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사] 한국근대사에 끼친 기독교의 영향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한국근대사] 한국근대사에 끼친 기독교의 영향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본 론
1) 한국근현대사의 전개와 성격
2) 기독교의 역사적 전개
4) 기독교와 여성

3. 결론

참고 문헌

본문내용

치적, 문화적 차별과 소외 속에서 시달리는 동포를 위해서 모두가 힘을 합해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자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즉 누구의 억압도 받지 않고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독립국가 건설에 일익을 담당해야 할 과제가 주어진 존재들로서 부각되어졌다.
이러한 기독교 여성들은 19세기 말부터 전개된 한국여성운동의 주류를 형성하며 운동을 발전시켜 나갔다. 조선시대 유교적 여성관, 식민지시대 제국주의적 여성관 등을 반대하며 오늘날까지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 위치 등을 찾을 수 있도록 여성운동을 전개했다.
한국의 여성운동은 19세기 말, 기독교의 반봉건적 여성관이 밑거름으로 조직된 찬양회와 함께 출발했다. 기독교 여성운동도 이와 같은 시기부터 시작됐으며, 이후 한국 근현대 여성운동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기독교 여성운동을 지칭할 때는 일반적으로 기독교적인 신념 하에서 여성문제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조직적인 운동을 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기독교 여성운동도 일반 여성운동과 마찬가지로 식민지화 과정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당연히 민족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발전했다.
기독교 여성운동이 민족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조직적으로 민족운동에 나선 것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적인 운동으로 확대될 때였다. 기독교 여성들은 국미적성회, 부인의성회 등의 단체를 조직하여 적극적으로 이 운동에 참가하였는데 이는 그동안의 교회, 기독교 학교 등을 통해 여성문제를 자각하고 의식을 배양했기 때문이었다. 이들 기독교 여성들은 기독교적 신념을 가지고 민족문제와 여성문제를 동일시하면서 이 운동에 참여했던 것이다. 그러나 1910년 일제가 강제적으로 한국을 식민지화하면서 그동안 성장하고 배양됐던 여성의 지위는 땅에 떨어지게 됐다. 그럼에도 기독교 여성들은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여성운동을 전개, 확대해 나갔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기독교 여성운동은 사경회, 성경반 등을 통한 복음의 전도와 여성개화를 위한 계몽운동을 동시에 병행함으로 전개되었다. 조용히 신앙의 성장과 단체활동을 확대해 나가며 항일비밀결사체를 조직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31운동이 발발하자 즉각적으로 참여하여 만세운동에 앞장섰으며 31운동 직후 국내외에 항일여성운동단체 「한국의 기독교」윤정란 《한국교회와 기독교 여성운동》 - 대한민국애국부인회, 대한애국부인회,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 대한 독립청년단, 결백단, 대한독립부인청년단, 여자복음회, 독립여자부 등
들을 조직하여 운동에 적극 가담한다.
세계 열강의 국제 정세 속에서 민족지도자들은 실력양성의 시급함을 깨닫고 민족운동의 노선을 바꾸게 된다. 이에 발맞추어 여성들도 여성문제인식의 전환을 하게 되는데 이때 출현한 것이 1923년 전국기독교 여성단체인 YWCA 였다. YWCA는 문맹퇴치 통한 여성의식개혁 운동, 여성 권위 회복 운동, 여성생활 개선 운동 등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또한 이때 사회주의 여성진영과 협동을 도모하게 되어 이념을 초월한 여성단일단체인 ‘근우회’가 창립된다. 비현실적이라고 느껴 근우회를 탈퇴한 기독교 여성들은 농촌계몽운동에도 적극 나서게 된다. 식민지시대 기독여성들은 여성운동 자체를 민족운동으로 인식하고 남성들과 협력하며 운동을 전개시켜 나가면서 대중적인 영역확보에 많은 기여를 했다.
1945년 해방 이후 기독교 여성운동의 발전은 각 교파별로 조직을 재정비한 후 초 교파적 기독여성단체를 확대시켜가고 일반 여성단체와의 연대를 통해 사회에의 참여를 공고히 하게 된다. 향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가운데 여성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부적으로는 교회내의 아직 남아있는 보조자로서의 여성의 역할 및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타파를 들 수 있을 것이고, 또한 다른 운동단체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인권의 사각지대 등에도 관심을 가지는 등의 정치, 사회 참여 운동과 더불어 일반 여성운동단체와의 연대를 통해 좀더 사회와 민족의 요구에 부응할 뿐만 아니라 한 단계 앞서서 시대의 모순과 오류를 고쳐나가는 노력을 멈춰선 안 될 것이다.
3. 결 론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수용된지도 1세기가 지났다. 유구한 우리 민족사에 비하면 매우 일천한 역사라 하겠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역사적 측면에서 찾으려 할 때 우리는 근대사를 주목하게 마련이고 그러자면 자연히 한국 기독교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한국 기독교가 한국근대사의 출발점인 개항(1876년)과 동시에 출발했다는 점 외에도 개항 이후 오늘에 이르는 한국 사회의 변혁 운동의 단초가 거의 예외 없이 기독교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때로는 역기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개항기에 추진된 각종의 개화운동과 구국계몽운동의 동기 유발은 물론, 전 민족적 전 계층적 민족해방운동으로 전개된 31운동의 도화선과 그 운동력을 우리는 기독교를 배제하고 생각할 수 없다. 1930년대 이후 일제 식민 지배 하에서의 회절(廻折)의 상처와 해방공간(解放空間)이후 민족분단으로 이어지는 민족사의 소용돌이에서 그 소임과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을 또한 간과해서는 안되겠으나, 민주화의 성취와 통일운동의 발아는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요컨대 한국 기독교는 수난과 질곡으로 매듭지어온 한국 근현대사와 그 운명을 함께 하며 오늘에 이르렀다고 보아도 과히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논문을 준비하면서 기독교인으로서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을 알게 되어서 기쁘고 한국사와 기독교사의 연합선상에서의 연구가 매우 미진함을 발견하고서 학문에의 많은 가능성 또한 발견하게 되어서 기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료들이 너무 오래되었거나 해당 분야의 몇 사람에 의해서만 집중적으로 기독교적 관점의 한국사 서술이 대부분 이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분야에서 더욱 활발히 연구가 이루어지길 바라고 한국사와 기독교에 대한 정확하고 깊이 있는 이해를 가진 역사학자들을 통해 더욱 많은 연구들이 나오길 기대한다. 그러나 한국 근대사에 끼친 기독교를 역사학적으로 해석하고 서술하고자 할 때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면 기독교만이 구원의

추천자료

  • 가격2,000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15.04.27
  • 저작시기2015.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65297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