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성리학(性理學)이란
2. 주희의 성리학(性理學)
3. 성리학(性理學)의 도입
4. 성리학의 도학정치사상으로의 발전
5. 조선 성리학의 발전 - 이황과 이이
6. 예학의 발전과 성리학의 변화
2. 주희의 성리학(性理學)
3. 성리학(性理學)의 도입
4. 성리학의 도학정치사상으로의 발전
5. 조선 성리학의 발전 - 이황과 이이
6. 예학의 발전과 성리학의 변화
본문내용
대립과 결부하여 예송(禮訟)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한편 17세기 후반부터는 리기심성론에서도 새로운 발전이 있었다. 퇴계학파 가운데 주로 영남남인을 중심으로 이황의 리기호발설을 계승하여 이이의 이기겸발설을 비판하는 사상체계를 확립해갔다. 이현일(李玄逸: 1627~1704)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러한 학문·사상 경향은 리발(理發)을 적극적으로 주장한다는 점에서 주리파(主理派)로 불린다. 이에 대해 리기겸발설을 계승한 학문·사상 경향은 기발(氣發)만을 인정하기 때문에 주기파(主氣派)로 불린다. 18세기 초반에는 주기파 내에서 호락논쟁(湖洛論爭)이라고도 불리는 인물성동이논쟁(人物性同異論爭)이 벌어졌으며, 18세기 후반에는 임성주(任聖周: 1711~88)에 의해 기일원론의 철학사상이 정립되기도 했다. 그 후 19세기에는 철학적으로 주리론의 경향이 강화되면서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이나 이진상(李震相: 1818~86)이 이일원론적인 사상체계를 정립했다.
그러나 이미 17세기 후반부터 성리학은 변화하는 사회현실에 전진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학문·사상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하기 시작했으며, 그 대신 실학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학문·사상 조류가 등장했다.
한편 17세기 후반부터는 리기심성론에서도 새로운 발전이 있었다. 퇴계학파 가운데 주로 영남남인을 중심으로 이황의 리기호발설을 계승하여 이이의 이기겸발설을 비판하는 사상체계를 확립해갔다. 이현일(李玄逸: 1627~1704)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러한 학문·사상 경향은 리발(理發)을 적극적으로 주장한다는 점에서 주리파(主理派)로 불린다. 이에 대해 리기겸발설을 계승한 학문·사상 경향은 기발(氣發)만을 인정하기 때문에 주기파(主氣派)로 불린다. 18세기 초반에는 주기파 내에서 호락논쟁(湖洛論爭)이라고도 불리는 인물성동이논쟁(人物性同異論爭)이 벌어졌으며, 18세기 후반에는 임성주(任聖周: 1711~88)에 의해 기일원론의 철학사상이 정립되기도 했다. 그 후 19세기에는 철학적으로 주리론의 경향이 강화되면서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이나 이진상(李震相: 1818~86)이 이일원론적인 사상체계를 정립했다.
그러나 이미 17세기 후반부터 성리학은 변화하는 사회현실에 전진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학문·사상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하기 시작했으며, 그 대신 실학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학문·사상 조류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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