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창덕궁 개관
1) 창덕궁의 개요
2) 창덕궁의 연표
3) 창덕궁 공간구성
2. 동궐도
1) 동궐도 개요
2) 동궐도의 가치 및 제작연대
3. 동궐도와 창덕궁의 비교
1) 돈화문
2) 금천교
3) 인정문
4) 인정전
5) 선정전
6) 대조전
7) 영화당과 잉어조각
8) 주합루와 주변전각들
9) 애련정
10) 연경당
11) 연경당 주변 전각들
12 옥류천 곡수연과 정자들
4. 마치며
5. 참고문헌
1) 창덕궁의 개요
2) 창덕궁의 연표
3) 창덕궁 공간구성
2. 동궐도
1) 동궐도 개요
2) 동궐도의 가치 및 제작연대
3. 동궐도와 창덕궁의 비교
1) 돈화문
2) 금천교
3) 인정문
4) 인정전
5) 선정전
6) 대조전
7) 영화당과 잉어조각
8) 주합루와 주변전각들
9) 애련정
10) 연경당
11) 연경당 주변 전각들
12 옥류천 곡수연과 정자들
4. 마치며
5.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창덕궁의 개요 -왕에게 사랑받은 창덕궁
1963년 1월 18일 사적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1405년(태종 5) 완공되었으며, 면적 43만 4877㎡이다. 태종(太宗)이 즉위한 후 1404년(태종 4) 한성(漢城)의 향교동(鄕校洞)에 이궁(離宮)을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하고 창덕궁이라 명명하였다. 그 후 계속 인정전(仁政殿)·선정전(宣政殿)·소덕전(昭德殿)·빈경당(賓慶堂)·여일전(麗日殿)·정월전(淨月殿)·옥화당(玉華堂) 등 많은 전당을 건립하였는데, 1412년 돈화문(敦化門)을 건립하여 궁궐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 궁전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는데, 1607년(선조 40)에 그 복구가 시작되어 1610년(광해군 2)에 중건이 거의 끝났으나, 1623년 3월에 인정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실화로 불탔으므로 1647년(인조 25)에야 그 복구가 완료되었다.
창덕궁은 자연환경과 탁월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면서 궁궐 건축과 전통정원의 원형을 잘 간직한 궁궐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창덕궁은 동쪽에 자리잡은 궁궐이라 하여 창경궁과 함께 ‘동궐’로도 불렸다. 경복궁을 보조하는 궁궐로 지어졌지만, 임진왜란 이후에는 경복궁 보다 먼저 복구되어 명실상부한 조선 제일의 궁궐이 되었다. 경복궁과 마찬가지로 궁궐다운 규모와 체제를 갖추었으며, 조선 왕조의 오백년 역사를 놓고 보면 경복궁보다 창덕궁에서 왕들이 머문 기간이 더 길다.
<중 략>
3) 창덕궁의 공간 구성
창덕궁의 건물배치는, 정궁인 경복궁, 행궁인 창경궁과 경희궁에서는 정문으로부터 정전, 편전, 침전 등이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배치되어 궁궐의 위엄성이 강조된 데 반하여, 창덕궁에서는 정문인 돈화문은 정남향이고, 궁안에 들어 금천교가 동향으로 진입되어 있으며 다시 북쪽으로 인정전, 선정전 등 정전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편전과 침전은 모두 정전의 동쪽에 전개되는 등 건물배치가 여러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날 자연스런 산세에 따라 자연지형을 크게 변형시키지 않고 산세에 의지하여 인위적인 건물이 자연의 수림속에 포근히 자리를 잡도록 한 배치는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완전한 건축의 표상이다.
1963년 1월 18일 사적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1405년(태종 5) 완공되었으며, 면적 43만 4877㎡이다. 태종(太宗)이 즉위한 후 1404년(태종 4) 한성(漢城)의 향교동(鄕校洞)에 이궁(離宮)을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하고 창덕궁이라 명명하였다. 그 후 계속 인정전(仁政殿)·선정전(宣政殿)·소덕전(昭德殿)·빈경당(賓慶堂)·여일전(麗日殿)·정월전(淨月殿)·옥화당(玉華堂) 등 많은 전당을 건립하였는데, 1412년 돈화문(敦化門)을 건립하여 궁궐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 궁전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는데, 1607년(선조 40)에 그 복구가 시작되어 1610년(광해군 2)에 중건이 거의 끝났으나, 1623년 3월에 인정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실화로 불탔으므로 1647년(인조 25)에야 그 복구가 완료되었다.
창덕궁은 자연환경과 탁월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면서 궁궐 건축과 전통정원의 원형을 잘 간직한 궁궐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창덕궁은 동쪽에 자리잡은 궁궐이라 하여 창경궁과 함께 ‘동궐’로도 불렸다. 경복궁을 보조하는 궁궐로 지어졌지만, 임진왜란 이후에는 경복궁 보다 먼저 복구되어 명실상부한 조선 제일의 궁궐이 되었다. 경복궁과 마찬가지로 궁궐다운 규모와 체제를 갖추었으며, 조선 왕조의 오백년 역사를 놓고 보면 경복궁보다 창덕궁에서 왕들이 머문 기간이 더 길다.
<중 략>
3) 창덕궁의 공간 구성
창덕궁의 건물배치는, 정궁인 경복궁, 행궁인 창경궁과 경희궁에서는 정문으로부터 정전, 편전, 침전 등이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배치되어 궁궐의 위엄성이 강조된 데 반하여, 창덕궁에서는 정문인 돈화문은 정남향이고, 궁안에 들어 금천교가 동향으로 진입되어 있으며 다시 북쪽으로 인정전, 선정전 등 정전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편전과 침전은 모두 정전의 동쪽에 전개되는 등 건물배치가 여러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날 자연스런 산세에 따라 자연지형을 크게 변형시키지 않고 산세에 의지하여 인위적인 건물이 자연의 수림속에 포근히 자리를 잡도록 한 배치는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완전한 건축의 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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