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철학 및 교육사 - 서구 중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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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육철학 및 교육사 - 서구 중세교육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시민교육의 발달
2. 대학의 발생 및 특징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역면제의 특권은 대학의 자치권을 의미한다.
둘째, 대학에는 독립된 법정이 설치되었다. 이것은 대학 내의 재판권을 의미한다. 옥스퍼드대학은 첫 두 세기 동안 모든 외부의 사법권으로부터 재판을 면하게 되었고, 자치적 단체생활의 전통이 보장되었다. 파리대학에서는 시중에서 학생살해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대학은 교회의 감독이나 국가의 사법권 밖에 있는 일종의 치외법권적 특권을 가진 것이었다.
셋째, 대학은 학위수여권이 있었는데, 학위에는 학사(bachelor)석사(master)박사(doctor)가 있었다.
넷째, 대학은 학장총장 선출 등의 자치권이 보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옥스퍼드대학의 총장은 대학과 주교 사이에 친절한 중개 조정자가 되기도 하였다.
다섯째, 교수와 학생은 마음놓고 자유스럽게 여행할 수 있는 신분상의 보호와 자유가 보장되었다.
여섯째, 중세대학은 그들의 명예나 독립이 침범당했다고 느꼈을 때에는 언제나 맹휴를 일으키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 파리대학의 경우를 보면 교수와 학생의 조합은 맹휴를 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가지며, 또 Aristoteles의 저작연구의 자유가 허가되었다. 이것은 학문의 자유를 의미한다.
‘학문하는 사람의 자유로운 단체’를 표방하는 대학에 대해서는 교황이나 국왕도 그 특권과 자유를 인정했다. 소위 중세 3대 세력의 하나로 대학이 꼽히는 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상 열거한 대학의 특권을 보면, 모두가 다 대학의 이념인 독립정신과 자유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 대학을 통제하고 감독할 수 있는 기관은 교회나 국가가 아니고, 오로지 학생과 교수단이었다. 그러므로 대학은 ‘나라 가운데 있는 나라(imperium in imperio)’라고 불리우게 되었던 것이다.
5) 콜레기움(collegium) = 기숙사
중세대학은 건물이 없었다. 물론 도서관도, 실험실도, 카탈록 등도 없었다. 건물이 없었으므로 이동에 편하였으며, 이 국가에서 저 국가에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에로 대학을 이사하곤 하였다. 이에 따라 학생들이 각 지방에서 모여들면 하숙비와 생활필수품이 급격히 오르는 것이 상례였다. 학생들은 개개의 힘으로써 이런 도시민의 폭리에 대항하기 어려웠으므로, 곧 학생집단을 조직해 하숙비는 물론 생활필수품을 조정했다. 이렇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대학도 쉽사리 이동할 수 없는 시설이나 규모로 틀이 잡히면서 한 곳에 정주하게 되는 콜레기움(collegium) 즉, 기숙사가 마련되었다. 콜레기움의 원래 뜻은 독지가가 가난한 학생을 위하여 제공한 무료기숙사를 뜻했다. 파리의 소르본(Sorbonne)도 처음은 여인숙이었는데, 비가 오거나 진날은 도로 사정이 나빠 교수가 직접 그곳으로 가서 강의를 해준 것이 소르본 대학의 기원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와 같은 학생들의 학숙소(콜레기움)가 오늘날의 단과대학(college)의 명성이 된 것이다. 학생들에 대한 교수방법과 규율은 비교적 엄격하였다. 볼로냐대학의 학생들은 허가없이 하루라도 외출해서는 안 되었다. 외출시는 다시 돌아온다는 보증금을 걸어야 한다는 규칙까지 있었다.
(4) 대표적인 대학
대표적인 것으로는 이태리의 살레르노(Salerno)와 볼로냐(Bologna) 그리고 프랑스의 파리 대학이다. 살레르노 대학은 이태리에서 가장 오랜된 대학으로 의학으로 유명하다. 이 대학은 서기 11세기경(1096년)에 창설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다만 1096년 노르만디공이 제1회 십자군(十字軍)에 부상을 입고 이곳에서 치료받은 기록으로 보아 그 설립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의 대학으로서 공인된 것은 1231년이다. 볼로냐 대학은 역시 이태리의 최고의 대학이다. 법학으로 유명하며, 특히 법학자 이르네리우스(Irnerius)의 명성과 더불어 법학 중심의 도시로서 이름높다. 볼로냐 대학의 설립년대는 1088년으로 전해지며, 1158년에는 프리드리히 1세(Friedrich I)로부터 대학의 특권을 인가받았다. 나폴리(Napoli)대학이 살레르노 대학에서 그리고 파두아(Padua)대학이 볼로냐 대학에서 분파된 대학이다. 파리 대학은 노틀담(Notre dame)사원내에서 자리잡은 대학으로서 신학으로 이름높다. 1180년에는 루이 7세(Louis VII)로부터 공식 인가를 얻고 1198년에는 로마 법왕의 인가를 얻었다. 그밖에 좀 늦게 개교한 영국의 옥스퍼드(Oxford, 1167), 캠브리지(Cambridge, 1209)대학 등이 잇달아 일어났다.
13세기 말에 볼로냐는 교육과정을 체계화했다. 파리와 볼로냐 같은 슈튜디움 게네랄레는 학문을 보급하는 제도적 수단이었다. 유럽의 여러 지역들은 이런 슈투디움을 본보기로 간주했다. 1200년과 1250년 사이에 이탈리아에 9개 대학이 설립되었다. 스페인에 10개 또는 12개의 대학이 설립되었다. 이 가운데서 가장 큰 대학은 살라만카대학(Salamanca)이었다. 자치시가 관심을 가지고 왕실이 후원한 결과로 여러 대학이 설립되었다. 프랑스의 슈투디움들은 완전한 대학이 되려고 노력했다. 샤르트르, 앙제르(Angers) 그리고 오를레앙에 있던 학교를 제외하고는, 오랫동안 운영된 학교가 없었다.
1300년에 유럽에는 23개의 대학이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에 11개교, 프랑스에 5개교, 스페인에 4개교, 영국에 2개교 그리고 포르투갈에 1개교가 있었다. 1세기 후에 이탈리아에 7개교, 프랑스에 4개교,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3개교가 더 설립되었다. 대학이 늦게 설립되었던 독일과 슬라브국가들에 8개교가 설립되었다. 13세기와 14세기에 시민지도자들과 교회는 기존조직에 헌장을 수여하거나 새로운 기관들을 설립하였다. 1224년에 황제가 칙령을 반포한 결과로 이탈리아에 나폴리대학이 설립되었다.
볼로냐대학에서 이주한 결과로 1222년에 빠두아대학이 설립되었다. 아레조대학(Arezzo)도 거의 같은 시기에 설립되었다. 13세기에 스페인의 팔렌키아대학(Palencia)과 살라만카대학 그리고 포루투갈의 리스본대학(Lisbon)이 설립되었다. 프랑스의 경우에 파리대학 다음으로 설립된 대학은 뚤루즈대학이다. 1233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IX세가 이 대학을 설립하였다. 13세기 후반에 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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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3.27
  • 저작시기2014.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09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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