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시기 유행가에 나타난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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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식민지시기 유행가에 나타난 ‘고향’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대에 축음기를 소유하고 음반을 듣는다거나 라디오를 통해 방송을 청취한다는 것은 상류층에서만 가능한 일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그 매체들은 대중적이라 할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나라에서 명실공히 대중가요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1960년대의 유행가부터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일제시대의 축음기와 라디오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분명히 퍼스널 커뮤니케이션은 아니며 그 매체는 지금의 대중매체와 동일선상에 있는 매체들이다. 또한 축음기와 라디오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당시의 유행가를 수용하고 있었다.
축음기와 라디오가 보편적이지 않았던 이 시기에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유행가가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은 수용자 전부가 직접 자기 소유의 매체를 통해 노래를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2차적인 전달자를 통해 전달받았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2차적인 전달자로는 유랑극단의 막간 가수라든가 혹은 이러한 신문물에 빨리 접할 수 있었던 서울 유학생들을 들 수 있다. 또 축음기를 듣는 경우도, 축음기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마을 장날 약장사들이 가지고 다니며 틀어주는 것을 듣는다거나 아니면 동네 부잣집 마당에 모여 앉아 한 두곡씩 듣는 식이었다. 이럴 경우에 이들의 취향은 곡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나 2차적인 전달자에 의해 상당히 많이 좌우되는데, 이때 이러한 2차적인 전달자나 축음기, 라디오 소유자는 대중가요 수용자의 취향을 조성해 나가는 오피니언 리더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축음기 소유자나 2차적 전달자가 오피니언 리더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이 시대 대중가요의 한 특징이 될 것이다. 김창남이영미박윤우김해식, 「일제시대의 대중가요」, 노래1집, 실천문학사, 1988, pp86~88 참조.
이러한 사실은 이 당시의 유행가가 서민들에게 어떻게 수용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신민요와 유행가가 양립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이후에 소위 유행가로 대변되던 ‘트로트’가 서민들에게 점점 흡수되기 시작하면서 신민요가 점점 트로트에 밀려나가게 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4. 流行歌에 나타난 ‘고향’
실향과 방랑은 사적 제재에 갇힌 대중가요의 관행적인 제재인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과는 달리, 유독 이 일제시대에 집중적으로 드러나는 독특한 제재로서, 일제시대 서민들의 애환과 고통스러운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 당시의 노래에 나타난 ‘고향’에 대해 다음 세 편의 곡에서 살펴보자.
荒城의跡
一.황성(荒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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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3.09.29
  • 저작시기2013.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8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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