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처용가(고려가요, 고려속요)의 성격
Ⅲ. 처용가(고려가요, 고려속요)의 형성과정
Ⅳ. 처용가(고려가요, 고려속요)의 구조와 내용
1. 의미상 4단계로 나누는 견해
2. 극가의 열두 짜임으로 보는 견해
3. 가락상 6단락, 내용상 5단락으로 보는 견해
4. 무가의 5계층 구조로 보는 견해
Ⅴ. 처용가(고려가요, 고려속요)의 변전과 문화사적 해석
1. 처용문화의 양상
1) 인간을 뛰어넘는 권능을 지닌 존재
2) 현실적인 인간
3) 그 밖에 신분의 문제와는 별도로 정신분석적으로 접근한 검토
2. 처용가의 변이와 굴절
3. 고려 처용가의 주술적 성격
참고문헌
Ⅱ. 처용가(고려가요, 고려속요)의 성격
Ⅲ. 처용가(고려가요, 고려속요)의 형성과정
Ⅳ. 처용가(고려가요, 고려속요)의 구조와 내용
1. 의미상 4단계로 나누는 견해
2. 극가의 열두 짜임으로 보는 견해
3. 가락상 6단락, 내용상 5단락으로 보는 견해
4. 무가의 5계층 구조로 보는 견해
Ⅴ. 처용가(고려가요, 고려속요)의 변전과 문화사적 해석
1. 처용문화의 양상
1) 인간을 뛰어넘는 권능을 지닌 존재
2) 현실적인 인간
3) 그 밖에 신분의 문제와는 별도로 정신분석적으로 접근한 검토
2. 처용가의 변이와 굴절
3. 고려 처용가의 주술적 성격
참고문헌
본문내용
성격도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 자체가 굿거리적 구성은 아닐 것이기 때문에 처용굿을 하면서 불렀던 무가로서의 처용가와는 다른 것이다. 요컨대 현전하는 처용가는 무가 처용가가 불렸던 처용굿에서 파생된 처용희에 부대되는 노래라 하겠다.
이명구- 현존하는 처용가가 「고려사」악지에 보이는 처용과 꼭 같은 노.래라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그런데「齋叢話」에서 “세종께서 가사를 개작하여 鳳凰吟이라고 하셨고”라는 대목이 나오며,「악학궤범」에 “處容慢機는 곧 鳳凰吟一機다”라고 하여 같은 말이라고 생각된다. 즉, 「악학궤범」에 나오는 처용가는 실은 세종께서 그 가사를 개찬하시고 봉황음이라 이름하셔 廟廷의 正樂으로 삼게 된, 바로 그 처용가가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고려 대에 만들어진 그대로의 것이 아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개작되어 봉황음이라고 불리우게 된 그 처용가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즉, 고려시대의 처용가는 그 정확한 제작 연대나 제작 과정은 아직 미지수로 돌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한다. 현존 처용가를 여대의 작 그대로의 것이라는 학설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최용주(1996) - 「陶隱集」卷二에 신라 처용가의 성조가 비장하다고 하면서 특별히 처용가 앞에 ‘신라’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또 다른 처용가가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고 그 다른 처용가가 바로 고려의 처용가이다. 고려사 악지의 기록도 신라 처용가 보다는 고려 처용가에 가깝다. 봉황음이 개찬된 처용가라고 보는 견해가 있지만 「增補文獻備考」의 악학궤범 향악정재가사의 봉황음조를 보면 조선 시대 향악정재에 사용되는 노래에는 <봉황음>이 있는데 그 외에 <처용가>,<관음찬>도 있다는 말이 나오므로 결국 악학궤범의 향악정재에 사용되는 <처용가>는 고려 시대에 생성된 <처용가>이고 고려 처용가도 같이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처용가는 疫鬼災殃을 퇴치하는 기능이 있지만 처용놀이는 벽사진경의 기능이라기보다 일상적인 놀이로서 기능이 우세하다. 여대의 ‘처용희, 처용가면놀이’ 행사시에 <처용가>가 불리워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처용놀이가 성행했던 것은 확실하다. 여대에는 처용무라는 단어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舞로서 정악화된 것은 선초의 세종때로 볼 수 있다.
Ⅳ. 처용가(고려가요, 고려속요)의 구조와 내용
1. 의미상 4단계로 나누는 견해
양주동, 김형규, 박병채는 처용가의 서술 구조를 4단계로 나누었다. 제 1단계는 서사로 ‘신라성대~일시소멸하샷다’ 이고, 제 2단계는 ‘어와 아뵈즈이여~아으 계면도샤 넙거신 바래’로 처용의 樣姿(양) 또는 춤추는 처용의 모양(김), 처용의 화상을 그림(박)이라는 내용으로 어쨌거나 처용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부분이다. 제 3단계는 ‘누고지 셰니오 ~ 마아만니여’ 까지로 처용 가면의 제작사설(양), 처용의 제작과 그 위력(김), 처용 제작에 대한 말(박)로 주술적 행위를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처용을 만드는 내용임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제 4단계는 ‘머자 외야자~아으 열병대신의 발원이샷다’로 처용의 위력 서술. 처용의 위력에 대한 해설. 巫唱者와 처용의 문답, 역신의 哀訴辭 結詞(양), 처용이 역신을 쫓음(김), 처용이 역신을 쫓아낸 위력(박)으로 공통되게 처용이 역신을 물리친 주술적 위력을 노래하고 있다고 보았다. 특히 양주동은 제 4단계를 처용의 위력과 문답장면, 열병대신의 발원으로 다시 세분하였다. 그러나 의미에 따라 네 단계로 나누는 견해는 무리이다. 김상억, 최철, 최용주가 의미상 5단락으로 나누고 있으며 양주동 자신도 제 4단계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내용상의 차이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고려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최철은 제 1단계는 ‘신라성대소성대~일시소멸하샷다’까지로 머리시이고, 제 2단계는 아으 처용아비를 마아만니여‘까지로 처용에 대한 찬미, 제 3단락은 ’열병신이야 회ㅅ가시로다‘로 역신을 물리치는 주사, 제 4단락은 처용신에 대한 감사와 역신의 발원으로 보았다. 즉 ’누고지져셰니오~마아만니여‘를 처용에 대한 찬미의 강조로 보고 양주동 등이 제 3단계로 보았던 부분을 제 2단계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처용의 모습을 강조한 것으로만 보기에는 제 3단락의 의미가 제 2단락의 것과는 다른 점이 많고 가락상으로나 문체상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으므로 한번 더 나누는 것이 좋겠다.
2. 극가의 열두 짜임으로 보는 견해
이 견해는 여증동이 주장한 것으로 처용가를 연극의 노래, 즉 극가로 보고 단락을 나눈 것이다. ‘신라셩ㅣ~쳐용아
이명구- 현존하는 처용가가 「고려사」악지에 보이는 처용과 꼭 같은 노.래라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그런데「齋叢話」에서 “세종께서 가사를 개작하여 鳳凰吟이라고 하셨고”라는 대목이 나오며,「악학궤범」에 “處容慢機는 곧 鳳凰吟一機다”라고 하여 같은 말이라고 생각된다. 즉, 「악학궤범」에 나오는 처용가는 실은 세종께서 그 가사를 개찬하시고 봉황음이라 이름하셔 廟廷의 正樂으로 삼게 된, 바로 그 처용가가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고려 대에 만들어진 그대로의 것이 아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개작되어 봉황음이라고 불리우게 된 그 처용가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즉, 고려시대의 처용가는 그 정확한 제작 연대나 제작 과정은 아직 미지수로 돌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한다. 현존 처용가를 여대의 작 그대로의 것이라는 학설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최용주(1996) - 「陶隱集」卷二에 신라 처용가의 성조가 비장하다고 하면서 특별히 처용가 앞에 ‘신라’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또 다른 처용가가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고 그 다른 처용가가 바로 고려의 처용가이다. 고려사 악지의 기록도 신라 처용가 보다는 고려 처용가에 가깝다. 봉황음이 개찬된 처용가라고 보는 견해가 있지만 「增補文獻備考」의 악학궤범 향악정재가사의 봉황음조를 보면 조선 시대 향악정재에 사용되는 노래에는 <봉황음>이 있는데 그 외에 <처용가>,<관음찬>도 있다는 말이 나오므로 결국 악학궤범의 향악정재에 사용되는 <처용가>는 고려 시대에 생성된 <처용가>이고 고려 처용가도 같이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처용가는 疫鬼災殃을 퇴치하는 기능이 있지만 처용놀이는 벽사진경의 기능이라기보다 일상적인 놀이로서 기능이 우세하다. 여대의 ‘처용희, 처용가면놀이’ 행사시에 <처용가>가 불리워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처용놀이가 성행했던 것은 확실하다. 여대에는 처용무라는 단어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舞로서 정악화된 것은 선초의 세종때로 볼 수 있다.
Ⅳ. 처용가(고려가요, 고려속요)의 구조와 내용
1. 의미상 4단계로 나누는 견해
양주동, 김형규, 박병채는 처용가의 서술 구조를 4단계로 나누었다. 제 1단계는 서사로 ‘신라성대~일시소멸하샷다’ 이고, 제 2단계는 ‘어와 아뵈즈이여~아으 계면도샤 넙거신 바래’로 처용의 樣姿(양) 또는 춤추는 처용의 모양(김), 처용의 화상을 그림(박)이라는 내용으로 어쨌거나 처용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부분이다. 제 3단계는 ‘누고지 셰니오 ~ 마아만니여’ 까지로 처용 가면의 제작사설(양), 처용의 제작과 그 위력(김), 처용 제작에 대한 말(박)로 주술적 행위를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처용을 만드는 내용임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제 4단계는 ‘머자 외야자~아으 열병대신의 발원이샷다’로 처용의 위력 서술. 처용의 위력에 대한 해설. 巫唱者와 처용의 문답, 역신의 哀訴辭 結詞(양), 처용이 역신을 쫓음(김), 처용이 역신을 쫓아낸 위력(박)으로 공통되게 처용이 역신을 물리친 주술적 위력을 노래하고 있다고 보았다. 특히 양주동은 제 4단계를 처용의 위력과 문답장면, 열병대신의 발원으로 다시 세분하였다. 그러나 의미에 따라 네 단계로 나누는 견해는 무리이다. 김상억, 최철, 최용주가 의미상 5단락으로 나누고 있으며 양주동 자신도 제 4단계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내용상의 차이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고려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최철은 제 1단계는 ‘신라성대소성대~일시소멸하샷다’까지로 머리시이고, 제 2단계는 아으 처용아비를 마아만니여‘까지로 처용에 대한 찬미, 제 3단락은 ’열병신이야 회ㅅ가시로다‘로 역신을 물리치는 주사, 제 4단락은 처용신에 대한 감사와 역신의 발원으로 보았다. 즉 ’누고지져셰니오~마아만니여‘를 처용에 대한 찬미의 강조로 보고 양주동 등이 제 3단계로 보았던 부분을 제 2단계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처용의 모습을 강조한 것으로만 보기에는 제 3단락의 의미가 제 2단락의 것과는 다른 점이 많고 가락상으로나 문체상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으므로 한번 더 나누는 것이 좋겠다.
2. 극가의 열두 짜임으로 보는 견해
이 견해는 여증동이 주장한 것으로 처용가를 연극의 노래, 즉 극가로 보고 단락을 나눈 것이다. ‘신라셩ㅣ~쳐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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