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전통 봉건 계층에 대한 작가의식
Ⅲ. 개화기 타락한 지식인 계층에 대한 작가의식
Ⅳ. 사회주의 운동 계층에 대한 작가의식
Ⅴ. 결론
Ⅵ. 참고문헌
Ⅱ. 전통 봉건 계층에 대한 작가의식
Ⅲ. 개화기 타락한 지식인 계층에 대한 작가의식
Ⅳ. 사회주의 운동 계층에 대한 작가의식
Ⅴ. 결론
Ⅵ. 참고문헌
본문내용
공명심을 걷잡을 수도 없고 과장이 그럴수록 고집을 세워보고도 싶은 것이요. 그만한 확신도 있는 것이다. 염상섭,『삼대』.문학과 지성사 pp.615~616
위의 인용문을 통해 조의관이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펼치지는 않았어도 자기 가문의 유지와 번영을 위하여 일제 인사들과 지속적으로 어느 정도의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물질적 가치를 중요시 하는 인물로, 돈에서 얻어진 권위를 가진다. 돈으로 나이 어린 수원 집을 처로 들여 사는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탐욕적이고 세속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옛 것을 버리지 않고 지키려 노력하는 조의관과는 달리 조덕기는 신식 교육을 받고 새로운 의식을 가지고 있는 세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자신의 부친처럼 옛 것을 아예 외면하고 새로운 문명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는 구세대인 조의관의 지나친 봉건적 사고에 무조건 순종하지는 않지만 거세게 반발하거나 대립하는 갈등의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갈등을 최소화하고 좋은 쪽으로 이끌어 내기 위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줄이고 있다.
그러나 덕기는 조부가 부친에게 대하여 육장 줄로 친 듯이 꾸지람을 하는 것이 듣기 싫었다. 누구 편은 더 들고 누구 편은 덜 드는 것이 아니지만 조부의 결은 잔소리- 그거나마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예수교 논래에는 시비는 하여간에 이제는 머리가 띵하였다. 1년에 몇 차례씩 되는 제사 때면 한층 심한 것이다. 더구나 자기 마님 제사- 즉 덕기에게는 조모 제사요 부친에게는 친기가 되지만 그때가 되면 연년이 난가가 되는 것이다. 위의 책. p.36
위의 인용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덕기는 누구의 뜻이 옳고 그른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다. 덕기는 다만 조부가 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으로 인해 반복되는 조부와 부친과의 갈등에 지쳐있으며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의관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조덕기에게 사당과 금고의 열쇠를 건네는 장면에서도 조덕기가 조부와 부친의 갈등을 염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부는 수원집까지 내보내놓고 머리맡의 조그만 손금고를 열라고 하여 열쇠 꾸러미를 꺼내 맡기고 이렇게 일러놓았다.
“아직 제가 맡을 것이야 있습니까? 저는 할아버지 병환만 웬만하시면 곧 다시 갈텐데요! 그리고 아범을 제쳐놓고 제가 어떻게 맡습니까?” 위의 책. p.422
조덕기는 웃어른인 부친이 집안의 권위를 상실하고 그로인해 가족간의 불화가 일어날 것을 걱정하는 탓에 금고의 열쇠를 맡기를 꺼려한다. 하지만 결국 금고의 열쇠를 받아드는데, 이것은 조덕기가 재물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가족들의 화합과 평화를 위한 선택이었다. 조덕기는 조부의 유산을 가지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쓰기 보다는 부친이 저지른 일들을 감싸거나 필순과 필순의 부모를 위한 일로 돈을 사용한다. 이런 모습들을 통해 조덕기가 민족적 의식을 가지면서도 자신과 사회를 같이 생각하는 건강한 삶의 방식을 추구함을 알 수 있다. 김재용, 「염상섭과 민족의식-『삼대』와 『효풍』」,『염상섭 문화의 재인식』, 문학과사상 연구회, 1998, p.87
작가 염상섭은 조덕기를 통해 전통적인 봉건사회의 시대에서 근대사회로 접어들어서면서 생겨나는 여러 충돌과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는 전통적 삶의 방식과 의식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새로운 시대의 삶의 방식과 의식에 대해서도 서술하며 두 시대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드러낸다. 조덕기가 주변 인물들의 뜻이 자신의 뜻과 맞지 않더라도 반목하지 않고 그들과의 조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작가 염상섭이 가지고 있는 중도주의적인 의식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Ⅲ. 개화기 타락한 지식인 계층에 대한 작가의식
조상훈은 당시 최첨단의 신식 교육을 받은 개화인으로 등장한다. 그는 한말 젊은 지사로 나서 종교 생활에 첫 발을 디딘 기독교인이다. 2년 동안 미국 유학을 다녀온 신지식인으로서 귀국 후에는 학교를 건립하고 교회를 세우며 민족운동에도 관심을 가지는 진취적 인물이었다. 개화기 시대의 젊은 지식인들이 으레 그러했던 것처럼 조상훈 역시 봉건 시대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포부를 세상에 펼쳐 보임으로써 호응과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 조의관의 철저한 봉건적 사고방식 밑에서 자기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몸부림칠 뿐 어떠한 행동도 실천하지는 못한다. 그의 민족적 활동은 3.1운동 이후 옥고를 치르다 죽은 교인의 처자를 보살피는 것으로 마감된다. 사회의 지도자, 또는 사회사업가가 되어 사회복지를 위해 일해 보겠다는 것은 오직 꿈이요, 이상일 뿐 마침내는 술과 여자와 마작에 빠져드는 위선적 민족주의자로 전락한다.
작가는 덕기의 눈을 통해 조상훈의 이중성과 그가 타락해 가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상훈의 세대에 대해서 부정적 관점에 서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의 전반에서 조덕기는 조상훈의 이중성과 종교적 위선에 대해 불만을 갖지만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는다. 혼자서 생각하거나 이따금 어머니에게 불평할 뿐이다.
\"글쎄 금주 선전 신문인가 무엇엔가 글이나 쓰시지 말았으면 좋지 않아요! 도무지 교회도 나와버리시구 그런 데 간섭을 마셨으면 좋을 게 아니에요. 밤 10시까지는 설교를 하시고, 그리고 10시가 지나면 술집으로 여기저기 갈 데 안 갈 데 돌아다니시니 그러면 세상이 모르나요. 언제든지 알리고 말 것이오……그것도 거기다가 목숨을 매달고 서양 사람의 돈푼이나 얻어먹어야 살 형편이면 모르겠지만…….\" 염상섭. 『삼대』, 문학과 지성사, p.41
때로는 상황에 따라 세대를 달리하는 아버지 조상훈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이해하고 동정하기도 한다.
올 적마다 조부에게 꾸중만 맞고 안에도 들르거나 말거나 하고 훌쩍 가버리는 부친의 뒷모양을 바라보고 덕기는 민망한 생각이 들었다.
자기 부친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남의 없는 위선자거나 악인은 아니다. 이 세상 사람을 저울에 달아본다면 한돈도 못되는 한푼 내외의 차이밖에 없건만 부친이 어떤 동기로였든지- 어떤 동기라느니보다도 이삽십 년 전 시대의 신청년이 봉건사회를 뒷발길로 차버리고 나서려고 허비적거릴
위의 인용문을 통해 조의관이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펼치지는 않았어도 자기 가문의 유지와 번영을 위하여 일제 인사들과 지속적으로 어느 정도의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물질적 가치를 중요시 하는 인물로, 돈에서 얻어진 권위를 가진다. 돈으로 나이 어린 수원 집을 처로 들여 사는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탐욕적이고 세속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옛 것을 버리지 않고 지키려 노력하는 조의관과는 달리 조덕기는 신식 교육을 받고 새로운 의식을 가지고 있는 세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자신의 부친처럼 옛 것을 아예 외면하고 새로운 문명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는 구세대인 조의관의 지나친 봉건적 사고에 무조건 순종하지는 않지만 거세게 반발하거나 대립하는 갈등의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갈등을 최소화하고 좋은 쪽으로 이끌어 내기 위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줄이고 있다.
그러나 덕기는 조부가 부친에게 대하여 육장 줄로 친 듯이 꾸지람을 하는 것이 듣기 싫었다. 누구 편은 더 들고 누구 편은 덜 드는 것이 아니지만 조부의 결은 잔소리- 그거나마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예수교 논래에는 시비는 하여간에 이제는 머리가 띵하였다. 1년에 몇 차례씩 되는 제사 때면 한층 심한 것이다. 더구나 자기 마님 제사- 즉 덕기에게는 조모 제사요 부친에게는 친기가 되지만 그때가 되면 연년이 난가가 되는 것이다. 위의 책. p.36
위의 인용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덕기는 누구의 뜻이 옳고 그른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다. 덕기는 다만 조부가 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으로 인해 반복되는 조부와 부친과의 갈등에 지쳐있으며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의관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조덕기에게 사당과 금고의 열쇠를 건네는 장면에서도 조덕기가 조부와 부친의 갈등을 염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부는 수원집까지 내보내놓고 머리맡의 조그만 손금고를 열라고 하여 열쇠 꾸러미를 꺼내 맡기고 이렇게 일러놓았다.
“아직 제가 맡을 것이야 있습니까? 저는 할아버지 병환만 웬만하시면 곧 다시 갈텐데요! 그리고 아범을 제쳐놓고 제가 어떻게 맡습니까?” 위의 책. p.422
조덕기는 웃어른인 부친이 집안의 권위를 상실하고 그로인해 가족간의 불화가 일어날 것을 걱정하는 탓에 금고의 열쇠를 맡기를 꺼려한다. 하지만 결국 금고의 열쇠를 받아드는데, 이것은 조덕기가 재물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가족들의 화합과 평화를 위한 선택이었다. 조덕기는 조부의 유산을 가지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쓰기 보다는 부친이 저지른 일들을 감싸거나 필순과 필순의 부모를 위한 일로 돈을 사용한다. 이런 모습들을 통해 조덕기가 민족적 의식을 가지면서도 자신과 사회를 같이 생각하는 건강한 삶의 방식을 추구함을 알 수 있다. 김재용, 「염상섭과 민족의식-『삼대』와 『효풍』」,『염상섭 문화의 재인식』, 문학과사상 연구회, 1998, p.87
작가 염상섭은 조덕기를 통해 전통적인 봉건사회의 시대에서 근대사회로 접어들어서면서 생겨나는 여러 충돌과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는 전통적 삶의 방식과 의식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새로운 시대의 삶의 방식과 의식에 대해서도 서술하며 두 시대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드러낸다. 조덕기가 주변 인물들의 뜻이 자신의 뜻과 맞지 않더라도 반목하지 않고 그들과의 조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작가 염상섭이 가지고 있는 중도주의적인 의식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Ⅲ. 개화기 타락한 지식인 계층에 대한 작가의식
조상훈은 당시 최첨단의 신식 교육을 받은 개화인으로 등장한다. 그는 한말 젊은 지사로 나서 종교 생활에 첫 발을 디딘 기독교인이다. 2년 동안 미국 유학을 다녀온 신지식인으로서 귀국 후에는 학교를 건립하고 교회를 세우며 민족운동에도 관심을 가지는 진취적 인물이었다. 개화기 시대의 젊은 지식인들이 으레 그러했던 것처럼 조상훈 역시 봉건 시대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포부를 세상에 펼쳐 보임으로써 호응과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 조의관의 철저한 봉건적 사고방식 밑에서 자기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몸부림칠 뿐 어떠한 행동도 실천하지는 못한다. 그의 민족적 활동은 3.1운동 이후 옥고를 치르다 죽은 교인의 처자를 보살피는 것으로 마감된다. 사회의 지도자, 또는 사회사업가가 되어 사회복지를 위해 일해 보겠다는 것은 오직 꿈이요, 이상일 뿐 마침내는 술과 여자와 마작에 빠져드는 위선적 민족주의자로 전락한다.
작가는 덕기의 눈을 통해 조상훈의 이중성과 그가 타락해 가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상훈의 세대에 대해서 부정적 관점에 서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의 전반에서 조덕기는 조상훈의 이중성과 종교적 위선에 대해 불만을 갖지만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는다. 혼자서 생각하거나 이따금 어머니에게 불평할 뿐이다.
\"글쎄 금주 선전 신문인가 무엇엔가 글이나 쓰시지 말았으면 좋지 않아요! 도무지 교회도 나와버리시구 그런 데 간섭을 마셨으면 좋을 게 아니에요. 밤 10시까지는 설교를 하시고, 그리고 10시가 지나면 술집으로 여기저기 갈 데 안 갈 데 돌아다니시니 그러면 세상이 모르나요. 언제든지 알리고 말 것이오……그것도 거기다가 목숨을 매달고 서양 사람의 돈푼이나 얻어먹어야 살 형편이면 모르겠지만…….\" 염상섭. 『삼대』, 문학과 지성사, p.41
때로는 상황에 따라 세대를 달리하는 아버지 조상훈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이해하고 동정하기도 한다.
올 적마다 조부에게 꾸중만 맞고 안에도 들르거나 말거나 하고 훌쩍 가버리는 부친의 뒷모양을 바라보고 덕기는 민망한 생각이 들었다.
자기 부친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남의 없는 위선자거나 악인은 아니다. 이 세상 사람을 저울에 달아본다면 한돈도 못되는 한푼 내외의 차이밖에 없건만 부친이 어떤 동기로였든지- 어떤 동기라느니보다도 이삽십 년 전 시대의 신청년이 봉건사회를 뒷발길로 차버리고 나서려고 허비적거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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