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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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칸트의 정치사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그는 뉴턴역학의 모든 원리를 확대 적용하여 우주의 발생을 역학적(力學的)으로 해명하려고 하였는데, 후일 ‘칸트-라플라스의 성운설(星雲說)’로 널리 알려지게 된 획기적인 업적을 수립하였다. I.뉴턴의 방법의 철저한 적용이라는 이 대담한 시도는 목적론적 세계관에의 귀의(歸依)와 표리일체를 이루며 그것의 바탕 위에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는 일면을 지닌다.
J.J.루소는 칸트로 하여금 문명에 침식되지 않은 소박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눈뜨게 하고, 여기에다 그 후의 모든 사상적 노력의 숨은 기초를 뿌리박게 한 하였다. 이렇게 하여 뉴턴, 루소를 두 개의 기둥으로 삼고 D.흄을 부정적 매개체로 하여 중세 이후의 전통적 형이상학을 그 밑뿌리까지 파고들어 전면적 재편성을 시도함으로써 비판철학을 탄생시켰다.
그는 《순수이성비판(純粹理性批判) Kritik der reinen Vernunft》(1781) 에서 뉴턴의 수학적 자연과학에 의한 인식구조에의 철저한 반성을 통하여, 종래의 신(神)중심적인 색채가 남아 있는 형이상학의 모든 개념이 모두 인간 중심적인, 즉 넓은 의미에서의 인간학적인 의미로 바뀌어야 되는 이유를 들고, 나아가 일반적 ·세계관적 귀결을 제시하였다. 다시 말해서 인간적 인식이 성립되는 장면을 해명해야 할 인간학적 형이상학을 새로 수립하는 일을 통하여, 종래의 신적 형이상학(神的形而上學)이 이론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이유를 제시한 것이다.
제2의 비판서인 《실천이성비판(實踐理性批判)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1788)에서 칸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율적 인간의 도덕을 논하고, 실천의 장(場)에서의 인간의 구조에 ‘불가결한 요청(要請)’이라는 형태로 신(神) ·영세(永世) 등의 전통적 형이상학의 내실을 재흥시켜 그것이 새롭게 인간학적 철학에서 점유할 위치를 지적하였다. 종교를 도덕의 바탕 위에 두는 이 구상(構想)은 그 후의 《종교론》(1793)에서 다시 구체적으로 전개된다. 이상 두 가지 비판서로 명백하게 된 인식과 실천이라는 두 개의 장면을 매개하고 인간의 삶이 영위되는 장(場)의 구조를 통일적으로 파악하여, 새로운 인간학적 철학을 종결짓고자 구상된 것이 제3의 비판서인 《판단력비판(判斷力批判) Kritik der Urteilskraft》(1790)이다. 여기서 칸트는 미(美)와 유기체(有機體)의 인식이라는 장면의 분석을 통하여 목적론적 인식의 구조를 명백히 하고, 또한 목적론과 기계론의 관계라는, 일생의 과제이며 동시에 세기적 과제에 비판적 해결을 부여하여 스스로의 철학적 노력을 결말지은 것이다.
이상 3권의 비판서에 의하여 그 토대가 놓여진, 비판철학 사상과 밀접히 관련하여, 또는 그 위에 기초한 사고(思考)를 전개한 기타의 주요 저서로는 《순수이성비판》의 해설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프롤레고메나 Prolegomena》(1783), 《실천이성비판》에 앞서 비판적 논리학의 기본구상을 기술한 《도덕형이상학원론(道德形而上學原論)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1785), 이것에 기초한 법철학 ·도덕철학의 구체적 체계를 전개한《도덕형이상학 Metaphysik der Sitten》(1797), 이와함께 자연철학의 체계를 전개한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원리 Metaphysische Anfangsgrnde der Naturwissenschaft》(1786)가 있다. 또 오랜 기간의 강의를 정리하여 출판한 《인간학》(1798) 《자연지리학》(1802)은 칸트의 폭넓은 실제적 지식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이다.
칸트의 철학은 3권의 비판서 간행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예나를 비롯한 몇 곳을 거점으로 하여 순식간에 전독일의 대학 ·논단을 석권하였고, J.G.피히테에서 G.W.F.헤겔에 이르는 독일 관념론 철학의 선두 주자로서, 또 그 모태로서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그 영향은 다시 영국 ·프랑스의 이상주의철학까지 미쳤으며, 특히 후일의 독일 신(新)칸트학파의 철학은 칸트의 비판주의의 직접계승을 지향한 것이었다. 또한 신칸트학파 퇴조 후에 나타난 수많은 철학 조류도 모두 직접 ·간접으로 칸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한국루터회가 뽑은 ‘세계를 빛낸 10인의 루터란’의 한 사람이다.
2. 칸트의 계몽이념 : 인간해방론과 자유공론
칸트는 계몽을 “인간이 자기귀책적(自己歸責的)인 미성년성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여기서 미성년성은 학문, 예숙, 종교, 정치 등 모든 인간활동 분야에서 타인의 지도를 받지 않으면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수 없는 무능력을 뜻하고, 자기귀책성이란 이 미성년성의 원인이 이성의 결여에 있느 것이 아니라 타인의 지도 없이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결의와 용기의 결여에 있는 경우를 가리킨다.
칸트는 대중의 이 계몽적 용기의 부족을 선각적 인사들의 쟁론으로 형성되는 자유공론의 해방적 힘으로 서서히 타파하고자 한다. 즉, 자유공론의 해방적 역할을 원칙적으로 긍정하였던 것이다. 칸트는 이성의 공론적 활용을 계몽의 유일한 방법으로 보았으며 이 공론을 계몽주의적 근대기획의 근본요소로 정립한다. 공중은 ‘오로지 서서히’ 계몽된다. 급격한 혁명을 통하면 아마 개인적 전제와 압제로부터 이탈은 이룩되겠지만, ‘사고방식의 진정한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혁명을 동해 생겨난 새로운 편견들은 낡은편견과 함께 ‘사려 없는 거대한 무리’의 행동지침이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이 계몽을 위해서는 자유, 그것도 자유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무해한것, 즉 자신의 이성을 모든 부분에서 공론적으로 사용할 자유외에 다른 것이 필요치 않은 것이다. 칸트는 같은 맥락에서 ‘계몽을 가로막는 제한’과 ‘계몽을 가로막지 않는 제한’을 구분한다. 계몽을 위해서 ‘이성의 공론적 사용’은 언제든 자유로워야 하고 오직 이성의 이 자유로운 공론적 사용만이 사람들에게 계몽을 가져다줄 수 있다. 이성의 공론적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계몽을 가로막는다. 반면, ‘이성의 사적 사용’은 종종 매우 협소하게 제한되어도 계몽의 진보에 특별한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다. ‘이성의 공론적 사용’은 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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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3.20
  • 저작시기2004.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35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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