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이 서양에 끼친 사상 스텐포드 리드 저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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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칼빈이 서양에 끼친 사상 스텐포드 리드 저 요약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과 동일시되었다\"24). 다음으로는 바르트의 예정론을 지적하고 있는데 벌꼲은 비록 바르트가 예정론을 언급하고 있지만 그의 예정론은 어거스틴과 칼빈의 예정론과는 분명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바르트는 이 예정론이 하나님의 선택과 계시, 소명 등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자유를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기는 하나 바르트는 예정에서 사람들의 예정된 분리(선택과 유기)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특히 선택을 특별한 선택으로 인정하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있다.25) 이처럼 바르트는 예정론에 있어서, 그는 선택이 창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온 인류가 선택되었다고 진술하면서, 역사 선상에 나타난 인간의 타락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속죄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가 온 인류를 대신한 유기의 대상이면서, 선택의 대상이요, 선택의 주체라고 언급한다. 이런 그의 입장은 오토 베버가 요약한 『칼바르트의 교회교의학』이란 저서를 보면, 바르트(Barth)는 칼빈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결국 분리시켜 놓았다는 비판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뜻과 다른 하나님의 뜻은 없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선택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선택받은 인간\'이라고 언급한 표현에 더욱 잘 나타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선택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선택받은 인간\'이라서 인간에게는 첫 번 것 즉 선택과 축복과 생명을 허락하셨고, 자신에게는 둘째 것 즉, 저버림과 형벌과 죽음을 돌리시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본시 택함 받은 자와 저버림 받은 자 사이에는 구별이 없고 불경(不敬)한 자와 믿는 자 사이에 구별이 있다\"라고 언급한다.26) 이와 같은 슐라이어막허와 칼 바르트를 통해서 제시되고 있는 신학적 성격은 역사적 개혁교회의 성경적 예정론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이미 이단으로 정죄되었던 펠라기안파와 반(半)펠라기안파의 신학적 입장임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알미니안적인 예정론의 성격임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오늘날 알미니안주의와 칼 바르트의 입장을 거의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현재 한국교회의 현장을 생각할 때 칼빈주의적 예정론이 거의 소멸되어 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여기에 덧붙여 신비주의를 통한 알미니안적 영향들 때문에 오늘날 성경적 예정은 극단적이고, 무익하며, 교회에서 가르쳐서는 안될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형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론 지금까지 본인은 예정론의 교리사적인 내용들을 살펴보았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참되고 바른 성경적 예정론를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변질시키려고 했던 펠라기우스도 문제가 되지만 반(半)펠라기우스와 그리고 그 성격을 같이하는 알미니안주의가 더 심각하게 이 예정론를 변질시켜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개혁신학의 예정론을 연구해 가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알미니안적 예정론과 개혁신학적 예정론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핵심적으로 잘 정립하는 것이 매우 큰 과제로 남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자칫 예정론을 바르게 정립하지 못하면 여전히 알미니안주의의 방식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처럼 한국의 모든 교회가 신학적 성격으로 알미니안주의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고 있는 풍토 속에서는 더더욱 이 차이를 명확히 정립하면서 역사적 개혁신학의 예정론을 정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 말은 오늘날 알미니안주의의 예정론 선에서 예정론을 언급하면서 중도적인 선을 표명하고자 하는 많은 주장들이 있지만 이런 입장도 철저하게 배격되어야 함을 장하는 것이다. 즉 예정론의 교리사적인 고찰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참된 성경적 예정론이라고 인정되었던 역사적 개혁신학 안에서의 예정론은 이런 방식을 철저히 거부하고 배격한 방식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처럼 철저하게 역사적 개혁신학의 선에서 예정론을 말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를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알미니안주의의 예정론 형태가 전교회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칼빈주의적 예정론을 말하고 가르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그것을 말하고 가르치고자 했을 때는 위의 글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많은 희생과 순교의 각오를 갖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비록 이런 길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어도 이 길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이 진리의 내용이 참된 하나님의 것이기에 그분의 진리가 가리워지거나 변질되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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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00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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