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천도교청우당(천도교청년당)의 이념
Ⅲ. 천도교청우당(천도교청년당)의 대응
Ⅳ. 천도교청우당(천도교청년당)의 전면일체론
Ⅴ. 천도교청우당(천도교청년당)의 신문화운동
Ⅵ. 천도교청우당(천도교청년당)의 반탁운동
Ⅶ. 천도교청우당(천도교청년당)의 시일학교설립
Ⅷ. 결론 및 제언
참고문헌
Ⅱ. 천도교청우당(천도교청년당)의 이념
Ⅲ. 천도교청우당(천도교청년당)의 대응
Ⅳ. 천도교청우당(천도교청년당)의 전면일체론
Ⅴ. 천도교청우당(천도교청년당)의 신문화운동
Ⅵ. 천도교청우당(천도교청년당)의 반탁운동
Ⅶ. 천도교청우당(천도교청년당)의 시일학교설립
Ⅷ. 결론 및 제언
참고문헌
본문내용
결, 폴란드의 독립 등 내외 정세의 급격한 변화는 청년회 신문화운동 자체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와 같은 복잡한 상황적 정세는 청년회 자체 성장발전과 시세 환경의 추이변천으로 인하여 그동안 청년운동의 틀을 벗어버리고 비약적인 발전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청년회는 1923년 9월 2일 이돈화김기전박사직조기간박래홍 등의 발의로 천도교청년회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天道敎靑年黨(이하 청년당)을 창립하였다.
청년당은 후천개벽 즉 지상천국 건설운동을 직접 목표로 하는 목적을 현실적으로 이루기 위하여 당원훈련, 포덕운동, 교리의 천명 및 內外宣傳, 蒼生組織, 文化運動, 體育運動, 情勢硏究와 通俗運動 등 7대 운동으로 자체의 역량을 확대하며 黨運動을 발전시켜 나아갔다. 그리고 이러한 黨運動을 전적운동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연령별로 유소년청년, 성별로 여성청년, 직업별로 상민노동자농민학생 등 7개 부문을 두고 중앙과 지방부를에 각 책임위원을 두어 일반 당원으로 하여금 각 부문운동 중 1개 부문 이상 참여하도록 하였다. 청년당은 7대 운동 중 특히 문화운동에 중점을 두고 집중 전개하였는데 이 문화운동의 대강과 개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文化運動이니 人間社會의 一切 勝敗得失은 各其 自의 意識程度와 文化程度의 高下를 따라서 생겨지는 成果이다. 思想의 新舊, 時代의 古今, 方法의 優劣 等 關係도 적지는 않으나 人間社會의 根本的 向上은 蒼生級의 意識的 覺醒과 文化的 向上에 잇는 것이다.
人間力의 總和, 社會力의 總和를 文化라 하는 것이다. 어떤 民族社會를 勿論하고 그 民族社會의 總努力의 結晶은 그 民族社會의 文化로 表現되여진다. 그러므로 文化란 것은 民族社會의 文化程度를 測量하는 水準器이며 尺度라고 할 수 잇는 것이다. 어떤 社會學者는 人間은 文化를 創造하는 動物이러고 하엿다.
時代의 新舊를 따라 文化의 新舊가 判別된다 함이 妥當할 것이다. 後天發見者 大神師께서 ‘吾道는 今不古不의 事法이다. 儒道佛道 累千年에 運이 盡햇던가. 一天下의 飜覆運數 다시 開闢 아닐런가. 世運이 大革할진져\' 云云을 말씀한 것은 先天의 모든 文化는 人間社會의 生活線上에서 임이 그 任務를 다 하게 되며 存續할만한 效能이 乏盡되엿다는 뜻을 여러 가지 形式으로 말씀한 것이다.
思想은 文化의 中心이다. 思想없는 곧에 歷史가 없다는 哲人의 말도 잇거니와 思想없는 곧에는 文化가 돋아날 터가 없는 것이다. 天道敎의 人乃天運動은 後天開闢運動인 同時에 人文開闢運動-卽 人類의 新文化를 創造하는 運動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地上天國建 設運動이란 말은 後天新文化 建設運動이라 말하여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天道敎의 人乃天主義로써 몬저 人間의 思想을 開闢하랴는(精神民族社會의 三大開闢의 하나인 精神開闢은 後天 新文化 創造의 前提가 됨에서 큰 意義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 點에서 天道敎 運動 中에는 이 新文化運動이라는 것이 가장 重大한 任務를 갖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므로 우리 敎會의 여러 가지로 新文化運動에 努力하여 오는 中인 바
즉 청년당의 신문화운동은 일제가 전개하는 문화정치의 산물이 아니라 천도교의 이념에 따른 후천개벽운동의 일환으로 인류의 신문화를 창조하는 운동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당시 청년당이 전개한 신문화운동을 총괄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開闢社 創立. 이는 大正 九年 六月에 天道敎靑年會 編輯部 事業으로 言論機關 「開闢社」를 創立하야 一般社會民衆을 相對로 하는 政治時事雜誌로 月刊 『開闢』을 發刊하게 된 바 當時 朝鮮言論界에 唯一한 權威를 占하게 되엿으며 追後로 다시 朝鮮 어린이를 相對로 하는 雜誌 月刊 『어린이』와 朝鮮 女性을 相對로 하는 雜誌 月刊 『新女性』과 學生을 爲한 雜誌 月刊 『學生』 等을 發行하엿다. 月刊 『開闢』은 그 以後 七年間 繼續하야 七十三號를 發行하고 當局의 忌諱로 發行禁止되엿다. 挽近 五六年 前부터 開闢社는 財政을 獨立하게 됨으로부터 그 經營에 잇어는 本는 別個의 機關으로 되엿다.
新文化 宣言. 大正 八年 九月 二日 天道敎靑年敎理講硏部가 成立되자 當時 朝鮮의 最初 巡講隊를 組織하야 全鮮的으로 巡講하기 始作하엿다. 그 以後 靑年會, 當時代를 通하야 오늘날까지 十五六年間 繼承하야 年 一二次의 巡講으로 講演, 講道, 講座, 講習 等의 形式으로써 天道敎의 人乃天眞理와 그에 相應하는 後天新文化를 宣傳하엿다.
朝鮮情形硏究會 組織. 昭和 二年 十一月 二十六日 本黨 擴大中央執行委員會에서 朝鮮文化와 其他 內外 一切 情形을 알기 爲하야 黨部잇는 곧에는 必히 朝鮮情形硏究會를 두기로 決定되야 그대로 實施하게 되니 初期이니 만큼 勿論 成績은 特箸하는 것이 없으나 黨員은 一般的으로 그 方面에 關心하게 된 것만은 收益이라 하겟다.
新人間自學 創設. 昭和 元年 五月 二十一日 本黨 委員會(現에 中央執行委員會인 것)에서 一般黨員의 知識向上과 意識的 敎養을 爲하야 年 一次 以上의 自修自學工夫를 機關으로서 全般 個人黨員에게 勵行시키는 制度로 「新人間自學」制度를 創設하야 그 後 繼續 實行하여 오다.
侍日學校 創設. 昭和 八年 八月 十八日 本黨 委員會 全般道人에게 人乃天眞理의 闡明, 敎史敎政의 硏究, 一般社會常識 等의 普及을 爲하야 敎會機關이 잇는 곧은 均一的으로 侍日學校를 세워 侍日마다 一般道人 黨員으로 하여금 敎理를 中心한 工夫를 實行케 하다.
黨機關誌 『黨聲』 發行. 昭和 六年 四月 一日부터 우리 黨의 活動을 內外에 알리며 黨員의 意識的 敎養及 知識向上을 爲하야 月 一回 發行으로 機關誌 『黨聲』을 發刊하게 되다.
刊行物 出刊. 昭和 三年 七月에 黨沿革의 槪要를 內外에 알리기 爲하야 『天道敎靑年黨一覽』을 發行하고 昭和 五年 九月에 本黨 少年部 事業으로 朝鮮少年運動과 少年指導者를 爲하야 『少年指導者要覽』을 發行하며 昭和 五年 十月에 一般黨員의 黨的 意識을 確立하며 黨運動을 一層 活潑케 하기 爲하야 『黨憲釋義』를 發行하엿으며 昭和 七年 六月에 『朝鮮及國際條約集要』를 發行하야 舊韓國及各國과의 關係條約을 內外 一般에게 알게 하엿으며 昭和 七年 十二月 臨時全黨大會의 決議로 建黨 十週年紀念小史를 發行하게 되엇다.
自修大學講義 發行. 昭和 八年 四月 三日 第七次 全黨大會에서 知識階級黨員의 專門家化와 社會一般的으로 中等學科를
청년당은 후천개벽 즉 지상천국 건설운동을 직접 목표로 하는 목적을 현실적으로 이루기 위하여 당원훈련, 포덕운동, 교리의 천명 및 內外宣傳, 蒼生組織, 文化運動, 體育運動, 情勢硏究와 通俗運動 등 7대 운동으로 자체의 역량을 확대하며 黨運動을 발전시켜 나아갔다. 그리고 이러한 黨運動을 전적운동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연령별로 유소년청년, 성별로 여성청년, 직업별로 상민노동자농민학생 등 7개 부문을 두고 중앙과 지방부를에 각 책임위원을 두어 일반 당원으로 하여금 각 부문운동 중 1개 부문 이상 참여하도록 하였다. 청년당은 7대 운동 중 특히 문화운동에 중점을 두고 집중 전개하였는데 이 문화운동의 대강과 개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文化運動이니 人間社會의 一切 勝敗得失은 各其 自의 意識程度와 文化程度의 高下를 따라서 생겨지는 成果이다. 思想의 新舊, 時代의 古今, 方法의 優劣 等 關係도 적지는 않으나 人間社會의 根本的 向上은 蒼生級의 意識的 覺醒과 文化的 向上에 잇는 것이다.
人間力의 總和, 社會力의 總和를 文化라 하는 것이다. 어떤 民族社會를 勿論하고 그 民族社會의 總努力의 結晶은 그 民族社會의 文化로 表現되여진다. 그러므로 文化란 것은 民族社會의 文化程度를 測量하는 水準器이며 尺度라고 할 수 잇는 것이다. 어떤 社會學者는 人間은 文化를 創造하는 動物이러고 하엿다.
時代의 新舊를 따라 文化의 新舊가 判別된다 함이 妥當할 것이다. 後天發見者 大神師께서 ‘吾道는 今不古不의 事法이다. 儒道佛道 累千年에 運이 盡햇던가. 一天下의 飜覆運數 다시 開闢 아닐런가. 世運이 大革할진져\' 云云을 말씀한 것은 先天의 모든 文化는 人間社會의 生活線上에서 임이 그 任務를 다 하게 되며 存續할만한 效能이 乏盡되엿다는 뜻을 여러 가지 形式으로 말씀한 것이다.
思想은 文化의 中心이다. 思想없는 곧에 歷史가 없다는 哲人의 말도 잇거니와 思想없는 곧에는 文化가 돋아날 터가 없는 것이다. 天道敎의 人乃天運動은 後天開闢運動인 同時에 人文開闢運動-卽 人類의 新文化를 創造하는 運動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地上天國建 設運動이란 말은 後天新文化 建設運動이라 말하여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天道敎의 人乃天主義로써 몬저 人間의 思想을 開闢하랴는(精神民族社會의 三大開闢의 하나인 精神開闢은 後天 新文化 創造의 前提가 됨에서 큰 意義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 點에서 天道敎 運動 中에는 이 新文化運動이라는 것이 가장 重大한 任務를 갖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므로 우리 敎會의 여러 가지로 新文化運動에 努力하여 오는 中인 바
즉 청년당의 신문화운동은 일제가 전개하는 문화정치의 산물이 아니라 천도교의 이념에 따른 후천개벽운동의 일환으로 인류의 신문화를 창조하는 운동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당시 청년당이 전개한 신문화운동을 총괄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開闢社 創立. 이는 大正 九年 六月에 天道敎靑年會 編輯部 事業으로 言論機關 「開闢社」를 創立하야 一般社會民衆을 相對로 하는 政治時事雜誌로 月刊 『開闢』을 發刊하게 된 바 當時 朝鮮言論界에 唯一한 權威를 占하게 되엿으며 追後로 다시 朝鮮 어린이를 相對로 하는 雜誌 月刊 『어린이』와 朝鮮 女性을 相對로 하는 雜誌 月刊 『新女性』과 學生을 爲한 雜誌 月刊 『學生』 等을 發行하엿다. 月刊 『開闢』은 그 以後 七年間 繼續하야 七十三號를 發行하고 當局의 忌諱로 發行禁止되엿다. 挽近 五六年 前부터 開闢社는 財政을 獨立하게 됨으로부터 그 經營에 잇어는 本는 別個의 機關으로 되엿다.
新文化 宣言. 大正 八年 九月 二日 天道敎靑年敎理講硏部가 成立되자 當時 朝鮮의 最初 巡講隊를 組織하야 全鮮的으로 巡講하기 始作하엿다. 그 以後 靑年會, 當時代를 通하야 오늘날까지 十五六年間 繼承하야 年 一二次의 巡講으로 講演, 講道, 講座, 講習 等의 形式으로써 天道敎의 人乃天眞理와 그에 相應하는 後天新文化를 宣傳하엿다.
朝鮮情形硏究會 組織. 昭和 二年 十一月 二十六日 本黨 擴大中央執行委員會에서 朝鮮文化와 其他 內外 一切 情形을 알기 爲하야 黨部잇는 곧에는 必히 朝鮮情形硏究會를 두기로 決定되야 그대로 實施하게 되니 初期이니 만큼 勿論 成績은 特箸하는 것이 없으나 黨員은 一般的으로 그 方面에 關心하게 된 것만은 收益이라 하겟다.
新人間自學 創設. 昭和 元年 五月 二十一日 本黨 委員會(現에 中央執行委員會인 것)에서 一般黨員의 知識向上과 意識的 敎養을 爲하야 年 一次 以上의 自修自學工夫를 機關으로서 全般 個人黨員에게 勵行시키는 制度로 「新人間自學」制度를 創設하야 그 後 繼續 實行하여 오다.
侍日學校 創設. 昭和 八年 八月 十八日 本黨 委員會 全般道人에게 人乃天眞理의 闡明, 敎史敎政의 硏究, 一般社會常識 等의 普及을 爲하야 敎會機關이 잇는 곧은 均一的으로 侍日學校를 세워 侍日마다 一般道人 黨員으로 하여금 敎理를 中心한 工夫를 實行케 하다.
黨機關誌 『黨聲』 發行. 昭和 六年 四月 一日부터 우리 黨의 活動을 內外에 알리며 黨員의 意識的 敎養及 知識向上을 爲하야 月 一回 發行으로 機關誌 『黨聲』을 發刊하게 되다.
刊行物 出刊. 昭和 三年 七月에 黨沿革의 槪要를 內外에 알리기 爲하야 『天道敎靑年黨一覽』을 發行하고 昭和 五年 九月에 本黨 少年部 事業으로 朝鮮少年運動과 少年指導者를 爲하야 『少年指導者要覽』을 發行하며 昭和 五年 十月에 一般黨員의 黨的 意識을 確立하며 黨運動을 一層 活潑케 하기 爲하야 『黨憲釋義』를 發行하엿으며 昭和 七年 六月에 『朝鮮及國際條約集要』를 發行하야 舊韓國及各國과의 關係條約을 內外 一般에게 알게 하엿으며 昭和 七年 十二月 臨時全黨大會의 決議로 建黨 十週年紀念小史를 發行하게 되엇다.
自修大學講義 發行. 昭和 八年 四月 三日 第七次 全黨大會에서 知識階級黨員의 專門家化와 社會一般的으로 中等學科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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