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프랑스-자신의 거대성의 희생자>
<2. 다양성과 통일성>
<3. 자연적 연결, 인공적 연결>
<4. 우선은 정치적 현상이었다.>
<5. 공간의 과잉>
<6. 파리와 리옹>
<7. 파리가 승리하다>
<8. 해상 및 대륙에서의 변경구역>
<9.‘또 다른 프랑스’의 도시들>
<10. 내부>
<11. 변방에 의해 정복된 내부>
<12. 영국의 상업적 우위>
<13. 영국은 어떻게 해서 섬나라가 되었나?>
<14. 파운드 스털링 화>
<15. 런던이 창조한 전국시장, 전국시장이 창조한 런던>
<16. 잉글랜드가 어떻게 영국이 되었는가?>
<17. 영국의 위대함과 공채>
<18. 베르사유조약(1783)부터 이든 조약(1786)까지>
<19. 통계는 문제를 잘 보여주지만 해결하진 못한다.>
<2. 다양성과 통일성>
<3. 자연적 연결, 인공적 연결>
<4. 우선은 정치적 현상이었다.>
<5. 공간의 과잉>
<6. 파리와 리옹>
<7. 파리가 승리하다>
<8. 해상 및 대륙에서의 변경구역>
<9.‘또 다른 프랑스’의 도시들>
<10. 내부>
<11. 변방에 의해 정복된 내부>
<12. 영국의 상업적 우위>
<13. 영국은 어떻게 해서 섬나라가 되었나?>
<14. 파운드 스털링 화>
<15. 런던이 창조한 전국시장, 전국시장이 창조한 런던>
<16. 잉글랜드가 어떻게 영국이 되었는가?>
<17. 영국의 위대함과 공채>
<18. 베르사유조약(1783)부터 이든 조약(1786)까지>
<19. 통계는 문제를 잘 보여주지만 해결하진 못한다.>
본문내용
<프랑스와 영국의 전국시장>
<1. 프랑스-자신의 거대성의 희생자>
정치적으로 이야기하면 프랑스는 분명히 최초의 근대국가이다. 그렇지만 경제적 하부구조의 면에서 볼 때 이 나라는 뒤늦은 시기에도 완벽한 전국시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잘게 구획되어 있고 지방화되어 있는 프랑스 경제는 결국 자체폐쇄적인 소규모 개별 경제들의 집합이었다. 이 전체를 통과하는 큰 흐름들은 연결점, 출발점 및 도착점으로 사용되는 일부 도시들과 지역들에게만 이익을 안겨주었다.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루이 14세와 15세의 프랑스 역시 농업이 중심적인 나라였다. 공업, 상업, 금융업은 이 나라를 하룻밤 새에 변화시킬 힘을 가지지 못했다.
전국시장의 출현은 도처에 편재하는 타성에 저항하는 움직임이며 장기적으로 교환과 연결을 만드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타성의 원천은 국가의 크기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 자체에서 기원한 것이 아닐까? 네덜란드와 영국은 영토가 작아서 상대적으로 더 민활하고 쉽게 통일될 수 있었다. 이런 곳에서 거리의 문제는 중대한 방해요소는 아니었다.
<2 . 다양성과 통일성>
프랑스는 작은 지방들의 모자이크 국가이다. 각 조각을 이루는 지방은 협소한 공간 내에서 자급자족적인 방식으로 각기 제 빛깔대로 살아간다.
외부의 경제생활로부터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이 지방들은 같은 경제적 언어를 사용한다.
포시니 지방의 주도였던 본빌에 라자로 회 수도원이 있었는데 18세기에 이 고립된 수도원은 주로 자가생산한 것만을 가지고 살되 일부 품목만 가까운 시장에서 사들였다. 하지만 완벽한 자급자족은 불가능하므로 라자로 회의 생활영역도 비좁은 한계를 넘는 지점이 한 두 곳 없을 수는 없었다. 가끔 파발꾼이 안시에서 혹은 제네바에서 의약품, 향신료, 설탕 등의 특별한 물품을 사오곤 했다.
넓은 농지와 풀밭을 가졌던 오수아 지방의 경우에도 그 중심도시인 스뮈르가 교통의 요지가 아니었고 운항이 가능한 강과도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자체 내에 한정되어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곳은 그래도 오세르나 아발롱과 같은 이웃 지역과 약간의 연결은 유지하고 있는 편이었다. 이에 비해서 브르타뉴 내부나 마시프 상트랄 같은 지역들은 거의 자급자족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또 상파뉴와 로렌 지역과 관계를 맺고 있고 심지어는 뫼즈 강을 통해 포도주를 네덜란드로 수출하기까지 했던 바루아 지역도 사실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교통의 요지에 자리잡고 있는 지역이나 도시에서는 모습이 달라진다. 이런 곳에서는 수송로가 사방으로 퍼저나가고 있다. 베르
<1. 프랑스-자신의 거대성의 희생자>
정치적으로 이야기하면 프랑스는 분명히 최초의 근대국가이다. 그렇지만 경제적 하부구조의 면에서 볼 때 이 나라는 뒤늦은 시기에도 완벽한 전국시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잘게 구획되어 있고 지방화되어 있는 프랑스 경제는 결국 자체폐쇄적인 소규모 개별 경제들의 집합이었다. 이 전체를 통과하는 큰 흐름들은 연결점, 출발점 및 도착점으로 사용되는 일부 도시들과 지역들에게만 이익을 안겨주었다.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루이 14세와 15세의 프랑스 역시 농업이 중심적인 나라였다. 공업, 상업, 금융업은 이 나라를 하룻밤 새에 변화시킬 힘을 가지지 못했다.
전국시장의 출현은 도처에 편재하는 타성에 저항하는 움직임이며 장기적으로 교환과 연결을 만드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타성의 원천은 국가의 크기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 자체에서 기원한 것이 아닐까? 네덜란드와 영국은 영토가 작아서 상대적으로 더 민활하고 쉽게 통일될 수 있었다. 이런 곳에서 거리의 문제는 중대한 방해요소는 아니었다.
<2 . 다양성과 통일성>
프랑스는 작은 지방들의 모자이크 국가이다. 각 조각을 이루는 지방은 협소한 공간 내에서 자급자족적인 방식으로 각기 제 빛깔대로 살아간다.
외부의 경제생활로부터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이 지방들은 같은 경제적 언어를 사용한다.
포시니 지방의 주도였던 본빌에 라자로 회 수도원이 있었는데 18세기에 이 고립된 수도원은 주로 자가생산한 것만을 가지고 살되 일부 품목만 가까운 시장에서 사들였다. 하지만 완벽한 자급자족은 불가능하므로 라자로 회의 생활영역도 비좁은 한계를 넘는 지점이 한 두 곳 없을 수는 없었다. 가끔 파발꾼이 안시에서 혹은 제네바에서 의약품, 향신료, 설탕 등의 특별한 물품을 사오곤 했다.
넓은 농지와 풀밭을 가졌던 오수아 지방의 경우에도 그 중심도시인 스뮈르가 교통의 요지가 아니었고 운항이 가능한 강과도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자체 내에 한정되어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곳은 그래도 오세르나 아발롱과 같은 이웃 지역과 약간의 연결은 유지하고 있는 편이었다. 이에 비해서 브르타뉴 내부나 마시프 상트랄 같은 지역들은 거의 자급자족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또 상파뉴와 로렌 지역과 관계를 맺고 있고 심지어는 뫼즈 강을 통해 포도주를 네덜란드로 수출하기까지 했던 바루아 지역도 사실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교통의 요지에 자리잡고 있는 지역이나 도시에서는 모습이 달라진다. 이런 곳에서는 수송로가 사방으로 퍼저나가고 있다. 베르
키워드
추천자료
VK Mobile 중국시장진출
신자유주의적인 입장에서 바라본 노동시장 변화 추이
[노동과사회] 한국 노동시장의 문제점 및 해결방안
[멀티플렉스]프랑스의 멀티플렉스와 문화정책에 관한 고찰
유럽연합의 비즈니스 환경과 시장진출 전략
진로 소주의 일본시장 마케팅 전략
탄소 배출권의 이해 & 탄소 펀드 시장의 현황.PPT자료
[정치학개론] 중상주의의 의의와 우리나라 중상주의의 시대적 배경 및 시장자율적인 자유무역...
[경쟁도입, 민간의료보험, 방송규제모델]경쟁도입과 민간의료보험, 경쟁도입과 데이터베이스...
국순당 마케팅 4P,STP,SWOT분석과 국순당 기업경영분석 및 국순당 시장확장전략과 나의의견
[주택 불균형] < 주택계급 > 주택 불균형 현상의 원인, 주택 가격 거품 원인, 부동산 투기 현...
국제마케팅 실패사례-노키아 일본진출,국제 경영 전략 노키아,마케팅 믹스의 문제점,문화적 ...
[유통관리론] Drugstore(드러그 스토어/드럭 스토어))의 비교 분석 {드러그스토어 정의, 국내...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