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도래인이란
2. 도래인이 도래한 시기
(1) 야요이 시대
(2) 야마토 시대
3. 백제의 문화 전파
(1) 유교
(2) 불교
4. 일본 내 도래인의 유적
(1) 요시노가리 유적
(2) 후지노기 고분
(3) 아스카사
5. 결론
2. 도래인이 도래한 시기
(1) 야요이 시대
(2) 야마토 시대
3. 백제의 문화 전파
(1) 유교
(2) 불교
4. 일본 내 도래인의 유적
(1) 요시노가리 유적
(2) 후지노기 고분
(3) 아스카사
5. 결론
본문내용
가 됐던 아스카사는 그 절터가 1956∼57년 발굴됐다. 발굴 결과 본존불상과 부처님 사리함과 곡옥, 관옥 등 옥 종류가 발견됐다. 또 금환, 구리쇠 말방울, 기왓장 등을 발견했다. 이 발굴 작업으로 백제인 들이 창건한 아스카사는 ‘1탑 3금당 형식’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즉 한 기의 불탑을 중심으로 불당인 금당 셋이 에워싼 건축양식이었다. 이 아스카사와 부여 왕흥사의 건축양식이 일본 학자들에게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들은 왕흥사는 탑과 금당, 강당이 일직선으로 연결된 ‘1탑 1금당 형식’이지만 왕흥사의 회랑 쪽 동서 양쪽에 있는 부속 건물은 뒷날 일본에 건너와서 아스카 절을 지을 때 2곳의 금당으로 변했다고 본다. 왕흥사 터에서 발굴된 각종 출토물이며 기와의 문양과 탑의 구조 등은 아스카사의 유물과 거의 일치한다. 부여 왕흥사 터전에서 출토된 곡옥이며 관옥, 금환 등의 사리 공양구들 역시 아스카 절터에서 출토되었던 사리 공양구 등과 일치한다.
5. 결론
- 일본의 고고학자 에가미 나미오는 동북아시아의 기마민족이 일본 황실의 기원이라는 '기마민족정복왕조설'을 1948년 발표해 일본학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세계 최대 규모의 무덤인 닌토쿠 천황고분이 그의 학설을 뒷받침해준다. 닌토쿠 천황고분의 크기가 그 전대의 천황고분의 크기에 비해 갑자기 거대해 진 것은 새롭게 정착한 세력이 자신들의 권력과 권세를 원주민들에게 각인시켜주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학설은 입증할 근거가 부족하고 상상력이 지나쳤다는 평가로 현재 일본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기마민족정복왕조설’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차치하고서라도 한반도와 대륙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이 일본 고대 왕조의 문화와 기술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한 · 일 양국의 학자들 모두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도래인들에 대한 연구를 더욱 심화하여 아직 밝혀지지 않은 과거사를 밝혀내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좀 더 노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참고 자료
고대 한일관계사, 김석형, 한마당, 1988
역사 속의 한일관계, 동북아역사재단, 2009
일본 속의 한국문화 유적을 찾아서 1 2 3, 김달수, 1997
마주 보는 한일사 1, 전국역사교사모임, 사계절출판사, 2006
참고 사이트
http://hana830813.blog.me/140102055233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3580
http://www.museum.go.kr/program/show/showDetail.jsp?showCategory1Con=SC1&showCategory2Con=SC1_1&showCategory3Con=SC1_1_1&langCodeCon=LC1&menuID=001002002001&showID=397
http://kosskosa.blog.me/40039977952
참고 동영상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55&aid=0000188557
5. 결론
- 일본의 고고학자 에가미 나미오는 동북아시아의 기마민족이 일본 황실의 기원이라는 '기마민족정복왕조설'을 1948년 발표해 일본학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세계 최대 규모의 무덤인 닌토쿠 천황고분이 그의 학설을 뒷받침해준다. 닌토쿠 천황고분의 크기가 그 전대의 천황고분의 크기에 비해 갑자기 거대해 진 것은 새롭게 정착한 세력이 자신들의 권력과 권세를 원주민들에게 각인시켜주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학설은 입증할 근거가 부족하고 상상력이 지나쳤다는 평가로 현재 일본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기마민족정복왕조설’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차치하고서라도 한반도와 대륙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이 일본 고대 왕조의 문화와 기술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한 · 일 양국의 학자들 모두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도래인들에 대한 연구를 더욱 심화하여 아직 밝혀지지 않은 과거사를 밝혀내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좀 더 노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참고 자료
고대 한일관계사, 김석형, 한마당, 1988
역사 속의 한일관계, 동북아역사재단, 2009
일본 속의 한국문화 유적을 찾아서 1 2 3, 김달수, 1997
마주 보는 한일사 1, 전국역사교사모임, 사계절출판사, 2006
참고 사이트
http://hana830813.blog.me/140102055233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3580
http://www.museum.go.kr/program/show/showDetail.jsp?showCategory1Con=SC1&showCategory2Con=SC1_1&showCategory3Con=SC1_1_1&langCodeCon=LC1&menuID=001002002001&showID=397
http://kosskosa.blog.me/40039977952
참고 동영상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55&aid=0000188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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