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의 격투기- 스모, 가라테, 프로레슬링과 UWF, 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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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에서의 격투기- 스모, 가라테, 프로레슬링과 UWF, K-1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I. 일본에서 격투기의 인기이유
1. 지형의 차이에서 비롯된 '무사도'라고 불리는 일본의 독특한 전통
2. 서양인에 대한 콤플렉스 해소
3. 체계적인 기반의 조성

Ⅱ. 스모 ----일본의 국기
1. 스모(すもう)의 정의
2. 스모의 유래와 역사
3. 스모의 용어
4. 스모의 목적과 의식
5. 유명한 스모 선수
6. 스모의 미래 - 국제화
7. 한 일 비교 씨름과의 비교

Ⅲ. 가라테(空手) ----오키나와테(沖縄手)부터 k-1까지
1.실전가라테(空手)의 대두까지
2. k-1의 대두

Ⅳ. 프로레슬링과 UWF
1.프로레슬링의 발전과 UWF의 성립
2. UWF의 후계자들
3.종합격투기 (PRIDE와 UFC)의 선수들

V. 한국에서의 격투기의 입지
1.한국의 격투기 대회
2.일본과 한국의 이종 격투기 차이
3.국내 이종격투기의 전망

VI. 결론
※.참고자료
일본 격투기의 역사.
참고 자료

본문내용

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한국전쟁 후 우리나라에 주둔한 미군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식료품 지원이 이루어졌고, 서양의 위생관념, 성관념 등 여러 서양 기준의 사상들이 들어왔지만, 우리가 진심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은 역도산이 서양인들을 초청하여 일본본토에서 그들을 물리치는 모습을 연출하여 전 후 공전의 붐을 일으킨 것도 주원인이다. 또한, 극진가라테 최영의총재가 갖은 해외 원정시합에서 그들을 물리치는 모습은 강한 것을 숭배하는 일본인의 뇌리에 가라테를 각인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또한, 이와 같은 이들이 있었기에 일본의 격투기는 크게 인기를 끌고 발전 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 진 것이다. 실제로도 일본의 현 메이저 격투기 대회의 원류를 보면 최영의 총재의 극진가라테의 지류인 K-1과 역도산의 프로레슬링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프라이드FC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3. 체계적인 기반의 조성
일본의 경우 어떠한 상품이나 대상이 상품성이나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체계적으로 상품화하는 데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라면”의 경우 원래 중국이 라면의 원조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원조임을 알고 있는 사람보다 일본이 원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일본은 인스턴트라면의 개발로 세계에 “일본라멘”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렸고, 현재 거의 라면의 원조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밖에 만화가 “망가”로, “POP\"음악이 \"J-POP” 이라는 일본만의 독특한 형식으로 자리 잡은 것은 또 다른 예로 볼 수 있다. 또 하나 예로 “기무치” 사건을 들 수 있다. 김치의 여러 가지 장점들을 우리나라보다도 더 먼저 알고 이를 먼저 세계에 유통시킨 일본은 “김치”가 일본고유의 음식이라고 주장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세계에서는 “기무치”가 아닌 “김치”를 인정해주었다. “김치”가 인정받은 것은 다행이지만, 일본의 어떠한 대상의 장점이나 특수성을 발견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특성은 배울 만하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이 스모의 광이라는 사실이나 헐리우드에서 일본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게이샤의 추억”이나 “라스트 사무라이”등의 영화를 제작하고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사실들은 일본의 이런 성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는 격투기의 영역에서도 적용되어 마치 1부 리그와 2부 리그를 연상케 하듯 프로레슬링도 마찬가지지만 판크라스 대회와 링스 대회가 나름대로의 룰로 견고한 매니아층을 확보함으로써 프라이드 FC가 창단되기 전 이미 그 저변을 확립하고 있었다. K-1의 경우에도 정도회관에서 발족준비를 10년 가까이 했다고 이미 언급한바 있다. 이와 같이 주먹구구식의 대회 운영이 아닌 일본인의 치밀함에 기인한 사전준비와 조직구성이 1회성의 단발적인 이벤트가 아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한 것이다.
Ⅱ. 스모 ----일본의 국기
1. 스모(すもう)의 정의
스모는 일본을 대표하는 국기(國技)로서 몽골과 우리나라의 씨름의 영향을 받아 토착화한 전통 스포츠로 본래 신앙상의 점으로 어느 쪽이 이겼느냐에 따라 생산의 길흉을 점쳤다는 것이 그 기원입니다. 옛날에는 진혼-매장-복식-의례의 4대 의식 가운데 하나에 포함되는 행사였으며 스모 선수들의 몸집이 비대한 것도 여기서 기인한 것으로, 풍요를 상징하는 의미라는 설도 있다.
2. 스모의 유래와 역사
스모의 역사는 약 1500년 정도인 것으로 전해진다. 스모는 고사기『古事記』에 쓰여 있는 신들의 치카라 구라베(ちからくらべ:힘 겨루기) 에서 기원했다고 하는데, 이 힘겨루기는 공격과 수비를 정해놓고 손을 맞잡고 싸우는 형식을 띠고 있으며 현재 스모의 형식은 여기서 유래했다고 할 수 있다. 문헌상의 최초 기록은 백제가 일본에 문화·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던 642년 당시 백제의 사신을 접대하기 위하여 궁정의 호위병들 간에 스모를 시켰다는 일본서기『日本書記』를 들 수 있다. 이 시기의 스모를 신지즈모(神事相撲)라고 하는데 호국풍양(護國豊穰)을 기원하는 신사(神事)로서의 스모였다.
스모는 처음에 칸진스모( 勸進相撲, かんじんすもう)라하여 신도의 사원이나 사찰의 기금마련을 위한 축제일이나 성스러운 기념일에 개최되었다고 한다. 가마쿠라(鎌倉)시대에는 무사들에게 적극 장려되었으며 에도(江戶)시대(1603~1867년)에는 대중화되어 이미 직업 선수 리키시 [力士, りきし]도 등장했다. 에도(江戶) 시대에는 지나친 사행성으로 국가에서 스모 금지령을 내릴 정도였다가 18세기쯤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300여 년에 걸쳐 지금과 같은 경기제도와 규칙을 확립하였고 오늘날에는 일본 스모 협회까지 결성되어 매우 조직적으로 프로 스모 경기를 운영하고 있다. 도쿄(東京)을 비롯한 전국 대도시에서 순회 경기를 여는데, 그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여서 도쿄에서 1, 5, 9월 3회 시합이 열리는데 표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3. 스모의 용어
도효(土俵)
스모 경기를 하는 장소로 도효바(土俵場)의 줄임말. 원래는 흙을 담은 가마니라는 뜻인데, 그 뜻이 변하여 흙을 채워 넣은 작은 가마니를 바닥에 둥그렇게 둘러놓은 공간을 가리키게 되었다. 한 변이 6.7미터가 되도록 정방형으로 흙을 쌓아 올려 단을 만들어 굳힌 다음에 지름이 4.55미터의 등근 원을 만든다. 도효의 경계선은 흙을 채운 작은 가마니를 20개로 둥글게 바닥에 파묻어서 고정시킨다.
마와시(廻し)
우리 씨름의 샅바와 같은 것으로 리키시(力士)의 계급에 따라 \'토리마와시\'와 \'케이코마와시\'의 두 종류가 있습니다.
키요메노시오(淸めのしお)
리키시(力士)가 씨름판에 등장해서 뿌리는 소금으로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소금이 부정을 막아준다고 하여, 씨름판에 리키시(力士)가 등장하자마자 소금을 허공에 뿌리는 것은 부정을 막고 씨름판을 맑은 기(氣)로 채운다는 의미.
치카라미즈(力水)
도효 모서리에 놓여진 물통의 물을 국자로 퍼서 리키시(力士 )가 씨름판에 나오기 전에 입을 헹구고 기력을 왕성하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치카라가미(力紙) 일본 전통종이를 반으로 접은 것으로 리키시(力士)가 시합에 들어가기 전 이것으로 몸을 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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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11.05
  • 저작시기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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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3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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