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커피의 기원
1. 에디오피아 발견설
2. 오마의 발견설
Ⅲ. 커피의 발전
Ⅳ. 커피의 재배
Ⅴ. 커피전문점 던킨도너츠
1. 규모
2. 브랜드 관련
3. 제품 관련
4. 쿠폰
5. 점포 운영시간
6. 해피포인트 카드의 회원주소 변경 및 수정
7. 현금과 해피포인트 카드 누적점수와 동시 사용이 가능한가
8. 직원채용
9. 해피포인트 카드는 어떻게 사용하나
10. 해피포인트 카드 신규발급
11. 던킨 도너츠 교육시스템
12. 저녁에 판매하고 남은 도너츠는 어떻게 되는가
13. 가맹점을 하게되면 로열티나 마진율은 어떻게 되는가
14. 마케팅자료
15. 던킨제품을 저렴하게 먹으려면
16. 던킨에서 가장 인기있는 제품
17. 던킨역삼점이란
18. 던킨음료에 관한 질문
Ⅵ. 커피전문점 스타벅스
1. 스타벅스 마케팅 제휴
2. 스타벅스, 중국시장 공략위해 '녹차향 커피'
3. 스타벅스 - 커피숍이 1층 고집 금연도 역발상
Ⅶ. 커피전문점 다빈치커피
1. 홍보전략 강화
2. 확실한 Take out coffee 서비스
3. 가족 같은 분위기 연출
4. 덤 서비스
Ⅷ. 결론
참고문헌
Ⅱ. 커피의 기원
1. 에디오피아 발견설
2. 오마의 발견설
Ⅲ. 커피의 발전
Ⅳ. 커피의 재배
Ⅴ. 커피전문점 던킨도너츠
1. 규모
2. 브랜드 관련
3. 제품 관련
4. 쿠폰
5. 점포 운영시간
6. 해피포인트 카드의 회원주소 변경 및 수정
7. 현금과 해피포인트 카드 누적점수와 동시 사용이 가능한가
8. 직원채용
9. 해피포인트 카드는 어떻게 사용하나
10. 해피포인트 카드 신규발급
11. 던킨 도너츠 교육시스템
12. 저녁에 판매하고 남은 도너츠는 어떻게 되는가
13. 가맹점을 하게되면 로열티나 마진율은 어떻게 되는가
14. 마케팅자료
15. 던킨제품을 저렴하게 먹으려면
16. 던킨에서 가장 인기있는 제품
17. 던킨역삼점이란
18. 던킨음료에 관한 질문
Ⅵ. 커피전문점 스타벅스
1. 스타벅스 마케팅 제휴
2. 스타벅스, 중국시장 공략위해 '녹차향 커피'
3. 스타벅스 - 커피숍이 1층 고집 금연도 역발상
Ⅶ. 커피전문점 다빈치커피
1. 홍보전략 강화
2. 확실한 Take out coffee 서비스
3. 가족 같은 분위기 연출
4. 덤 서비스
Ⅷ.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사적으로 특권층에 의해 향후되던 커피가 이제 일반대중의 기호식품으로 자리한 지금, 한 잔의 커피는 친구와, 연인과, 그리고 비즈니스맨 등 사회전반에 걸쳐 필수적인 음료로 각광받고 있음은 틀림이 없다.
한 잔의 커피가 있는 공간-그곳은 어쩌면 현대인의 영원한 휴식처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으로 들어온 시기는 대략 1890년 전후로 추정된다.
이는 예멘의 양치기가 커피를 처음 발견한 때로부터 1000년쯤 지난 뒤의 일이며, 네덜란드인들에 의해 이웃 일본에 커피가 상륙한 지 170년쯤이 지난후의 일이다. 커피가 우리나라게 들어온 경로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믿을만한 얘기로는 1895년에 을미사변이 일어나 고종임금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해던, 이른바 아관파천 때에 러시아 공사 웨베르가 고종과 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커피를 권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맛을 들인 고종은 환궁후에도 덕수궁에 정관헌이라는 서양식 집을 짓고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곤 했다. 그 무럽 웨베르의 미인계 전략에 따라 고종의 커피시중을 들던 독일여인 손탁은 옛 이화여고 본관이 들어서 있던 서울 중구 정동 29번지의 왕실 소유 땅1백84평을 하사받아 이곳에 2층 양옥을 세우고 손탁호텔 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 손탁호텔 에 다방이 있었는데, 다방을 꾸며 커피를 판 곳으로는 이곳이 최초로 꼽힌다.
러시아를 통해 커피가 들어온 것과 함께 일본을 통해 들어온 경로도 중요한 한 갈래이다. 한일합방 이후로 이 땅에 몰려오기 시작한 일본인들은 그들의 찻집양식인 깃사뗀 을 서울 명동 언저리인 진고개에다 옮겨놓고 선을 보이면서 커피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다방문화의 대중화는 아직까지 시기상조였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문화의 접목이 그리 쉽사리 이루어질 일도 아니었다. 개화기 당시의 서울 시내 다방은 명동과 충무로, 소공동 일대를 중심으로 몰려있었고, 중로 일대에 한두 군데 있었을 뿐, 그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드나드는 손님들도 지체높은 관료층이거나 개화된 멋쟁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일반대중과는 아직 거리가 먼 곳이었다. 1927년 우리나라 영화감독 이경순씨가 차린 카카듀 다방이 첫선을 보였는가 하면, 이즈음 일체의 문화정책에 의해 음악다방도 생겨나기 시작했다.8.15해방과 더불어 다방은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과 리스트의 헝가리 무곡 등을 힘차게 들려주어 부흥을 위한 새로운 기운을 찾으려는 공간으로서 한몫을 다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무위도식하는 한량들이나 실업자들이 모이는 곳이 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목가적 다방을 차리거나 이러한 다방에 드나들면서 이 땅의 예술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50년의 6.25 사변은 커피의 대중화를 본격적으로 열어주었는데,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불법 외제품이 그 주역을 맡는 아이러니가 연출됐다. 결국 시중의 커피는 암거래로 인해 막대한 외하가 유출되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니, 정부는 1960년대 말 연간 780만달러 규모의 외화손실방지 및 세수결함을 메꾸기 위해 국내 커피메이커의 설립을 승인, 1970년 9월 동서식품이 국내최초로 레귤러커피를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커피시장의 유통질서 또한 문란하였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커피 구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상당히 고가 상품이었고, 또한 다방들마다 개성있는 커피개발이 유행하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나라의 커피문화는 제품의 유통에서 조리에 이르기까지 변칙과 불법이 난무하는 가운데 파행적인 대중화 시대를 걸어왔다고 할 것이다.
1970년대 말까지 평범한 도시인들의 사업장이나 휴식공간으로 자리잡았던 다방 중심의 커피문화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됐다. 즉 빠른 경제성장에 따라 생활양식과 문화양식이 급격히 변화하면서, 커피소비구조가 다양화되고 일반화되었는가 하면, 인스턴트커피의 대량공급으로 가정의 실생활에 깊숙이 침투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커피자판기의 등장과 더불어 언제 어디서나 마실 수 있는 대중적 음료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결국 숭늉문화에 익숙해 있던 우리나라에 커피가 선을 보인 지 1백년이 넘게 흐르면서 다방 중심으로 일관해 왔던 우리 커피문화는 격동의 역사속에서 암울했던 민족의 한을 달래주던 지기로, 삶과 예술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동반자로, 그리고 때로는 동고동락의 희비속에서도 변함없이 감싸주던 연인으로서 우리에게 한층 가까이 와 있는 것이다.
Ⅱ. 커피의 기원
커피의 기원에 대한 설은 크게 두 가지이다. 에디오피아 고원 발견 설과 오마의 발견 설인데 에디오피아 발견 설이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 에디오피아 발견설
에디오피아 고원 아비시니아에 전해지는 이야기로, 양치기 칼디가 양떼들이 흥분하여 뛰어 노는 것을 보고 그 원인을 조사하여 본 결과 목장근처의 나무에서 빨간 열매를 따먹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이 사실을 수도원 원장에게 알려 열매를 따서 끓여 먹어보니 전신에 기운이 솟는 것을 느꼈고 다른 제자들도 같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후 그 소문이 각지에 퍼져 동양의 많은 나라들에게 전파되고 애용되어 오늘에 이르렀다는 설이다.
2. 오마의 발견설
아라비아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로, 오마는 아라비아 모카의 수호성주 세크칼디의 제자로 중병에 시달리는 성주의 딸을 치료한 후 그 공주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발각되어 오자브라는 지방으로 유배당하는데, 그 곳에서 우연히 커피를 발견한다. 그 후 오마는 이를 의약제로 사용하여 큰 효과를 발휘, 이로 인하여 면죄를 받아 고향에 돌아간 후 커피를 널리 전파하였다는 설이다.
Ⅲ. 커피의 발전
당시 커피는 단순한 기호 식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약이기도 하였고 종교적으로는 잠을 쫓는 신령한 음식이었다. 이 까닭에 이슬람교 세력은 이 커피 종자가 유출되는 것을 막으려 하였다. 그 일환으로서 커피열매를 먹는 대신 커피 씨앗을 볶아서 그것을 갈아 마시는 방법이 고안되었다. 11세기 이슬람 세력이 약화되고 오스만 트루크 왕국이 세워지면서 사원에 한정되던 커피는 일반 민중에게까지 널리 애용되었다. 그 결과, 16세기경 터키에서는 호화로운 커피
한 잔의 커피가 있는 공간-그곳은 어쩌면 현대인의 영원한 휴식처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으로 들어온 시기는 대략 1890년 전후로 추정된다.
이는 예멘의 양치기가 커피를 처음 발견한 때로부터 1000년쯤 지난 뒤의 일이며, 네덜란드인들에 의해 이웃 일본에 커피가 상륙한 지 170년쯤이 지난후의 일이다. 커피가 우리나라게 들어온 경로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믿을만한 얘기로는 1895년에 을미사변이 일어나 고종임금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해던, 이른바 아관파천 때에 러시아 공사 웨베르가 고종과 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커피를 권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맛을 들인 고종은 환궁후에도 덕수궁에 정관헌이라는 서양식 집을 짓고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곤 했다. 그 무럽 웨베르의 미인계 전략에 따라 고종의 커피시중을 들던 독일여인 손탁은 옛 이화여고 본관이 들어서 있던 서울 중구 정동 29번지의 왕실 소유 땅1백84평을 하사받아 이곳에 2층 양옥을 세우고 손탁호텔 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 손탁호텔 에 다방이 있었는데, 다방을 꾸며 커피를 판 곳으로는 이곳이 최초로 꼽힌다.
러시아를 통해 커피가 들어온 것과 함께 일본을 통해 들어온 경로도 중요한 한 갈래이다. 한일합방 이후로 이 땅에 몰려오기 시작한 일본인들은 그들의 찻집양식인 깃사뗀 을 서울 명동 언저리인 진고개에다 옮겨놓고 선을 보이면서 커피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다방문화의 대중화는 아직까지 시기상조였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문화의 접목이 그리 쉽사리 이루어질 일도 아니었다. 개화기 당시의 서울 시내 다방은 명동과 충무로, 소공동 일대를 중심으로 몰려있었고, 중로 일대에 한두 군데 있었을 뿐, 그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드나드는 손님들도 지체높은 관료층이거나 개화된 멋쟁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일반대중과는 아직 거리가 먼 곳이었다. 1927년 우리나라 영화감독 이경순씨가 차린 카카듀 다방이 첫선을 보였는가 하면, 이즈음 일체의 문화정책에 의해 음악다방도 생겨나기 시작했다.8.15해방과 더불어 다방은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과 리스트의 헝가리 무곡 등을 힘차게 들려주어 부흥을 위한 새로운 기운을 찾으려는 공간으로서 한몫을 다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무위도식하는 한량들이나 실업자들이 모이는 곳이 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목가적 다방을 차리거나 이러한 다방에 드나들면서 이 땅의 예술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50년의 6.25 사변은 커피의 대중화를 본격적으로 열어주었는데,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불법 외제품이 그 주역을 맡는 아이러니가 연출됐다. 결국 시중의 커피는 암거래로 인해 막대한 외하가 유출되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니, 정부는 1960년대 말 연간 780만달러 규모의 외화손실방지 및 세수결함을 메꾸기 위해 국내 커피메이커의 설립을 승인, 1970년 9월 동서식품이 국내최초로 레귤러커피를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커피시장의 유통질서 또한 문란하였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커피 구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상당히 고가 상품이었고, 또한 다방들마다 개성있는 커피개발이 유행하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나라의 커피문화는 제품의 유통에서 조리에 이르기까지 변칙과 불법이 난무하는 가운데 파행적인 대중화 시대를 걸어왔다고 할 것이다.
1970년대 말까지 평범한 도시인들의 사업장이나 휴식공간으로 자리잡았던 다방 중심의 커피문화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됐다. 즉 빠른 경제성장에 따라 생활양식과 문화양식이 급격히 변화하면서, 커피소비구조가 다양화되고 일반화되었는가 하면, 인스턴트커피의 대량공급으로 가정의 실생활에 깊숙이 침투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커피자판기의 등장과 더불어 언제 어디서나 마실 수 있는 대중적 음료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결국 숭늉문화에 익숙해 있던 우리나라에 커피가 선을 보인 지 1백년이 넘게 흐르면서 다방 중심으로 일관해 왔던 우리 커피문화는 격동의 역사속에서 암울했던 민족의 한을 달래주던 지기로, 삶과 예술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동반자로, 그리고 때로는 동고동락의 희비속에서도 변함없이 감싸주던 연인으로서 우리에게 한층 가까이 와 있는 것이다.
Ⅱ. 커피의 기원
커피의 기원에 대한 설은 크게 두 가지이다. 에디오피아 고원 발견 설과 오마의 발견 설인데 에디오피아 발견 설이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 에디오피아 발견설
에디오피아 고원 아비시니아에 전해지는 이야기로, 양치기 칼디가 양떼들이 흥분하여 뛰어 노는 것을 보고 그 원인을 조사하여 본 결과 목장근처의 나무에서 빨간 열매를 따먹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이 사실을 수도원 원장에게 알려 열매를 따서 끓여 먹어보니 전신에 기운이 솟는 것을 느꼈고 다른 제자들도 같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후 그 소문이 각지에 퍼져 동양의 많은 나라들에게 전파되고 애용되어 오늘에 이르렀다는 설이다.
2. 오마의 발견설
아라비아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로, 오마는 아라비아 모카의 수호성주 세크칼디의 제자로 중병에 시달리는 성주의 딸을 치료한 후 그 공주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발각되어 오자브라는 지방으로 유배당하는데, 그 곳에서 우연히 커피를 발견한다. 그 후 오마는 이를 의약제로 사용하여 큰 효과를 발휘, 이로 인하여 면죄를 받아 고향에 돌아간 후 커피를 널리 전파하였다는 설이다.
Ⅲ. 커피의 발전
당시 커피는 단순한 기호 식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약이기도 하였고 종교적으로는 잠을 쫓는 신령한 음식이었다. 이 까닭에 이슬람교 세력은 이 커피 종자가 유출되는 것을 막으려 하였다. 그 일환으로서 커피열매를 먹는 대신 커피 씨앗을 볶아서 그것을 갈아 마시는 방법이 고안되었다. 11세기 이슬람 세력이 약화되고 오스만 트루크 왕국이 세워지면서 사원에 한정되던 커피는 일반 민중에게까지 널리 애용되었다. 그 결과, 16세기경 터키에서는 호화로운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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