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통사 정리와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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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문학통사 정리와 비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1. 13. 내면의식을 추구한시
11.13.1. 시문학파가 개척한 길
11.13.2. 모더니즘 운동의 허실
11.13.3. 생명파의 등장
11.13.4. 유파 밖의 여러 시인
11.13.5. 여성 시인의 작품 세계
11. 14. 어두운 시대의 상황과 소설
11.14.1. 민족해방 투쟁의 소식
11.14.2. 하층민의 고난을 다루는 방법
11.14.3. 염상섭·현진건·채만식의 사회사소설
11.14.4. 세태소설
11.14.5. 지식인의 수난과 자학
11.14.6. 작가 신변의 관심거리
11.14.7. 서정적 소설의 확산

본문내용

이었던 것이다. 이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 ‘시문학파’였기 때문에 어떠한 주의주장도 내세우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문학자체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것이다.
문학이라는 예술은 예술 가운데서도 다른 사회적 현상-정치, 도덕, 철학 등과 가장 혼선되기 쉬운 형태이다. 더구나 현재와 같이 전연 새로운 문화의 생성을 앞둔 혼돈기에 있어서 우리의 문학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해두지 아니하면 우리는 창작에 있어서나 감상에 있어서나 오류와 혼란 이외의 아모 진전도 자기지 못할 것이다.
문학은 우리를 어떻게 맨드러 주는가. 왜 우리는 문학을 좋아하는가. 왜 특별히 우리는 문학을 쓰는가 문학은 다른 사회적 현상과 어떤 점에서 공통 또 상이되는가. 우리는 여기 대해서 쉬지 않고 반성할 기회를 갖지 아이하면 아니 된다.
2) 시 자체의 예술성 추구
1920년대 까지는 독자와 문학하는 이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 특히 시의 경우 자신의 느낌을 짧게 토막지어 놓으면 시인이 되는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시문학파’에 이르러 시인은, 독자와는 다른 ‘방법적 정신에서 출발하야 유사 가운데서 상이를 발견하기에’ 힘써야 한다고 하여, 시인의 전문성 혹은 언어예술가로서의 장인의식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시문학파’에 이르러 도구로서의 문학에서 예술로서의 문학에로 그 의식이 발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식의 발전은 또한 시인에게 있어서 모국어에 대한 문학적 자각을 갖게 했다고 할 수 있다.
한 민족의 언어가 발달의 어느 정도에 이르면 구어로서의 존재에 만족하지 않고 문학의 형태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 문학의 성립은 그 민족의 언어를 완성시키는 길이다.
이것은 ‘시문학파’의 언어관인 동시에 문학관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문학적 방향의 집약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의 자율성과 언어의 자율성은 동전의 앞뒤와 같은 관계이다. 도구로서의 문학을 거부하면 도구로서의 언어도 거부하게 된다. 그래서 “구언로서의 존재에 만족하지 않고 문학의 형태를 요구”하게 된다. 이것이 ‘시문학파’의 언어관이다. 구어는 도구로서의 언어를 의미하며 문학의 형태는 존재로서의 언어를 의미한다 이러한 언어에 대한 자각을 기반으로 한국시의 현대시적 특성이 형성된 것이다.
3) 외래성과 전통성의 조화 추구
김윤식은 시조의 부활과 민요시파의 등장은 전통지향성이며, 카프파의 문학은 모더니티 지향성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것이 1930년에 창간된 「시문학」이라는 시 전문이다. 이것은 전통지향성과 모더니티 지향성의 융합으로 규정된다.” 고 말하고 있다 김윤식, 「한국현대시론비판」(일지사. 1982) p. 244
‘시문학파’의 “외래성과 전통성의 조화 추구”라는 문학적 방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박용철과 이하윤의 이론적이고 외적인 균형의 추구이고, 둘째는 정지용과 김영랑의 창작시를 통한 새로운 시의 성취라는 내적인 추구이다.
첫째는 이론적이고 외적인 균형의 추구는 ‘문예월간’ 1~4호를 통해 구체적으로 전개된다.
이제 모든 문예운동은 세계를 무대로하야 향상하고 진전해 나간다. 일개인 일유파의 문학은 그것이 일국민문학이 되기도 하는 동시에 또한 세계문학의 권내로 포괄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하윤, ‘문예월간’ 창간사에서
이것이 박용철과 이하윤의 이상이었다. 그러나 문예운동은 이론이나 외적인 균형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창작시를 통한 새로운 시의 성취로써만 달성되는 것이다. 물론 이론적·외적인 균형의 추구도 하나의 과정으로서 필요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작품적 성과로써만 나타난다는 것을 박용철은 알고 있었다. 정지용과 김영랑의 작품적 성과는 모더니티 지향성과 전통지향성의 변증법적 발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시인은 외래성과 전통성의 조화를 통해 자신의 시세계를 완성한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정지용에게선 서구적 잔상이 짙게 나타남으로써 박철희, ‘한국시사연구’ pp, 205~228
모더니즘시의 선구자로 평가 받게 되었으며, 김영랑에게선 한국적 가락이 흘러나옴으로써 전통적 율격의 시인으로 평가받게 되었을 뿐이다.
시문학파 주동자 세 사람이 보여주는 자세는 서로 달랐다. 김영랑은 침묵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시론을 전개하지 않고 산문을 쓰는 데 관심이 없고, 작품에 제목을 붙이는 것마저 되도록 피했다. 서투른 말로 기존의 주장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것을 내심으로 헤아려 오직 시 창작에만 힘을 썼다. 전달하는 내용은 시에서 되도록 배제하려고 했으므로 드러내 설명할 것도 없었다. 정지용은 산문도 즐겨 쓰면서, 시를 옹호하는데 산문을 이용했다. 산문이라도 설명이나 주장은 없고 고풍스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기교를 돋보이게 해서 같은 성향의 시를 측면에서 빛내주는 방도로 삼았다. <문장>이라는 잡지에 그런 기풍이 돌게 하고, 시 추천 작품의 심사를 맡아 영향력을 확대했다. 박용철은 시문학파의 대변자 노릇을 하면서 시 창작보다 시론을 전개하는 데 열의를 보였다. 내면의식의 순수성을 소중하다는 것을 기본논지로 삼아 시문학파를 옹호하려 하면서 서구 시 견문에서 얻은 논거를 이용했다.
① 김영랑(1903~1950)
김영랑은 ‘시문학’ 창간호에 13편의 시를 발표함으로써 시단에 나온 시인이다. 그 뒤 ‘시문학’ 지 2·3호와 ‘문학’지 1~3호 모두 37편의 시를 발표하고, 1935년 박용철에 의해 53편의 시를 묶어 ≪영랑시집≫이 발간된다. 이 ≪영랑시집≫에 수록된 작품은 1번부터 53번까지 번호가 붙어 있을 따름이다. ≪영랑시집≫의 53편이 김영랑의 ‘시문학파’ 활동기의 작품이며, 전체적으로는 그의 초기시에 속한다. 그런 만큼 김영랑은 정지용과는 달리 시간적 순서에 따라 그의 시적 전개와 작품세계를 고찰할 수 없다는 특성을 지닌다. 이것은 김영랑의 시가 한 페이지를 넘지 않는 ㅖ은 시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시의 제목을 붙이지 않고 번호만을 붙인 것은, 그의 시 전체를 하나의 연작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시세계가 일관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1) ㅖ은 시와 운율적 언어구조
뵈지도 안는 입김의 가는실마리
새파란 하날끝에 오름과 가치
대숲의 숨은 마음 기혀 차즈리
  • 가격1,500
  • 페이지수58페이지
  • 등록일2007.11.03
  • 저작시기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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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34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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