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시대 남북한의 한국사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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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분단시대 남북한의 한국사인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본론
1. 남한 사학계의 한국사 인식
(1) 남북의 분단과 1950년대의 역사인식
(2) 1960, 70년대의 민족사학론
1) 식민주의사학 비판과 민족주의 사학의 계승
2) 민족 문화론
3) 내재적 발전론
(3) 1980년대의 민중사학론
2. 북한 사학계의 한국사 인식
(1) 1945년 해방 ~ 한국전쟁
(2) 한국전쟁 이후 ~ 1960년대 후반
(3) 1960년대 후반 ~ 1980년
3. 1990년대 이후의 남북한의 역사인식

Ⅲ. 맺음말

본문내용

음을 자기 비판하는 한편, 항일무장투쟁사의 내용과 의의를 새롭게평가하고 로동당사를 새롭게 간행했다.
또한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시기를 통해서 우리 역사를 체계화하면서 빠진 부분들이 1970년대 보충되어 연구 성과로 출판되었다.
3. 1990년대 이후의 남북한의 역사인식
1990년대 이후에 남북한의 관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지금의 상황도 유동적인 만큼 현재에 관한 역사인식 파악에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역사인식보다는 90년대의 주요 흐름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1991년 남북합의사거 교환되었다. 이는 남북정부가 각기 상대방의 존재를 정식으로 인정하고 대등한 위치에 통일을 표방한 것이다.
김영삼 정권에서는 노태우 정권보다 대북정책 또는 통일정책면에서 더 큰 진전이 없었다. 김영삼 정권시기에, 김일성의 사망으로 남북정상회담이 결렬되고 조문문제, 잠수함사건이 겹치면서 남북관계가 오히려 침체되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성립되면서 대북 정책 및 통일 정책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햇볕정책 혹은 포용 정책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그것은 크게 두가지 특징을 가지는 것이라 이해된다. 첫째는 확실한 비흡수 평화 통일을 표방한 것이라 생각되며 둘째는 남북 회담 불발후 4자 회담안의 등장으로 조성된 통일 문제 및 한반도 문제의 북미중심 상황을 남북중심으로 전화시키는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년 6월, 김대중 정부에 의해 평양에서 분단 55년만에 처음으로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은 우리 민족사에 일대 전환점을 마련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 회담을 계기로 남북한의 이질적인 역사인식차이를 조금이나마 좁힐 수 있었다.
Ⅲ. 맺음말
분단시대 반세기를 통해 남북의 관계는 동쪽으로서의 친화력과 응집력은 계속 약화되고 적대감이 강화되었다. 그러므로 분단 시대 민족사 인식의 최대과제는 통일 지향 역사 인식을 어떻게 수립해 가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민족의 다른 한쪽에 대해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분단 국가주의’가 아니라 7천만 한반도 민족 전체를 하나의 역사공동체로 인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민족의 평춰거 호혜적 대등적 통일의 길을 열어가는 이데올로기로서의 ‘통일 민족주의’를 회복해 가는 것이 분단시대 역사 인식의 과제라 할 수 있다.
※ 참고문헌
한영우 외, 1990 「한국사 특강」서울대학교 출판부
강만길 외, 1994 「한국사(23)」한길사
강만길 1999 「21세기사의 서론을 어떻게 쓸 것인가」삼인
  • 가격1,5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7.09.05
  • 저작시기2007.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27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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