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한시속의 삶과 의식<<책속의 정두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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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두경(鄭斗卿)의 시와 복고취향(復古趣向)

1) 삶의 특징

2) 시에 나타난 복고취향

가. 당(唐) 이전(以前) 지향

나. 변새시(邊塞詩)의 재현

다. 웅건한 기상과 자주의식

라. 생활 주변의 정감

본문내용

괴롭혔던 벼슬길에 대한 대비적 심정에서 나온 것이다. 경련에는 봄물에 노는 뱅어와 들판에 나는 참새로 봄날 전원의 생명력을 동적으로 표현했지만 역시 조용하고 한가로운 분위기를 깨뜨리지는 않았다. 미련에서 한나라 문제 때 정위를 지냈던 적공(翟公)이 자신이 벼슬할 때는 손님이 몰리다가 벼슬이 떨어지니 손님이 끊어진 것을 한탄하여 다시 정위가 됐을 때, 문에다가 어려움을 겪어본 후에 사귐을 알 수 있다는 글을 써 붙였다는 고사 司馬遷, 史記, 앞의 책, 3113-4쪽 참조.
를 끌어와서 적공은 한가하게 전원생활을 즐기는 흥취를 모르고 벼슬에서 물러났을 때 빈객이 없는 것만을 한스러워했지만, 자신은 조용하게 전원의 흥을 즐기고 있다고 하였다. 이렇게 전원의 한가함 속에서 술 마시는 기분을 표현하기도 했다.
신선과 노니는 노래 · 11수(遊仙詞 十一首)(마지막 수)
谷神은 본디 죽지 않나니 이를 일러 玄牝의 문이라 이른다.
하찮은 선비들 크게 웃지만 누가 천지의 뿌리를 알랴.
집을 버리고 五岳에서 노니 거의 통달한 자들과 어울리네.
길에서 눈 깊은 선비를 만나 머리를 숙이고 한 말씀 부탁하니
나를 돌아보며 빙긋이 웃고 팔을 들어 구름 속으로 들어가네.
어린애에게 가르칠 것은 가서 神仙境에 들도록 닦을 일이네.
谷神本不死 是謂玄牝門 下士大笑之 誰知天地根 棄家遊五岳 庶與違者論
路逢深目士 稽首乞一言 顧我粲然笑 擧臂入白雲 孺子可以敎 去矣修崑崙
(東溟集 卷9, 475쪽)
이 시는 편차로 보아 30대 이전의 작품인 듯하다. 그는 도교에 관심이 있어서 ‘독도서(讀道書)’, ‘독장자(讀蔣子)’ 東溟集 卷2, 414쪽, 같은 책, 卷9, 478쪽.
등의 작품을 썼고, 신선을 지향하는 ‘영량호(永郞湖)’, ‘일출입행(日出入行)’ 東溟集 卷2, 407쪽, 같은 책, 卷10, 487쪽.
등의 작품도 썼다. 그리고 그는 도교의 가치를 이렇게 말했다.
도교와 불교는 모두 異端이다. 그러나 그 둘을 논해 보면, 도교는 천하를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한나라의 文帝는 이를 터득해서 태평성대를 이루었고, 張良은 이를 터득해서 큰 공을 보존했으며, 曺參과 汲은 이를 터득해서 다들 名臣이 되었다. 비록 深淺은 있지만 터득하기는 한가지라. 그런즉 도교가 불교보다 훨씬 낫다. 우리나라의 山水는 세상에서 빼어나서 단군 기자 아래로 (도교의 수련 방법인) 服氣 鍊形 吸風 飮露를 행한 무리들이 아주 많았다. 그러나 숭상하지 않아서 전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物外의 선비가 이를 매우 한스럽게 여겼다.
라고 하여, 도교가 자연과 현실의 원초적 진리를 깨우친다는 점에서 치세에 도움이 되는 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숭상을 받지 못해서 신선이 된 사람이나 그 수련방법이 전해지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만큼 그는 도교나 신선에 관심을 지니고 있었고, 또 이러한 지향은 그의 현실 생활에서의 어려움을 얼마간 위안해 주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첫 줄은 <노자 도덕경> 제6장의 말로, 낮고 고요하고 빈 것은 신비로운 모성의 문이라는 뜻이다. 둘째 줄에서 현실에 급급한 하찮은 선비들이야 이러한 자연의 도를 허튼 소리라고 웃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천지 운행의 진리이고 자신은 이 가르침에 공감한다는 것이다. 셋째·넷째·다섯째 줄은 상상의 세계로 자신이 신선 수련에 나아가 오악에서 신선과 노닐 때 한 신선에게 말씀을 부탁하니 무언의 경지를 실현해 보이더라는 것이다. 신선의 도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이상세계임을 말한 것이다. 마지막 줄에서 천진한 아이들에게 도교의 신선술을 가르쳐서 이러한 이상세계에 살게 해야 한다고 하여,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바는 현실을 초극하여 신선이 되는 것이라 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일상생활 속에서 친구와 이별하는 서운함, 전원에서 한가하게 술 마시는 기분, 그리고 도교의 신선경을 그리워하는 마음 등을 표현해서 생활 주변의 정감을 시로 형상화하였다.
◇◆
정두경은 조선 중기 선조 때에 나서 현종 때까지 살았던 문인 관료였다. 이 시기는 두 차례의 큰 전란으로 문풍은 점차 시들어지고 이념에 대한 경직성이 강화되던 때였다. 한편으로는 이에 반발하는 다양한 모색이 이루어지던 시절이기도 했다. 정두경은 사장파의 전통을 이으면서 전대의 당시 지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당 이전의 복고적인 취향으로 한시의 새로운 활로를 찾았던 인물이었다.
그의 시에서 드러나는 복고취향은 성당 이전의 시를 지향한 것과 변새시를 재현한 것, 웅건한 기상과 자주의식을 드러낸 것, 그리고 생활 주변의 정감을 표현한 것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이것을 정리해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그는 사마천의 고문을 중시하고 한위(漢魏)시대의 고체시와 성당의 시를 존중하여, <시경>에서부터 성당이전까지의 시를 모범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악부시 중의 가행(歌行)을 잘 지었고, 고풍스런 가락에 고사를 관련시킨 시를 즐겨 지었다.
둘째, 그는 상무적(尙武的) 기상과 변방의 형편을 시화하여 성당 시대의 변새시를 이 땅에서 재현해 내었다. 전란을 겪고 변방을 둘러보면서 무비의 중요성을 깨우치게 되었고, 그러한 정서와 생각을 상무적 기상과 어울려서 변새시로 표현해낸 것이다.
셋째, 그의 시에는 웅건한 기상과 굳건한 자주의식이 드러나는데, 그가 변새시에서 보여준 상무적 기상은 현실의 불의를 응징하려는 의지와 관련되고, 또한 국가의 자주성을 확립하려는 정신과 연결되어 자주의식을 바탕으로 한 씩씩한 기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넷째, 생활 주변에서 느낀 정감을 시로 표현하였는데, 일상생활 속에서 친구와 이별하는 서운함, 전원에서 한가하게 술 마시는 기분, 그리고 도교의 신선경을 그리워하는 마음 등을 표현한 시들이 그것이다. 이밖에도 증별시나 만시 등의 의례적인 작품이 상당히 많아서 전체 작품의 반에 가까운데, 이는 그의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말해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끝으로 그의 시가 지니는 한국 한시 문학에서의 의의를 생각해 보면, 당시풍을 지향했던 전대의 모색을 좀더 심화시켜서 한위(漢魏)에서 성당까지의 복고적 취향으로 돌아가려 한 점이다. 이러한 경향은 고문이 존중되고 고풍이 숭상되던 당대에는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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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2.18
  • 저작시기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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