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후기문학 제2기 조선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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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세후기문학 제2기 조선전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조동일 《한국문학통사2》
1. 特徵 및 要點整理
Ⅱ. 조윤제 《韓國文學史》
1. 特徵 및 要點整理
2. 조동일 《한국문학통사와》 조윤제 《韓國文學史》의 비교
Ⅲ. 이병기 ․ 백철의 《國文學全史》
1. 特徵 및 要點整理
2. 조동일 《한국문학통사》와 이병기 ․ 백철의 《國文學全史》비교
Ⅳ. 장덕순 《韓國文學史》
1. 特徵 및 要點整理
2. 조동일 《한국문학통사》와 장덕순의 《한국문학사》비교
Ⅴ. 정홍교 ․ 김하명 외 《조선문학사》
1. 特徵 및 要點整理
2.조동일 한《국문학통사》와 정홍교 ․ 김하명 외 《조선문학사》비교
▣ 참고문헌 ▣

본문내용

0자이상으로 늘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이 시기 대표적인 시조 작가로는, 신하(臣下)를 사랑하는 임금의 마음이 기교와 일치된 경지를 보이는 성종(聖宗, 1442~1497)과 고결한 멋을 보이는 송순이 있다.
2. 조동일 《한국문학통사》와 장덕순의 《한국문학사》비교
공 통 점
차 이 점
먼저 둘 모두 시대구분에 있어, 왕조 중심의 시대구분을 탈피해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훈민정음과 함께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을 중요시 여겨 함께 서술했다는 점이 동일하다. 또 이 시기를 대표하는 소설로 김시습의 〈금오신화〉를 언급했다는 것도 공통점이라 할 수 있겠다.
태조부터 성종까지의 부분은, 조동일의 구분에서는 중세문학 제2기 조선전기에 해당하고, 장덕순의 구분에서는 조선왕조부분에 해당한다. 여기서 조동일이 한문문학과 국문문학을 대등한 입장에서 바라보며 문학사를 수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조동일은 한문학의 정착과 함께 훈민정을을 소개한 반면, 장덕순의 훈민정은 창제만을 가장 중요시 여겨 서술하였다는 차이점을 보인다. 또한 조동일은 악장, 경기체가, 가사 이 셋을 묶어 상관관계를 설명하였고, 창작 담당층에 따른 시조의 여러 모습, 관인문학과 사림문학, 산문의 다양한 모습 등 여러 부분을 다양하고 또 자세하게 서술하였다. 이에 비해 장덕순은 중요 갈래라고 본 설화, 소설, 가사, 시조만을 서술하였다. 여기서도 볼 수 있듯, 장덕순은 조동일에 비해 설화의 갈래를 중요시 여긴 듯 하다.
Ⅴ. 정홍교 김하명 외 《조선문학사》
1. 特徵 및 要點整理
1)훈민정음의 창제
·훈민정음의 창제는 우리 문화사에 특기할만한 획기적 사변으로서 민족문화발전에서 거대한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 훈민정음이 창제됨으로써 봉건사회에서 피착취인민대중이 직접 서사문학을 향유하고 창작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세종과 세조대에 걸쳐 사서를 비롯한 유교경서들이 번역되었으며 불경들도 적지 않게 번역되었다. 이렇게 한문책을 국문으로 번역한 책들을 <언해본>이라고 한다. 이런 번역사업은 인민들의 문화생활과 별로 관계가 없는 것이었으나 우리나라의 문어,글말의 형성발전에서는 일정한 의의를 가진다. 차차 조위가 두보의 시를 번역한 《두시언해》가 간행되는 등의 문학작품에 대한 번역도 시작되었다.
2)인민창작의 자취
·이 문학사에서는 그 당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던 지배세력의 문학창작보다 인민 대중, 즉 그 당시 피지배세력의 문학창작활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서는 ‘인민대중은 자기의 손으로 사회의 모든 재부를 만들어내며 자기의 투쟁으로 세계를 개조하고 역사를 발전시킨다. 인민대중의 창조적 활동을 떠나서는 사회의 변혁과 진보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다’고 드러내고 있다.
·인민가요, 설화, 속담과 민속극을 통한 인민창작의 자취를 보여준다. 실제상 이런 창작의 자취는 극히 적은 것에 지나지 않지만 이 자료들은 그 어느 시기에 있어서나 오직 인민만이 참다운 예술의 창조자이며 인민생활을 깊이 알고 의거하는 예술가만이 참다운 예술을 창조한다고 보여주고 있다.
3)국문시가의 획기적 발전
·훈민정음이 창제됨으로써 15세기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국문시가발전의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된다. 새로운 문자로 인해 작가자신이 창작한 작품을 원형 그래도 표기할 수 있게 되어 보다 다양한 형식으로 인간의 생활과 사상감정을 더욱 진실하게 반영할 가능성을 주었다.
·송가체시가: 이것이 조동일에서는 악장이라 볼 수 있다. 이조봉건국가의 사상문화정책에 따라 무엇보다 이조건립을 합리화하고 송축하는 노래들이 많이 창작되어 궁중악가로서 불리워졌다. 이 현실미화의 송가체시가는 주로 개국공신들이 참여했는데, 정도전·권근·변계량 등이 대표적이다.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도 송가체시가로 볼 수 있다.
·시조: 고려시대에 우리 나라의 고유한 민족시가형식으로서 발생한 시조는 이조에 들어와서 본격적인 발전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조초기에는 시조가 아직 양반사대부들에 의해서만 읊어지었다. 이 시기 시조문학은 이왕조의 건립을 배신행위라 하고 새왕조를 거부하고 고려조에 대한 그리움을 읊은 것-길재, 원천석이 대표적이다. 또 이조의 건립을 송축하고 높은 벼슬을 얻어서 득의양양한 기분을 반영한 시조들-변계량, 맹사성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국토방위의 애국적기개를 노래한 김종서의 작품, 사육신의 변치않는 기개를 결의하는 작품, 황진이와 같은 여류시인의 작품 등 다양한 형태의 시조가 나타났다.
·가사: 국문시가창작에 대하여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시대적요구가 강화되는 가운데 단가형식으로서의 시조와는 달리 생활을 보다 폭넓게 담을 수 있는 장가형식으로서의 가사가 발생하였다. 현전문헌에 의하면 가사의 형성은 15세기의 시인 정극인과 직접 관련되여 있다. 특히 정극인의 《상춘곡》은 지난시기에 볼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의 작품으로서 문학사적으로 큰 의의를 가진다. 《상춘곡》은 작자의 사상적제한성으로 말미암아 당대의 봉건사회현실을 일면적으로 미화분식하고 노동에서 떨어져 산수충격이나 즐기는 퇴직한 양반관료의 한가스러운 유흥기분을 노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문시가형식의 발전역사에서 볼 때 새로운 경지의 개척으로 된다. 정극인의 《상춘곡》을 비롯하여 김구의 《화전별곡》, 리황의 《환산별곡》,《목동문답가》등은 강호시가의 계열에 속하며 정철의 《관동별곡》《사미인곡》등 일련의 작품들은 그 혁신성이 뚜렷함에도 불구하고 그 주제사상적지향에서는 연군가사계열에 속한다.
4)한자시의 활발한 창작
·새로 건립된 이왕조의 척불숭유정책에 따라 15~16세기 유학교육의 급속한 보급과 과거제도의 실시는 양반계층의 문인, 학자들과 젊은 학도들속에서 한자시창 작에 대한 열의를 부쩍 높이게 하였다.
·도학자들의 한자시: 16세기에 들어와서 사회적모순이 더욱 격화되면서 시문학분야에서도 그 비판적 경향이 한층 강화되어갔다. 양반관료들과 지방토호들이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농민들에 대한 수탈과 착취를 감행하였는데 연산군의 폭정은 이를 더욱 조장시켰다. 표면상 훈구파와 사림파가 <사장>과 <도학>을 내걸고 대립되여 논쟁을 벌였으나 그 본질에 있어서는 도학과 사장에 대하는 태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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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7.23
  • 저작시기20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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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2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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