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Ⅱ. 본론
1. 해서탈춤의 개관
1) 분포 지방과 현장모습
2) 연희의 시기와 장소
3) 가면 ․ 의상 ․ 무대
2. 해서탈춤의 내용과 의의
1) 양반에 대한 조롱과 모욕
2) 승려 타락상의 풍자
3. 봉산탈춤
Ⅲ. 맺음말
Ⅱ. 본론
1. 해서탈춤의 개관
1) 분포 지방과 현장모습
2) 연희의 시기와 장소
3) 가면 ․ 의상 ․ 무대
2. 해서탈춤의 내용과 의의
1) 양반에 대한 조롱과 모욕
2) 승려 타락상의 풍자
3. 봉산탈춤
Ⅲ. 맺음말
본문내용
의 연출ㆍ감독을 맡는 사람이다. 당시 봉산에는 이성구보다 나이가 삼사십 년 위인 배한량, 이춘강 등 연기가 뛰언나 놀이꾼이 많았다. 또한 1900년 무렵까지는 관아의 악사청으로부터 반주음악을 담당할 악사들을 쉽게 지원받을 수 있었다. 한일합방으로 인해 악사천이 해산된 이후에는 가창리의 재인마을에서 악사들을 초청해 공연했다. 김일출, 『조선민속탈놀이연구』, 한국문화사, 1998. p.135
봉산탈춤은 다른 지방의 탈놀이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받아들이면서 개량하였고 명수들의 배역과 뛰어난 연기로 주위에 명성을 떨쳤고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걸쳐 강령탈춤과 함께 황해도 탈놀이의 최고봉을 이루었다. 서울문화재, http://sca.visitseoul.net/
이 놀이의 내용 역시 산대도감 계통극으로서 다른 가면극과 거의 동일한 주제를 갖고 있다.
1. 벽사진경의식무(사상좌춤과 지노귀굿)
2. 파계승에 대한 풍자
3. 양반에 대한 모욕
4. 일부대처첩의 3각관계와 서민의 생활상
등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파계승, 몰락한 양반과 그 하인, 무당, 사당거사와 기타 서민들의 등장을 통하여 무속과 불교 신앙과 권선징악의 테두리 안에서 호색과 현실 폭로의 익살과 웃음을 통하여 이상의 주제를 극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놀이는 이북지방의 큰 명절인 단오날 주로 연희되었으며 사상좌춤으로 시작하여 굿으로 끝나고 있으나 다른 가면극에 비하여 신앙적 내지는 종교적 의의는 희박하고 민중의 오락적 요소가 훨씬 우세하다. 봉산탈춤보존회, http://www.bongsantal.com/
Ⅲ. 맺음말
무대가 따로 정해진 것이 없고 넓은 모래사장이나 광장에서 연희되던 해서탈춤은 주관객을 평민들로 삼고 있다. 양반이 없는 넓은 마당에서 평민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관람하던 탈춤은 격식이 없고, 지배층에 대한 불만을 풍자로 풀어내는 해학의 힘을 가지고 있다. 해서탈춤에는 그러한 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아직까지 봉산탈춤 등이 연행되어 오고 있다. 답답한 극장 안에서 평평한 스크린을 보며 숨 막히는 웃음을 짓는 오늘날과는 상당히 대조되는 양상이다. 재밌고 해학적인 모습의 언청이 양반 가면이나 괴상하게 생겼지만 웃음을 자아내는 취발이 가면 등은 보기만 해도 호기심이 생기고 재밌게 느껴진다. 또한 몸짓을 크게 사용하고 백성들을 착취ㆍ압박하던 지배층을 놀림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풍자성은 정신적ㆍ신체적 흥겨움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또한 관중들과 연희자들이 직접 소통하는 가면극은 그 집중도와 호소력 또한 높다.
또한 연희를 마친 뒤 사용했던 가면을 장작불에 불태워 버렸던 벽사의 의미라 던지 풍요제의적 성격이 포함되어 있어 가면극을 단순 오락적 행위로만 여기지 않았다.
봉산탈춤은 현재 가장 널리 알려진 가면극 중 하나이다. 취발이의 양반 모욕 부분은 상당히 강도가 높다. 독설뿐만 아니라 가면 자체가 병신의 형상이여서 존재자체가 웃음거리가 돼 버린다. 타락한 중을 풍자하거나 양반을 모욕하는 등의 성향은 시대적 특징이 아니라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는 양상인 것 같다. 오늘날에도 무능한 정치가들을 해학적으로 그려내거나 비방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노골적인 욕설들이 인터넷 상에 올라오는 양상을 보고 있자니 현실에서도 봉산탈춤 등 현실의 불만을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버리는 행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문헌
김일출, 『조선민속탈놀이연구』, 한국문화사, 1998.
전경옥, 『한국 가면극 그 역사와 원리』, 열화당, 1998.
崔常壽, 『海西假面劇의 硏究』, 正東出版社, 1988.
참고자료
서울문화재, http://sca.visitseoul.net/
봉산탈춤보존회, http://www.bongsantal.com/
봉산탈춤은 다른 지방의 탈놀이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받아들이면서 개량하였고 명수들의 배역과 뛰어난 연기로 주위에 명성을 떨쳤고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걸쳐 강령탈춤과 함께 황해도 탈놀이의 최고봉을 이루었다. 서울문화재, http://sca.visitseoul.net/
이 놀이의 내용 역시 산대도감 계통극으로서 다른 가면극과 거의 동일한 주제를 갖고 있다.
1. 벽사진경의식무(사상좌춤과 지노귀굿)
2. 파계승에 대한 풍자
3. 양반에 대한 모욕
4. 일부대처첩의 3각관계와 서민의 생활상
등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파계승, 몰락한 양반과 그 하인, 무당, 사당거사와 기타 서민들의 등장을 통하여 무속과 불교 신앙과 권선징악의 테두리 안에서 호색과 현실 폭로의 익살과 웃음을 통하여 이상의 주제를 극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놀이는 이북지방의 큰 명절인 단오날 주로 연희되었으며 사상좌춤으로 시작하여 굿으로 끝나고 있으나 다른 가면극에 비하여 신앙적 내지는 종교적 의의는 희박하고 민중의 오락적 요소가 훨씬 우세하다. 봉산탈춤보존회, http://www.bongsantal.com/
Ⅲ. 맺음말
무대가 따로 정해진 것이 없고 넓은 모래사장이나 광장에서 연희되던 해서탈춤은 주관객을 평민들로 삼고 있다. 양반이 없는 넓은 마당에서 평민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관람하던 탈춤은 격식이 없고, 지배층에 대한 불만을 풍자로 풀어내는 해학의 힘을 가지고 있다. 해서탈춤에는 그러한 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아직까지 봉산탈춤 등이 연행되어 오고 있다. 답답한 극장 안에서 평평한 스크린을 보며 숨 막히는 웃음을 짓는 오늘날과는 상당히 대조되는 양상이다. 재밌고 해학적인 모습의 언청이 양반 가면이나 괴상하게 생겼지만 웃음을 자아내는 취발이 가면 등은 보기만 해도 호기심이 생기고 재밌게 느껴진다. 또한 몸짓을 크게 사용하고 백성들을 착취ㆍ압박하던 지배층을 놀림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풍자성은 정신적ㆍ신체적 흥겨움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또한 관중들과 연희자들이 직접 소통하는 가면극은 그 집중도와 호소력 또한 높다.
또한 연희를 마친 뒤 사용했던 가면을 장작불에 불태워 버렸던 벽사의 의미라 던지 풍요제의적 성격이 포함되어 있어 가면극을 단순 오락적 행위로만 여기지 않았다.
봉산탈춤은 현재 가장 널리 알려진 가면극 중 하나이다. 취발이의 양반 모욕 부분은 상당히 강도가 높다. 독설뿐만 아니라 가면 자체가 병신의 형상이여서 존재자체가 웃음거리가 돼 버린다. 타락한 중을 풍자하거나 양반을 모욕하는 등의 성향은 시대적 특징이 아니라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는 양상인 것 같다. 오늘날에도 무능한 정치가들을 해학적으로 그려내거나 비방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노골적인 욕설들이 인터넷 상에 올라오는 양상을 보고 있자니 현실에서도 봉산탈춤 등 현실의 불만을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버리는 행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문헌
김일출, 『조선민속탈놀이연구』, 한국문화사, 1998.
전경옥, 『한국 가면극 그 역사와 원리』, 열화당, 1998.
崔常壽, 『海西假面劇의 硏究』, 正東出版社, 1988.
참고자료
서울문화재, http://sca.visitseoul.net/
봉산탈춤보존회, http://www.bongsant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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