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 3p
연구의 목적
연구의 범위
본론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 4p
1910년대
1920년대
1930년대
1940년대
1950년대
1960~80년대
결론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
참고문헌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
연구의 목적
연구의 범위
본론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 4p
1910년대
1920년대
1930년대
1940년대
1950년대
1960~80년대
결론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
참고문헌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
본문내용
도록 하자. 지은경,「한국 현대시의 사회적 변화상 수용 연구 :1920년대 시를 중심으로」,중앙대 경영대학원, 200408
비오는 밤
따러안즌 하날이
꿈꾸듯 어두어라
나무입 마다에서
저즌 속살그림이
끄니지 안흘 때일너라
마음의 막다른
날근 뛰집에선
뉜지 모르나 까닭도 업서라
(중략)
벙어리 입설로
떠도는 침묵은
추억의 녹긴 창을
죽일 숨쉬며 엿보아라
(중략)
비오는 밤
까러안즌 영혼이
죽은 듯 고요도 하여라
(후략)
< 單調 - 이상화 >
이상화가 1922년 데뷔 당시에 발표되었던 작품들에서 낭만주의적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單調는 세상살이에 대한 단조로움과 슬픔이 표현되어 있다.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고 있는 슬품과 불행의 의식의 원인은 이 시 자체에서 찾을 수 없다. 다만 이상화의 삶에 대한 적극적 에너지가 현실세계에서 활성화되지 못하고 다만 과거의 가치에 대한 동경에 의하여 현재의 명맥이 유지되는 단조로움으로 전환되었을 것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송명희, 「이상화의 낭만주의적 시상에 관한 고찰」 한국비교문학회 1978 p34~36
1920년대 초의 이러한 감상적 낭만주의 풍토에 이어 1925년을 전후하여 신경향파의 시가 등장한다. 3 1 운동 이후 절망과 비애에 젖었던 우리 문단이 점차 사회 현실을 직시하려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고 하겠다. 프로 문학이라고도 하는 이러한 경향은 박영희(朴英熙), 김기진(金基鎭) 등이 주도하여 이론을 제시하고, 시작 활동을 시작한다. 1925년 카프(KAPF,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가 결성되자 계급주의 문학이 대두된 것이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상당히 소리를 높였으나 실제 작품에 있어서는 이를 문학적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한계를 드러냈다.
프로 문학은 또한 그에 반대하는 세력을 출현하게 하였다. 국민 문학파와 해외 문학파가 이에 속한다. 1926년경 국민 문학파가 결성되면서 프로 문학을 공격하고 문학의 순수성과 민족의 역사성을 강조하고 고전 문학의 부활을 내세우는 문학 활동이 전개된다. 시에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시조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을 주도한 사람은 이병기(李秉岐), 이은상(李殷相)이다. 이들은 현대 시조를 통하여 전통적 정서를 계승하려고 노력하였다. 1926년에 결성된 해외 문학파도 프로 문학에 대항하여 해외 문학을 번역 소개하였으며, 문학의 순수성을 옹호하는 데에 기여했다.
이 시기에 중앙 문단이나 문학적 경향과는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고 활동한 중요한 시인이 있다. 한용운(韓龍雲)과 김소월(金素月)이 그들이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산유화(山有花)-김소월>
정형률의 민요시를 민요가락에 실어서 노래한 작품을 선보인 김소월은 <산유화>에서는 독특한 리듬감으로 노래하고 있는 자유시다. 특히 김소월의 시는, 낭만주의의 일반적 감수성이 여성적 정서라고 할 때, 시의 전반적인 흐름이 여성적 토운으로 일관되어 있는 기본적으로 낭만주의 속성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1920년대의 특징중에 또 하나는 동인의 형성이다. 동인이라는 말은 <창조> 발간 당시 일본에 유학하고 있던 김동인, 주요한, 전영택 등에 의해서 수입된 것이다. 일본은 이때 한창 동인지의 전성시대였고 동인지 발간은 당시의 유행 중 하나였다. 김춘식, 「1920년대 동인지 문단의 미적 근대성」, 동국대 대학원, 2003.02
1920년대 발간된 동인지는 <창조> <폐허> <금성> <영대> <개벽> <백조> 등이다.
1930년대 모더니즘적 시의 대두
1930년대 모더니즘 경향을 지닌 한 무리의 시인들이 등장하였다 . 주지파(主知派)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낭만적이며, 주정적(主情的)인 20년대의 시풍을 거부하고 지적인 태도로 시를 쓰려고 했으며, 음악성을 중시하는 시문학파의 시작 태도를 거부하고 도시 감각과 현대 문명을 시각적 심상을 통하여 형상화하려고 노력하였다 일본에서는 이미지즘과 쉬르리얼리즘 미래파 입체파 등을 비롯한 서구 각 유파의 모더니즘 사조들이 문단의 관심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었으며 이러한 분위기는 그대로 한국 문단에까지 전달되었다. 김기림, 정지용, 김광균, 신석정 등 일군의 신진 시인들은 종래의 것과는 다른 새롭고 신선한 감각의 시를 발표하기 시작함으로써 새로이 떠오르기 시작한 모더니즘 문학 운동의 자양 구실을 하였다. 또한 1933년에 카프의 지나친 이데올로기 편향성에 반발하여 순수 문학 위주의 창작 활동을 하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친목 단체인 ‘구인회’ 구인회는 1933년에 “순연한 연구적 입장에서 상호의 작품을 비판하며 다독, 다작을 목적으로” 이태준, 조용만, 김기림, 정지용, 이무영, 김유영, 이효석, 이종명, 유치진 등 9명으로 결성된 문인 단체다. 구인회는 기존 회원의 탈퇴와 신입회원의 가입 등 몇 번의 교체 과정을 거쳐 이태준, 김기림, 박태원, 이상이 중심회원이 되면서 새로운 문학운동의 하나로 모더니즘 문학운동을 전개하였다. (상허문학회, 「근대문학과 구인회」, 깊은샘, 1996)
가 결성되어 서구의 신사조를 받아들일 수 있는 바탕이 되었으며, 감상주의적 작품 경향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기수, 「김기림 연구-광복 전의 시론과 시를 중심으로」, 명지대 대학원 1999, 11p
1930년대의 우리 문학은 서양의 3ㆍ4 세기에 필적할 만한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양상은, 선진 문화를 짧은 기간 내에 흡수하고자 하는 후진 사회의 욕구로 나타난 당연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후진 사회의 끈질긴 노력으로 근대시 양식의 정립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었고 현대시를 비로소 객관적인 비평 정신으로 분석하기 시작하는 모더니즘 시운동이 등장하였다. 그럼 김기림 시인의 시를 통하여 모더니즘 시를 알아보도록 하자.
넥타이를 한 흰 食人種은
니그로의 料理가 七面鳥보다도 좋답니다
살갗을 희게 하는 검은 고기의 偉力
의사 콜베-르씨의 處方입니다
헬매트를 쓴 避暑客들은
亂雜한 戰爭競技에 熱中했습니다
비오는 밤
따러안즌 하날이
꿈꾸듯 어두어라
나무입 마다에서
저즌 속살그림이
끄니지 안흘 때일너라
마음의 막다른
날근 뛰집에선
뉜지 모르나 까닭도 업서라
(중략)
벙어리 입설로
떠도는 침묵은
추억의 녹긴 창을
죽일 숨쉬며 엿보아라
(중략)
비오는 밤
까러안즌 영혼이
죽은 듯 고요도 하여라
(후략)
< 單調 - 이상화 >
이상화가 1922년 데뷔 당시에 발표되었던 작품들에서 낭만주의적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單調는 세상살이에 대한 단조로움과 슬픔이 표현되어 있다.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고 있는 슬품과 불행의 의식의 원인은 이 시 자체에서 찾을 수 없다. 다만 이상화의 삶에 대한 적극적 에너지가 현실세계에서 활성화되지 못하고 다만 과거의 가치에 대한 동경에 의하여 현재의 명맥이 유지되는 단조로움으로 전환되었을 것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송명희, 「이상화의 낭만주의적 시상에 관한 고찰」 한국비교문학회 1978 p34~36
1920년대 초의 이러한 감상적 낭만주의 풍토에 이어 1925년을 전후하여 신경향파의 시가 등장한다. 3 1 운동 이후 절망과 비애에 젖었던 우리 문단이 점차 사회 현실을 직시하려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고 하겠다. 프로 문학이라고도 하는 이러한 경향은 박영희(朴英熙), 김기진(金基鎭) 등이 주도하여 이론을 제시하고, 시작 활동을 시작한다. 1925년 카프(KAPF,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가 결성되자 계급주의 문학이 대두된 것이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상당히 소리를 높였으나 실제 작품에 있어서는 이를 문학적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한계를 드러냈다.
프로 문학은 또한 그에 반대하는 세력을 출현하게 하였다. 국민 문학파와 해외 문학파가 이에 속한다. 1926년경 국민 문학파가 결성되면서 프로 문학을 공격하고 문학의 순수성과 민족의 역사성을 강조하고 고전 문학의 부활을 내세우는 문학 활동이 전개된다. 시에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시조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을 주도한 사람은 이병기(李秉岐), 이은상(李殷相)이다. 이들은 현대 시조를 통하여 전통적 정서를 계승하려고 노력하였다. 1926년에 결성된 해외 문학파도 프로 문학에 대항하여 해외 문학을 번역 소개하였으며, 문학의 순수성을 옹호하는 데에 기여했다.
이 시기에 중앙 문단이나 문학적 경향과는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고 활동한 중요한 시인이 있다. 한용운(韓龍雲)과 김소월(金素月)이 그들이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산유화(山有花)-김소월>
정형률의 민요시를 민요가락에 실어서 노래한 작품을 선보인 김소월은 <산유화>에서는 독특한 리듬감으로 노래하고 있는 자유시다. 특히 김소월의 시는, 낭만주의의 일반적 감수성이 여성적 정서라고 할 때, 시의 전반적인 흐름이 여성적 토운으로 일관되어 있는 기본적으로 낭만주의 속성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1920년대의 특징중에 또 하나는 동인의 형성이다. 동인이라는 말은 <창조> 발간 당시 일본에 유학하고 있던 김동인, 주요한, 전영택 등에 의해서 수입된 것이다. 일본은 이때 한창 동인지의 전성시대였고 동인지 발간은 당시의 유행 중 하나였다. 김춘식, 「1920년대 동인지 문단의 미적 근대성」, 동국대 대학원, 2003.02
1920년대 발간된 동인지는 <창조> <폐허> <금성> <영대> <개벽> <백조> 등이다.
1930년대 모더니즘적 시의 대두
1930년대 모더니즘 경향을 지닌 한 무리의 시인들이 등장하였다 . 주지파(主知派)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낭만적이며, 주정적(主情的)인 20년대의 시풍을 거부하고 지적인 태도로 시를 쓰려고 했으며, 음악성을 중시하는 시문학파의 시작 태도를 거부하고 도시 감각과 현대 문명을 시각적 심상을 통하여 형상화하려고 노력하였다 일본에서는 이미지즘과 쉬르리얼리즘 미래파 입체파 등을 비롯한 서구 각 유파의 모더니즘 사조들이 문단의 관심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었으며 이러한 분위기는 그대로 한국 문단에까지 전달되었다. 김기림, 정지용, 김광균, 신석정 등 일군의 신진 시인들은 종래의 것과는 다른 새롭고 신선한 감각의 시를 발표하기 시작함으로써 새로이 떠오르기 시작한 모더니즘 문학 운동의 자양 구실을 하였다. 또한 1933년에 카프의 지나친 이데올로기 편향성에 반발하여 순수 문학 위주의 창작 활동을 하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친목 단체인 ‘구인회’ 구인회는 1933년에 “순연한 연구적 입장에서 상호의 작품을 비판하며 다독, 다작을 목적으로” 이태준, 조용만, 김기림, 정지용, 이무영, 김유영, 이효석, 이종명, 유치진 등 9명으로 결성된 문인 단체다. 구인회는 기존 회원의 탈퇴와 신입회원의 가입 등 몇 번의 교체 과정을 거쳐 이태준, 김기림, 박태원, 이상이 중심회원이 되면서 새로운 문학운동의 하나로 모더니즘 문학운동을 전개하였다. (상허문학회, 「근대문학과 구인회」, 깊은샘, 1996)
가 결성되어 서구의 신사조를 받아들일 수 있는 바탕이 되었으며, 감상주의적 작품 경향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기수, 「김기림 연구-광복 전의 시론과 시를 중심으로」, 명지대 대학원 1999, 11p
1930년대의 우리 문학은 서양의 3ㆍ4 세기에 필적할 만한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양상은, 선진 문화를 짧은 기간 내에 흡수하고자 하는 후진 사회의 욕구로 나타난 당연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후진 사회의 끈질긴 노력으로 근대시 양식의 정립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었고 현대시를 비로소 객관적인 비평 정신으로 분석하기 시작하는 모더니즘 시운동이 등장하였다. 그럼 김기림 시인의 시를 통하여 모더니즘 시를 알아보도록 하자.
넥타이를 한 흰 食人種은
니그로의 料理가 七面鳥보다도 좋답니다
살갗을 희게 하는 검은 고기의 偉力
의사 콜베-르씨의 處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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