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0. 들어가는 말 : 사막 수도사들의 삶, 훈련, 영성 : 그들은 사막으로 들어가야만 했는가?
1. 사막의 삶 : 훈련의 기쁨 – 불꽃이 되기
2. 육체의 훈련 – 탐식, 정욕, 탐심
3. 감정의 훈련 – 분노, 슬픔, 무기력
4. 생각의 훈련
5. 영성의 훈련
6. 공동체 훈련 – 사랑을 위하여
7. 나가는 말 : 우리가 들어가야 할 사막
1. 사막의 삶 : 훈련의 기쁨 – 불꽃이 되기
2. 육체의 훈련 – 탐식, 정욕, 탐심
3. 감정의 훈련 – 분노, 슬픔, 무기력
4. 생각의 훈련
5. 영성의 훈련
6. 공동체 훈련 – 사랑을 위하여
7. 나가는 말 : 우리가 들어가야 할 사막
본문내용
고 그것은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 그러면서 또 하나 숨길 수 없는 것이 바로 종전과는 새로운 차원의 ‘명예’라는 유혹이 나타난다. 겉으로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능력을 쓰는 것처럼 보여도 자기성찰을 하면 금방 드러나는 것이 제 이름을 위한
의도하지 않아도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면 은근히 즐기게 된다. 성숙하다면 명예를 얻은 사람에게 자기성찰은 모든 훈련의 목표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자기의 이름을 드러냄이었다는 아픈 고백을 하게 한다. 그 고백이 있고나서 추스를 수 있어야 아바가 될 수 있었다. 명예욕은 질투와 연루되어있다. 질투가 있기 때문에 명예를 즐기게 된다. 그러나 남과의 경쟁은 얼마나 인간의 삶을 황폐케 하는지 모른다. 인기의 추구는 수도원 내외적으로 갈등을 빚게 했다. 그것은 제도권의 교회와의 마찰도 있게 했다. 그래서 그들은 명예보단 차라리 모욕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들은 이것을 안 하기 위해 저것을 택하여 이것의 유혹을 밀어내는 방법을 취했다.
야만인이라고 불리우는 아바 바울과 그의 형제 디모데가 스케티스에 살고 있었다. 둘은 종종 논쟁을 하였다. 아바 바울이 물었다. “언제까지 우리가 이런 식으로 말싸움을 하고 있어야 하는가?” 그러자 디모데는 이렇게 제안하였다, “ 우리가 논쟁을 할 때 당신은 내 입장에서 주장하고 나는 당신의 입장에서 주장을 해 보면 어떻겠소?” 둘은 그것을 실천하면서 남은 삶을 살았다.
교만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금식하고, 부지런히 기도하며, 깊게 말씀을 보고, 육체적 훈련을 하는 그들은 당연히 다른 사람보다 인격이 더 성숙했고, 지혜롭고, 인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신유의 능력도 종종 얻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받았던 그들은 영적인 교만이라는 큰 유혹이 기다리고 있었다. 명예욕은 인기를 향해 사는 것을 말하지만 교만은 인기 속에서 영광의 주체가 자신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의가 드러났기 때문에 끝내 훈련의 공든 탑도 무너지고 이웃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경우도 생겼다. 늘 그렇듯 이것을 이기는 것은 극단적인 저것을 취하는 것이었다. 교만을 이기는 방법으로는 오직 “그리스도의 겸비의 방법으로” 싸우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모든 겸손의 원형이며 원천이다.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악을 이기고 승리하셨다. 아바 마토에스는 여러 가지 행동과 태도를 제시한다. 첫째,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인식할 것, 둘째, 남에 대한 판단을 멈추고 나를 남의 발 아래 둘 것. 넷째, 혀와 배를 통제할 것. 다섯째, 다른 사람과의 논의를 할 때 그 사람이 옳으면 “맞습니다” 하고 틀리면 “무슨 말씀 하시는지 알고 계시죠” 하며 논쟁을 피할 것을 제시한다. 겸손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깨닫게 하는 지혜이다. 그것은 나의 부분뿐 아닌 남도 해당된다. 상대방의 아픔과 처지를 이해하고, 그의 마음을 얻게 하는 힘을 가진 겸손이었다. 겸손은 사람을 얻게 한다.
5. 영성의 훈련
수사들의 모든 훈련은 다 전체 인격이 참여한 것이었다. 그것은 전체 인격을 증대시키는 것이 아닌 수정함으로 혹은 포기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춰나가는 것을 말하였다. 영성이란 특정하게 하나님과의 교제와 친교에서 얻게 되는 성령의 능력과 힘이지 사람이 스스로 수양해서 얻는 힘이나 단련을 얻는 우주적 기나 정신의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과 배타적 관계에서 얻는 영적 힘이며, 그 힘에 이끌려 사는 특정한 삶의 방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영성으로 산다”는 말은 그곳이 어디든 자신이 위치한 그곳에서 성령의 능력과 지혜로 하나님을 드러내며 산다는 것이다.
수도사들의 영성의 훈련이 육체와 정신, 생각의 훈련을 마친 후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네 가지 훈련을 삶으로 동시에 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사실 그것들은 모두 단계의 전후를 구분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육체로만 사는 날이 없고, 정신이나 생각으로만 사는 날이 없고, 영으로만 사는 날이 없기 때문이다.
영성 훈련의 방법으로는 집중적으로 기도와 성서 읽기에 관심을 두었다. 영성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영성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기도와 말씀을 중심으로 한 육체와 정신과 생각의 삶을 의미한다.
기도
평생토록 기도를 임무로 하며 사는 수도사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도가 어려운 일이라고 고백한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어서 육체의 호흡처럼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호흡이기에 해야 한다는 것은 어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또한 기도의 훈련을 했다고 해서 그 훈련이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보장하지도 않기 때문에, 또 하나님과의 교제의 깊이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기도는 늘 새롭게 갱신되어야 할 과제였다. 기도의 성공시간과 성과는 비례 하지만 단순한 시간과 성과는 정비례 그래프를 그리지 않는 것이다.
기도는 사람의 일이 아니다. 기도의 결과는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달려있다. 그것이 다른 훈련들과 더 구별되는 차이다. 그렇기에 기도는 이와 같은 정의들로 설명될 수 있다. 기도는 “주 예수여 도와주소서,” 하는 연약한 인간의 하나님께 대한 도움요청이다. 인간의 모든 능력의 한계 뒤에 있는 능력인 것이다. 또 기도는 ‘칼날 위에 서는’ 집중력이 요구되는, 전인적인 싸움의 순간이다. 최선을 다해서, 격정과 로기스모이들로부터 해방된 상태에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는 신학이다. “만약 당신이 신학자라면 당신은 참으로 기도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참으로 기도한다면 당신은 신학자이다” 실천지향적인 신학을 환기시켜주는 대목이다. 또한 기도는 하나님과의 일치의 장소이다. 신비주의, 하나님과의 일치를 목표로 하는 수도원운동의 신화적 성격을 미뤄보아 기도는 수도원 운동의 핵심적인 훈련이었다. 그것은 신앙을 인간의 언어적 사건에 붙들리지 않고 인간 실존의 깊이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 준다. 많은 수도사들은 기도에서 엑스타시-이성을 넘어 의식 세계 밖으로 나옴-와 하나님과 대면하는 ‘관상’을 느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기도는 무기다. 실제로 기도는 능력이 있다. 귀신을
의도하지 않아도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면 은근히 즐기게 된다. 성숙하다면 명예를 얻은 사람에게 자기성찰은 모든 훈련의 목표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자기의 이름을 드러냄이었다는 아픈 고백을 하게 한다. 그 고백이 있고나서 추스를 수 있어야 아바가 될 수 있었다. 명예욕은 질투와 연루되어있다. 질투가 있기 때문에 명예를 즐기게 된다. 그러나 남과의 경쟁은 얼마나 인간의 삶을 황폐케 하는지 모른다. 인기의 추구는 수도원 내외적으로 갈등을 빚게 했다. 그것은 제도권의 교회와의 마찰도 있게 했다. 그래서 그들은 명예보단 차라리 모욕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들은 이것을 안 하기 위해 저것을 택하여 이것의 유혹을 밀어내는 방법을 취했다.
야만인이라고 불리우는 아바 바울과 그의 형제 디모데가 스케티스에 살고 있었다. 둘은 종종 논쟁을 하였다. 아바 바울이 물었다. “언제까지 우리가 이런 식으로 말싸움을 하고 있어야 하는가?” 그러자 디모데는 이렇게 제안하였다, “ 우리가 논쟁을 할 때 당신은 내 입장에서 주장하고 나는 당신의 입장에서 주장을 해 보면 어떻겠소?” 둘은 그것을 실천하면서 남은 삶을 살았다.
교만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금식하고, 부지런히 기도하며, 깊게 말씀을 보고, 육체적 훈련을 하는 그들은 당연히 다른 사람보다 인격이 더 성숙했고, 지혜롭고, 인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신유의 능력도 종종 얻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받았던 그들은 영적인 교만이라는 큰 유혹이 기다리고 있었다. 명예욕은 인기를 향해 사는 것을 말하지만 교만은 인기 속에서 영광의 주체가 자신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의가 드러났기 때문에 끝내 훈련의 공든 탑도 무너지고 이웃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경우도 생겼다. 늘 그렇듯 이것을 이기는 것은 극단적인 저것을 취하는 것이었다. 교만을 이기는 방법으로는 오직 “그리스도의 겸비의 방법으로” 싸우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모든 겸손의 원형이며 원천이다.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악을 이기고 승리하셨다. 아바 마토에스는 여러 가지 행동과 태도를 제시한다. 첫째,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인식할 것, 둘째, 남에 대한 판단을 멈추고 나를 남의 발 아래 둘 것. 넷째, 혀와 배를 통제할 것. 다섯째, 다른 사람과의 논의를 할 때 그 사람이 옳으면 “맞습니다” 하고 틀리면 “무슨 말씀 하시는지 알고 계시죠” 하며 논쟁을 피할 것을 제시한다. 겸손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깨닫게 하는 지혜이다. 그것은 나의 부분뿐 아닌 남도 해당된다. 상대방의 아픔과 처지를 이해하고, 그의 마음을 얻게 하는 힘을 가진 겸손이었다. 겸손은 사람을 얻게 한다.
5. 영성의 훈련
수사들의 모든 훈련은 다 전체 인격이 참여한 것이었다. 그것은 전체 인격을 증대시키는 것이 아닌 수정함으로 혹은 포기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춰나가는 것을 말하였다. 영성이란 특정하게 하나님과의 교제와 친교에서 얻게 되는 성령의 능력과 힘이지 사람이 스스로 수양해서 얻는 힘이나 단련을 얻는 우주적 기나 정신의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과 배타적 관계에서 얻는 영적 힘이며, 그 힘에 이끌려 사는 특정한 삶의 방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영성으로 산다”는 말은 그곳이 어디든 자신이 위치한 그곳에서 성령의 능력과 지혜로 하나님을 드러내며 산다는 것이다.
수도사들의 영성의 훈련이 육체와 정신, 생각의 훈련을 마친 후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네 가지 훈련을 삶으로 동시에 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사실 그것들은 모두 단계의 전후를 구분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육체로만 사는 날이 없고, 정신이나 생각으로만 사는 날이 없고, 영으로만 사는 날이 없기 때문이다.
영성 훈련의 방법으로는 집중적으로 기도와 성서 읽기에 관심을 두었다. 영성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영성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기도와 말씀을 중심으로 한 육체와 정신과 생각의 삶을 의미한다.
기도
평생토록 기도를 임무로 하며 사는 수도사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도가 어려운 일이라고 고백한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어서 육체의 호흡처럼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호흡이기에 해야 한다는 것은 어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또한 기도의 훈련을 했다고 해서 그 훈련이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보장하지도 않기 때문에, 또 하나님과의 교제의 깊이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기도는 늘 새롭게 갱신되어야 할 과제였다. 기도의 성공시간과 성과는 비례 하지만 단순한 시간과 성과는 정비례 그래프를 그리지 않는 것이다.
기도는 사람의 일이 아니다. 기도의 결과는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달려있다. 그것이 다른 훈련들과 더 구별되는 차이다. 그렇기에 기도는 이와 같은 정의들로 설명될 수 있다. 기도는 “주 예수여 도와주소서,” 하는 연약한 인간의 하나님께 대한 도움요청이다. 인간의 모든 능력의 한계 뒤에 있는 능력인 것이다. 또 기도는 ‘칼날 위에 서는’ 집중력이 요구되는, 전인적인 싸움의 순간이다. 최선을 다해서, 격정과 로기스모이들로부터 해방된 상태에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는 신학이다. “만약 당신이 신학자라면 당신은 참으로 기도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참으로 기도한다면 당신은 신학자이다” 실천지향적인 신학을 환기시켜주는 대목이다. 또한 기도는 하나님과의 일치의 장소이다. 신비주의, 하나님과의 일치를 목표로 하는 수도원운동의 신화적 성격을 미뤄보아 기도는 수도원 운동의 핵심적인 훈련이었다. 그것은 신앙을 인간의 언어적 사건에 붙들리지 않고 인간 실존의 깊이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 준다. 많은 수도사들은 기도에서 엑스타시-이성을 넘어 의식 세계 밖으로 나옴-와 하나님과 대면하는 ‘관상’을 느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기도는 무기다. 실제로 기도는 능력이 있다. 귀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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