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한국영화의 특징에 대해
Ⅱ. 연도별 한국영화의 특징
1. 1960년대 한국영화의 특징
<한국영화의 황금기>
2. 1970년대 한국영화의 특징
<한국영화의 침체기>
3. 1980년대 한국영화의 특징
<한국영화의 전환기>
4. 1990년대 한국영화의 특징
<한국영화의 발전기>
5. 2000년대 한국영화의 특징
<한국영화의 전성기>
Ⅲ.한국영화의 발전방향
Ⅱ. 연도별 한국영화의 특징
1. 1960년대 한국영화의 특징
<한국영화의 황금기>
2. 1970년대 한국영화의 특징
<한국영화의 침체기>
3. 1980년대 한국영화의 특징
<한국영화의 전환기>
4. 1990년대 한국영화의 특징
<한국영화의 발전기>
5. 2000년대 한국영화의 특징
<한국영화의 전성기>
Ⅲ.한국영화의 발전방향
본문내용
해 비구니들이 불교를 모독한다며 제작 중지 진정에 이어 촬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비구니측은 제목 ‘비구니’가 구도자인 비구니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했으며 상업용 외설물의 소재로 삼았다고 주장했고, 태흥영화사는 제작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정부의 규제 강화와 관련 집단의 압력은 영화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창조성과 다양성을 규제함으로 영화인들의 열정과 의욕을 감퇴시켜 한국 영화는 방향감각조차 상실하였다. 대중들의 욕구를 외면한 아류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고 관객의 감소는 영화산업을 부진으로 몰아넣었다. 열정도 재미도 없는 한국 영화에 관객들의 감소는 당연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영화인들은 제작 자유화와 표현의 확대를 요구했다. 그 결과 지난 70년대에 줄곧 영화시책에서 주장했던 유신이념의 구현이라는 특정한 정책명령이 사라지고 \'영화예술의 향상\'을 목표로 하는 1984년 영화법이 개정되고, 85년 7월 시행령이 공표되어 영화제작의 자유화가 실현되었다. 한국영화의 제작 환경이 일대 전환기를 맞은 것이다. 이로 인하여 활발한 영화제작이 시작된다. 1980년대의 변화는 86아시안게임, 88서울 올림픽이 큰 변수로 작용되었다. 소련, 중국, 동유럽 국가들과 교류의 물꼬를 트는 것을 계기로 민주화, 자유화, 국제화라는 시대적 흐름도 한국 영화의 환경전반을 전환시키는 배경이 되었다. 또한 영화진흥공사가 84년에 설립한 한국영화아카데미는 실습위주의 교육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 전문 인력을 키워낸다. 여기서 키워진 인력에서 80년대 젊고 새로운 영화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폐쇄적인 영화 환경에서 개방적인 환경으로의 전환은 영화에 있어서 소재의 개방과 다양함, 자유로운 표현과 연출을 가져다주었다. 1980년대는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격변의 시기였다. 70년대에 영화에 대한 정책적 통제가 마구잡이식 영화의 검열을 통해 폭 넓은 표현의 다양성을 가로막았던 것에 비해 80년대에 들어서서는 제 5공화국의 출범과 함께 표방했던 개방적 민주사회로의 방향전환을 힘입어 제작에도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가 마련되었다. 놀랄만할 경제적 성장과 그에 따른 정서적 풍요와 의식구조의 다양화는 우리 영화에 있어서도 다양하고 대담한 스토리전개와 화면 구성을 가능하게 했다. 여기에 비디오 시대의 개막 또한 한국 영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비디오 판권 수입은 제작비의 일부분을 충당해 제작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비디오 대여 가게의 증가는 잠재적이 영화관객을 확보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또한 역량 있는 인재들이 영화계에 유입되고 신인들의 활동이 두드러짐으로써 한국영화는 다시 생기를 찾을 수 있었다. 위와 같은 배경으로 사회에 대한 비판적 리얼리즘을 담고 있는 영화, 새로운 사극의 경향을 담고 있는 영화, 에로티시즘을 플러스한 멜로 영화, 개인적 혹은 사회적인 갈등과 고뇌를 담은 종교 영화 등 다양하고 참신한, 새로운 경향을 띄는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1980년대 한국 영화의 대전환기는 1990년대를 지나 2006년 지금까지 한국 영화가 성장하고 발전하기 까지 토양이 되었고 발판이 되었다.
<리얼리즘의 경향>
한국의 역사적 상황을 보면 초창기 이후 거의 대부분의 기간이 현실을 묘사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조차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0년대 초 배창호 감독이 <꼬방동네 사람들>로 데뷔할 때 시나리오 사전 심의에서 67개의 수정을 강요받았는데 그 중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다룬 소설의 원제목을 쓰지 마라’ ‘요강을 방안에 두지 마라’ 등이 있었다고 한다. 검열이나 심의가 60. 70년대에 비해 많이 완화된 것이란 걸 고려한다면 그 당시에는 얼마나 심했을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한국영화의 암흑기에서 리얼리즘은 가장 진보적인 태도였고, 정신적 저항의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영화에 있어서 리얼리즘이란 지역,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개념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앙드레 바쟁의 리얼리즘으로 현실사회의 인신론적인 관점보다는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있는 그대로의 재현을 의미하는 것이다. 영화란 대상이 지닌 공간성과 그 대상이 위치하는 공간을 다룬다는 점에서 리얼리티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비판적 리얼리즘이다. 이것은 어두운 사회의 이면 또는 소외받는 계급 등 현실사회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제시한다. 한국영화는 후자 쪽인 비판적 리얼리즘에 가깝다고 하겠다. 80년대 리얼리즘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이장호 감독은 <어둠의 자식들(1981)>, <바보선언(1983)>, <바람불어도 좋은날(1980)> 등의 많은 영화를 제작한다. 이들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소외당하는 계층의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외에도 리얼리즘을 다룬 작품으로는 빈민들이 모여 사는 달동네인 꼬방동네를 무대로 소외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배창호 감독의 <꼬방동네 사람들(1982)>, 폐쇄적이며 억압된 현실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젊은이들의 꿈과 낭만이 후련한 해방감과 함께 신선한 충격을 주어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고래사냥(1984)>, 바다를 생활 터전으로 하는 사람들의 아픔과 끈끈한 사랑의 집념을 추적한 정진우 감독의 <백구야 훨훨 날지마라(1982)> 등을 들 수 있다.
<사극영화의 부활>
1970년대의 텔레비전 시대가 도래한 후 실상 제작비가 많이 드는 역사극은 영화제작에서 거의 그 자취가 사라지고 대신 안방극장의 단골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러나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역사극은 새로운 모습으로 영화제작에 복귀한다. 50, 60년대 사극이 압도적으로 재미있는 야사나 고전소설을 각색한 사극 멜로드라마와 궁중 비사, 권력 간의 싸움을 그린 궁중 사극(신상옥의 <춘향전(1961)>, <연산군(1961)>, <시집가는 날(1956)> 등)이었던데 반해 80년대의 사극 영화는 이것과는 훨씬 다른 의미의 작품으로 역사 속에서 낡은 제도와 관습을 비판하며 그것을 새로운 영화미학으로 끌어들이려고 시도했다. 이두용 감독의 <여인잔혹사 물레야물레야(1983)>는 유교적 도덕률에 묶여 인간성이 억압되었던 봉건시대를 배경으로 짖
<리얼리즘의 경향>
한국의 역사적 상황을 보면 초창기 이후 거의 대부분의 기간이 현실을 묘사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조차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0년대 초 배창호 감독이 <꼬방동네 사람들>로 데뷔할 때 시나리오 사전 심의에서 67개의 수정을 강요받았는데 그 중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다룬 소설의 원제목을 쓰지 마라’ ‘요강을 방안에 두지 마라’ 등이 있었다고 한다. 검열이나 심의가 60. 70년대에 비해 많이 완화된 것이란 걸 고려한다면 그 당시에는 얼마나 심했을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한국영화의 암흑기에서 리얼리즘은 가장 진보적인 태도였고, 정신적 저항의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영화에 있어서 리얼리즘이란 지역,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개념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앙드레 바쟁의 리얼리즘으로 현실사회의 인신론적인 관점보다는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있는 그대로의 재현을 의미하는 것이다. 영화란 대상이 지닌 공간성과 그 대상이 위치하는 공간을 다룬다는 점에서 리얼리티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비판적 리얼리즘이다. 이것은 어두운 사회의 이면 또는 소외받는 계급 등 현실사회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제시한다. 한국영화는 후자 쪽인 비판적 리얼리즘에 가깝다고 하겠다. 80년대 리얼리즘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이장호 감독은 <어둠의 자식들(1981)>, <바보선언(1983)>, <바람불어도 좋은날(1980)> 등의 많은 영화를 제작한다. 이들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소외당하는 계층의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외에도 리얼리즘을 다룬 작품으로는 빈민들이 모여 사는 달동네인 꼬방동네를 무대로 소외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배창호 감독의 <꼬방동네 사람들(1982)>, 폐쇄적이며 억압된 현실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젊은이들의 꿈과 낭만이 후련한 해방감과 함께 신선한 충격을 주어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고래사냥(1984)>, 바다를 생활 터전으로 하는 사람들의 아픔과 끈끈한 사랑의 집념을 추적한 정진우 감독의 <백구야 훨훨 날지마라(1982)> 등을 들 수 있다.
<사극영화의 부활>
1970년대의 텔레비전 시대가 도래한 후 실상 제작비가 많이 드는 역사극은 영화제작에서 거의 그 자취가 사라지고 대신 안방극장의 단골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러나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역사극은 새로운 모습으로 영화제작에 복귀한다. 50, 60년대 사극이 압도적으로 재미있는 야사나 고전소설을 각색한 사극 멜로드라마와 궁중 비사, 권력 간의 싸움을 그린 궁중 사극(신상옥의 <춘향전(1961)>, <연산군(1961)>, <시집가는 날(1956)> 등)이었던데 반해 80년대의 사극 영화는 이것과는 훨씬 다른 의미의 작품으로 역사 속에서 낡은 제도와 관습을 비판하며 그것을 새로운 영화미학으로 끌어들이려고 시도했다. 이두용 감독의 <여인잔혹사 물레야물레야(1983)>는 유교적 도덕률에 묶여 인간성이 억압되었던 봉건시대를 배경으로 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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