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한국 민속놀이와 종교,설화사례를 통한 성문화 고찰
본 자료는 7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해당 자료는 7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7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민속학]한국 민속놀이와 종교,설화사례를 통한 성문화 고찰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서 론
□ 본 론
■ 자연물을 대상으로 한 성(性) 신앙
■ 모의 성행위 신앙
1. 성기암(性器巖) 개인 치성
2. 줄다리기 이종철 外,『性, 숭배와 금기의 문화』, 대원사, 1997, 210~219쪽.
3. 여성들의 집단 놀이
■ 성(性)과 종교
불교와 유교에 의해서 한국 사회에서 영향 받은 성(性)의 모습
1. 설화
① <달래나보지>설화와 <홍수설화>
2. 성기암(性器巖)
③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신기를 동전마을 자웅석
□ 결 론
□ 참 고 문 헌

본문내용

하는데 연행 시기는 강강술래와는 차이가 있다. 또 다른 차이는 구성 인원이 대개 처녀를 포함한 30세 미만의 젊은 부녀자들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처럼 생산력이 강한 여성만이 참여하는 것은 풍요와 다산의 생산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월월이청청이 갖고 있는 놀이 형식과 사설구조는 강강술래의 형식과 유사한 면이 많다. 강강술래의 구조를 전반부의 성행위 모의부와 놀이부로 나눈 것처럼 월월이청청도 같은 구조를 갖는다.
놋다리밟기의 연행 시기는 정월 보름이고 원의 행위는 만월이나 만삭의 임신부의 형체적인 모양만을 본 딴 것만은 아닌 여성이라는 성의 상징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집단행위로 볼 수 있다.
부녀들이 감았던 또아리를 풀고 큰 원을 이룬 다음에 옹굴놋다리로 들어가는데 모두들 머리를 원 안쪽으로 향하고 궁둥이를 바깥쪽으로 드러낼 뿐 아니라, 저고리를 버린다는 구실로 치마를 모두 뒤집어써서 속옷과 아랫도리가 드러나도록 한다.
노래를 부르는 부녀들은 그 둘레에 선 채로이며 이른바 공주가 엎드린 옹굴놋다리를 차례차례 밟고 지나간다. 놋다리를 밟는 것은 공주가 아니라 남성이라고 한 바와 같이, 남성이 아랫도리를 노출한 여성을 밟고 지나간다거나 또는 여성들의 옹굴(우물, 샘)을 통과한다는 것은 성행위나 다름없는 셈이다.
임재해의「놋다리밟기의 유형과 풍농 기원의 의미」중에서 인용한 부분인데, 이러한 관점에서 놋다리밟기의 원형은 신에 대한 여성들의 집단적인 육체 공양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집단성의 문제는 기원 내용을 확실하게 이루기 위한 효과적인 장치로 발휘된 것이다.
이들 놀이의 기본구조는 원에 있다. 원에 대해서 만삭의 여자 모습이나 보름달 그리고 둥근 알곡 등으로 의미 부여를 하고 있지만 이것보다는 여자의 성기를 암시하는 행위에 더 근접한다. 이러 근거로는 무엇보다도 이들이 연행되는 시간이 밤이라는 것이다. 보름이라는 설정은 여성의 생산을 촉진시켜 신에 대응할 수 있도록 달의 정기를 많이 받고자 하는 의도의 주술적 놀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들 놀이에 여성만이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즉, 여성만이 신에 대한 공양 의례를 육체로 대신한다는 의미 부여가 가능한 것이다.
■ 성(性)과 종교
인간은 성(性)의 생산 기능으로 인해서 생명체의 연속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데 이 진술을 찬찬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아이러니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비록 인간과 자연이 번영하는 힘의 메커니즘으로 성을 인식할지라도 계속적인 생명체의 연속성은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 남성이 한 여성을 통해 자기 존재를 이어주는 자식을 잉태하였을지라도 그 연속성은 자식이라는 타인에 의해 단지 보충되었을 뿐이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자식은 서로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속성이라는 말 속에는 이미 비연속성이 내포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비연속성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게 하는 또 다른 기제는 바로 성을 통해 생산의 신비를 경험토록 하는 명시적이고 암묵적인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가 우리로 하여금 생산을 종교화시킨다. 즉, 성의 신비화를 경험토록 함으로써 성이 제공하는 생산적 측면의 비연속성을 그렇지 않게 받아들이도록 한다. 이종철 外,『性, 숭배와 금기의 문화』, 대원사, 1997, 15쪽.
한편 의미와 질서를 부여하는 능력을 가진 문화체계로서의 종교는 성의 무질서한 힘에 대해 통제와 정화와 보호를 제공한다. 성에 대한 관념 및 성적 행위를 규정하는 많은 문화적 기제 곧 터부의 등장은 이 통제의 한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문화체계로서의 종교는 성이 지닌 잠재적인 면과 경외스러운 면을 다루도록 인간에게 의례와 상징을 제공해준다. 위의 책, 190쪽.
즉, 성(性)은 종교성이 부여되면서 신성시 여기게 되었지만, 그런 종교의 틀 안에서 성의 인간 보편적인 욕구는 감시받고 이에 대응하며 문화체계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다음은 불교와 유교에 의해서 한국 사회에서 영향 받은 성(性)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 설화
① <달래나보지>설화와 <홍수설화> 이종철, 김종대,『민중들이 바라본 성문학(性文學)』, 민속원, 1999, 19~38쪽 발췌 인용.
<달래나보지>의 설화는 최상수의《한국민간전설집》을 참고하면 산으로는 강원도 철원의 달래산, 경북 경주의 달래나보지고개, 경남 마산의 말이나해보지고개가 있고, 강으로는 평북 정주의 달내강(達川江)과 충북 충주의 달내강(德川江)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충주의 달래강의 이야기의 주인공으로는 남매관계에 있는 남녀가 등장한다. 특히 줄거리 상에서 남자가 여자 동생(혹은 누나)에게 성욕을 품게 만드는 계기로서 물과 관련을 맺는 특징을 보여준다. 그것은 여자의 옷차림을 변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지만, 원초적으로는 생명의 잉태를 뜻하는 것이다.
단월 달래강이 있거든. 강이, 왜 달래강이냐 이카거든. 달래강이냐? 누이하고 동생하고 옷을 벗고 내를, 인제 강을 건네야 된다 마라. 강을 건넬라 카이 물이 많거든. 물이 많애 가이고 물을 건넬 수가 없은께 서로 인제 옷을 홀딱 벗고 건넸단 마라. 건너이께, 누는 앞에 건네가고 동상은 뒤에 건네 오는데 옷을 벗고 동상이 그 참말로 낭심이 일어 났단 말이라. 응, 낭심이. 신이 일어난께 그 누이를 보고 동생이 누이를 보고 음양이 동하니 그 기맥힌 일 아니라? 그린께 그 인제 동생이 이래 건네가미,
“누이는 뒤에, 누야는 누, 누 누나는 뒤에서 건너 오고 나는 앞에서 먼저 건너갈 것이니께 누는 앞에 건너 오라.”고 아칸께네,
“야야, 같이 가자, 같이 가자.”크미,
“왜 그래 내빼나?”
“난 같이, 먼저 건네 가겠다.”고 이카민서 건너 갔다 마라.
강이 널러여(넓어여), 달래강이. 그기 충주 단월강인데. 그런데, 그래 먼저 건너가 가이고 저 갱빈에 고만 갱빈 사장에 올라 가서 갱빈을 건너 가만 그 돌 올라 가는데 돌 서더리(모서리)가 있거든. 돌 서더리다가, 바우다가 고만 낭심을 갖다 놓고 찌었어. ‘요놈의 암만 음양지가 죄가 없다 카지마는 누이 동상간에, 으? 남매간에 이런 행동이 나가 음양이 동하니 이건 나도서는(놓아 두어서는) 안된께, 이거 찧고 내가 죽을

키워드

민속학,   민속놀이,   민속,   성문화,   설화,   종교
  • 가격1,600
  • 페이지수21페이지
  • 등록일2010.07.16
  • 저작시기201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24099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