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그리스와 로마문화
1.그리스 문화
1-1그리스철학
1-2그리스 과학.의학
1-3그리스 문학
1-4그리스예술(조각,건축)
2.로마문화
2-1로마철학
2-2로마문학
2-3로마예술(조각,건축)
2-4로마법
2-5로마 과학,의학
2-6로마 종교
1.그리스 문화
1-1그리스철학
1-2그리스 과학.의학
1-3그리스 문학
1-4그리스예술(조각,건축)
2.로마문화
2-1로마철학
2-2로마문학
2-3로마예술(조각,건축)
2-4로마법
2-5로마 과학,의학
2-6로마 종교
본문내용
클레스나 에스큐러스와는 달리 회의론자이면 인문주의자이었다. 그는 연극을 통해 미천한 자를 찬미하고 고귀한 자를 비난하여 보수적인 비평가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연극에 최초로 거지와 농민을 등장시킨 그는 노예를 동정했으며 전쟁을 비난했다.
유리피데스는 전설적인 신화보다는 인간주의적인 격정과 비극을 그렸다. 이러한 인문주의적인 정신 때문에 그는 비극 작가 중의 최초의 근대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유리피데스는 ‘트로이의여자들’‘메데아’‘히폴리투스’등으로 유명하다.
3-2.희극
그리스의 희극은 비극만큼 발전하지는 못했다.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유래된 그리스 희극은 기원전 5세기 말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리스의 대표적인 희극 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는 아테네의 호전적인 귀족 출신으로 당대의 급진적인 민주정치를 반박하는 풍자적인 희극을 남겼다. 아리스토파네스는 ‘기사들’에서 식민지를 확보하려는 무능하고 욕심 많은 정치가를,‘구름들’에서는 소피스트들을,‘류시스트라타’에서 스파르타와 전쟁을 하고 있는 아테네인들의 호전적인 성향을, 그리고 ‘개구리들’에서는 유리피데스를 조롱 하였다.
4.그리스 예술
그리스 예술의 목적은 미적인 동시에 정치적이었다. 국가 생활의 표현으로서 예술은 시민들의 자신감을 표출하고 동일체적 인식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를 위한 신전으로서, 아테네인들은 아테나가 수시로 방문할 수 있도록 아람다운 신전을 건축하여 도시에 대한 사랑과 번영을 희구했다.
4-1.그리스 조각과 건축
그리스의 조각과 건축은 크게 3기로 나누어 발전했다.
초기 기원전 7세기와 6세기에는 정면성, 반듯한 어깨, 한 발이 약간 앞으로 나온 형상에서 알 수 있듯이 이집트의 영향을 받았다.
두 번째 시기는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조각과 건축의 황금기로 피디아스에 의해 급진적으로 발전했다. 마지막으로 기원전 4세기경의 예술은 균형과 단순성을 잃어버리고 예술가의 개성을 반영하는 새로운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스 건축의 아름다움은 단순성에 있다. 대부분의 신전 건축은 열주식 으로 건축 되었으며,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장식은 도리아식 으로서 주두가 단순하고 아무런 장식도 가지고 있지 않으나, 이오니아식은 주두의 네 모서리에 간단한 장식이, 그리고 코린트식은 아름답고 화려한 장식이 부착되어 있다. 그리스 문화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파르테논 신전은 이오니아식이 부분적으로 가미된 도리아식 형태를 띠우고 있다. 그리스의 조각은 피디아스에 의해 급진적인 발전을 겪었다. 페리클레스의 친구인 피디아스는 파르테논 신전의 부조와 아테나 여신상 그리고 올림푸스 신전의 제우스신을 조각하였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형태로 조각된 신을 통하여 그리스 예술의 특징인 조화, 절제, 장엄한 개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기원전 5세기에 등장한 미론은 ‘원반 던지는 사람’을 조각하여 운동선수를 찬미하였다. 기원전 4세기에는 3명의 뛰어난 조각가가 등장하였다. 이중 가장 유명한 프락시텔레스는 우아하고 장엄한 육체를 신을 의인화했으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어린 디오니소스를 안고 있는 헤르메스의 조상’이 있다. 스코파스는 조각에 감정을 투입하여 ‘디오니소스의 숭배자’라는 작품을 남겼으며, 세기 말에 등장한 리시푸스도 최초로 개성을 강조한 현실주의적인 조각가였다.
Ⅱ로마문화
1.로마 철학
로마인들은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독특한 라틴적 요소를 가미하여 세계화시켰다. 로마의 문화는 공화정 마지막 2세기 동안 헬레니즘 문화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아 급속이 발전하였다. 특히 과학이나 예술보다는 철학이 로마 상류층을 대상으로 널리 파급되었다. 로마의 귀족과 부유한 평민들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아 에피구루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철학을 대거 수용 했다.
1-1.에피구루스 학파
사물의 본질에 관해’라는 교훈적인 시를 저술한 루크레티우스는 후기 공화정 시대에 가장 대표적인 에피쿠루스 학파의 철학가이다. 루쿠레티우스는 초자연적인 요소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이 영혼의 평화를 가로막는 가장 커다란 장애물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두려움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우주를 설명하였다. 우주는 원자가 결합한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는 그는 신은 존재하지만 창조하거나 지배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정신은 물질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죽음은 단지 완전한 소멸을 의미할 뿐이면 결과적으로 인간은 사후 세계에서 소생하여 처벌되거나 보답 받을 수 는 없다는 것이다.
1-2.스토아학파
스토아학파는 기원전 140년경 로마에 소개되었다. 스토아학파를 추종한 로마의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은 연설가이자 정치가인 키케로이다. 키케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부분적인 영향을 받았으나 그의 사상의 대부분은 제노와 그의 학파의 교리를 반영하고 있다. 그는 고통에 대해 무관심하고 이성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 가장 이상적인 인물이며, 마음의 평온이 최상의 행복이라고 판단했다. 정치 철학에 있어서 헬레니즘 세계의 스토아학파보다 포괄적으로 인본주의를 강조하고 있는 키케로는 국가의 근원이 상호 보호를 위한 인간 사이의 계약에 있다고 주장하고 국가가 개인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부정하였다. 그는‘공화론’과‘법률론’에서 국가의 법이나 포고령보다도 고차원적이고 우월한 법의 개념을 설정하였다. 이 법은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적인 질서의 산물이면 단지 인간의 이성에 의해서만 발견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인간은 고귀한 존재로서 정부가 침해할 수 없는 기본적인 권리를 지니고 있다고 믿고 있는 키케로의 개념은 2,3세기 로마 자연법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기원전 27년전부터 200년 사이 소위 로마의 평화 시대는 로마사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지적 예술적 발전이 나타난 시기이다. 이 시기에 개인주의적인 에피쿠루스 철학은 시인들의 시에서 간신히 생명을 연명하였을 뿐 대부분의 로마인들은 스토아 철학에 심취했다. 세계주의적이며 자연적인 질서에 대한 순응과 의무를 강조하는 스토아 철학은 세계 제국을 향한 로마인들의 부수주의적이고 자신감있는 정치적인 상형과 일치하여 크게 확대
유리피데스는 전설적인 신화보다는 인간주의적인 격정과 비극을 그렸다. 이러한 인문주의적인 정신 때문에 그는 비극 작가 중의 최초의 근대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유리피데스는 ‘트로이의여자들’‘메데아’‘히폴리투스’등으로 유명하다.
3-2.희극
그리스의 희극은 비극만큼 발전하지는 못했다.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유래된 그리스 희극은 기원전 5세기 말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리스의 대표적인 희극 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는 아테네의 호전적인 귀족 출신으로 당대의 급진적인 민주정치를 반박하는 풍자적인 희극을 남겼다. 아리스토파네스는 ‘기사들’에서 식민지를 확보하려는 무능하고 욕심 많은 정치가를,‘구름들’에서는 소피스트들을,‘류시스트라타’에서 스파르타와 전쟁을 하고 있는 아테네인들의 호전적인 성향을, 그리고 ‘개구리들’에서는 유리피데스를 조롱 하였다.
4.그리스 예술
그리스 예술의 목적은 미적인 동시에 정치적이었다. 국가 생활의 표현으로서 예술은 시민들의 자신감을 표출하고 동일체적 인식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를 위한 신전으로서, 아테네인들은 아테나가 수시로 방문할 수 있도록 아람다운 신전을 건축하여 도시에 대한 사랑과 번영을 희구했다.
4-1.그리스 조각과 건축
그리스의 조각과 건축은 크게 3기로 나누어 발전했다.
초기 기원전 7세기와 6세기에는 정면성, 반듯한 어깨, 한 발이 약간 앞으로 나온 형상에서 알 수 있듯이 이집트의 영향을 받았다.
두 번째 시기는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조각과 건축의 황금기로 피디아스에 의해 급진적으로 발전했다. 마지막으로 기원전 4세기경의 예술은 균형과 단순성을 잃어버리고 예술가의 개성을 반영하는 새로운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스 건축의 아름다움은 단순성에 있다. 대부분의 신전 건축은 열주식 으로 건축 되었으며,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장식은 도리아식 으로서 주두가 단순하고 아무런 장식도 가지고 있지 않으나, 이오니아식은 주두의 네 모서리에 간단한 장식이, 그리고 코린트식은 아름답고 화려한 장식이 부착되어 있다. 그리스 문화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파르테논 신전은 이오니아식이 부분적으로 가미된 도리아식 형태를 띠우고 있다. 그리스의 조각은 피디아스에 의해 급진적인 발전을 겪었다. 페리클레스의 친구인 피디아스는 파르테논 신전의 부조와 아테나 여신상 그리고 올림푸스 신전의 제우스신을 조각하였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형태로 조각된 신을 통하여 그리스 예술의 특징인 조화, 절제, 장엄한 개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기원전 5세기에 등장한 미론은 ‘원반 던지는 사람’을 조각하여 운동선수를 찬미하였다. 기원전 4세기에는 3명의 뛰어난 조각가가 등장하였다. 이중 가장 유명한 프락시텔레스는 우아하고 장엄한 육체를 신을 의인화했으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어린 디오니소스를 안고 있는 헤르메스의 조상’이 있다. 스코파스는 조각에 감정을 투입하여 ‘디오니소스의 숭배자’라는 작품을 남겼으며, 세기 말에 등장한 리시푸스도 최초로 개성을 강조한 현실주의적인 조각가였다.
Ⅱ로마문화
1.로마 철학
로마인들은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독특한 라틴적 요소를 가미하여 세계화시켰다. 로마의 문화는 공화정 마지막 2세기 동안 헬레니즘 문화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아 급속이 발전하였다. 특히 과학이나 예술보다는 철학이 로마 상류층을 대상으로 널리 파급되었다. 로마의 귀족과 부유한 평민들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아 에피구루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철학을 대거 수용 했다.
1-1.에피구루스 학파
사물의 본질에 관해’라는 교훈적인 시를 저술한 루크레티우스는 후기 공화정 시대에 가장 대표적인 에피쿠루스 학파의 철학가이다. 루쿠레티우스는 초자연적인 요소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이 영혼의 평화를 가로막는 가장 커다란 장애물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두려움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우주를 설명하였다. 우주는 원자가 결합한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는 그는 신은 존재하지만 창조하거나 지배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정신은 물질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죽음은 단지 완전한 소멸을 의미할 뿐이면 결과적으로 인간은 사후 세계에서 소생하여 처벌되거나 보답 받을 수 는 없다는 것이다.
1-2.스토아학파
스토아학파는 기원전 140년경 로마에 소개되었다. 스토아학파를 추종한 로마의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은 연설가이자 정치가인 키케로이다. 키케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부분적인 영향을 받았으나 그의 사상의 대부분은 제노와 그의 학파의 교리를 반영하고 있다. 그는 고통에 대해 무관심하고 이성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 가장 이상적인 인물이며, 마음의 평온이 최상의 행복이라고 판단했다. 정치 철학에 있어서 헬레니즘 세계의 스토아학파보다 포괄적으로 인본주의를 강조하고 있는 키케로는 국가의 근원이 상호 보호를 위한 인간 사이의 계약에 있다고 주장하고 국가가 개인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부정하였다. 그는‘공화론’과‘법률론’에서 국가의 법이나 포고령보다도 고차원적이고 우월한 법의 개념을 설정하였다. 이 법은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적인 질서의 산물이면 단지 인간의 이성에 의해서만 발견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인간은 고귀한 존재로서 정부가 침해할 수 없는 기본적인 권리를 지니고 있다고 믿고 있는 키케로의 개념은 2,3세기 로마 자연법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기원전 27년전부터 200년 사이 소위 로마의 평화 시대는 로마사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지적 예술적 발전이 나타난 시기이다. 이 시기에 개인주의적인 에피쿠루스 철학은 시인들의 시에서 간신히 생명을 연명하였을 뿐 대부분의 로마인들은 스토아 철학에 심취했다. 세계주의적이며 자연적인 질서에 대한 순응과 의무를 강조하는 스토아 철학은 세계 제국을 향한 로마인들의 부수주의적이고 자신감있는 정치적인 상형과 일치하여 크게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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