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시 연구 - 《화사집》을 중심으로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서정주 시 연구 - 《화사집》을 중심으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2.1. 개관
2.1.1. 서정주의 생애
2.1.2. 시적 변모 과정
2.2. 작품분석 - 초기의 시집 《화사집》을 중심으로
2.2.1. 존재에 대한 인식과 굴레를 벗어나려 한 시인
2.2.2. 인간 본연의 원시성, 성에 대한 욕망
2.2.3. 지향 없는 열정에서 다시 길 위로

Ⅲ. 결 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신화》이후의 시 창작이 이에 속한다.
그는 첫 시집 《화사집》(1941)을 통해 자의식과 원죄적 세계관 속에서 관능적 욕구에 몸부림치는 젊음을 치열하게 드러냈고 이를 인간의 원시적 생명력으로써 형상화 하였다. 《화사집》에 실린 〈자화상〉〈문둥이〉〈화사〉〈입맞춤〉등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시로 〈화사〉에서의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과 \'붉은\' 색조는 그의 보들레르적 관능과 원시적 생명력의 추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애비는 종이었다\"로 시작되는〈자화상〉은 그때까지 삶의 내면적 방황과 좌절, 그리고 전통적 가치를 부정하는 의식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의 중기 시는 두 번째 시집 《귀촉도》에서 시집 《서정주 문학전집》(1972)까지의 시기로 인간의 운명적 업고(業苦)에 대한 인식이 동양사상의 영향으로 영겁의 생명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됨과 동시에 초기 시에서 보여준 관능적인 세계를 벗어나 동양적인 내면과 감성의 세계에 대한 탐구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한국의 전통적 정서를 노래하게 된 과정이 이 시기에 해당된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 시로는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꽃〉〈국화 옆에서〉등이 있다. 하지만,〈귀촉도〉〈춘향유문〉등에서는 한국적 정서를 탐색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화사집》류의 열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았음을 볼 수 있으며, <무등을 보며〉〈상리과원〉〈산중문답〉 등에서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관념적 달관의 경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생명의 발견과 달관, 동양적인 정관의 입장은 화해를 바탕으로 하며, 여기서의 화해는 사회현실과의 치열한 대결 끝에 얻어진 것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적인 갈등과 회의를 거쳐 얻어진 것으로 이후의 시적 변모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이와 함께 시집《신라초(新羅抄)》(1961)와 《동천(冬天)》(1969)에서는 신라의 정신과 새로운 동양사상의 탐구가 중심이 된다. 앞 시기에 얻어진 화해의 마음은 심화되어 전래의 샤머니즘뿐만 아니라, 노장사상이나 유교까지 받아들이고 있으며 특히 불교의 윤회사상과 인연설에 열중하고 있다. 시집 《신라초》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통해 얻은 \'신라적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신라를 하나의 역사적 공간이 아니라 화해에 의해 인간과 자연, 신화가 융합된 초월적 세계로 보았다. 시집 《동천》에서는《신라초》에서 얻은 동양적 정신을 좀 더 심화시켜 고전적인 절제의 경지를 보여주었는데, 이것은 지칠 줄 모르고 구도자의 행로를 걸어온 시인의 자신감과 원숙의 경지를 입증해주는 한편, 사회와 역사와 멀어진 개인적 구도라는 점에서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관념세계로의 도피, 형이상학으로의 도피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의 후기 시는 《질마재신화》 이후로써 1970년대 고향 질마재의 유년 시절로 회귀하여 또 다른 시 세계를 개척한다. 《질마재 신화(神話)》(1975)에서 시인은 전통적인 ‘이야기꾼’으로 변모하여 촌락 사회의 일상에서 우리 고유의 전통을 발굴, 질펀한 토속어로 흥미진지하게 이야기함으로써 우리의 이러저러한 삶을 신화적 단계로 끌어올리는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1977년 이후 킬리만자로에서 남태평양의 조그만 섬까지 세계 곳곳을 떠돌며 그곳의 풍물과 사상, 종교, 철학 등을 시로 담는 한편 1980년대 정치적 굴곡 속에서도 끊임없이 시를 창작한다. 이후 만년의 삶을 왕성한 시작으로 보내며 노익장을 과시한 시인은 세계 여행의 체험과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1990년 ‘산시(山詩)’ 창작에 착수하여 세계의 산 이름을 소재로 산의 상징과 의미 그리고 이미지를 형상화한 시집 《세계의 산 시》(1990), 《늙은 떠돌이의 시》(1993년), 《80 소년 떠돌이 시》(1997년)를 선보이며 청년기부터 간직해온 신화적 상상력을 세계 각국의 지리와 민화 전설로 까지 지평을 넓히는 등 세계 여행 중에 바라본 남의 세계마저도 우리의 신화체계 속에 간단없이 용해시키는 경지에 까지 이르게 된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서정주의 각 시기들 작품 가운데서 원초적인 생명력을 읊으며 자의식과 관능적 욕구에 몸부림치는 젊음과 원죄적 세계관을 치열하게 드러낸 그의 초기 시집 《화사집》을 살펴보고자 한다.
2.2. 작품분석 - 초기의 시집 《화사집》을 중심으로
2.2.1. 존재에 대한 인식과 굴레를 벗어나려 한 시인
시인 서정주는 젊은 시절, 그의 타고난 방랑적 성향으로 존재에 대한 혼돈을 느끼고 끝없는 방황의 시절을 보냈다. 이러한 혼란스런 젊음의 격정이 쉽게 해소되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지향 없는 열정은 존재의 성찰이라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런 과정 속에서 존재를 억압하고 있는 굴레를 인식함과 동시에 그 굴레를 벗어나려는 노력 또한 함께 했다. 이러한 그의 젊은 날의 \"자화상\"을 그의 시 <자화상>, <문둥이>, <벽>, <바다>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기퍼도 오지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두고 풋살구가 꼭하나만 먹고싶다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아들
- <자화상> -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을 가진 <자화상>은 그 제목에서부터 서정주의 자기 인식이 드러난다. 이 시는 “애비는 종이었다.”라는 충격적인 고백으로 시작되지만 이는 서정주 자신의 애비가 진짜 종이었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럼없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이 발언은 듣는 이를 당황스럽게 하는 당당한 굴욕이다. 왜냐하면 일반 사람이라면 보통 자신을 미화하거나 자신의 솔직한 본모습을 은폐시키는 것이 상례이지만 서정주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파뿌리같은 늙은 할머니, 밤이 기퍼도 오지 않은 애비, 산달을 앞두고도 풋살구 하나 사먹지 못하면서 손톱 밑이 까맣도록 일 하시는 어매를 통해 출신의 미천함과 고통스런 가난을 표현하고, 이러한 시적 형상화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하드라.
어떤이는 내눈에서 罪人을 읽고가고
어떤이는 내입에서 天痴를 읽고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찰란히 티워오는 어느아침에도
이마우에 언친 詩의 이슬에는
  • 가격1,8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4.05.10
  • 저작시기2014.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17048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