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레포트 주제인 금동대향로의 채택과정
2. 금동대향로 발견당시의 상황 및 배경
3. 금동대향로의 용도
4. 금동 대향로의 전반적인 모습
5. 각 부분별로 알아 본 금동대향로의 특징
6. 금동대향로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입장
7. 결론
2. 금동대향로 발견당시의 상황 및 배경
3. 금동대향로의 용도
4. 금동 대향로의 전반적인 모습
5. 각 부분별로 알아 본 금동대향로의 특징
6. 금동대향로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입장
7. 결론
본문내용
흥분했었다. 그러나 7년 여가 흐른 지금 금동대향로가 정말 백제 것인지에 대한 의문조차도 여전히 풀리지않고 있다. 중국학계 일부에선 향로모양이 중국 박산로와 비슷하다며 중국 남조 제품이란 주장이 계속 나오고, 국내에서도 일부 수긍하는 이들이 없지않다. 그럼에도 학계는 의문을 잠재울 명쾌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문양양식 등에 대한 비교연구 말고는 제작배경을 파고든 성과가 없었던 탓이다.
한겨레 | 노형석 기자 | 2001.08.25
금동대향로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 보면서 그동안 우리가 단순히 백제의 유물이라고만 생각해 왔었던 금동대향로가 그 이면에는 많은 반론들을 있다는, 다소 생소한 기사를 스크랩해보았다. 금동대향로에 대한 제작배경 및 어느 문화의 영향을 받았는가에 대하여 현재까지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는 것을 위의 스크랩한 기사를 보고 알 수 있었다. 또‘백제금동대향로 (고대 동북아의 정신세계를 찾아서)’라는 책에서도 현재까지 알고 있었던 지식과는 현격하게 다른 반론을 제시하였다.그래서 각기 다른 학계에서의 주장들을 간단하게 나마 정리해 보았다.
(1) 불교적 측면에서의 금동대향로
5단(段)으로 구성된 연꽃에 인물과 동물상 등이 부조돼 있는 향로 몸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연화화생(蓮華化生)’의 도상을 나타낸다. 노신에 3단으로 장식된 연꽃이 연화환생의 뜻을 담고 있어서 이 향로의 불교적 성격을 말해준다는 것이 학계, 특히 불교미술사학계의 중론이다. 그러한 주장은 백제가 왕실을 통해 불교를 공식적으로 수용한 후 ‘마치 파발마를 달려 왕명을 전하는 것처럼 급속히 파급’되었으며, 향로가 발견된 지점에서 불과 30m 떨어진 사찰터에서 성왕의 아들인 창왕(즉 위덕왕) 13년(567년)에 정해공주가 사리를 바쳤다는 사리감 명문이 나온 것 등을 근거로 하고 있다.
(2) 도교적 측면에서의 금동대향로
(3) 기타 다른 의견들
대향로의 세부 양식에서도 고유의 수렵도가 양각된 대향로만의 독특한 상징체계는 형식상 중국 박산향로와 연결되지만 실제로는 북방수렵문화가 불교를 압도하는 백제문화의 근간이었음을 암시한다고 풀이한다. 예를 들어, 뚜껑의 산악수렵도, 완함 따위 서역악기 연주모습, 봉황·용 등 장식은 수렵신화의 모티브가 깃든 고구려 고분벽화 도상과 비슷하며, 특히 향로 테두리의 떠다니는 구름문양(유운문)을 경계로 천상·수상계에 배치된 각종 인물·동물상 등은 만물에 신격을 부여하는 샤머니즘적 세계관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덧붙여 대향로 몸체의 연꽃은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고대 동북아에서 태양을 상징하는 태양꽃으로 여겨졌다. 하부의 받침용은 물의 신으로서 천상과 지상 사이를 오가는 존재라고 풀이했다. 아울러 동북아 샤머니즘과의 관련에 주목하였으며 부여 능산리 유적지의 ‘절터’ 로 알려졌던 건물터를 백제 왕실의 조상신과 각종 신령을 모신 '신궁(神宮)' 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샤머니즘적 요소 이외에 중국 중심의 실크로드 이외의 수많은 동서 교역로를 통해 서역의 향료가 중국에 전해졌다는 가설에서 도교의 신선사상과의 관련설도 부정하는 주장도 있다.
7. 결론
현재 금동대향로에 대한 명확한 시대적 배경이라든지 어느 문화의 영향을 받고 어느 사상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가는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한 예로‘백제금동대향로 (고대 동북아의 정신세계를 찾아서)’를 펴낸 재야 사학자 서정록(46)씨는 이 책에서 향로가 처음 발굴됐을 때 학계는 흥분한 나머지 몇 가지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다고 주장한다. 그 오류는 다음과 같다.
▲ 향로에 장식된 연꽃만으로 불교의식에 사용된 공양구이며, 연화화생 사상을 담고 있다고 단정 한 점
▲ 중국의 박산향로가 신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백제대향로의 산악도 또한 신선사 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한 점
▲ 제작 시기도 학계에서는 불교와 연관지어 불교가 융성했던 무왕(600∼641) 재위중이나 목탑
지에서 발굴된 사리감의 명문을 근거로 6세기 후반으로 보고 있으나 이것도 향로를 불교적 유
물로 단정한 뒤 내린 추측에 불과하다는 점
이 같은 오류들을 지적하면서 결론적으로 백제대향로는 백제인들의 세계관뿐 아니라 고대 동북아인들의 세계관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하며, 고구려 고분벽화와는 서로 보완적인 관계 에 있다고 할 만큼 문화적 연속성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다양하고 복잡한 금동대향로에 관한 의견들을 접해 보면서 각개 구성요소에 대한 이해와 그를 바탕으로 한 종합적인 판단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의문점을 갖게 되었다. 이상의 몇 가지 주요 구성요소에 대한 분석을 통해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백제금동대향로야말로 백제인들의 높은 정신세계와 진취성, 그리고 독창적인 금속공예술을 입증해줄뿐만 아니라, 남들과의 어우름에서 빚어지는 향훈을 듬뿍 풍기고 있다. 아직 어떤 결론을 내리기 이르나, 분명한 것은 입체적인 환조(봉황)나 반입체적인 부조(노신), 공간적인 투조(용받침) 같은 조각의 모든 기법을 완벽하게 소화한 공예미술의 결정체이고, 신성사상과 불교사상뿐만 아니라 우리 겨레의 전통문화와 외래문화를 잘 융합시킨 걸작이라는 사실이다.
백제대향로가 기존의 유물과 달리 과거 이 땅에 살았던 선조들의 정신세계를 새롭게 열어줄 열쇠가 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것도 사실이다. 입만 열면 5,000년의 역사를 주장하면서도 막상 뒤로는 정체성 문제로 고심했던 우리이고 보면 혹시 유·불·선(儒佛仙)을 넘어선 고대 동북아인들의 정신세계를 밝혀줄 그 무언가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자못 컸던 것이다. 그러나 발굴된 지 7년이 지나도록 백제대향로는 여전히 안개 속에 잠겨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향로를 ‘언제 누가 어떤 목적으로 제작했는가’는 물론이고, 대향로의 구성이나 여러 상징체계들이 지닌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물음표로 남아 있다.
물론 현재로서는 문제의 대향로가 백제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한 나라의 대표급 문화재에 대해 이론적으로 정리된 견해의 제시 없이 심정적으로만 우리의 선조가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딘가 부족하다.
한겨레 | 노형석 기자 | 2001.08.25
금동대향로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 보면서 그동안 우리가 단순히 백제의 유물이라고만 생각해 왔었던 금동대향로가 그 이면에는 많은 반론들을 있다는, 다소 생소한 기사를 스크랩해보았다. 금동대향로에 대한 제작배경 및 어느 문화의 영향을 받았는가에 대하여 현재까지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는 것을 위의 스크랩한 기사를 보고 알 수 있었다. 또‘백제금동대향로 (고대 동북아의 정신세계를 찾아서)’라는 책에서도 현재까지 알고 있었던 지식과는 현격하게 다른 반론을 제시하였다.그래서 각기 다른 학계에서의 주장들을 간단하게 나마 정리해 보았다.
(1) 불교적 측면에서의 금동대향로
5단(段)으로 구성된 연꽃에 인물과 동물상 등이 부조돼 있는 향로 몸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연화화생(蓮華化生)’의 도상을 나타낸다. 노신에 3단으로 장식된 연꽃이 연화환생의 뜻을 담고 있어서 이 향로의 불교적 성격을 말해준다는 것이 학계, 특히 불교미술사학계의 중론이다. 그러한 주장은 백제가 왕실을 통해 불교를 공식적으로 수용한 후 ‘마치 파발마를 달려 왕명을 전하는 것처럼 급속히 파급’되었으며, 향로가 발견된 지점에서 불과 30m 떨어진 사찰터에서 성왕의 아들인 창왕(즉 위덕왕) 13년(567년)에 정해공주가 사리를 바쳤다는 사리감 명문이 나온 것 등을 근거로 하고 있다.
(2) 도교적 측면에서의 금동대향로
(3) 기타 다른 의견들
대향로의 세부 양식에서도 고유의 수렵도가 양각된 대향로만의 독특한 상징체계는 형식상 중국 박산향로와 연결되지만 실제로는 북방수렵문화가 불교를 압도하는 백제문화의 근간이었음을 암시한다고 풀이한다. 예를 들어, 뚜껑의 산악수렵도, 완함 따위 서역악기 연주모습, 봉황·용 등 장식은 수렵신화의 모티브가 깃든 고구려 고분벽화 도상과 비슷하며, 특히 향로 테두리의 떠다니는 구름문양(유운문)을 경계로 천상·수상계에 배치된 각종 인물·동물상 등은 만물에 신격을 부여하는 샤머니즘적 세계관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덧붙여 대향로 몸체의 연꽃은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고대 동북아에서 태양을 상징하는 태양꽃으로 여겨졌다. 하부의 받침용은 물의 신으로서 천상과 지상 사이를 오가는 존재라고 풀이했다. 아울러 동북아 샤머니즘과의 관련에 주목하였으며 부여 능산리 유적지의 ‘절터’ 로 알려졌던 건물터를 백제 왕실의 조상신과 각종 신령을 모신 '신궁(神宮)' 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샤머니즘적 요소 이외에 중국 중심의 실크로드 이외의 수많은 동서 교역로를 통해 서역의 향료가 중국에 전해졌다는 가설에서 도교의 신선사상과의 관련설도 부정하는 주장도 있다.
7. 결론
현재 금동대향로에 대한 명확한 시대적 배경이라든지 어느 문화의 영향을 받고 어느 사상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가는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한 예로‘백제금동대향로 (고대 동북아의 정신세계를 찾아서)’를 펴낸 재야 사학자 서정록(46)씨는 이 책에서 향로가 처음 발굴됐을 때 학계는 흥분한 나머지 몇 가지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다고 주장한다. 그 오류는 다음과 같다.
▲ 향로에 장식된 연꽃만으로 불교의식에 사용된 공양구이며, 연화화생 사상을 담고 있다고 단정 한 점
▲ 중국의 박산향로가 신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백제대향로의 산악도 또한 신선사 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한 점
▲ 제작 시기도 학계에서는 불교와 연관지어 불교가 융성했던 무왕(600∼641) 재위중이나 목탑
지에서 발굴된 사리감의 명문을 근거로 6세기 후반으로 보고 있으나 이것도 향로를 불교적 유
물로 단정한 뒤 내린 추측에 불과하다는 점
이 같은 오류들을 지적하면서 결론적으로 백제대향로는 백제인들의 세계관뿐 아니라 고대 동북아인들의 세계관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하며, 고구려 고분벽화와는 서로 보완적인 관계 에 있다고 할 만큼 문화적 연속성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다양하고 복잡한 금동대향로에 관한 의견들을 접해 보면서 각개 구성요소에 대한 이해와 그를 바탕으로 한 종합적인 판단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의문점을 갖게 되었다. 이상의 몇 가지 주요 구성요소에 대한 분석을 통해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백제금동대향로야말로 백제인들의 높은 정신세계와 진취성, 그리고 독창적인 금속공예술을 입증해줄뿐만 아니라, 남들과의 어우름에서 빚어지는 향훈을 듬뿍 풍기고 있다. 아직 어떤 결론을 내리기 이르나, 분명한 것은 입체적인 환조(봉황)나 반입체적인 부조(노신), 공간적인 투조(용받침) 같은 조각의 모든 기법을 완벽하게 소화한 공예미술의 결정체이고, 신성사상과 불교사상뿐만 아니라 우리 겨레의 전통문화와 외래문화를 잘 융합시킨 걸작이라는 사실이다.
백제대향로가 기존의 유물과 달리 과거 이 땅에 살았던 선조들의 정신세계를 새롭게 열어줄 열쇠가 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것도 사실이다. 입만 열면 5,000년의 역사를 주장하면서도 막상 뒤로는 정체성 문제로 고심했던 우리이고 보면 혹시 유·불·선(儒佛仙)을 넘어선 고대 동북아인들의 정신세계를 밝혀줄 그 무언가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자못 컸던 것이다. 그러나 발굴된 지 7년이 지나도록 백제대향로는 여전히 안개 속에 잠겨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향로를 ‘언제 누가 어떤 목적으로 제작했는가’는 물론이고, 대향로의 구성이나 여러 상징체계들이 지닌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물음표로 남아 있다.
물론 현재로서는 문제의 대향로가 백제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한 나라의 대표급 문화재에 대해 이론적으로 정리된 견해의 제시 없이 심정적으로만 우리의 선조가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딘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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