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덕천 승리산 동굴 유적 (德川勝利山洞窟遺跡)
2. 평양 대현동 동굴유적(平壤大峴洞洞窟遺蹟)
3. 만달리 유적
4. 청원 두루봉동굴 유적(淸原一洞窟遺蹟)
참고문헌
2. 평양 대현동 동굴유적(平壤大峴洞洞窟遺蹟)
3. 만달리 유적
4. 청원 두루봉동굴 유적(淸原一洞窟遺蹟)
참고문헌
본문내용
나뉜다. 위로부터 1층에서 7층까지는 퇴적 상태가 고르지만 그 아래에 있는 층들은 불규칙하여 틈굴이 생기면서 다시 퇴적된 것으로 여겨진다. 2굴에서는 짐승 화석이 많이 나왔다. 짐승 종은 모두 2문 7강 15목 28과 37속 46종으로 분류되었다. 그 가운데 11종은 절멸종으로 전체 종 가운데 23.9%를 차지한다. 짐승 종구성으로 볼 때 대동강 유역에 있는 검은모루 유적과 덕천 유적의 사이에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표준 화석으로는 첫소, 쌍코뿔이, 동굴 하이에나, 동굴곰, 큰원숭이가 있다. 동굴곰에 대해서는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7층에서 나온 꽃가루 분석 결과, 풀꽃가루 가운데 사초과, 벼과, 국화과의 비율이 높아(전체의 89%) 따뜻하고 습한 온대 남부성 기후 조건이었을 것으로 나타났다. 짐승 화석과 꽃가루 조사 연구를 통해 볼때 플라이스토세 중기의 따뜻한 기후 조건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7층에서는 석기와 뼈연모가 여러 점 나온 것으로 보고되었다. 짐승뼈에 새기고 그은 자국들이 있는 것은 치레거리로 만들기 위한 사람의 행위로, 예술 활동의 산물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한편으로는 짐승이 물고 갉거나, 토양 미생물의 작용에 의한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어 논란이 많다.
두루봉 제9굴(禿魯峰 第9窟)은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연세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하였다. 위·아래 두 층으로 나뉘는데, 위 층은 붉은 흙층으로 플라이스토세 후기, 아래층은 노란 흙층으로 플라이스토세 중기의 늦은 시기에 드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아래층에서는 짐승 화석이 모두 3강 3목 3과 4종이 나왔다. 그 가운데 큰꽃사슴 변종은 절멸종이다. 간단히 잔손질해서 만든 석기들이 있고 뼈연모가 여러 점 나왔다. 위층에서는 짐승 화석이 많이 나왔다. 2문 4강 9목 22과 27속 31종으로 분류되었고 절멸종은 11종으로 전체의 35.4%가 된다. 원숭이, 사자 등 따뜻한 기후에 사는 숲속 짐승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간빙기에 이루어진 지층임을 알 수 있다. 석기는 52점이 나왔는데 간단히 떼고 잔손질을 한 것이다.
새굴은 1979년에서 1980년 사이에 충북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하였다. 두루봉 정상 가까이에 깍아지른 듯한 절벽에서 석회암 발파 과정에 나타나 새로 찾았다는 뜻으로 ‘새굴’ 이라고 부른다. 짐승 화석은 모두 3강 8목 13과 17속 20종으로 분류되었고 그 가운데 옛코끼리 상아가 있다. 상아는 한국 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처음 나온 것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또한 동굴 구석에서 사슴 머리뼈 13점이 가지런히 놓인 채로 나와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의례 행위를 보여주는 새로운 자료를 제공하였다. 꽃가루 조사 과정에서 나비 비늘을 찾아 당시 기후 복원에 참고 할 수 있게 되었다.
처녀굴은 1980년에 충북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하였다. 새굴을 조사하면서 그 아래쪽에 또 다른 굴이 있는 것을 알게 되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깨끗한 상태로 있어 ‘처녀굴’ 이라 부르게 된 곳이다. 3개의 가지굴로 이루어졌다. 동굴곰 화석 1마리분이 완전한 골격형태를 갖춘 채 나왔고 쌍코뿔의 화석도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나왔다. 동굴곰뼈는 큰꽃사슴뿔을 한가운데 놓고 곰의 윗머리뼈와 아래턱, 엉덩뼈를 남북으로 놓고 긴뼈들을 동쪽으로 향해 일부러 배치해 놓은 것으로 밝혀져 곰숭배의식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흥수굴은 1982년에서 1983년 사이에 충북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하였다. 두루봉 광산 현장의 김흥수 전무가 찾아 알려줌으로서 발굴하게 되어 그 뜻을 기려 ‘흥수굴’ 이라 부르게 되었다. 4만년 전 쯤 플라이스토세 후기에 살았던 사람뼈와 석기가 나왔다. 어린아이뼈 2사람분이 나왔는데 그 가운데 1호 사람은 누운 상태로 몸체가 거의 완전히 남아 있었고, 2호는 머리가 없이 몸체만 남아 있었다. 1호 사람은 5살 정도 나이로 ‘흥수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두개골 용량은 1,200-1,300㏄, 키는 110-120㎝ 정도이다. 머리뼈의 특징은 위에서 볼 때 좁고 길며, 옆에서 볼 때 높은 머리형이고 얼굴은 중간형이다. 뒤에서 볼 때는 머리뼈 양쪽이 편평하고 힘살마루가 잘 발달했다. 앞에서 보면 좁은 얼굴에 좁고 긴 코, 좁은 눈굼이 특징이다. 아래턱은 턱밑 도드리가 잘 발달했고 턱꼭지도 잘 발달된 편이다. 이는 윗턱 첫째 어금니가 아직 덜 나온 상태이고 아래턱 첫째 어금니의 모습은 Y 5형이다. 흥수아이는 선사시대 사람과 현대사람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으며 인류 진화상 현대 슬기사람(modern Homo sapiens)에 속한다. 흥수굴에서는 석기도 여러 점 나왔고 그 가운데 주먹도끼도 보인다.
참고문헌
덕천 승리산 동굴 유적
한국의 구석기문화-유적의 현황과 편년문제(박영철, 한국고고학보 28, 한국고고학회, 1992)
조선유적유물도감1-(원시편)(조선유적유물도감편찬위원회,외국문종합출판사, 1988)
한국구석기시대의 인류화석에 대한 형질인류학적 일고찰(권이구, 한국고고학보 18, 한국고고학회, 1986)
덕천 승리산유적 발굴보고(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자연사연구실, 1978)
평양 대현동
한국의 구석기문화-유적의 현황과 편년문제(박영철, 한국고고학보 28, 한국고고학회, 1992)
조선유적유물도감1-원시편(조선유적유물도감편찬위원회, 외국문종합출판사, 1988)
평양부근 동굴 유적 발굴보고(김신규·김교경·백기하·장우진·서국태, 유적발굴보고 제14집, 1985)
만달리 유적
조선유적유물도감1-원시편(조선유적유물도감편찬위원회, 외국문종합출판사, 1988)
만달리 동굴 유적의 석기에 대하여(서국태, 조선고고연구, 1987)
평양부근 동굴 유적 발굴보고(김신규·김교경·백기하·장우진·서국태, 유적발굴보고 제14집, 1985)
흥수아이
청원 두루봉 흥수굴 발굴조사보고서(이융조·박선주, 1991)
구석기 유적-한국·만주-(손보기, 한국선사문화연구소, 1990)
한국의 구석기 문화 Ⅱ(이융조, 탐구당, 1984),
두루봉 9굴 살림터(손보기, 연세대학교 박물관 선사연구실, 1983)
선사유물과 유적 (이건무,조현종 2003)
한국 고고학 강의 (한국 고고학 학회, 2007)
두루봉 제9굴(禿魯峰 第9窟)은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연세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하였다. 위·아래 두 층으로 나뉘는데, 위 층은 붉은 흙층으로 플라이스토세 후기, 아래층은 노란 흙층으로 플라이스토세 중기의 늦은 시기에 드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아래층에서는 짐승 화석이 모두 3강 3목 3과 4종이 나왔다. 그 가운데 큰꽃사슴 변종은 절멸종이다. 간단히 잔손질해서 만든 석기들이 있고 뼈연모가 여러 점 나왔다. 위층에서는 짐승 화석이 많이 나왔다. 2문 4강 9목 22과 27속 31종으로 분류되었고 절멸종은 11종으로 전체의 35.4%가 된다. 원숭이, 사자 등 따뜻한 기후에 사는 숲속 짐승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간빙기에 이루어진 지층임을 알 수 있다. 석기는 52점이 나왔는데 간단히 떼고 잔손질을 한 것이다.
새굴은 1979년에서 1980년 사이에 충북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하였다. 두루봉 정상 가까이에 깍아지른 듯한 절벽에서 석회암 발파 과정에 나타나 새로 찾았다는 뜻으로 ‘새굴’ 이라고 부른다. 짐승 화석은 모두 3강 8목 13과 17속 20종으로 분류되었고 그 가운데 옛코끼리 상아가 있다. 상아는 한국 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처음 나온 것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또한 동굴 구석에서 사슴 머리뼈 13점이 가지런히 놓인 채로 나와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의례 행위를 보여주는 새로운 자료를 제공하였다. 꽃가루 조사 과정에서 나비 비늘을 찾아 당시 기후 복원에 참고 할 수 있게 되었다.
처녀굴은 1980년에 충북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하였다. 새굴을 조사하면서 그 아래쪽에 또 다른 굴이 있는 것을 알게 되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깨끗한 상태로 있어 ‘처녀굴’ 이라 부르게 된 곳이다. 3개의 가지굴로 이루어졌다. 동굴곰 화석 1마리분이 완전한 골격형태를 갖춘 채 나왔고 쌍코뿔의 화석도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나왔다. 동굴곰뼈는 큰꽃사슴뿔을 한가운데 놓고 곰의 윗머리뼈와 아래턱, 엉덩뼈를 남북으로 놓고 긴뼈들을 동쪽으로 향해 일부러 배치해 놓은 것으로 밝혀져 곰숭배의식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흥수굴은 1982년에서 1983년 사이에 충북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하였다. 두루봉 광산 현장의 김흥수 전무가 찾아 알려줌으로서 발굴하게 되어 그 뜻을 기려 ‘흥수굴’ 이라 부르게 되었다. 4만년 전 쯤 플라이스토세 후기에 살았던 사람뼈와 석기가 나왔다. 어린아이뼈 2사람분이 나왔는데 그 가운데 1호 사람은 누운 상태로 몸체가 거의 완전히 남아 있었고, 2호는 머리가 없이 몸체만 남아 있었다. 1호 사람은 5살 정도 나이로 ‘흥수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두개골 용량은 1,200-1,300㏄, 키는 110-120㎝ 정도이다. 머리뼈의 특징은 위에서 볼 때 좁고 길며, 옆에서 볼 때 높은 머리형이고 얼굴은 중간형이다. 뒤에서 볼 때는 머리뼈 양쪽이 편평하고 힘살마루가 잘 발달했다. 앞에서 보면 좁은 얼굴에 좁고 긴 코, 좁은 눈굼이 특징이다. 아래턱은 턱밑 도드리가 잘 발달했고 턱꼭지도 잘 발달된 편이다. 이는 윗턱 첫째 어금니가 아직 덜 나온 상태이고 아래턱 첫째 어금니의 모습은 Y 5형이다. 흥수아이는 선사시대 사람과 현대사람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으며 인류 진화상 현대 슬기사람(modern Homo sapiens)에 속한다. 흥수굴에서는 석기도 여러 점 나왔고 그 가운데 주먹도끼도 보인다.
참고문헌
덕천 승리산 동굴 유적
한국의 구석기문화-유적의 현황과 편년문제(박영철, 한국고고학보 28, 한국고고학회, 1992)
조선유적유물도감1-(원시편)(조선유적유물도감편찬위원회,외국문종합출판사, 1988)
한국구석기시대의 인류화석에 대한 형질인류학적 일고찰(권이구, 한국고고학보 18, 한국고고학회, 1986)
덕천 승리산유적 발굴보고(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자연사연구실, 1978)
평양 대현동
한국의 구석기문화-유적의 현황과 편년문제(박영철, 한국고고학보 28, 한국고고학회, 1992)
조선유적유물도감1-원시편(조선유적유물도감편찬위원회, 외국문종합출판사, 1988)
평양부근 동굴 유적 발굴보고(김신규·김교경·백기하·장우진·서국태, 유적발굴보고 제14집, 1985)
만달리 유적
조선유적유물도감1-원시편(조선유적유물도감편찬위원회, 외국문종합출판사, 1988)
만달리 동굴 유적의 석기에 대하여(서국태, 조선고고연구, 1987)
평양부근 동굴 유적 발굴보고(김신규·김교경·백기하·장우진·서국태, 유적발굴보고 제14집, 1985)
흥수아이
청원 두루봉 흥수굴 발굴조사보고서(이융조·박선주, 1991)
구석기 유적-한국·만주-(손보기, 한국선사문화연구소, 1990)
한국의 구석기 문화 Ⅱ(이융조, 탐구당, 1984),
두루봉 9굴 살림터(손보기, 연세대학교 박물관 선사연구실, 1983)
선사유물과 유적 (이건무,조현종 2003)
한국 고고학 강의 (한국 고고학 학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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