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학]예전학 공동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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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예배학]예전학 공동예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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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의 외적 표식은 그 자체가 주님의 명령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다. 성사에 사용되는 물질이나 이 물질과 연관되는 기본적인 말들은 고정되어 있다. 그래서 세례를 베푸는 자는 물론 사용해서 해야지 자기의 임의대로 다른 것을 사용하거나 소홀히 할 수 없다. 또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해야지 그가 선정한 다른 이름을 사용해서도 안된다. 빵과 포도주도 성찬식에서는 바뀔수 없는 요소의 하나이다. 그리고 이들은 주님의 몸과 피로서 표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언제든지 성사를 집행 할 때는 예전을 도입해야만 한다.
예전의 가치
예전적 예배에 속하는 요소들을 분석해 보면 청교도들이 성령을 소멸케 하는 것이라는 말에 대한 대답을 얻게 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모욕은 그 자체, 즉 예전에 대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없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예전적인 기도를 드리지 않는다고 하면, 그 잘못은 예전의 형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는 본인에게 더 있다.
성직자들 뿐아니라 모든 교인들까지도 주어진 순간 속에서 그 모임의 헌신적인 신앙을 표현 할 수 있는 적절한 능력과 상상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그러므로 예전의 중요한 가치는 그서이 우리에게 어떻게 기도하고 어떤 것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는데 있다.
예전은 우리의 기도를 훈련시켜서 그 표현에 있어서 적당하게 해주며, 내용이 이기적이 되지 않도록 하고 종합적인 안목을 가지도록 해준다.
무엇보다도 예전은 인간 영혼의 교육이라는 데에 가장 진실된 요인을 가진다. 같은 회중의 무리 속에 있는 두 사람이 똑같은 정도의 영적 분별력과 경험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으므로 예전의 어떤 부분은 한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고 어떤 사람에게는 더 큰 의미가 주어질 수가 있다. 곧 예전은 우리 자신의 신앙적 성장만을 돕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신앙성장을 위한 관심을 늘도록 해준다.
예전이 해내는 큰 일 중에 하나는 그것이 우리 자신의 기도가 좀 더 넓은 안목을 가지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즉 단순히 눈에 보이는 회중만이 아니라 모든 시애의 모든 나라 속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큰 무기와 연결시켜 준다는 것이다. 예전적 예배는 우리에게 수세기에 걸친 기독교인들의 헌신적 신앙처럼 깊고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와 같이 포괄적인 긴 안목을 가지게 해준다.
예전적 예배는 어느 한 개인의 창인물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전체사회 혹은 단체의 산물인 것이다. 곧 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 결합되어 있는 자들의 가족예배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예전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 공동체가 존재하는 목적, 즉 성령의 감동에 의해 하나님을 완전히 사랑하고 그의 거룩한 이름을 높이기 위한 목적을 위해, 개인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 우리가 그 기도문을 읽을 때마다 마땅히 기도해야 할 바를 가르쳐주시고 계신다. 이 일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는 주기도움의 온전한 의미가 성취되는 그날까지 계속 될 것이다.
4. 예전의 유산(遺産)
오늘날 대다수 기독교 신자들의 공적 예배는 반드시 역사적 예전을 필요로 한다. 동방 정교회나 로마 가톨릭의 예전들은 고대교회가 동서로 나누이기 전에 사용했던 예전의 유산을 갖고 있다.
이러한 고대 예전들은 우리 주님과 그의 제자들에 의해 준수되어온 유대적인 예전들로부터 직접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루터교와 성공회의 기도서들도 종교개혁시기에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중세의 라틴공의회 예전들을 신약시대와 초대 기독교관례에 비추어 편집한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예배의 전승들이 일반 개신교회에서도 적용되었는데 결국 개신교들은 더 자유스러운 공동기도의 습관을 만들어냈다.
근세에 이르러 역사적 기독교 예전에 추가한 내용이 있으니 그것은 1950년 1월에 남인도교회 총회에서 이슈가 된 성찬예배문 형식이다. 이 예식은 성공회와 장로교 전통을 창조적으로 결합시킨 것으로써 동방 정교회 예전을 본딴 것이었다.
모든 시대는 대체로 전통의 계승에 특별한 공헌을 해 왔다. 그러기에 전통의 계승에 불연속적인 면은 없다.
유대적 배경
예수시대에 있어 유대나라 예배전통은 매우 형식이 철저했고 또한 예전적이었는데 성전에서의 희생제나 회당에서의 안식일 의식, 심지어 가정에서의 의식에서도 그리하였다. 이러한 유대적 예전형식과 개념들이 주님과 그의 제자들을 축복하고 발전하게 하였으며 결국 기독교 교회예배 속에 들어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복음서 기록들은 예수가 성전의 희생제사를 무가치하게 여겼다는 암시를 또한 보여주지 않는다. 예수의 관심은 성전의식의 규정과 규칙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전 안에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의 태도와 정신에 있었다.
그러나 성전은 기독교 예배의 발전에 아무런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다. 또한 그렇게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 위에서 주님께서 인간의 죄를 위하여 대속물로 희생되었다는 기독교 신앙의 내용이 분명해졌으며 이에 따라 시온산에서 구약의 율법에 따른 희생제사는 완성되고 성취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한편 유대교 회당은 기독교인에게 공동예배의 형식을 전해 주었는데 즉 이미 신앙인으로 귀의한 자들에게 예전적 예배와 더불어 그들에게 기본적 훈련을 제시해 주었다. 회당예배의 핵심은 구약성서를 읽는 것과 해석하는 일이었다. 은사는 기도나 영창가르침, 또는 예언이나 봉사 등이 었다.
각자의 은사와 재능은 전체 회중의 유익을 위해 베풀어졌다. 기독교 예배에 있어서 훨씬 중요한 의미는 “그가 배반당하던 날 밤”에 그의 제자들과 함께 한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유대의 통상적인 가족식사 의식을 변혁했다는 점이다.
잔에 대한 축복은 전통적인 형식에 따라 이루어졌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돌보심과 주신 음식물에 대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2)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구속적인 행동을 상기하도록 했고, (3) 하나님 나라의 노래를 위한 기도가 있었다.
초대교회
신양성서는 우리들에게 초기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신자들 가정에 모여 빵을
  • 가격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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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0.14
  • 저작시기2009.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5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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