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시에 대한 네 가지 관점
2. 시에 대한 네 가지 관점
본문내용
품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 될 수 있다.
그러나 작가의 지향적 행위의 소산으로서의 텍스트가 부분적으로 독자의 반응을 통어하므로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독자의 창조적 참가에 텍스트가 일정한 한계를 지어주어 독자로 하여금 어떤 독법에 대해서는 오독으로 거부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볼프강 이저,『독서행위』, 이유선 역, 신원문화사, 1993, 183~260면 참조.
또 문학적 의미란 텍스트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 속에서 발견된다고 주장하여 텍스트가 객관적 구조를 띠지도 않고 그러므로 텍스트가 독자를 규제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는 더욱 주관주의적인 비평 태도를 취하는 비평가들(블라이치와 피쉬 등) 안토니 이스트호프, 앞의 책, 38면 참조.
이 있지만, 어떠한 입장을 취하더라도 독자들이 대체적으로 이르게 되는 텍스트의 보편적인 의미란 있다는 것이 수용이론가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다양한 주장도 수용이론이 지향하는 보편적 의미라는 것은 어떤 공통된 감수성과 독법이 가능하도록, 일정하게 공유된 문화속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결국 시의 의미라는 것은 독자의 주관적인 독서 결과와, 많은 미결의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주관적 반응을 통어하는 텍스트 자체, 그리고 텍스트와 독자 사이의 약호가 상호 이해되고 공유되는 문화(공동체)의 상호주관성이라는 3자를 통해서 얻어진다고 할 수 있겠다.
이 때 문화라는 말은 상호주관성 뿐만 아니라, 상호텍스트성과 교육제도, 인간 생활, 언어적 관심이 모두 포괄되는 의미다. 이를 그림으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텍스트
문화
(상호주관성, 상호텍스트성, 문학 제도 등)
독자
(주관성)
그러므로 시 텍스트의 올바른 감상은 하나의 기표로서 기본적으로 열려진 가능성으로서의 시 텍스트와 수용자로서의 독자의 감상과 결과를 매우 자명한 것으로 먼저 존중해야 할 것이고, 텍스트와 독자의 수용의 바탕이 되고 영향을 미치는 문화, 즉 과거나 현재의 다른 작품들의 상호택스트성과 언어적 관습, 생활 습속, 문학 교육, 문화적 관습, 문화적 제도등과 같은 당대의 문화라는 3자에 의해 기본적으로는 결정되며, 설명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등학교와 같은 학교 교육에서는 효육적인 교육을 위해 경우에 따라서는 시 텍스트의 분석 과정과 그 결과로서의 텍스트의 의미를 다소 단순화시켜 전달할 때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독자 개인의 주관적 독서 경험은 매우 존중되어야 할 것이고 이것을 교육적인 논리로 수렵하는 상호주관적인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5. 결론
지금까지의 논의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현재까지 우리 나라의 학교 교육에서는 작품작가독자사회라는 네 가지 관점에서 시를 보아왔고, 그것도 네 가지 요소를 자주 거의 동등한 가치로 취급하면서도 독자의 역할은 거의 무시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독자의 수용이라는 것이 매우 주관적이라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국민 대중을 위한 대량 교육을 효율적으로 실시하기 위해서 다른 교과의 주입식 교육 방법과 마찬가지로 시라는 예술품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도 스스로 감상하는 초보적 과정조차 생략한 채, 시 연구자들이 분석해 놓은 매우 난삽한 연구 결과를 그대로 주입시켜 왔었고, 또 그러한 시 교육 관행이 당연한 것으로 반성없이 고착되어 왔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감상의 과정이 생략되다가 보니 자연히 시의 비예술적 요소인 시인이나 다른 자료적 요소가 지나치게 강조되거나 학교(특히 중등학교)교육의 시 감상 수준에서는 거의 불필요한 높은 수준의 난삽한 분석 결과가 잡다하게 주입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지향적 행위의 소산으로서의 텍스트가 부분적으로 독자의 반응을 통어하므로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독자의 창조적 참가에 텍스트가 일정한 한계를 지어주어 독자로 하여금 어떤 독법에 대해서는 오독으로 거부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볼프강 이저,『독서행위』, 이유선 역, 신원문화사, 1993, 183~260면 참조.
또 문학적 의미란 텍스트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 속에서 발견된다고 주장하여 텍스트가 객관적 구조를 띠지도 않고 그러므로 텍스트가 독자를 규제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는 더욱 주관주의적인 비평 태도를 취하는 비평가들(블라이치와 피쉬 등) 안토니 이스트호프, 앞의 책, 38면 참조.
이 있지만, 어떠한 입장을 취하더라도 독자들이 대체적으로 이르게 되는 텍스트의 보편적인 의미란 있다는 것이 수용이론가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다양한 주장도 수용이론이 지향하는 보편적 의미라는 것은 어떤 공통된 감수성과 독법이 가능하도록, 일정하게 공유된 문화속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결국 시의 의미라는 것은 독자의 주관적인 독서 결과와, 많은 미결의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주관적 반응을 통어하는 텍스트 자체, 그리고 텍스트와 독자 사이의 약호가 상호 이해되고 공유되는 문화(공동체)의 상호주관성이라는 3자를 통해서 얻어진다고 할 수 있겠다.
이 때 문화라는 말은 상호주관성 뿐만 아니라, 상호텍스트성과 교육제도, 인간 생활, 언어적 관심이 모두 포괄되는 의미다. 이를 그림으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텍스트
문화
(상호주관성, 상호텍스트성, 문학 제도 등)
독자
(주관성)
그러므로 시 텍스트의 올바른 감상은 하나의 기표로서 기본적으로 열려진 가능성으로서의 시 텍스트와 수용자로서의 독자의 감상과 결과를 매우 자명한 것으로 먼저 존중해야 할 것이고, 텍스트와 독자의 수용의 바탕이 되고 영향을 미치는 문화, 즉 과거나 현재의 다른 작품들의 상호택스트성과 언어적 관습, 생활 습속, 문학 교육, 문화적 관습, 문화적 제도등과 같은 당대의 문화라는 3자에 의해 기본적으로는 결정되며, 설명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등학교와 같은 학교 교육에서는 효육적인 교육을 위해 경우에 따라서는 시 텍스트의 분석 과정과 그 결과로서의 텍스트의 의미를 다소 단순화시켜 전달할 때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독자 개인의 주관적 독서 경험은 매우 존중되어야 할 것이고 이것을 교육적인 논리로 수렵하는 상호주관적인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5. 결론
지금까지의 논의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현재까지 우리 나라의 학교 교육에서는 작품작가독자사회라는 네 가지 관점에서 시를 보아왔고, 그것도 네 가지 요소를 자주 거의 동등한 가치로 취급하면서도 독자의 역할은 거의 무시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독자의 수용이라는 것이 매우 주관적이라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국민 대중을 위한 대량 교육을 효율적으로 실시하기 위해서 다른 교과의 주입식 교육 방법과 마찬가지로 시라는 예술품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도 스스로 감상하는 초보적 과정조차 생략한 채, 시 연구자들이 분석해 놓은 매우 난삽한 연구 결과를 그대로 주입시켜 왔었고, 또 그러한 시 교육 관행이 당연한 것으로 반성없이 고착되어 왔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감상의 과정이 생략되다가 보니 자연히 시의 비예술적 요소인 시인이나 다른 자료적 요소가 지나치게 강조되거나 학교(특히 중등학교)교육의 시 감상 수준에서는 거의 불필요한 높은 수준의 난삽한 분석 결과가 잡다하게 주입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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