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로 보는 한국근현대사' 를 통한 일상사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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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상사로 보는 한국근현대사' 를 통한 일상사에 대한 고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1. 일상사의 연구범위
2. 독일에서의 일상사 연구
3. 한국으로 유입

Ⅱ. 본론
1. ‘억제된 균열’
1) ‘억제된 균열’의 내용
2) ‘억제된 균열’로 바라본 일상사의 특징
2. ‘근대’에의 열망과 일상생활의 식민화
1) ‘근대’에의 열망과 일상생활의 식민화의 내용
2) ‘근대’에의 열망과 일상생활의 식민화로 바라본 일상사의 특징

Ⅲ. 결론
1. 한국 사학계에서의 일상사
2. 일상사의 의의와 비판적 검토
※ 참고문헌

본문내용

혹은 30개를 차려야 했다고 한다. 반가의 며느리였던 이규숙의 회고에 따르면, 친지댁의 종조 어른의 생신 때는 손님상까지 합쳐서 아침에는 500상, 점심에는 400상을 차렸다고 한다. p.129
② 임효정은 “재래 생활방식 중에 제일 고통되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무엇보다 식사의 번접과 차별입니다. 이것저것을 대 없시 벌려놋는 것과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 할 것 없시 각각 차별하야 상을 보아야 하는 것이 큰 고통입니다. ...... 그럼으로 영양 잇는 것 한두 가지로 온 집안이 한결가티 한 자리에서 단란하게 식사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p.129
③ 민태원은 “학교에 가는 애들을 제일 먼저 먹여 보내고 그 담 볼일 잇는 식구가 먹고 또 그 담 엇던 사람이 먹고 또 그 담 상나기를 기다려 먹는 사람이 잇고 이와 가티 하야 몃층으로 식사를 하기 때문에 모든 가족의 생활은 불규칙하고 집안부녀들은 상심부름하기에 전력을 다하고 마는 것이외다”라고 하며 식사를 일정한 시간에 동시에 할 것을 주장하였다. p.129
④ 김필례는 여성들이 “가지가지로 멸시와 사역을 밧는 중 가장 억울한 것”으로 “아침부터 밤중까지 밥상 차려내다가 세월을 보내고 마는 것”을 들면서, 일정한 시간에 한 상에 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을 것을 주장하였다. p.129
(3) 생활방식 문화 (생활방식에 대한 입장/태도)
생활개선운동은 생활의 위생화, 과학화, 합리화, 경제화라는 슬로건과 일상적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개선사항을 제시하였다. 총독부 당국이 조선인들의 의식주와 풍속, 습관을 변화시켜 근면과 절약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이를 통해 생산력을 증가시키고 식민지 지배체제에 동조하는 식민지민을 만들어낸다는 의도를 품고 있었다고 한다면, 조선의 지식인들에게는 뒤처져 있는 조선 민족의 생활태도, 생활방식을 개선하여 식민지의 열등한 지위에서 벗어나 문명국가의 국민과 동일한 문명선상에 선다는 목표가 있었다. 일본의 생활개선운동은 생활난을 직접적인 계기로 해서 시작되었다면, 식민지 조선에서는 문화정치를 표방한 식민지 권력과 문화운동을 표방한 계몽적 지식인들에 의한 문명화운동으로서 의미가 더욱 강한 것이었다. 생활개선의 실행방법으로서 절약과 검소한 생활이 강조되었지만 그것이 단순히 욕망과 쾌락의 억제가 아니라 불필요한 소비를 없애고 더 유용한 곳에 소비함으로써 ‘더 나은 생활’에 대한 욕망, 즉 문화적 욕망을 충족하고자 한 욕망의 증진인 것이었다. p.124~127
(4) \'내면으로부터‘의 접근
① 가정생활 개선안들은 실생활에서 얼마나 수용되었을까? <별건곤> 1928년 12월호에는 “신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담이 실려 있다. “동서 절충식” 집에 사는 양주삼은 재래식 주방을 개량했으며, 아침식사는 간단히 하고 점심과 저녁에는 고기와 채소 등 “한두 가지” 반찬과 밥을 먹으며, 식사시간도 일정하게 하고, 밥을 먹을 때는 전 가족이 한 상에서 먹는다. 이외에도 색복을 착용하고 가계부를 작성해서, “과자 몇 개 사다 먹은 것까지” 다 기록되어 있다고 자신의 생활을 소개하였다. 다수는 아니지만, 중류층 이상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면서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였던 계층에서는 생활개선론에서 언급되었던 사안들을 상당히 적극적으로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p.141
② 신여성들은 불합리하고 과도한 가사노동을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였고 남성 지식인들과 식민당국은 주로 절약과 검소한 생활,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며 위생적인 생활을 할 담당자로서 여성의 의무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논조의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차이는 일반적인 논술보다는 좌담회나 설문조사 형식으로 된 기사에서 자주 발견된다. p.142
③ 전시 생활개선운동은 극단적인 내핍 속에서 실제 생활을 하는 자의 입장이서는 극히 비합리적이었다. 가정부인협회 회장이자 조선 요리의 대가로 알려진 홍승원은 생활개선 강연회의 강사로서 여러 지역을 다니며 음식 개량문제를 강연하였는데, “제가 생활문제 개선차로 전라도를 가보았는데 모두 먹이고 입히고 싶었습니다. ...... 그러니 음식 같은 것을 그들에게 제한을 하라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라고 말하였다. p.159
(5) 개인적 기록
① 1940년 전쟁이 한창이던 때 이광수는 생활개선이 급무임을 언급하는 가운데 한 권의 책을 소개하였다. 영양학의 전문가였던 오억이 쓴 ‘생활진로’가 그것이다. ... 이광수는 이 책에 대하여 “일가의 생명과 건강을 맡았다고 할 만한 주부로서는 암송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p.122
② 박달성은 \'개벽‘에 기고한 글에서 세계에서 조선 음식이 제일 “복잡”하고 “자양분이 업다”고 하면서, 그 결과 우리의 신체 역시 “위병, 체증”이 많이 생긴다고 비판하였다. ... 그는 상물림 풍속을 “더럽고 추한 버릇”이며 “야만의 식”이라 비판하고 그 폐지를 주장하였다. p129
③ 방정환은 “영양 가치란...... 그 음식물이 몸에 얼마나 유익한지 얼마만치 유익한지 그 묵에를 말하는 것이니 이것은 가장 중요한 근본지식”이라고 설명한 후, “이때까지는 돈만 만흔 것이면 조코 갑이 싼 것은 덥허노코 다 소홀히 녁여왓지만은 결코 그러치 아니한 것”이라며, 영양학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돈 만히 안드리고 몸에 유익한 것”을 택할 것을 주장하였다. p.131
④ 방정환은 흰빛이 “깨끗하고 순결해서 좋으나” 금방 더러워지는 까닭에 자주 빨래를 해야 한다고 지적한 후, “빨내를 자조 하는 것은 정결하니 조코 위생에 조치 안흔 것이 아니지만 거긔 드는 인력이 얼마며 비용이 또 얼마며 또 오래 닙을 수 잇는 옷감이 빨내 자조 하는 동안에 작고 상하여저서 오래 닙을 수 업게 되니 그 손해가 얼마입니까”라며, 색복 착용을 주장하였다. p.133
⑤ 이범승은 “의복은 양복이 좃슴니다. 지금 사회상에 출입을 하시는 이든지 사무나 로동하시는 이들도 모다 양복이 편리하다기는 일반이지만은 집 안에 드러서는 역시 조선옷을 입으닛가 결국은 이중생활이 되어 도로혀 불경제가 됩니다. 조선 사람으로는 무에든지 우리 것이 좃타고 주장을 하고저 하나 의복은 아모리 보아도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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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9.13
  • 저작시기20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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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27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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