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주자학
1) 개요
2) 주자학의이론
3) 주자학의 주장
4) 우리나라에서의 주자학의 수용과 영향
5) 주자학의 발전과정
2.양명학
1) 개요
2) 양명학이 주자학에 대항해 주창한 사상
3) 양명학의 주자학 비판
4) 우리나라에서의 양명학의 수용과 영향
5) 양명학의 발전과정
3. 주자학과 양명학의 비교
4. 결론
1) 개요
2) 주자학의이론
3) 주자학의 주장
4) 우리나라에서의 주자학의 수용과 영향
5) 주자학의 발전과정
2.양명학
1) 개요
2) 양명학이 주자학에 대항해 주창한 사상
3) 양명학의 주자학 비판
4) 우리나라에서의 양명학의 수용과 영향
5) 양명학의 발전과정
3. 주자학과 양명학의 비교
4. 결론
본문내용
입장보다 한결 강렬하였다.
②치양지
-모든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천리(良知)를 지극히 다한다(致)는 뜻이다.
즉 인간의 마음에는 선천적으로 천리로서의 도덕성이 갖추어져 있음을 전제하고, 그것에 의하여 옳고 그름을 바르게 깨닫는 마음 작용을 양지\'라 하고 이 양지를 끝까지 밀고 나 가 충분히 그 작용을 발휘하는 것을 \'치\'라고 하였다.
따라서 사욕을 극복하고 인간의 순수한 본래성만을 유지한다면[치양지(致良知)] 누구나 지선(至善)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
③지행합일
-지(知)와 행(行)이 모두 마음의 활동으로서 하나라는 뜻.
지에 보다 중점을 둔 주희(朱熹)의 선지후행(先知後行)에 대립되는 개념이다.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아직 진정으로 안다고 할 수 없다고 하여, 실천함으로써 지와 행이 일치한다는 것을 역설한 실천중시·체험중시의 입장이다.
<행>의 개념은 광범위하여 인간의 마음의 움직임, 가령 호오지정(好惡之情)과 마음에 나 타나는 의욕과 사념까지도 포함된다.
<행>은 당연히 도덕적 규범에 합치되어야 하며, 거기에서 행동으로 나타난 불선(不善) 뿐 만 아니라 마음 속에서 생각한 불선까지도 극복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실현시키는 마음 이 <양지(良知)>이다.
이처럼 지행합일과 치양지(致良知) 등 일상적 생각을 늘 필요로 하는 실천적·직각적 입장 을 강조하여, 이(理)의 탐구와 실천은 모두 심에 존재하는 양지의 발현으로 본래부터 결 합된 것이라고 보았다.
즉, 주자의 격물치지가 지식 위주인 것에 반해 왕양명은 도덕적 실천을 중시하고 있어 오늘날 주자학을 이학(理學)이라 하고, 양명학을 심학(心學)이라고도 한다.
3) 양명학의 주자학 비판
①주자가 『대학』가운데서 주장한 ‘신민’은 고본 『대학』과 같이 ‘친민’으로 하여야 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 아버지를 사랑하면 다른 사람의 아버지도 사랑할 수 있느니 천하의 부자들은 사랑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다. 내 형을 사랑하면 다른 사람의 형도 사랑할 수 있으니 천하의 형제들은 사랑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다. 군신사이와 부부사이와 붕우사이, 그리고 더욱 넓게 확충시켜 나아가 새와 짐승과 초목까지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다. 모두들 이처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내 심을 다하면 구하여지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②관학체제는 사회존비관념을 만연하게 하여 백성들의 본심을 상하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 간에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는 풍조를 조성시킨 원인을 제공한다고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왕도가 사라지고부터 학술도 어지러워져서 사람들은 본심을 잃어버린 채 이익을 위하여 서로 다투고 서로 앞지르는 것을 경쟁하더니 비로소 사(士)계급을 흠모하고 농민을 천시하며 환도만 명예롭게 생각하고 공·상업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게 까지 되었다. 그러한 실제상황은 객관적으로 평가해 보아도 때에 맞추어 이익을 넘보는 것이 너무 심하다.
③주자가 만년에 이야기하고자 한 ‘격물치치’의 본의는 일반 관학파들이 알고 있는, 즉 주자가 중년에 말한 지리 하게 밖에서 구한다는 것이 아닌 것임도 불구하고 우둔한 관학파들은 주자의 중년미정설 만을 맹종하고 있다는 것을 개탄하면서 주자 ‘격물치지’의 본뜻은 자신의 ‘심즉리’와 같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주자가 말한 ‘격물’은 심을 사용하여 매 사물 가운데 있는 이치를 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볼 것 같으면 효자의 이치는 그 부모에게서 구해진다는 것인데, 효의 이치는 과연 내 심에서 구해지는 것인가? 아니면 과연 부모의 몸에서 구해지는 것인가? 가령 과연 부모의 몸에서 구해진다고 한다면 부모가 죽은 후에 내 심에는 드디어 효의 이치가 없어진다는 것인가?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진 것을 보면 반드시 가엾은 심이 생기는데, 이 가엾다는 이치가 과연 어린아이의 몸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내 몸 속에 양지에 있는 것인가? 실예들과 가이 만사·만물의 이치가 모두 그러하지 않은 것이 없다. 따라서 ‘심(心)’과 ‘이(理)’를 둘로 가른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가령 내가 말하는 ‘치지격물’이라는 것은 내 심의 양지를 매 사물마다 이르게 하는 것이다. 내 심의 양지란 즉 천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 심의 천리가 매 사물마다에 이르게 되면 즉 매 사물은 모두 자신의 이치를 얻게 된다. 따라서 내 심의 양지에 이르게 하는 것을 곧 ‘치지’라 하고 매 사물이 모두 그 이치를 얻게 되는 것을 ‘격물’이라고 한다. 이것이 ‘심’과 ‘이’를 합하여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심’과 ‘이’가 합하여 하나가 된다는 것은 즉 앞에서 이미 알아듣도록 얘기한 바이며 주자만년정론과 함께 다시 말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④왕양명은 40세가 되던 해 그는 드디어 육상산의 학리를 특징짓는 ‘이간’‘각’‘존덕성’‘허’ 등은 ‘불교의 것’이라고 비판한 관학파들에게 자신의 견해를 아래와 같이 밝히면서 관학파들이 학문을 연구하는 태도에 대한 문제점을 정면으로 비난 하였다.
-주학이 옳고 육학이 그르다는 것이 천하의정론이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고 오랫동안 변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다.‥여암은 상산이다. 주자는 ‘상산은전적으로 존덕성을 위주로 한다.’라고 하였다. 오늘날 『상산문집』에 실린 바를 살펴 보았더니 그는 제자들에게 독서하라고 가르치지 않은 것이 아니더라. 그리고 스스로 문자속의 뜻을 깨달은 것이 자못 사람들과 다른 것은 즉 그 뜻은 실로 몸으로 이를 직접 체험하고자 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제자들을 가르칠 때 자주 일컫는 내용에서 이르기를; ‘거소에서는 언제나 공손하며 일을 할 때는 항상 조심하며 사람을 대할 때는 언제나 정성을 다 하라.’ 이르기를; ‘자신의 사욕을 극복하고 마음속에 선천적으로 보유되어 있는 예를 행동으로 실천하라.’ 이르기를; ‘모든 사물의 이치는 내 마음에 구비되어 있으니 자신의 본체를 돌아보아 성의를 다하면 즐거움이 이 보다 더 큰 것은 없는 것이다.’ 이르기를; ‘학문의 목적은 다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달아나 버린 심을 수습하는데 있는 것일 뿐이다.’ 이르기를 ‘먼저 큰 것을(도덕심) 세우면 작은 것이(육신의 감관으로부터 생산되어지는 사욕)
②치양지
-모든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천리(良知)를 지극히 다한다(致)는 뜻이다.
즉 인간의 마음에는 선천적으로 천리로서의 도덕성이 갖추어져 있음을 전제하고, 그것에 의하여 옳고 그름을 바르게 깨닫는 마음 작용을 양지\'라 하고 이 양지를 끝까지 밀고 나 가 충분히 그 작용을 발휘하는 것을 \'치\'라고 하였다.
따라서 사욕을 극복하고 인간의 순수한 본래성만을 유지한다면[치양지(致良知)] 누구나 지선(至善)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
③지행합일
-지(知)와 행(行)이 모두 마음의 활동으로서 하나라는 뜻.
지에 보다 중점을 둔 주희(朱熹)의 선지후행(先知後行)에 대립되는 개념이다.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아직 진정으로 안다고 할 수 없다고 하여, 실천함으로써 지와 행이 일치한다는 것을 역설한 실천중시·체험중시의 입장이다.
<행>의 개념은 광범위하여 인간의 마음의 움직임, 가령 호오지정(好惡之情)과 마음에 나 타나는 의욕과 사념까지도 포함된다.
<행>은 당연히 도덕적 규범에 합치되어야 하며, 거기에서 행동으로 나타난 불선(不善) 뿐 만 아니라 마음 속에서 생각한 불선까지도 극복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실현시키는 마음 이 <양지(良知)>이다.
이처럼 지행합일과 치양지(致良知) 등 일상적 생각을 늘 필요로 하는 실천적·직각적 입장 을 강조하여, 이(理)의 탐구와 실천은 모두 심에 존재하는 양지의 발현으로 본래부터 결 합된 것이라고 보았다.
즉, 주자의 격물치지가 지식 위주인 것에 반해 왕양명은 도덕적 실천을 중시하고 있어 오늘날 주자학을 이학(理學)이라 하고, 양명학을 심학(心學)이라고도 한다.
3) 양명학의 주자학 비판
①주자가 『대학』가운데서 주장한 ‘신민’은 고본 『대학』과 같이 ‘친민’으로 하여야 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 아버지를 사랑하면 다른 사람의 아버지도 사랑할 수 있느니 천하의 부자들은 사랑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다. 내 형을 사랑하면 다른 사람의 형도 사랑할 수 있으니 천하의 형제들은 사랑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다. 군신사이와 부부사이와 붕우사이, 그리고 더욱 넓게 확충시켜 나아가 새와 짐승과 초목까지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다. 모두들 이처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내 심을 다하면 구하여지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②관학체제는 사회존비관념을 만연하게 하여 백성들의 본심을 상하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 간에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는 풍조를 조성시킨 원인을 제공한다고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왕도가 사라지고부터 학술도 어지러워져서 사람들은 본심을 잃어버린 채 이익을 위하여 서로 다투고 서로 앞지르는 것을 경쟁하더니 비로소 사(士)계급을 흠모하고 농민을 천시하며 환도만 명예롭게 생각하고 공·상업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게 까지 되었다. 그러한 실제상황은 객관적으로 평가해 보아도 때에 맞추어 이익을 넘보는 것이 너무 심하다.
③주자가 만년에 이야기하고자 한 ‘격물치치’의 본의는 일반 관학파들이 알고 있는, 즉 주자가 중년에 말한 지리 하게 밖에서 구한다는 것이 아닌 것임도 불구하고 우둔한 관학파들은 주자의 중년미정설 만을 맹종하고 있다는 것을 개탄하면서 주자 ‘격물치지’의 본뜻은 자신의 ‘심즉리’와 같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주자가 말한 ‘격물’은 심을 사용하여 매 사물 가운데 있는 이치를 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볼 것 같으면 효자의 이치는 그 부모에게서 구해진다는 것인데, 효의 이치는 과연 내 심에서 구해지는 것인가? 아니면 과연 부모의 몸에서 구해지는 것인가? 가령 과연 부모의 몸에서 구해진다고 한다면 부모가 죽은 후에 내 심에는 드디어 효의 이치가 없어진다는 것인가?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진 것을 보면 반드시 가엾은 심이 생기는데, 이 가엾다는 이치가 과연 어린아이의 몸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내 몸 속에 양지에 있는 것인가? 실예들과 가이 만사·만물의 이치가 모두 그러하지 않은 것이 없다. 따라서 ‘심(心)’과 ‘이(理)’를 둘로 가른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가령 내가 말하는 ‘치지격물’이라는 것은 내 심의 양지를 매 사물마다 이르게 하는 것이다. 내 심의 양지란 즉 천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 심의 천리가 매 사물마다에 이르게 되면 즉 매 사물은 모두 자신의 이치를 얻게 된다. 따라서 내 심의 양지에 이르게 하는 것을 곧 ‘치지’라 하고 매 사물이 모두 그 이치를 얻게 되는 것을 ‘격물’이라고 한다. 이것이 ‘심’과 ‘이’를 합하여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심’과 ‘이’가 합하여 하나가 된다는 것은 즉 앞에서 이미 알아듣도록 얘기한 바이며 주자만년정론과 함께 다시 말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④왕양명은 40세가 되던 해 그는 드디어 육상산의 학리를 특징짓는 ‘이간’‘각’‘존덕성’‘허’ 등은 ‘불교의 것’이라고 비판한 관학파들에게 자신의 견해를 아래와 같이 밝히면서 관학파들이 학문을 연구하는 태도에 대한 문제점을 정면으로 비난 하였다.
-주학이 옳고 육학이 그르다는 것이 천하의정론이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고 오랫동안 변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다.‥여암은 상산이다. 주자는 ‘상산은전적으로 존덕성을 위주로 한다.’라고 하였다. 오늘날 『상산문집』에 실린 바를 살펴 보았더니 그는 제자들에게 독서하라고 가르치지 않은 것이 아니더라. 그리고 스스로 문자속의 뜻을 깨달은 것이 자못 사람들과 다른 것은 즉 그 뜻은 실로 몸으로 이를 직접 체험하고자 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제자들을 가르칠 때 자주 일컫는 내용에서 이르기를; ‘거소에서는 언제나 공손하며 일을 할 때는 항상 조심하며 사람을 대할 때는 언제나 정성을 다 하라.’ 이르기를; ‘자신의 사욕을 극복하고 마음속에 선천적으로 보유되어 있는 예를 행동으로 실천하라.’ 이르기를; ‘모든 사물의 이치는 내 마음에 구비되어 있으니 자신의 본체를 돌아보아 성의를 다하면 즐거움이 이 보다 더 큰 것은 없는 것이다.’ 이르기를; ‘학문의 목적은 다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달아나 버린 심을 수습하는데 있는 것일 뿐이다.’ 이르기를 ‘먼저 큰 것을(도덕심) 세우면 작은 것이(육신의 감관으로부터 생산되어지는 사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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