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테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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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노르웨이 테러보고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설명에 앞서
1.1 테러리즘
1.1.1 폭 력
1.1.2 심리적인 영향과 공포
1.1.3 정치적인 목표를 위한 갛
1.1.4 의도적으로 비 전투원을 포함한 가해
1.1.5 불법 혹은 비 합리
1.1.6 지배 계급과 결탁한 계급을 대상으로 함

2. 2011 노르웨이 테러사건

2.1 정부 청사 폭파
2.1.1 사상자
2.1.2 교통에 미친 영향

2.2 우퇴위아 섬 대학살
2.2.1 범행 전
2.2.2 피해
2.2.3 체포
2.2.4 범인의 성향
2.2.5 범행 성명

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문내용

르그 총리의 현지 행사 참석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우퇴위아 섬 범행 지역
2.2.1 범행 전
이번 테러의 범인으로 지목 되고있는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범행 전에 800장에 달하는
2083 유럽 독립 선언서를 인터넷에 게시를 하였습니다. 방송국에 발표된 바로는 이 선언서에는 테러 준비 계획과 다 문화주의에 대한 비판이 담겨져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2.2 피해
아르네스 베링 브레이비크
초기에 경찰 당국은 정부 청사 폭파 사건과 총기 난사 사건으로 9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실종자 4~5명이 존재해 사망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경찰 당국은 최악의 경우에 사망자가 98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고 조사 결과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사망자가 76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2.2.3 체포
총기 난사 사건 직후, 노르웨이 경찰에 의해 만 32세의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용의자로 체포 되었습니다. 노르웨이 경찰 당국은 용의자가 극우주의자이자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발표하였습니다. 브레이비크는 인터넷 상에서 반 다문화주의 활동을 했던 인물로서, 대한민국과 일본, 중화민국을 다문화주의에 부정적인 국가로 언급하며, 해당 세 국가를 찬양하고 칭찬하는 행보를 보여왔다고 보도되었습니다. 또한 그의 선언서 중에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 교황, 라도반 카라지치 전 스르프스카 공화국 대통령, 헤이르트 빌더르스 네덜란드 자유당 당수,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NATO 사무총장, 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와 함께 이명박 대통령을 손꼽았습니다.
2.2.4 범인의 성향
노르웨이 과도 경찰총장인 스베이눙 스폰헤임은 브레이비크가 인터넷에 올린 글들을 볼 때, 그는 우익적인 정치 시각과 반 이슬람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실제 범행에 동기를 주었는지는 두고 봐야 안다고 발표했습니다. 노르웨이 경찰 당국은 브레이비크를 체포한 후, 그를 극우주의자이자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묘사했다. 브레이비크는 이전에 자신의 홈페이지에 반 이슬람적인 친 이스라엘적인 글들을 게재했었으며, 그는 자신의 웹사이트와 관련된 "Documents venner"의 미팅에 참여했었습니다.
브레이비크는 과거에 노르웨이의 주요 우익 정당인 진보당과 그 유스윙인 FPU의 당원이었으며, FPU의 리더인 오베 바네보는 브레이비크가 2000년대 초반에 당에서 활동적인 인물이었으나, 그의 성향이 점점 극단화되면서 당을 떠났다고 말했습니다.
브레이비크는 소셜 미디어에 자신을 윈스턴 처칠과 막스 마누스, 네덜란드의 극우 정치인 헤이르트 빌더르스의 열렬한 찬양자라고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헤이르트 빌더르스의 정당인 네덜란드 자유당을 유일하게 진실된 보수 정당이라고 묘사했으며, 자신을 친이스라엘주의자라고 밝혔습니다.
트위터에서 공리주의 철학가인 존 스튜어트 밀의 "신념을 가진 1명은 이익을 좇는 10만 명과 맞먹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노르웨이 NRK 방송국은 브레이비크가 범행에 관해서 자신의 전투적 우익사상과 반다문화주의 성향을 밝힌 800장 가량의 성명서를 보도했다. 브레이비크는 성명서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체코슬로바키아의 독일인들을 강제 추방시켰던 베네시 포고를 유럽의 무슬림들에게 적용해야 할 하나의 사례라고 언급하기도 하였습니다.
2.2.5 범행 성명
사건 직후, 이슬람 과격파의 웹사이트 상에서 사건 관여를 암시하는 메시지가 공개되었으나, 직후에 관여를 부정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역시 이슬람 과격파의 개입을 의심하였으나, 실제 범인이 밝혀지면서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노르웨이 테러사건 당시의 사진자료 (출저 : Google 포털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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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8페이지
  • 등록일2011.10.18
  • 저작시기2011.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09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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