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한자차용표기법
1.1 한자차용표기법의 정의
1.2 한자차용의 원리와 표기법
1.3 한자차용표기법의 갈래
2. 이두
2.1 이두의 정의, 발생, 변천
2.2 이두 자료의 실제(원문과 해독, 해석)
<참고문헌>
1.1 한자차용표기법의 정의
1.2 한자차용의 원리와 표기법
1.3 한자차용표기법의 갈래
2. 이두
2.1 이두의 정의, 발생, 변천
2.2 이두 자료의 실제(원문과 해독, 해석)
<참고문헌>
본문내용
돌에는 다음과 같은 한자가 새겨져 있다. 이를 임신서기석이라 부르는데 612년의 자료로 추정된다.(이기문(1981)과 안병희(1984) 참조) 이 誓記石의 銘文은 語順이 국어 문법에 매우 접근된 모습을 보여 주는데, 이러한 文體를 誓記體라 하여 吏讀와 구별하는 일이 있으나, 차자 표기의 제1 단계에 속하는, 이른바 초기 이두의 한 모습을 보여 주는 자료로 가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 자료에서 주목할 표기는 ‘今自, 以, 若, 之’ 등이다.
[원문]
壬申年六月十六日二人1)誓記2)
天前誓3)今自4)三年以後忠道執持5)過失无誓
若6)此事失天大罪得誓
若國不安大亂世可容行誓之7)
又別先8)辛未年七月卄二日大誓詩尙書禮傳倫得誓三年
[주석]
1) : 後代 吏讀의 ‘以, 幷以’(아오로)와 꼭같은 용법으로 ‘함께, 더불어’의 뜻이다. 虛字 ‘以’가 없음이 다를 뿐으로 이러한 표기는 후대에도 많이 나타난다.
2) 誓記 : 문장 종결의 ‘之’가 없으나 ‘맹세하고 기록하다’의 뜻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3) 天前誓 : ‘하늘 앞에 맹세하다’는 뜻이다. 부사어 ‘前’이 ‘天’의 뒤에 놓인 것이라든가 서술어 ‘誓’가 부사어 뒤에 놓인 것은 국어의 語順을 따른 데 말미암는다. 다음의 ‘今自’(지금부터)도 그러하다. ‘過失无誓’(過失이 없기를 맹세하다), ‘此事失’(이 일을 잃다), ‘天大罪得誓’(하늘에서 큰 죄를 얻을 것임을 맹세하다) 등의 표기들에서도 서술어와 목적어의 위치가 漢文의 어순이 아니라 국어의 어순인 것이다.
4) 今自 : 국어의 어순을 반영한 대표적 표기로서 ‘지금부터’로 풀이된다. <廣開土大王陵碑>의 ‘自今’과 <高句麗城壁石刻銘>의 ‘自此’가 漢文의 어순인 것과 대조되는 것이다.
5) 以後忠道執持 : ‘以後, 忠道, 執持’ 모두 漢字語로서 音讀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執持’는 후대 이두 자료에 자주 보이며, 이는 ‘傳承’과 결합하여 ‘傳持’라는 우리 고유의 한자어로 발달하게 되는데 15세기의 ‘뎐디야’(釋譜詳節)의 ‘뎐디’가 그것이다(남풍현(1975) 참조).
6) 若 : 假定을 뜻하는 것으로, 15세기 국어의 ‘다가’와 현대 국어의 ‘萬若’에 해당한다.
7) 之 : 문장을 종결하는 데 쓰이는 虛字로서 ‘-이라’의 의미다. 그런데 ‘二人誓記, 過失无誓, 天大罪得誓, 誓三年’ 등의 뒤에 ‘之’가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것의 사용이 당시에는 일반적이지 못하고 수의적이었던 듯하다. 또는 큰 단락을 지을 곳에 사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8) 又別先 : ‘또 따로 먼저(앞서)’로 풀이된다. 부사의 나열이 주목된다.
[현대어역]
임신년 6월 16일에 두 사람이 함께 맹세하고 기록한다. 하늘 앞에 맹세하되 지금부터 3년이후에 忠道를 執持하고 과실이 없기를 맹세한다. 만약 이 일을 잃으면(이루지 못하면) 하늘로서 큰 죄를 얻을 것을 맹세한다. 만약 나라가 불안하고 大亂世가 되면 가히 [충도를] 행할 것을 맹세한다. 또 따로 앞서 신미년 7월 22일에 크게 맹세하되 詩, 尙, 書, 禮, 傳, 倫을 이룰 것을 맹세하였는데 3년으로 하였다.
< 華嚴經寫經造成記 >
[해제]
1978년에 발견된 이 자료(14행 527자)는 天寶 14년(景德王 14년, 755)에 기록된 것으로서 그 내용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부분에는 화엄경을 제작한 經緯와 方法에 대해 기록하였고, 둘째 부분에는 七言으로 된 讚詩가 있으며, 마지막 부분에는 화엄경의 제작에 관계한 사람들의 人名錄이 있다. 첫 부분과 셋째 부분이 차자 표기 자료로 이용되는데 전자는 문장의 표기이며 후자는 고유명사의 표기이다.
이 조성기의 표기 특징은 첫째 국어의 어순에 따라 표기되었고, 둘째 形態部의 표기가 극히 정밀하게 이루어져 있으며, 셋째 그것의 표기에 새로운 차자 原理가 사용된 것이다. 이전의 자료에서 볼 수 없었던 ‘, , 乎, 如, 那, 只, 哉’ 등 형태부 표기의 차자가 보이는데 이들은 漢字의 원뜻과 관계없이 字音만을 借用한 것이다. 차자 표기의 제2 단계를 보이는 표기 원리인 것이다(차자 표기의 단계 및 새로운 차자 원리에 대해서는 안병희(1984) 참조).
[원문]
(전략)
成內法者9) 楮根中10) 香水散11) 生長令內12) 然後中 若13)楮皮脫那14)脫皮練那 紙作伯士那15) 經寫筆師那 經心匠那 佛菩薩像筆寫走使人那 菩薩戒授令16) 齊食17) 右諸人等 若大小便爲哉18) 若臥(/師)宿哉 若食喫哉爲者19) 香水用 沐浴令只但20) 作作處中 進在之21)
(중략)
經心作 佛菩薩像作時中 靑衣童子伎樂人等 除余22) 淳淨法者 上同之23)
經心內中24) 一收舍利25) 入內如
(후략)
[주석](각주)
9) 成內法者 : ‘이룬 방법은’의 뜻이다. 그런데 앞의 ‘經’을 여기에 연결시키는 경우도 있으나 앞에 나온 ‘成內願旨者’와 후대 이두의 ‘乎事’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10) 楮根中 : ‘楮根’은 ‘닥나무 뿌리’를 말한다. 李弘稙(1954)에서 漢文의 ‘中’과 다름을 이미 지적한 바 있는 ‘中’은 시간이나 공간 표시어에 연결되어 나타나서 ‘-에’로 풀이된다. 시간 표시어에 연결될 경우에 시간 표시어가 정밀한 날짜를 나타낼 경우에는 ‘中’이 나타나지 않는다. 天寶十七年戊戌中(葛項寺石塔記), 辛亥年二月卄六日(南山新城碑銘). 따라서 ‘경에, 즈음에’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이기문(1981)에 의하면 ‘中’의 이런 용법은 ‘之, 節’과 함께 고구려에서 기원한 것이다. <高句麗城壁石刻銘>의 ‘十二月中’과 <中原高句麗碑銘>의 ‘五月中’이 그 예이다. 신라 자료에서는 <丹陽赤城碑銘>와 <新羅村落文書> 등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한편 일본의 자료에서도 이러한 용법의 ‘中’이 발견되어 관심을 끈다. <稻荷山鐵劍銘>의 ‘辛亥年七月中記’, <法隆寺金堂釋迦三尊佛光背銘>의 ‘三月中’, <日本書記>의 ‘甲子七月中, 秋九月中’ 등의 ‘中’이 바로 이런 용법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고구려에서 신라와 일본으로 이어지는 이와 같은 ‘中’의 용법은 알타이 語系인 鮮卑族이 세운 北魏의 ‘中’의 용법과 관련되는 듯하다. 北魏에서는 ‘中’과 ‘別’이 이러한 특수한 용법으로 사용되었다.
11) 散 : ‘散’은 중세국어의 ‘
[원문]
壬申年六月十六日二人1)誓記2)
天前誓3)今自4)三年以後忠道執持5)過失无誓
若6)此事失天大罪得誓
若國不安大亂世可容行誓之7)
又別先8)辛未年七月卄二日大誓詩尙書禮傳倫得誓三年
[주석]
1) : 後代 吏讀의 ‘以, 幷以’(아오로)와 꼭같은 용법으로 ‘함께, 더불어’의 뜻이다. 虛字 ‘以’가 없음이 다를 뿐으로 이러한 표기는 후대에도 많이 나타난다.
2) 誓記 : 문장 종결의 ‘之’가 없으나 ‘맹세하고 기록하다’의 뜻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3) 天前誓 : ‘하늘 앞에 맹세하다’는 뜻이다. 부사어 ‘前’이 ‘天’의 뒤에 놓인 것이라든가 서술어 ‘誓’가 부사어 뒤에 놓인 것은 국어의 語順을 따른 데 말미암는다. 다음의 ‘今自’(지금부터)도 그러하다. ‘過失无誓’(過失이 없기를 맹세하다), ‘此事失’(이 일을 잃다), ‘天大罪得誓’(하늘에서 큰 죄를 얻을 것임을 맹세하다) 등의 표기들에서도 서술어와 목적어의 위치가 漢文의 어순이 아니라 국어의 어순인 것이다.
4) 今自 : 국어의 어순을 반영한 대표적 표기로서 ‘지금부터’로 풀이된다. <廣開土大王陵碑>의 ‘自今’과 <高句麗城壁石刻銘>의 ‘自此’가 漢文의 어순인 것과 대조되는 것이다.
5) 以後忠道執持 : ‘以後, 忠道, 執持’ 모두 漢字語로서 音讀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執持’는 후대 이두 자료에 자주 보이며, 이는 ‘傳承’과 결합하여 ‘傳持’라는 우리 고유의 한자어로 발달하게 되는데 15세기의 ‘뎐디야’(釋譜詳節)의 ‘뎐디’가 그것이다(남풍현(1975) 참조).
6) 若 : 假定을 뜻하는 것으로, 15세기 국어의 ‘다가’와 현대 국어의 ‘萬若’에 해당한다.
7) 之 : 문장을 종결하는 데 쓰이는 虛字로서 ‘-이라’의 의미다. 그런데 ‘二人誓記, 過失无誓, 天大罪得誓, 誓三年’ 등의 뒤에 ‘之’가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것의 사용이 당시에는 일반적이지 못하고 수의적이었던 듯하다. 또는 큰 단락을 지을 곳에 사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8) 又別先 : ‘또 따로 먼저(앞서)’로 풀이된다. 부사의 나열이 주목된다.
[현대어역]
임신년 6월 16일에 두 사람이 함께 맹세하고 기록한다. 하늘 앞에 맹세하되 지금부터 3년이후에 忠道를 執持하고 과실이 없기를 맹세한다. 만약 이 일을 잃으면(이루지 못하면) 하늘로서 큰 죄를 얻을 것을 맹세한다. 만약 나라가 불안하고 大亂世가 되면 가히 [충도를] 행할 것을 맹세한다. 또 따로 앞서 신미년 7월 22일에 크게 맹세하되 詩, 尙, 書, 禮, 傳, 倫을 이룰 것을 맹세하였는데 3년으로 하였다.
< 華嚴經寫經造成記 >
[해제]
1978년에 발견된 이 자료(14행 527자)는 天寶 14년(景德王 14년, 755)에 기록된 것으로서 그 내용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부분에는 화엄경을 제작한 經緯와 方法에 대해 기록하였고, 둘째 부분에는 七言으로 된 讚詩가 있으며, 마지막 부분에는 화엄경의 제작에 관계한 사람들의 人名錄이 있다. 첫 부분과 셋째 부분이 차자 표기 자료로 이용되는데 전자는 문장의 표기이며 후자는 고유명사의 표기이다.
이 조성기의 표기 특징은 첫째 국어의 어순에 따라 표기되었고, 둘째 形態部의 표기가 극히 정밀하게 이루어져 있으며, 셋째 그것의 표기에 새로운 차자 原理가 사용된 것이다. 이전의 자료에서 볼 수 없었던 ‘, , 乎, 如, 那, 只, 哉’ 등 형태부 표기의 차자가 보이는데 이들은 漢字의 원뜻과 관계없이 字音만을 借用한 것이다. 차자 표기의 제2 단계를 보이는 표기 원리인 것이다(차자 표기의 단계 및 새로운 차자 원리에 대해서는 안병희(1984) 참조).
[원문]
(전략)
成內法者9) 楮根中10) 香水散11) 生長令內12) 然後中 若13)楮皮脫那14)脫皮練那 紙作伯士那15) 經寫筆師那 經心匠那 佛菩薩像筆寫走使人那 菩薩戒授令16) 齊食17) 右諸人等 若大小便爲哉18) 若臥(/師)宿哉 若食喫哉爲者19) 香水用 沐浴令只但20) 作作處中 進在之21)
(중략)
經心作 佛菩薩像作時中 靑衣童子伎樂人等 除余22) 淳淨法者 上同之23)
經心內中24) 一收舍利25) 入內如
(후략)
[주석](각주)
9) 成內法者 : ‘이룬 방법은’의 뜻이다. 그런데 앞의 ‘經’을 여기에 연결시키는 경우도 있으나 앞에 나온 ‘成內願旨者’와 후대 이두의 ‘乎事’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10) 楮根中 : ‘楮根’은 ‘닥나무 뿌리’를 말한다. 李弘稙(1954)에서 漢文의 ‘中’과 다름을 이미 지적한 바 있는 ‘中’은 시간이나 공간 표시어에 연결되어 나타나서 ‘-에’로 풀이된다. 시간 표시어에 연결될 경우에 시간 표시어가 정밀한 날짜를 나타낼 경우에는 ‘中’이 나타나지 않는다. 天寶十七年戊戌中(葛項寺石塔記), 辛亥年二月卄六日(南山新城碑銘). 따라서 ‘경에, 즈음에’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이기문(1981)에 의하면 ‘中’의 이런 용법은 ‘之, 節’과 함께 고구려에서 기원한 것이다. <高句麗城壁石刻銘>의 ‘十二月中’과 <中原高句麗碑銘>의 ‘五月中’이 그 예이다. 신라 자료에서는 <丹陽赤城碑銘>와 <新羅村落文書> 등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한편 일본의 자료에서도 이러한 용법의 ‘中’이 발견되어 관심을 끈다. <稻荷山鐵劍銘>의 ‘辛亥年七月中記’, <法隆寺金堂釋迦三尊佛光背銘>의 ‘三月中’, <日本書記>의 ‘甲子七月中, 秋九月中’ 등의 ‘中’이 바로 이런 용법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고구려에서 신라와 일본으로 이어지는 이와 같은 ‘中’의 용법은 알타이 語系인 鮮卑族이 세운 北魏의 ‘中’의 용법과 관련되는 듯하다. 北魏에서는 ‘中’과 ‘別’이 이러한 특수한 용법으로 사용되었다.
11) 散 : ‘散’은 중세국어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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