 오히려‘새로운 시작과 평화’를 의미한다. 광폭하고, 거칠고, 자기 중심적인 인간들의 얽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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