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한국인의 음주현황
Ⅲ. 한국 음주 문화의 역사
(1) 고대시대 - 우리 술의 시작
(2) 삼국시대 - 우리 술의 정착
(3) 고려시대 - 우리 술의 개화(開花)
(4) 조선시대 - 우리 술의 전성기
(5) 일제시대 - 우리 술의 말살기
(6) 해방 후 - 대중주의 시대
Ⅳ. 한국의 음주 문화
⑴ 주도 및 주례
⑵ 우리나라의 주례가 잘 나타나 있는 "향음주례"
⑶ 음주문화의 유형
ⅴ. 세계의 음주 문화
(1) 독일의 음주문화
(2) 영국의 음주 문화
(3) 중국의 음주문화
(4) 프랑스의 음주문화
(5) 러시아의 음주문화
Ⅵ. 술의 명인들
Ⅶ. 결론
*참고문헌
Ⅱ. 한국인의 음주현황
Ⅲ. 한국 음주 문화의 역사
(1) 고대시대 - 우리 술의 시작
(2) 삼국시대 - 우리 술의 정착
(3) 고려시대 - 우리 술의 개화(開花)
(4) 조선시대 - 우리 술의 전성기
(5) 일제시대 - 우리 술의 말살기
(6) 해방 후 - 대중주의 시대
Ⅳ. 한국의 음주 문화
⑴ 주도 및 주례
⑵ 우리나라의 주례가 잘 나타나 있는 "향음주례"
⑶ 음주문화의 유형
ⅴ. 세계의 음주 문화
(1) 독일의 음주문화
(2) 영국의 음주 문화
(3) 중국의 음주문화
(4) 프랑스의 음주문화
(5) 러시아의 음주문화
Ⅵ. 술의 명인들
Ⅶ.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음주하며, 식기류의 세련됨, 금속의 발달, 크리스탈 잔의 영롱함, 그리고 Decarte의 후손에 맞는 토론문화 등이 식탁에서 포도주와 함께하는 풍성한 프랑스 문화의 정신세계에 불꽃을 일으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5) 러시아의 음주문화
러시아인은 유난스럽게도 보드카를 좋아한다. 영하 20도를 웃도는 겨울 길거리에서 술에 취해 자다가 객사한 사람에 대한 신문기사는 겨울철 해외 토픽의 단골 메뉴이다. 러시아인들이 보드카를 좋아함으로써 생기는 문제는 이외에도 수없이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보드카가 러시아의 사회에는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속죄양의 역할을 떠맡고 있는 면도 있다. 특히 서구인들은 자신들이 예상치 못한 일이 러시아에서 발생하면, 그것의 원인을 러시아 사회의 문화 또는 자기들의 러시아 문화에 대한 몰이해에서 찾기보다는 손쉽게 보드카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보드카는 러시아인들만 애음하는 특산의 술은 아니다. 이와 같은 종류의 술은 폴란드, 몽골, 스웨덴, 핀란드 등지에서 애음되고 있으며, 이들 각각의 나라에는 이와 관련된 나름대로의 음주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보드카가 러시아인의 술로 정착한 시기는 오래되지 않았다. 보드카(vodka)라는 단어는 러시아어 물(voda)에서 유래하는데, 처음으로 문헌에 나타나는 시기는 14세기경이다. 그러나 이 기록만으로 이 시기에 보드카가 어느 정도 소비되고 있었을 거라고 추측하는 것은 무리이다. 러시아인들은 고대로부터 알코올 도수가 낮은 크바스를 일상적인 음료로 마셨으며, 종교적·개인적 축일에는 도수가 높은 벌꿀술(Miod)을 마셨다. 그리스 정교를 수용한 988년을 전후해서 비잔틴과 소아시아에서 온 포도주가 각종 종교행사와 의식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 술은 매우 비쌌기 때문에 상류층에서만 소비되었다. 그리스 정교가 수용된 후에도 러시아인의 음주문화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회교 대신 그리스 정교를 러시아 국교로 삼은 이유는 - 키예프 루시의 블라드미르 대공의 공식적인 견해에 따르면 - 전자가 알코올 섭취를 금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이유에서 러시아에 수용된 그리스 정교는 이들의 음주문화를 별달리 변화시킬 수 없었다.
무색(無色), 무취(無臭), 무미(無味)의 보드카는 러시아인에게 자연스러움과 깨끗함을 의미한다. 보드카는 곡물을 발효, 증류시킨 순도 40도의 술인데, 40도로 정착시킨 사람은 황제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보드카의 개량에 큰 기여를 한 러시아의 유명한 화학자 드미뜨리 멘델레프였다. 19세기 후반 그는 여러 번의 실험을 통해 순도 40도의 술이 인간의 입맛에 가장 적합하고, 또한 이 도수에서 숙취를 일으키는 주범인 퓨젤유 등과 같은 불순물이 가장 잘 걸러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는 보드카 제조 과정을 현대화하는 것, 그리고 인공적인 첨가물을 가미한 희석식 주조 방식에 대해서 반대했다.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면서 만들어진 보드카만이 러시아 정신을 잘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개량 작업 후 러시아 보드카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보드카는 전통적이면서도 과학적인 술이 되고, 불순물이 거의 없는 자연스러움과 깨끗함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보드카는 러시아인의 순수한 정신을 나타내 주고, 이 정신을 마심으로써 사람들은 진짜 러시아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러시아인들이 보드카를 마시는 것은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하나님의 예식이다. 또한 이 술은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맺어 주고, 이 관계를 깊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보드카가 사랑받는 또 다른 이유는 러시아인들이 이 술의 신비한 힘 또는 효능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열악한 의료시설밖에 없었던 시기에 보드카는 마취제의 역할을 하였으며, 약으로도 쓰였다. 배가 아프면 보드카에 소금을 타서 마시고, 감기에 걸리면 후추를 타서 마시고, 신체적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보드카를 마시고 마늘이나 양파를 먹고 증기목욕을 하러 갔다.. 또한 보드카는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배고픔과 추위 그리고 삶의 질곡을 잊게 해주는 좋은 친구였던 것이다.
Ⅵ. 술의 명인들
(1) 주선(酒仙) 이백(李白)
술 하면 누구나 이태백(李太白)으로 알려져 있는 이백을 떠올린다. 그는 두보로부터 주중선(酒中仙)이라 불렸으며, 자기 스스로도 적선(謫仙) 천상에서 지상으로 귀양 온 신선
이라 칭했다. 그는 ‘월하독작(月下獨酌)’이란 시에서 ‘석 잔이면 큰 도에 통하고 한 말이면 자연과 어우러진다.’ 고 할 정도로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술에 관한 일화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술만 좋아하는 한량은 아니다. 유명한 「장진주」에서
만고의 시름을 씻어 내리려
연거푸 삼백 항아리의 술을 마신다
라고 읊었다. 인생의 유한함과 현실 속에서의 좌절을 달래기 위해 술의 힘을 빌린 것이다. 그렇지만, 그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그가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그야 말로 술의 노예가 아닌 진정한 주선(酒仙)인 것이다. 또한 그는 이렇게 멋진 시를 남겼다.
두 사람이 마주앉아 술잔을 나누면 산에는 꽃이 피네
한 잔, 한 잔, 또 한 잔,
내 취해서 잠들고자 하니 그대는 돌아가시라.
내일 아침에 생각이 있거든 거문고 안고 오시게.
뜻이 맞는 벗이 찾아와서 꽃그늘 아래에서 술을 마신다. 굳이 예의범절에 따질 것이 없는 자리인데도 술에 취해 잠이 온 주인은 손에게 가라고 한다. 축객령이 아니라 서로 그만큼 구애받을 것이 없는 관계이지만 또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면모를 볼 수 있다.
(2) 송강 정철
중국에 이백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송강 정철이 있다. 뛰어난 능력을 가졌으나 평생 당쟁에 휩쓸린 그는 그 환경 속에서도 아름다운 수많은 시가를 남긴 위대한 문인이다. 죽을때 까지 술을 끊지 못할 정도로 술을 사랑한 그는, 선조가 한잔씩 마시라도 하사한 은잔을 두들겨 사발만 하게 늘려서 마시기도 했다고 한다.
져근덧 가디 마오. 이 술 한 잔 머거 보오.
北북斗두星셩 기우려 滄챵海해水슈 부어 내여,
저 먹고 날 머겨날 서너 잔 거후로니,
和화風풍이 習습習습하야 兩냥腋액을 추혀 드니,
九구萬만里리 長
(5) 러시아의 음주문화
러시아인은 유난스럽게도 보드카를 좋아한다. 영하 20도를 웃도는 겨울 길거리에서 술에 취해 자다가 객사한 사람에 대한 신문기사는 겨울철 해외 토픽의 단골 메뉴이다. 러시아인들이 보드카를 좋아함으로써 생기는 문제는 이외에도 수없이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보드카가 러시아의 사회에는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속죄양의 역할을 떠맡고 있는 면도 있다. 특히 서구인들은 자신들이 예상치 못한 일이 러시아에서 발생하면, 그것의 원인을 러시아 사회의 문화 또는 자기들의 러시아 문화에 대한 몰이해에서 찾기보다는 손쉽게 보드카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보드카는 러시아인들만 애음하는 특산의 술은 아니다. 이와 같은 종류의 술은 폴란드, 몽골, 스웨덴, 핀란드 등지에서 애음되고 있으며, 이들 각각의 나라에는 이와 관련된 나름대로의 음주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보드카가 러시아인의 술로 정착한 시기는 오래되지 않았다. 보드카(vodka)라는 단어는 러시아어 물(voda)에서 유래하는데, 처음으로 문헌에 나타나는 시기는 14세기경이다. 그러나 이 기록만으로 이 시기에 보드카가 어느 정도 소비되고 있었을 거라고 추측하는 것은 무리이다. 러시아인들은 고대로부터 알코올 도수가 낮은 크바스를 일상적인 음료로 마셨으며, 종교적·개인적 축일에는 도수가 높은 벌꿀술(Miod)을 마셨다. 그리스 정교를 수용한 988년을 전후해서 비잔틴과 소아시아에서 온 포도주가 각종 종교행사와 의식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 술은 매우 비쌌기 때문에 상류층에서만 소비되었다. 그리스 정교가 수용된 후에도 러시아인의 음주문화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회교 대신 그리스 정교를 러시아 국교로 삼은 이유는 - 키예프 루시의 블라드미르 대공의 공식적인 견해에 따르면 - 전자가 알코올 섭취를 금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이유에서 러시아에 수용된 그리스 정교는 이들의 음주문화를 별달리 변화시킬 수 없었다.
무색(無色), 무취(無臭), 무미(無味)의 보드카는 러시아인에게 자연스러움과 깨끗함을 의미한다. 보드카는 곡물을 발효, 증류시킨 순도 40도의 술인데, 40도로 정착시킨 사람은 황제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보드카의 개량에 큰 기여를 한 러시아의 유명한 화학자 드미뜨리 멘델레프였다. 19세기 후반 그는 여러 번의 실험을 통해 순도 40도의 술이 인간의 입맛에 가장 적합하고, 또한 이 도수에서 숙취를 일으키는 주범인 퓨젤유 등과 같은 불순물이 가장 잘 걸러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는 보드카 제조 과정을 현대화하는 것, 그리고 인공적인 첨가물을 가미한 희석식 주조 방식에 대해서 반대했다.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면서 만들어진 보드카만이 러시아 정신을 잘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개량 작업 후 러시아 보드카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보드카는 전통적이면서도 과학적인 술이 되고, 불순물이 거의 없는 자연스러움과 깨끗함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보드카는 러시아인의 순수한 정신을 나타내 주고, 이 정신을 마심으로써 사람들은 진짜 러시아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러시아인들이 보드카를 마시는 것은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하나님의 예식이다. 또한 이 술은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맺어 주고, 이 관계를 깊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보드카가 사랑받는 또 다른 이유는 러시아인들이 이 술의 신비한 힘 또는 효능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열악한 의료시설밖에 없었던 시기에 보드카는 마취제의 역할을 하였으며, 약으로도 쓰였다. 배가 아프면 보드카에 소금을 타서 마시고, 감기에 걸리면 후추를 타서 마시고, 신체적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보드카를 마시고 마늘이나 양파를 먹고 증기목욕을 하러 갔다.. 또한 보드카는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배고픔과 추위 그리고 삶의 질곡을 잊게 해주는 좋은 친구였던 것이다.
Ⅵ. 술의 명인들
(1) 주선(酒仙) 이백(李白)
술 하면 누구나 이태백(李太白)으로 알려져 있는 이백을 떠올린다. 그는 두보로부터 주중선(酒中仙)이라 불렸으며, 자기 스스로도 적선(謫仙) 천상에서 지상으로 귀양 온 신선
이라 칭했다. 그는 ‘월하독작(月下獨酌)’이란 시에서 ‘석 잔이면 큰 도에 통하고 한 말이면 자연과 어우러진다.’ 고 할 정도로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술에 관한 일화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술만 좋아하는 한량은 아니다. 유명한 「장진주」에서
만고의 시름을 씻어 내리려
연거푸 삼백 항아리의 술을 마신다
라고 읊었다. 인생의 유한함과 현실 속에서의 좌절을 달래기 위해 술의 힘을 빌린 것이다. 그렇지만, 그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그가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그야 말로 술의 노예가 아닌 진정한 주선(酒仙)인 것이다. 또한 그는 이렇게 멋진 시를 남겼다.
두 사람이 마주앉아 술잔을 나누면 산에는 꽃이 피네
한 잔, 한 잔, 또 한 잔,
내 취해서 잠들고자 하니 그대는 돌아가시라.
내일 아침에 생각이 있거든 거문고 안고 오시게.
뜻이 맞는 벗이 찾아와서 꽃그늘 아래에서 술을 마신다. 굳이 예의범절에 따질 것이 없는 자리인데도 술에 취해 잠이 온 주인은 손에게 가라고 한다. 축객령이 아니라 서로 그만큼 구애받을 것이 없는 관계이지만 또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면모를 볼 수 있다.
(2) 송강 정철
중국에 이백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송강 정철이 있다. 뛰어난 능력을 가졌으나 평생 당쟁에 휩쓸린 그는 그 환경 속에서도 아름다운 수많은 시가를 남긴 위대한 문인이다. 죽을때 까지 술을 끊지 못할 정도로 술을 사랑한 그는, 선조가 한잔씩 마시라도 하사한 은잔을 두들겨 사발만 하게 늘려서 마시기도 했다고 한다.
져근덧 가디 마오. 이 술 한 잔 머거 보오.
北북斗두星셩 기우려 滄챵海해水슈 부어 내여,
저 먹고 날 머겨날 서너 잔 거후로니,
和화風풍이 習습習습하야 兩냥腋액을 추혀 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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