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당오대사연의 59회 60회 한문 한글번역 - 59.곽위위중가황포(郭威爲衆加黃袍):곽위는 대중에의해 황제상징의 황색 도포를 입혀졌다 & 60.주공제선위송조(周恭帝禪位宋祖):주나라 공제는 송나라 태조에게 황제 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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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잔당오대사연의 59회 60회 한문 한글번역 - 59.곽위위중가황포(郭威爲衆加黃袍):곽위는 대중에의해 황제상징의 황색 도포를 입혀졌다 & 60.주공제선위송조(周恭帝禪位宋祖):주나라 공제는 송나라 태조에게 황제 선양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第五十九回 郭威爲衆加黃袍
제오십구회 곽위위중가황포
잔당오대사연의 59회 곽위는 대중에 의해 황제상징의 황색 도포를 입혀졌다.



第六十回 周恭帝禪位宋祖
제육십회 주공제선위송조
잔당오대사연의 60회 주나라 공제는 송나라 태조에게 황제를 선양하다.

본문내용

주무자  내립처형시수례지자시영위사 봉영위진왕
곽위가 즉위하여 스스로 주나라 곽숙의 후손이라고 하며 국호를 후주로 하며 태조고제로 호칭하며 크게 천하에 사면을 내려 광순(951~953)원년으로 개원하며 시씨를 황후로 주나라 군주는 자식이 없어서 처형 시수례의 아들 시영을 후사로 삼아 시영을 진왕에 봉했다.
此時, 劉崇稱帝於晉陽。
차시 유숭칭제어진양
이 때 유숭이 진양에서 황제로 호칭하였다.
初, 崇聞隱帝遇害, 欲起兵南向, 及聞迎立贇, 崇大喜曰:“吾兒爲帝, 吾復何求?”
초 숭문은제우해 욕기병남향 급문영립빈 숭대희왈 오아위제 오부하구
초기에 유숭은 은제가 피해를 당해 병사를 이끌고 남쪽에 향하려다 유빈을 즉위함을 듣고 유숭이 크게 기뻐하여 말했다. “내 아들이 황제가 되는데 내 다시 무엇을 구하겠는가?”
復聞贇死, 遂自稱帝, 所有、汾、、代、嵐、憲、降、蔚、沁、、麟、石十二州之地, 盡歸所有。
부문빈사 수자칭제 소유병 분 흔 대 람 헌 강 위 심 요 린 석십이주지지 진귀소유
다시 유빈이 죽음을 듣고 곧 자칭 황제라고 하며 병주, 분주, 흔주, 대주, 남주, 헌주, 강주, 위주, 심주, 요주, 인주, 석주의 12주땅을 모두 소유로 삼았다.
以判官鄭珙、趙華國爲平章事, 謂其臣曰:“朕以高祖之業, 一朝墜地, 今日位號, 不得已而稱之, 顧我是何天子, 爾曹是何節度耶?”
이판관정공 조화국위평장사 위기신왈 짐이고조지업 일조추지 금일위호 부득이이칭지 고아시하천자 이조시하절도야
珙(큰 옥 공; -총10획; gong)
판관인 정공과 조화국을 평장사로 삼고 유숭은 신하에게 말했다. “짐은 고조의 업을 하루 아침에 땅에 떨어뜨려 지금 지위와 호칭은 부득이하게 호칭함이며 내가 어떤 천자가 되며 너희 관리는 어떤 절도사가 되어야 하는가?”
國號北漢。
국호북한
유숭은 국호를 북한으로 했다.  
却說周主在都之時, 奇愛小吏曹翰之才, 使翰侍事晉王榮, 榮鎭州, 以翰爲牙將。
각설주주재업도지시 기애소리조한지재 사한시사진왕영 영진전주 이한위아장
각설하고 주나라 군주가 업도에 있을 때 소리인 조한의 재능을 기이하게 아껴 조한이 진왕인 시영을 모시게 하며 시영은 전주를 다스림에 조한을 아장으로 삼았다.
榮入尹開封, 翰請問曰:“大王國之儲嗣, 萬民之所瞻仰, 昨聞主上得沾一疾, 大王當入侍醫藥, 奈何猶決事於外邦?若一旦有變, 誰肯爲之主耶!”
영입윤개봉 한청문왈 대왕국지저사 만민지소첨앙 작문주상득점일질 대왕당입시의약 내하유결사어외방 약일단유변 수긍위지주야
시영이 개봉윤에 들어가려고 하니 조한이 물었다. “대왕께서 나라의 후계자로 만백성이 우러러 보니 어제 주상께서 한 질병에 걸리시었는데 대왕께서 들어가 의약을 모셔야지 어찌 밖의 나라에 일을 결정하려고 하십니까? 만약 하루 아침에 변고가 있다면 누가 군주로 삼겠습니까?”
榮聽言大驚, 遂欣然回闕。
영청언대경 수흔연회궐
시영은 말을 듣고 매우 놀라서 곧 기쁘게 궁궐로 돌아왔다.
周主疾篤, 乃詔晉王聽政。
주영질독 내조진왕청정
주나라 군주는 질병으로 위독하여 진왕을 조서로 정치를 참여하라고 했다.
周主戒曰:“昔吾西征之時, 見大唐十八陵, 無一陵不遭廢掘者, 此無他, 惟多藏金玉故也。我死後當衣以紙衣, 斂以瓦棺, 壙中無用石, 以代之。工人役徒皆和雇, 勿使勞役百姓。旣葬之後, 募近陵之民三十戶, 其雜, 使之守視。勿修下宮, 勿用宮人, 勿作石羊、石虎、石人、石馬, 惟刻石置陵前云:周天子生平好約, 遺命用紙衣瓦棺, 嗣天子不敢違也。汝違吾言, 吾不福汝矣!”
주주계왈 석오서정지시 견대당십팔릉 무일릉부조발굴자 차무타 유다장금옥고야 아사후당의이지의 렴이와관 광중무용석 이벽대지 공인역도개화고 물사로녁백성 기장지후 모근릉지민삼십호 견기잡역 사지수시 물수하궁 물용궁인 물작석양 석호 석인 석마 유각석치릉전운 주천자생평호약 견명용지의와관 사천자불감위야 여위오언 오불복여의
瓦棺:기와널, 陶棺
壙(광, 송장을 묻기 위한 구덩이 광; -총18획; kuang)
(벽돌 벽; -총18획; pi,bo)
和雇:고용인과 피고용인이 합의하여 임금을 정하고 고용함
(밝을 견; -총23획; juan,gu)
주나라 군주는 경계하여 말했다. “예전에 내가 서쪽을 정벌할 때 대당나라 18능이 한 능도 발굴당함을 피하지 못하니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오직 많이 금과 옥을 부장으로 묻어서이다. 내가 죽은뒤에 옷은 종이옷으로 하며 기와 관으로 염을 하며 치체 묻은 구덩이 안에 돌을 쓰지 말고 벽돌로 대신하며 공인들의 부역도 모두 고용하며 백성을 노역을 하지 말라. 이미 매장한 뒤에 무덤 근처 능의 백성 30호를 두어 잡역을 덜어주고 그들을 시켜 지켜 보게 하라. 궁궐을 수리하지 말고 궁인을 등용하지 말고 돌 양, 돌 호랑이, 돌 사람, 돌말을 쓰지 말고, 오직 돌에 무덤앞에 다음과 같이 써라. 주나라 천자는 평생 검약을 좋아하며 유언으로 종이 옷과 기와 관을 쓰게 하며 이어받는 천자가 감히 어기지 못했다. 너희가 내 말을 어기면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지 않겠다!”
言訖, 大叫一聲, 氣而。
언흘 대규일성 기절이조
말을 마치고 크게 한 소리를 지르며 기절해 죽었다.
年五十三歲, 時廣順三年二月上旬也。
년오십삼세 시광순삼년이월상순야
주태조 나이는 53세로 이때는 광순 3년 2월 상순이었다.
史臣斷云:周祖兩其君, 纂取大位。
사신단운 주조양시기군 찬취대위
역사 기록 신하가 판단하여 말한다. 주나라 태조는 두 번 군주를 시해하여 대위를 찬탈해 취했다.
得國之初, 罷四方貢獻珍食, 詔百官上封事, 漢宮室器皿, 立詞翰法, 定稅租皮法, 罷戶部營田, 除租半課。
득국지초 파사방공헌진식 조백관상봉사 훼한궁실기명 입사한법 정세조피법 파호부영전 제조반과
營田:조선 시대, 병영의 유지비를 충당하도록 설치한 둔전(屯田).
나라를 얻은 초기에 사방의 공헌으로 바치는 진귀한 음식을 없애고 백관이 일을 봉하게 한나라 궁슬과 그릇을 훼손하며 사한법을 세워 조세법을 결정하길 호부 영전을 끝내고 조세 반을 제거했다.
又如曲阜謁孔子祠, 復拜其墓。
우여곡부알공자사 부배기묘
또 곡부에 있는 공자 사당을 참배하여 다시 무덤에서 절했다.
況有王浚以贊軍事, 範質以定法度, 李穀以導上意, 雖享國日淺, 而施爲有足稱者。
황유왕준이찬국사 범질이정법도 이곡이도상의 수향국일천 이시위유족칭자
하물며 왕준은 군사일을 돕고 범질이 법도를 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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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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