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선교][선교자유][가톨릭][천주교]개신교의 선교, 개신교의 자립, 개신교의 神(신)개념, 개신교의 문명종교론, 개신교의 금욕주의, 개신교의 비판과 선교자유, 개신교와 가톨릭(천주교)의 비교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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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선교][선교자유][가톨릭][천주교]개신교의 선교, 개신교의 자립, 개신교의 神(신)개념, 개신교의 문명종교론, 개신교의 금욕주의, 개신교의 비판과 선교자유, 개신교와 가톨릭(천주교)의 비교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신교의 선교

Ⅱ. 개신교의 자립
1. 아우구스부르그 화의
2. 위그노 전쟁과 낭뜨 칙령
3. 네덜란드의 칼빈주의
4. 청교도혁명
5. 30년 전쟁
6. 미국에서의 개신교

Ⅲ. 개신교의 神(신)개념

Ⅳ. 개신교의 문명종교론

Ⅴ. 개신교의 금욕주의

Ⅵ. 개신교의 비판과 선교자유

Ⅶ. 개신교와 가톨릭(천주교)의 비교

참고문헌

본문내용

로 이 지식은 소멸된다고 한다.
인간과 우주 속에 계시 된 하나님을 성서의 구절 속에서 인용하면서 자연계시로 파악할 수 있는 하나님에 관하여 말한다. 이로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통하여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칼뱅은 이러한 우주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의 무지 몽매로 비롯된 것이라고 언급하고 오직 성경을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에 관하여 인식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인의 종교성과 윤리적 성취 가능성은 구원에 전혀 공헌 할 수 없는 것이며 오직 성서를 통한 하나님 인식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공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루터는 인간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신의 이성에 의하여 일반계시로부터 참된 하나님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 스콜라주의자들에게 동의하지는 않았으나, 동일한 어떤 것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으나, 동일한 일반적 관념들을 표현하였다.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에서 그의 본성에 관한 어떤 것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조명하시는 하나님의 영향 하에서 오직 특별계시로부터만 하나님에 관한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개혁파 신학은 하나님께서 알려지실 수는 있지만, 인간이 어떠한 방법으로 철저하고 완전한 하나님 지식을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유한은 무한을 파악할 수 없다. 인간은 하나님을 적절한 의미의 말로 정의할 수 없으며, 오직 부분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에 관한 참된 지식은 오직 신적인 자기 계시를 통하여,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 의해서만 획득될 수 있다. 하나님에 관한 인식의 가능성은 여러 근거에서 부정되어 왔다. 인간은 오직 유비에 이해서만 안다. 유사한 것은 유사한 것으로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본성과 인간의 본성 사이에는 중요한 유비가 있다. 인간은 실제로 자기가 온전히 파악할 수 있는 것만을 알며, 이간은 무한하신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으며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지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 수 없다. 하나님에 관한 모든 술어들은 부정적이기 때문에 아무런 실제적인 지식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가 지식의 대상들을 아는 것은 객관적으로가 아니라, 그 대상들이 우리의 감각과 능력에 관계될 때에만 알 수 있는 것으로 언급한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자연적 인식을 그는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 루터도 자연적 인식을 인정하였다고 알트하우스(P. Althaus)는 말한다(루터의 신학, 파울 알트하우스 지음, 이 형기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31-32P). 결론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자연적 인식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성서는 어느 구절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자연적 인식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충분하다거나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적극적 의미에서의 준비가 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성서는 구원에 있어서 자연적 하나님 인식으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독교 신앙은 참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길은 자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서에 증언되어 있는 그리스도에게 있다(고후4:4, 골1:15). 또한 다른 종교들과 문화들이 인식하고 있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이 전혀 다른 분이라고 말할 수 없다. 신의 절대성, 영원성, 완전성, 이와 같은 신적 본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에도 해당한다. 이것은 기독교가 확보해야할 고유한 특성이다.
Ⅳ. 개신교의 문명종교론
개신교는 유일신 신앙에 근거한 ‘계시종교론’의 입장에 서 있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문명의 종교’임을 간접적으로 내세웠다. 이때 ‘문명종교’란 근대문명을 산출한 종교를 의미한다. 선교초기의 개신교는 ‘학교’와 ‘병원’으로 상징되는 근대문명을 간접선교를 통하여 소개하고 보급하는 과정에서 개신교 자체가 ‘문명종교’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겼던 것이다.
개신교를 ‘문명의 기호’로 보는 관점은 이미 개항기 지식인들에 의해 널리 수용되고 있었다. “크리스도씨의 교를 착실히 하는 나라들은 지금 세계에서 제일 강하고 제일 부요하고 제일 문명하게 제일 개화되어”(독립신문 1897.1.26)라는 주장이나, “문명 부유한 구라파와 미국은 도덕 종교에도 우리의 모범”이라는 주장에서 그러한 관점이 잘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개신교 진영 자체가 “지금 셔양 각국에 뎨일 문명고 뎨일 부강 나라를 보라 그 나라들이 무교를 슝샹 뇨”(대한크리스도인회보 1898.6.1)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개신교가 ‘문명종교’라는 답변을 유도하고 있다.
우리 예수교로 나라를 다리면 사을 죽이고 를 앗지 아니여도 나라이 부고 군가 강야 문명화에 진보가 될거시니 뎐국에 우리 교회가 흥왕면 엇지 복이 아니리오..”(대한크리스도인회보 1898.6.1)
사실 개신교는 선교초기부터 천주교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문명의 종교임을 간접적으로 강조하여 왔다. 개신교 선교사는 천주교 선교사처럼 ‘은자’나 ‘수도사’나 ‘독신자’가 아니라 ‘문명의 옹호자’라고 하는 주장이나,(Griffis 1912(1985):145) 천주교가 들어온 지 수세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아시아 지역이 변화된 것이 없는데 비하여 개신교는 전반적으로 ‘문명을 재창조’(Griffis 1912(1985):146)하였다는 주장 등에서 그러한 관점이 잘 나타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일본, 한국, 중국의 근대화와 문명화는 모두 개신교 선교사들에 의해 가능해졌다는 논리도 나온다.
나아가 개신교는 “보라...오날 朝鮮에셔 相當 敎育을 밧고 世界大勢를 斟酌야 民衆의 前途를 指導자 十의 七八은 다 基督敎人이 아닌가”(기독신보 1925.7.15)라고 주장하는 한편, “예수를 救主로 仰拜 나라들은 다 文明고 그를 不信任 우리 民族이 오히려 濃霧중에 잇다”(기독신보 1925.7.15)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現世의 文明을 代表만 모든 나라들의 進步發達을 보면 다 그리스도敎의 敎旨에 應야 合理的으로 實現 것”(기독신보, 姜明錫 1923.11.21)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개신교는 새로운 시대의 진보적인 종교로 적합하다는 것이다.
이십셰긔의 과학

키워드

개신교,   선교,   하나님,   천주교,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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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4.18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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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667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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