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속의 호랑이 [호랑이는 무엇인가][우리 민족 속의 호랑이][고대시대의 호랑이][삼국시대 호랑이][통일신라 시대의 호랑이][고려시대의 호랑이][조선시대의 호랑이][신화 호랑이][전설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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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 역사 속의 호랑이 [호랑이는 무엇인가][우리 민족 속의 호랑이][고대시대의 호랑이][삼국시대 호랑이][통일신라 시대의 호랑이][고려시대의 호랑이][조선시대의 호랑이][신화 호랑이][전설 호랑이]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혼인을 하며, 인간의 본능적 감정인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점차 사람과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인간 속으로 친숙하게 호랑이가 들어오고 있다는 것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다.
3.3. 고려시대의 호랑이
<高麗史> 世系에 보면 고려의 태조 왕건의 5대조인 虎景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진다.
호경이 마을 사람과 함께 사냥을 나가 굴 속에 자게 되었는데, 거대한 호랑이가 밖에서 울부짖자 두려움에 떨던 사람들이 머리의 관을 밖에다 던저 호랑이 발에 밟힌 임자가 나가 호랑이와 싸우기로 한다. 결국 호경이 나가 싸우게 되어 굴 밖으로 나오자 갑자기 굴이 무너지고 호랑이는 간 데 없고, 굴 속에 사람들이 모두 죽고 말았다. 장덕순 외,『구비문학 개설』, (일조각), p32
고려시대에는 호랑이가 건국신화에까지 등장한다. 여기서 호랑이는 비범한 인물을 보호해주는 이미지로 나오는데, 한 나라의 건국신화 속에 등장한다는 것은 그 당시 사람들과 호랑이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역시 고려시대에서도 호랑이는 상층 하층을 불문하고 깊숙하게 우리 생활에 침투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전설로 <강감찬 장군과 호랑이 둔갑한 호랑이가 마치 희랍의 신화의 스핑크스처럼 길을 막고 있다가 내기바둑을 둔 뒤 지면 잡아먹고, 이기면 길을 내어주는 짓을 한다. 강감찬 장군이 호령으로 퇴치한다.
>가 있다.
고려시대에는 호랑이가 연희 중 하나인 탈춤도 등장했다.
호랑이 탈춤은 평남 평양지방에서 연희되었던 동물 놀이이다. 이 춤은 고려시대의 평양성은 중심으로 이어져 오다가 중간에 사라진 것인데, 호랑이 무리 탈춤이 이루어진 축제행사의 일종이다. 사물장단과 서도창을 반주로 하여 백호 10마리, 황호 10마리 아기 호랑이 3마리 등 23마리의 호랑이가 인간을 보호하는 영물로 서로 어울리고, 동물의 왕자이며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로서 평화를 수호하는 의연함을 놀이화 한 것이다. 김선풍외, 『열두 띠 이야기』, (집문당, 1996), p85
3.4. 조선시대의 호랑이
조선시대는 뿌리 깊은 유교의 시대이니 만큼 호랑이의 신격성은 상당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호랑이는 유교의 윤리적 덕목을 강조하기 위한 도구로 새롭게 변신하여 민중 속으로 파고든다. 이러한 것을 민현기는 『한국근대소설론』에서 ‘가탁물(假託物, victim)\'이라 표현하였는데, 여기서의 호랑이는 자연 그대로의 맹수 호랑이를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인격화된 존재로 등장된다고 한다. 유교적 측면에서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할 부모에 대한 효성, 신의, 은혜를 갚는 일, 인정을 베푸는 일등에 대한 교훈적인 의미의 호랑이 이야기 대표적인 것이 ‘취부기아형 설화’이다. 술에 취한 시아버지를 호랑이가 잡아먹으려 하자, 그것을 본 며느리는 자기가 업고 있던 아기를 호랑이에게 던져주어 시아버지를 구하였고, 며느리의 효성에 감동한 호랑이는 그 아이를 잡아 먹지 않고 되돌려 준다는 이야기이다.
는 그 前時代와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유교의 포교적 수단의 호랑이 말고 조선시대에는 상층계층에 대한 풍자와 사회 현실의 우화하는 모습의 호랑이도 등장한다. 장병호, 「한국 호랑이 설화의 유형과 성격」,(한국어문교육 8, 한국교원대, 1999), p210
대표적인 것으로 황팔도 설화와 박지원의 <호질>을 들 수 있다. 황팔도 설화 황팔도 전설은 충청지역에서는 일관되게 황팔도로 나오는 반면, 다른 지역에서는 이생원, 정서방으로 나온다고 한다.
변형된 이야기로 주인공이 정호랑이로 나오는 것이 있는데, 황팔도 전설과 거의 같다. 다만 책을 태운 부인의 성이 정씨라서 정씨 성을 가진 사람만 해쳤다고 해서 정호랑이라는 별칭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첨가된다.
는 주인공인 황팔도가 어머니의 병환을 고치기 위해 고심하던 중 의원으로부터 개 천마리를 먹여야만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결국 하늘의 도움으로 호랑이로 변신을 하는 능력을 얻은 황팔도는 개를 구하여 어머니를 봉양하지만 밤마다 나들이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부인이 둔갑을 할 수 있는 책을 태우고 둔갑을 할 수 없게된 황팔도는 점차 인성을 잃어 맹수의 본성을 가지고 사람들을 해지게 되어 관포수의 총에 맞고 죽는다는 이야기이다. 위 이야기에 대한 김종대의 설명은 아래와 같다.
구성이 특이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이 효를 완성하고 복을 받는다는 일반적인 이야기와는 달리 주인공이 죽는다는 비극적 결말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황팔도 이야기가 전승되던 때가 동학혁명이 일어난 시점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결과라고 추측된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황팔도의 이름만 보더라도 그가 조선 전체를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효행의 과정이 부인이라는 여성에 의해서 실패로 끝난다는 점은 명성황후가 동원한 외국군대에 의해 동학혁명이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 하다. 또한 황팔도가 호랑이로 둔갑한다는 것은 황팔도라는 인물뿐 아니라 호랑이 역시 조선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어머니로 상징되는 조선을 다시 일으키기 위한 시도로 호랑이를 등장시킨 것에서 호랑이야 말로 조선을 구할 수 있는 상징적 동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김종대,『우리문화의 상징체계』,(다른세상, 2001), p430~431.
<호질>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은 <호질>을 가게에서 주워 들은 이야기라고 밝히며, 자신이 지은 것이 아니라고 하나 지금까지 연구결과는 문제나 사상적인 측면에서 볼 때 박지원의 작품이 분명하다고 한다.
은 박지원의 『熱河日記』 가운데 관내정사(關內程史) 부분에 수록된 것이다. <호질>의 이야기는 크게 3가지 부분으로 나뉠 수 있는데, 범과 창귀(鬼) 鬼는 호랑이에게 화를 당한 사람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귀신이 된 존재라고 한다. 창귀는 자신을 대신할 다른 창귀가 없으며 결코 저승으로 가지 못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창귀는 다른 사람을 유인하여 호랑이에게 화를 당하도록 한다고 한다. 이러한 창귀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 무속신앙으로 호식장등이 있었다.
의 대화장면과 유명한 유학자인 북곽선생과 과부 동리자의 밀회와 그것을 본 동리자의 다섯아들에게 북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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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12.12
  • 저작시기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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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825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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