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가요(海東歌謠])』의 김수장 시조에서 나타난 몽환적 세계와 현대 가요에서 나타난 몽환적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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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해동가요(海東歌謠])』의 김수장 시조에서 나타난 몽환적 세계와 현대 가요에서 나타난 몽환적 세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1. 도가와 도교
2. 『해동가요』의 원본 선택

Ⅱ. 풀어 주는 말
1. 시조의 형성과 소멸
2. 김수장
3. 자우림
4. 패닉

Ⅲ. 끝맺는 말

본문내용

가 너무 많이 함유되어 시조가 가지고 있는 유연성 떨어지며 결국 시조의 형태의 맥만 유지하고 있다. 국문학 연구총서3『고시조 연구』국어국문학회편, 태학사, 고미숙 외15명저, 1997에서 발지 정리
2. 김수장
김수장(金壽長, 1690~?)조선 후기의 가객 시조작가로서 호는 노가재, 별칭은 자 자평이며 활동분야는 문학이다 자 자평(子平). 호 노가재(老歌齋). 숙종 때 병조에서 서리(書吏)를 지냈다. 1746년(영조 22) 《해동가요(海東歌謠)》를 편찬하기 시작하여 1755년 제1차 편찬사업을 완료하였고, 1763년에는 제2차 편찬사업을 완료하였다. 1770년에 이르기까지 개수(改修)를 계속하였는데, 이 속에 자작(自作) 시조 117수를 수록하였다. 가객으로서 김천택(金天澤)과 쌍벽을 이루었으며, 당시 전문적 시조 가창(歌唱) 단체인 경정산 가단(敬亭山歌壇)을 이끌어온 중추적 인물의 하나였다. 만년에는 서울 화개동(花開洞)에 집을 지어 그 이름을 노가재라 하고 제자들을 모아 가르쳤다. 작품수가 남달리 많은 만큼 인생무상 충효 안빈낙도 등 유가적(儒家的)인 것과 남녀 애정 서민생활 사생활 등 다양한 주제를 보여주고 있다. 여러 가집(歌集)에 많은 단평(短評)이 전한다.
노가재가단(老歌齋歌壇)는 조선 후기 김수장(金壽長)을 중심으로 형성된 가객들의 모임이다. 설립연도는 1760년 정도이며 소재지는 한국 서울이고 주요활동은 시조창작, 가악, 후배 양성, 청구가요 편찬 등을 들 수 있다. 1760년(영조 36) 김수장은 서울 화개동(花開洞)에 노가재를 짓고 그 곳에서 여러 벗과 후배들과 함께 활발한 시조창작과 가악활동을 하며 말년을 보냈다. 단체 활동이나 모임의 형태, 구성원들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우규(金友奎), 박문욱(朴文郁), 김중열(金重說), 장복소(張福紹), 이덕함(李德涵) 등이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노가재는 김수장의 호이다. 가단의 명칭은 실제 불렸던 이름은 아니며 김수장을 중심으로 가객들 활동 전체를 포괄하여 부르는 용어이다. 시조문학의 창작과 창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고 후배양성의 도량 역할을 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경정산 가단(敬亭山歌壇)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노가재 가단이 먼저 있었던 경정산 가단을 계승, 발전하였다는 설과 당시에 김천택(金天澤)을 중심으로 한 경정산가단과 김수장를 중심으로 한 노가재 가단이 양립되어 있었으며 노가재 가단이 가악계에 더 영향력이 컸다는 설 등이다. 김천택과 김수장은 작품의 세계와 취향 등 여러 면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며 김수장은 김천택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가졌다. 보수적이고 완고한 김천택에 비해 김수장은 풍류적이며 자유로운 면이 있다. 여러 문헌을 살펴볼 때 김천택과 김수장은 서로 다른 별도의 모임을 이끌었던 것으로 보이며 경정산가단의 성립이나 명칭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생각이다. 이 가단의 성과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해동가요(海東歌謠)》 부편(附篇)인 《청구가요(靑邱歌謠)》의 편찬이다. 《청구가요》는 김수장이 노가재를 중심으로 활동한 작품을 뽑아 편찬한 것으로, 가집의 수록 작가나 작품의 중요성뿐 아니라 작품 끝에 붙은 후서(後序)는 당시 가악계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김수장- 『시조집』한국문학사, 김하명, 1996, 청구기호 : 811.3 김975ㅅ-1, 405~422중에서 발지
○ 무극옹(無極翁)은 긔 누련고 하늘따 임재련가
언제 어늬 때에 어듸로서 낫거이고
처음도 나종도 모르니 무극(無極)일 시 옳도다
무극옹 : 한 없고 끝없다는 것을 의인화 한 것
무극 : 끝이 없는 것 (가곡원류)
끝이 없는 사람은 하늘에 인재인가 언제 어느 때에 어디로 낳는지? 처음도 나중도 모르니 끝이 없는 시간이 옳다는 뜻으로 한이 없고 끝이 없는 것을 의인한 무극옹은 신선의 모습처럼 처음도 끝도 없는 사람이며 이들은 어디서 나타날지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는 의미이다.
○ 경회루 만주송(慶會樓萬侏松)이 눈 알 잣 벌려 있고
인왕 안현(寅王鞍峴)은 취병(翠屛)이 되었는듸
석양에 편편(翩翩) 백로는 오락가락 하노매
경회루 : 서울 경복궁 안에 있는 다락 이름
만주송 : 일만 그루나 되는 많은 소나무
눈 알잣 : 눈 앞에
인왕 안현 : 인왕선과 길가세
취병 : 푸른 병풍
편편 : 펄펄 나는 모양
경회루의 소나무들이 눈앞에 펼쳐 있고 인왕산과 길가는 취병이 되었고 석양에 펄펄나는 백로는 오락가락 한다는 것이다. 술자리에서 흥이 돋아 있는 상태는 표현한 것으로 김수장은 조선후대 유명한 가객 중 한명이었기에 궁중행사 때 불렀던 노래일 수도 있지만 보통 술자리에 술이 취하여 궁안의 모습을 본 것이라고 해석한다.
○ 와실(蝸室)은 부족(不足)하나 십경(十經)이 버려 있고
사벽도서(四壁圖書)는 주인옹(翁)의 심사(心事)로다
이 까에 군 마음 없는 이는 나 뿐인가 하노라
와실 : 달팽이 같이 좁은 집
십경 : 로가재(김 수장의 집)에서 보이는 10개의 아름다운 경치 즉 동산의 밝은 달, 서경락조, 남루의 종, 북악산의 청풍, 경회루의 송림, 왕래하는 백구, 인왕산의 아침 노을, 원촌의 저녁 연기, 온 골의 꽃향기, 내 노래와 벗의 거문고 가곡원류에 부분 중 천로=하느님을 천로 : 하느님으로 변경, 동산의 밝은 달(東嶺皓月)등의 한자어를 첨가하지 않음
좁은 집은 부족하나 10가지의 경치가 있으며 주인의 심사와 같다 이 심사에 가까운 것은 나뿐이다. 라는 뜻으로 김수장이 말년에 서울에 별장을 진 것이 바로 노가재이다. 이후 선인들에 의해 그의 호가되기도 한 그의 서울 집은 가객, 창기, 악대들이 모여 있는 대단이 웅성 한 집이였으며 아마도 자신의 집을 작은집으로 비유하여 자연을 크게 하려는 노가재의 도가적 자연관이 드러나기도 한다.
○ 록양(綠楊)도 좋거니와 벽오동(碧梧桐)이 더 좋왜라
굵은 비 듣는 소희 장부(丈夫)의 심사(心事)ㅣ 로다
년심(年深)코 루경풍상후(累經風霜後)ㅣ 면 순제금(舜帝琴)이 되리라
벽오동 : 잎이 넓고 꽃이 피는 푸른 껍질의 오동
듣는 소희 : 떨어지는 소리
년심코 : 해를 여러 번 묵어 나이들고
루경풍상후 : 어려 번 풍상(바람과 서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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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8.31
  • 저작시기2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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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35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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