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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입장과 존 웨슬리의 성화론
본문내용
. 그래서 그는 칭의와 중생은 그 자체가 완전 성화는 아니며, 이것은 성화의 시작일 뿐, 완전 성화와 완전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계속적인 성장과 발전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이와 같은 점진적인 성장 개념은 순간적인 요소와 결합되어 있다. 그는 성화의 점진적인 과정에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로 인해 순간적으로 보다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단계가 있다고 본 것이다. 점진적인 성화의 과정에 있어서도 웨슬리는 더 높은 성장의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회개와 그 열매,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의지하는 믿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사실은 웨슬리가 중생한 사람도 아직 그 속에 죄악이 남아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웨슬리의 주장을 통해 우리는 웨슬리가 온전한 성화를 이루어가는 성화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선행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하심에 의해 순간적 변화와 아울러 점진적 성장의 중요성을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이는 그의 신학이 인간의 책임을 소홀히 여기지 않는 긴장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3. 완전 성화 (entire sanctification)
웨슬리의 구원의 전체과정의 목적은 인간을 완전히 성화시키는데 있다. 그에게 성화의 과정은 구원의 과정이며,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향해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구원의 과정은 회개의 믿음에 의한 의인으로서의 중생으로 시작되어, 점진적인 과정을 거쳐, 온전한 성화에 이르는 과정이요, 더 나아가 영화(glorification)에까지 이르는 과정이었다. 웨슬리는 이 구원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은혜뿐만 아니라 인간의 역할 또한 강조했다. 따라서 그의 성화론은 상반된 개념들이 조화를 이루어, 신앙 지상주의에 빠지지 않는 인간의 윤리적 책임이 강조되는 구원론이라고 볼 수 있다.
웨슬리는 완전이라는 개념에 인간이 유한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빠지게 되는 과오와 결함을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는 완전성화를 통해 비도덕적인 불완전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는 무지와 과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완전이라는 개념은 비도덕적인 불완전을 모두 포함시키는 칼빈이나 루터의 절대적인 완전과는 개념이 다른 것이다.
신자가 점진적 성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한 순간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신다. 이때 점진적 과정이 중단되고, 한 단계 높은 평면으로 끌어올려 진다. 점진적인 성화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복종이라는 신-인 협동적 요소로 이루어지지만, 완전성화는 하나님의 은혜로서만 이루어진다. 웨슬리는 점진적 성화와 순간적 성화를 구분하였지만, 먼저 성화의 점진적인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완전 성화를 기대할 수 없다고 보았다.
4. 영화 (glorification)
완전 성화를 체험하여 기독자의 완전에 이르렀다 할지라도 한계를 가진 인간으로서는 무지, 실수, 육체적 연약성 그리고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부패하는 연약한 인간성은 우리 육체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결코 제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그러므로 완전한 자라고 할지라도 계속 은혜 안에서 성장해야 하며, 하나님 앞에 서는 그 순간 최종적인 의인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최종적인 완전(final stsge of perfection) 또는 영화(glorification)라고 한다. 완전한 성화를 \"완전한 자\"라고 한다면, 영화는 \"완성된 자\"라고 할 수 있다. 완전의 최종단계는 부활로 말미암아 성취된다. 다시 말해서 죽을 몸이 죽지 않을 몸으로, 썩을 몸이 썩지 않을 몸으로, 병들 몸이 병들지 않을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죽음을 넘어선 이 영화의 은총에서 죄로 인한 모든 흔적, 곧 사람이 지니고 있는 모든 제약성과 허약성, 실수와 무지, 그리고 유혹에서도 해방을 받는다고 해석한다. 물론 무의식적인 죄의 유약성에서도 자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부활의 완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 최종단계는 하늘에서, 또는 죽음 후에 오는 것이었다. 웨슬리는 어느 정도의 완전을 현세에서도 성취할 수 있다고 인정했지만, 그는 언제나 최종적인 완전은 죽음 후에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현세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영혼의 현재적인 완전과 다음 세상에서 성취할 수 있는 인간성의 미래적인 완전은 명확히 구별했다. 다시 말해서 첫째는 믿는 자를 마음의 깊은 죄로부터 해방하는 것이고, 둘째로 죄의 모든 악한 결과에서 인간을 해방한다는 것이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이와 같은 점진적인 성장 개념은 순간적인 요소와 결합되어 있다. 그는 성화의 점진적인 과정에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로 인해 순간적으로 보다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단계가 있다고 본 것이다. 점진적인 성화의 과정에 있어서도 웨슬리는 더 높은 성장의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회개와 그 열매,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의지하는 믿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사실은 웨슬리가 중생한 사람도 아직 그 속에 죄악이 남아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웨슬리의 주장을 통해 우리는 웨슬리가 온전한 성화를 이루어가는 성화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선행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하심에 의해 순간적 변화와 아울러 점진적 성장의 중요성을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이는 그의 신학이 인간의 책임을 소홀히 여기지 않는 긴장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3. 완전 성화 (entire sanctification)
웨슬리의 구원의 전체과정의 목적은 인간을 완전히 성화시키는데 있다. 그에게 성화의 과정은 구원의 과정이며,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향해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구원의 과정은 회개의 믿음에 의한 의인으로서의 중생으로 시작되어, 점진적인 과정을 거쳐, 온전한 성화에 이르는 과정이요, 더 나아가 영화(glorification)에까지 이르는 과정이었다. 웨슬리는 이 구원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은혜뿐만 아니라 인간의 역할 또한 강조했다. 따라서 그의 성화론은 상반된 개념들이 조화를 이루어, 신앙 지상주의에 빠지지 않는 인간의 윤리적 책임이 강조되는 구원론이라고 볼 수 있다.
웨슬리는 완전이라는 개념에 인간이 유한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빠지게 되는 과오와 결함을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는 완전성화를 통해 비도덕적인 불완전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는 무지와 과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완전이라는 개념은 비도덕적인 불완전을 모두 포함시키는 칼빈이나 루터의 절대적인 완전과는 개념이 다른 것이다.
신자가 점진적 성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한 순간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신다. 이때 점진적 과정이 중단되고, 한 단계 높은 평면으로 끌어올려 진다. 점진적인 성화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복종이라는 신-인 협동적 요소로 이루어지지만, 완전성화는 하나님의 은혜로서만 이루어진다. 웨슬리는 점진적 성화와 순간적 성화를 구분하였지만, 먼저 성화의 점진적인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완전 성화를 기대할 수 없다고 보았다.
4. 영화 (glorification)
완전 성화를 체험하여 기독자의 완전에 이르렀다 할지라도 한계를 가진 인간으로서는 무지, 실수, 육체적 연약성 그리고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부패하는 연약한 인간성은 우리 육체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결코 제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그러므로 완전한 자라고 할지라도 계속 은혜 안에서 성장해야 하며, 하나님 앞에 서는 그 순간 최종적인 의인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최종적인 완전(final stsge of perfection) 또는 영화(glorification)라고 한다. 완전한 성화를 \"완전한 자\"라고 한다면, 영화는 \"완성된 자\"라고 할 수 있다. 완전의 최종단계는 부활로 말미암아 성취된다. 다시 말해서 죽을 몸이 죽지 않을 몸으로, 썩을 몸이 썩지 않을 몸으로, 병들 몸이 병들지 않을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죽음을 넘어선 이 영화의 은총에서 죄로 인한 모든 흔적, 곧 사람이 지니고 있는 모든 제약성과 허약성, 실수와 무지, 그리고 유혹에서도 해방을 받는다고 해석한다. 물론 무의식적인 죄의 유약성에서도 자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부활의 완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 최종단계는 하늘에서, 또는 죽음 후에 오는 것이었다. 웨슬리는 어느 정도의 완전을 현세에서도 성취할 수 있다고 인정했지만, 그는 언제나 최종적인 완전은 죽음 후에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현세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영혼의 현재적인 완전과 다음 세상에서 성취할 수 있는 인간성의 미래적인 완전은 명확히 구별했다. 다시 말해서 첫째는 믿는 자를 마음의 깊은 죄로부터 해방하는 것이고, 둘째로 죄의 모든 악한 결과에서 인간을 해방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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