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조직적인 억압사회로 규정하고 모든 형태의 억압과 착취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기독교의 임무라고 본다. 그리고 다른 현대신학들과도 다소의 차이점을 나타낸다. 다른 현대신학들은 기존의 전통신학의 신 존재나 기독론과 같이 기독교의 교리에 대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해방신학은 그것 보다는 사회적인 역할을 강조하므로 인해서 행동적인 현대신학을 형성한 것이 적절한 판단이라 할 수 있겠다.
해방신학자들은 기존에 체제와 기독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남미의 상황은 남미제국의 경제가 미국, 영국 등 강대국들의 경제 착취와 팽창에 의하여 좌우되기 때문이며, 또한 남미가 이러한 경제적 종속관계에 놓이게 된 것은 남미의 여러 나라가 자본주의적 경제체제를 채택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남미가 가난과 착취에서 벗어나려면 대외 종속관계로부터 벗어나야 하고, 또한 이를 위해서는 남미의 체제 자체를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 바꾸어야 한다고 한다.
이는 곧, 기존질서를 전복시키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므로 착취당하고 있는 민중이 정치적 계급투쟁, 즉 폭력을 통해서 정치, 경제, 문화적 종속-불의, 불공평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해방신학의 입장에서 보면, 전통신학은 유럽 및 미국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그리고 출발점이 성경의 계시나 형이상학이 아닌 구체적, 역사적 상황으로서 하나의 정치신학이며, 사회정치이론에 바탕을 둔 계급투쟁이론을 신학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앞에서 언급한대로 해방신학의 방법론들을 살펴봄으로써 위와 같은 사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이겠다.
Ⅲ. 해방신학의 매개
해방신학은 학문적인 방법론에서 고찰하여 본다면, 사회학에서 정치학으로 그리고 정치학에서 신학으로 이동해 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이동이 어떻게 가능한가? 남미의 독특한 사회의 요소들이 어떻게 신학과 만나게 된 것일까? 이 해방신학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어떻게 보면 사회학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런데 이것을 왜 신학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의 답은 해방신학의 그 자체의 출발점에서부터 알아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것이 철학적 틀을 가지고 있는 신학적 방법론임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가장 기본적으로 해방신학에서 전제되는 매개들이 있다. 먼저 해방신학은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과 희망을 가지고 성경에게로 다가가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빛과 영감을 구한다. 이때, 성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법이 생긴다. 즉 성경을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해방이라는 시각으로 해석하게 된다는 것이다. 억압당하는 사람들 자신의 시각으로부터 출발하여 성경 전체를 읽어가는 것, 그것이 해방신학의 특수한 성경봉독법이요 성경해석학이다. 해방신학의 해석학은 이러한 맥락들을 강조한다. 그러나 배타적이지는 않다. 해방신학은 그런 주제들이 배타적으로 가장 중요한 주제들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억압의 상황에 처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가장 적합한 주제들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다. 적어도, 그 주제들은 적합성의 차원에서는 매우 중요한 주제들임에 틀림없다. 해방의 해석학은 신적 답변을 이념적으로 미리 상정해 놓음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질문을 던진다.
위의 내용을 성경해석의 관점에서 다시 서술하자면, 그들의 반사작용 이 단어는 영어로, Theological reflection로서 말씀에 대한 반응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신자마다 아주 개괄적이기는 하지만 신학이 있고 신앙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몇몇 기독교 사상가들의 배타적 특권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의 은사를 받은 모든 사람들의”과제이다.
의 출발점은 남미의 상황이요, 무엇보다도 사회개혁을 위한 프락시스 ‘프락시스’는 헬라어로서 동사 ‘프라소’ 즉, ‘일하다’ ‘행하다’라는 것에서 온 단어이다. 이 단어는 아주 옛날에 사용되었다. 성경에서는 사도행전과 관련하여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을 기록한 헬라의 문학형태와 관련되어 있다. 해방신학에서는 사회 정치적 의미와 마르크스주의적 강한 색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프락시스’는 헬라의 유산이지만 현대철학에 와서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기원과 발전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다. 교회가 사회학적 분석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반사작용은 신앙에 비추어, 즉 성경과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들에 비추어 또한 행하여진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 상황, 그 상황에 대한 비판적, 즉 ‘과학적’ 분석, 사회개혁을 위한 프락시스, 그리고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등이 기본요소들로 포함된다.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해방신학은 상당부분에 있어서 세상의 사회 과학적 방법들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해방신학의 피할 수 없는 비판의 요소가 된다.
이러한 사상을 전개한 이들은 쿠티에레츠, 아스만, 존소브리노, 미란다 세군도 등이 있다. 이들을 통해서 해방신학의 해석학적 매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1. 구티에레츠는 “제2의 행위”로서의 신학을 주장하였다. 변화시키는 진리에 주안점을 둔 구티에레츠는, 신학이 역사적 프락시스에 대한 그것의 밀접한 관계에서 해방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신학’을 말할 때에, 그는 ‘정통’을 마음에 두고 있지는 않다. 정통은, 구티에레츠에 따르면, “시대에 뒤진 전통이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해석에 대한 맹목적 충성에 지나지 않는다.” 또 “성장하며 변혁시키는” 신학, “또한 길인” 진리를 주창한다. 구티에레츠의 결론은 “신학에 의해 계시된 의미에 대한 참된 해석은 역사적 프락시스에서만이 성취된다.”이다. 그 프락시스에 관한 비판적 성찰(또는, 반사작용)은 그것이 이 해방의 프락시스에서 기독교 신앙의 현존을 발견하는 때 신학적이다. 구티에레츠는 그의 해석학적 방법에 관하여 자세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다른 해방신학자들만큼 급진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한 새로운 구스타보 구티에레츠”라는 제목의 글에서, 구티에레츠가 1981년 페루의 리마에서 개최된 신학 워크
해방신학자들은 기존에 체제와 기독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남미의 상황은 남미제국의 경제가 미국, 영국 등 강대국들의 경제 착취와 팽창에 의하여 좌우되기 때문이며, 또한 남미가 이러한 경제적 종속관계에 놓이게 된 것은 남미의 여러 나라가 자본주의적 경제체제를 채택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남미가 가난과 착취에서 벗어나려면 대외 종속관계로부터 벗어나야 하고, 또한 이를 위해서는 남미의 체제 자체를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 바꾸어야 한다고 한다.
이는 곧, 기존질서를 전복시키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므로 착취당하고 있는 민중이 정치적 계급투쟁, 즉 폭력을 통해서 정치, 경제, 문화적 종속-불의, 불공평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해방신학의 입장에서 보면, 전통신학은 유럽 및 미국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그리고 출발점이 성경의 계시나 형이상학이 아닌 구체적, 역사적 상황으로서 하나의 정치신학이며, 사회정치이론에 바탕을 둔 계급투쟁이론을 신학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앞에서 언급한대로 해방신학의 방법론들을 살펴봄으로써 위와 같은 사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이겠다.
Ⅲ. 해방신학의 매개
해방신학은 학문적인 방법론에서 고찰하여 본다면, 사회학에서 정치학으로 그리고 정치학에서 신학으로 이동해 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이동이 어떻게 가능한가? 남미의 독특한 사회의 요소들이 어떻게 신학과 만나게 된 것일까? 이 해방신학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어떻게 보면 사회학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런데 이것을 왜 신학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의 답은 해방신학의 그 자체의 출발점에서부터 알아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것이 철학적 틀을 가지고 있는 신학적 방법론임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가장 기본적으로 해방신학에서 전제되는 매개들이 있다. 먼저 해방신학은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과 희망을 가지고 성경에게로 다가가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빛과 영감을 구한다. 이때, 성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법이 생긴다. 즉 성경을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해방이라는 시각으로 해석하게 된다는 것이다. 억압당하는 사람들 자신의 시각으로부터 출발하여 성경 전체를 읽어가는 것, 그것이 해방신학의 특수한 성경봉독법이요 성경해석학이다. 해방신학의 해석학은 이러한 맥락들을 강조한다. 그러나 배타적이지는 않다. 해방신학은 그런 주제들이 배타적으로 가장 중요한 주제들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억압의 상황에 처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가장 적합한 주제들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다. 적어도, 그 주제들은 적합성의 차원에서는 매우 중요한 주제들임에 틀림없다. 해방의 해석학은 신적 답변을 이념적으로 미리 상정해 놓음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질문을 던진다.
위의 내용을 성경해석의 관점에서 다시 서술하자면, 그들의 반사작용 이 단어는 영어로, Theological reflection로서 말씀에 대한 반응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신자마다 아주 개괄적이기는 하지만 신학이 있고 신앙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몇몇 기독교 사상가들의 배타적 특권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의 은사를 받은 모든 사람들의”과제이다.
의 출발점은 남미의 상황이요, 무엇보다도 사회개혁을 위한 프락시스 ‘프락시스’는 헬라어로서 동사 ‘프라소’ 즉, ‘일하다’ ‘행하다’라는 것에서 온 단어이다. 이 단어는 아주 옛날에 사용되었다. 성경에서는 사도행전과 관련하여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을 기록한 헬라의 문학형태와 관련되어 있다. 해방신학에서는 사회 정치적 의미와 마르크스주의적 강한 색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프락시스’는 헬라의 유산이지만 현대철학에 와서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기원과 발전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다. 교회가 사회학적 분석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반사작용은 신앙에 비추어, 즉 성경과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들에 비추어 또한 행하여진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 상황, 그 상황에 대한 비판적, 즉 ‘과학적’ 분석, 사회개혁을 위한 프락시스, 그리고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등이 기본요소들로 포함된다.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해방신학은 상당부분에 있어서 세상의 사회 과학적 방법들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해방신학의 피할 수 없는 비판의 요소가 된다.
이러한 사상을 전개한 이들은 쿠티에레츠, 아스만, 존소브리노, 미란다 세군도 등이 있다. 이들을 통해서 해방신학의 해석학적 매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1. 구티에레츠는 “제2의 행위”로서의 신학을 주장하였다. 변화시키는 진리에 주안점을 둔 구티에레츠는, 신학이 역사적 프락시스에 대한 그것의 밀접한 관계에서 해방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신학’을 말할 때에, 그는 ‘정통’을 마음에 두고 있지는 않다. 정통은, 구티에레츠에 따르면, “시대에 뒤진 전통이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해석에 대한 맹목적 충성에 지나지 않는다.” 또 “성장하며 변혁시키는” 신학, “또한 길인” 진리를 주창한다. 구티에레츠의 결론은 “신학에 의해 계시된 의미에 대한 참된 해석은 역사적 프락시스에서만이 성취된다.”이다. 그 프락시스에 관한 비판적 성찰(또는, 반사작용)은 그것이 이 해방의 프락시스에서 기독교 신앙의 현존을 발견하는 때 신학적이다. 구티에레츠는 그의 해석학적 방법에 관하여 자세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다른 해방신학자들만큼 급진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한 새로운 구스타보 구티에레츠”라는 제목의 글에서, 구티에레츠가 1981년 페루의 리마에서 개최된 신학 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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