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학파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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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시문학파 연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시문학파’의 형성과 문학적 방향

1. ‘시문학파’의 형성

2. 시문학파의 문학적 방향

2. 시문학파의 시적 전개와 작품세계

1. 정지용의 경우

2. 김영랑의 경우

3. 박용철의 경우

3. 시문학파의 시적 특질과 시사적 의의

1. 시문학파의 시적 특질

2. 시문학파의 시사적 의의

4. 결론

본문내용

는 조금도 바시대지 아니하고 늘진한 거름을 뚜벅거려 나가려 한다. 허세를 펴서 우리의 존재를 인정받으려 하지 아니하고 엄연한 존재로서 우리의 존재를 전취하려 한다.
위의 인용은, 아무런 주의주장도 내세우지 않고 있지만 ‘시문학파’의 문학적 방향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많다. 문학운동은 주의주장, 즉 ‘허세를 펴서’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작품을 통해서만 결말이 나게 되어 있다. 당시의 프로문학파나 민족문학파가 주의주장만을 내세웠기 때문에 문학의 본질적인 문제는 뒷전에 밀려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주의주장을 앞세우면 문학은 어쩔 수 없이 도구화되고, 목적성에 사로잡히게 되어 그 자율성을 잃게 된다. 이것이 당시의 한국문학이 지닌 근본적 결함이었던 것이다. 이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 ‘시문학파’였기 때문에 그들은 어떠한 주의주장도 내세우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문학자체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것이다.
2) 시 자체의 예술성 추구
새로운 시의 추구는 언어에 대한 자각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현대시적 특성과 관련되는 문제이다. 과연 ‘시문학파’가 이러한 의식을 지니고 있었던가.
이미 일가의 품격을 이루어가지고도 또 이루었으므로 작품의 발표를 꺼리는 시인이 어덴지 여러분이 있을 듯싶다. 우리의 동인 가운데도 자가의 시를 처음 인쇄에 부치는 이삼인이 있다.
우리는 모든 겸허를 준비하야 새로운 동인을 맞이하려한다.
원고체택에 대하야 자동계산기와 같은 공평을 기할 수 없는 이상 어쩌는 수없이 동인의 눈이라는 조그만한 문턱을 넘게 됩니다. 우리 동인들의 의향까지는 될 수 있는대로 편벽된 개인의 취미에 기우러지지 않으려 힘쓰나 그것은 차차로 편집의 실제에서 증명하겠읍니다.
우리의 지면은 공개되어 편집동인 회의에서 추천되는 작품을 발표한다. 그러나 작품의 이름을 보기 전에 작품을 몬저 읽는 것이 우리의 관습이다.
위의 인용들에서 중요한 부분을 살펴 보기로 한다. “일가의 품격을 이루어가지고도 또 이루었으므로”나 “동인의 눈이라는 조그만한 문턱”이란 발언은 그들의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을 밝힌 것이다. 그래서 그 기준과 원칙을 “편집의 실제에서 증명하겠다고 했으며, 작품의 이름을 보기 전에 작품을 먼저 읽는 것이 우리의 관습”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작품 자체의 예술성을 중시하는 근대정신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시문학파’에서 비롯된 이러한 기준과 정신은 오늘날의 문학에까지 계속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1920년대까지는 이러한 자각이 일반화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 조연현은 “습작문단에서 작가문단에로의 전환”, 혹은 “근대문학적 성격에서 현대문학적 성격에로의 전환” 등으로 표현한 바 있다.
1920년대까지는 독자와 문학하는 이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었다. 특히 시의 경우 자신의 느낌을 짧게 토막지어 놓으면 시인이 되는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시문학파’에 이르러 시인은, 독자와는 다른 ‘방법적 정신에서 출발하야 유사 가운데서 상이를 발견하기에’ 힘써야 한다고 하여, 시인의 전문성 혹은 언어예술가로서의 장인의식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시문학파’에 이르러 도구로서의 문학에서 예술로서의 문학에로 그 의식이 발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식의 발전은 또한 시인에게 있어서 모국어에 대한 문학적 자각을 갖게 했다고 할 수 있다.
한 민족의 언어가 발달의 어느 정도에 이르면 구어로서의 존재에 만족하지 않고 문학의 형태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 문학의 성립은 그 민족의 언어를 완성식히는 길이다.
이것은 ‘시문학파’의 언어관인 동시에 문학관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문학적 방향의 집약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의 자율성과 언어의 자율성은 동전의 앞뒤와 같은 관계이다. 도구로서의 문학을 거부하면 도구로서의 언어도 거부하게 된다. 그래서 “구어로서의 존재에 만족하지 않고 문학의 형태를 요구”하게 된다. 이것이 ‘시문학파’의 언어관이다. 구어는 도구로서의 언어를 의미하며 문학의 형태는 존재로서의 언어를 의미한다. 이러한 언어에 대한 자각을 기반으로 한국시의 현대시적 특성이 형성된 것이다.
2. 시문학파의 시적 전개와 작품세계
1. 정지용의 경우
정지용의 공식적 작품 활동은 1926년 6월 ‘학조’창간호에 시 3편, 시조 9수, 동요 5편을 발표하면서 비롯된다. 이처럼 시가의 전 장르로 출발한 그의 문학은 그 뒤의 시적 전개와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시 3편에서는 서구시적 편향성이 짙게 나타남을 볼 수 있으며, 시조를 함께 발표한 것은 전통지향성의 발로라고 할 수 있고, 동요에서는 근원회귀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 정지용의 이러한 시적 출발은 그 뒤 자유시로 통합되면서 한국어의 시적 승화를 통한 전통지향성과 모더니티 지향성의 변증법적 발전이라는 그의 시세계를 이룩한다. 그리하여 “문학의 성립은 그 민족언어의 완성”이라는 명제를 안고 출발하는 ‘시문학파’의 가장 중요한 동인으로 추대된다.
정지용은 ‘동인의 구성과 성분’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시문학파’ 출범 이전에 <1)문학의 자율성 추구, 2)시 자체의 예술성 추구, 3)외래성과 전통성의 조화 추구>라는 ‘시문학파’의 문학적 방향을 이미 구현한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정지용이 구현한 시세계를 그의 작품의 분석을 통해 고찰하기로 한다.
시를 논의함에 있어 시인의 언어에 대한 태도는 가장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다. 감각적 표현은 언어에 대한 주지적 태도에서 연유하고, 감정적 서술은 언어에 대한 주정적 태도에서 연유한다. 정지용은 그 시적 출발에서부터 언어에 대한 주지적 태도를 견지한 시인으로 보여진다. 정지용의 감각적 비유, 특히 색체 감각어에 의한 시각적, 공간적 언어구조는 1920년대의 다른 시인들과 비교할 때 그의 시적 특성이 명확하게 구별된다.
옴겨다 심은 종려나무 밑에
빗두루 슨 장명등,
카페프란스에 가쟈.
이놈은 루바쉬카
또 한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삣적 마른 놈이 압장을 섰다.
밤비는 뱀눈처럼 가는데
페이브멘토에 흐늙이는 불빛
카페프란스에 가쟈.
이놈의 머리는 빗두른 능금
또 한놈의 심장은 벌레 먹은 장미
제비 처럼 젖은 놈이 뛰여 간다.

「오오 패롤(맹무)서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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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1.02
  • 저작시기2009.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58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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