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서정시와 사회참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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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순수서정시와 사회참여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정시인 ‘정지용’, 참여시인 ‘김지하’>

本論. 순수서정 시와 사회참여 시 그리고 두 시인.

1. 순수서정 시와 정지용

2. 사회참여시와 김지하

結論. 정지용과 김지하

* 참고문헌

본문내용

한 그가 ‘고향의 시인\'으로 불리게 된 것도 이국에서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 아닌가 한다. ‘바다‘에 대한 시가 유난히 많은 것도 일본에 오가며 볼 수 있는 것은 ’바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서정시에 힘을 쏟게 된 또 하나의 계기는 ‘9인회’활동이었다. 그는 일본유학을 마치고 모교인 휘문보고에서 교편을 잡으며 여러 시작활동을 이어나갔는데, 1933년 反카프적 입장을 띠며 순수문학의 옹호를 취지로 발족한 문학동호인들의 모임인 ‘9인회’의 창단맴버가 된다. 사실 이 ‘9인회’의 활동은 그리 활발하지 못하였고, 문학사적으로도 별 의미를 갖지 못하지만, 그 구성원은 너무나 뛰어난 사람들이었으므로 그들이 모여 친목을 다졌다는 것만으로도 카프의 반대 입장의 명맥이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용의 이러한 모더니즘적 시작도, 모더니즘의 한계인 ‘사상의 부재’에 부딪히게 된다. 그로인해 지용이 기대는 곳은 다름 아닌 종교, 천주교였다. 그의 유족의 말에 따르면 그는 이미 유학당시 천주교를 신앙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종교적 색채를 느낄 수 있는 시 중 ‘不死鳥’라는 시는 자신의 가장 깊숙이 자리 잡은 슬픔을 ‘창과 우슴’을 닫고 그것을 대적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나의 청춘이 다한 어느 날’ 그 슬픔은 죽지만, 인간이 살아있는 한 불사조처럼 다시 살아나는 슬픔. 결국 그것은 종교만이 덜어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지용의 시에 큰 변화가 일었다고는 하나, 나는 여기서도 그 동안의 지용의 시에서 느낄 수 있었던 시각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그 특유의 리듬감 없는 시작의 태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그저 담담한 어투로 서술해나가다가 짧게 탄식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슬픔조차도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그 자신의 스타일로 살려낸 지용의 실력은 정말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시 ‘나무’를 살펴보면,
오오 알맞은 위치! 좋은 우아래!
아담의 슬픈 유산도 그대로 받었노라.
<나무, 정지용전집1,민음사>
이 구절은 상당히 좋지만, 시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지용의 시 치고는 다소 실망이 앞선다. 그의 객관적이고 담담하고 우회적인 표현들보다는 직접적인 단어들이나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다소 지용과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종교적인 색채가 묻어나는 시를 쓰던 지용은 또 다시 사상적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천주교만으로는 시인에게 있어서 그 주제가 너무도 한정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지용은 마지막으로 동양적 전통사상으로 그 사상을 옮겨가게 된다.
지용은 시가 후기로 내려갈수록 감각이나 기교와 같은 순수한 언어 미학적 차원으로부터 의식 세계의 고고함과 유연함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심화되고 있다. 즉 정신의 내면을 깊이 통찰하고자 함인데, 이러한 것은 동양의 전통적인 사상과 상통한다.
“벌목정정 이랬거니 아람도리 큰 솔이 베혀짐즉도 하이 골이 울어
멩아리 소리 쩌르렁 돌아옴즉도 하이 다람쥐도 좇지 않고 뫼새도 울이 않어”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리
오오 견디랸다 차고 올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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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5.07
  • 저작시기20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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