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드러내는 것이 문화의 예술성을 사상하기 쉽다는 등의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한편 이은영씨는, \'70년대 민족주의적 욕구에 걸맞는 \'전통찾기\'차원에서 출발한 문화운동으로서 비판적이고 실천적인 대학을 중심으로 일어난 탈춤(마당극)을 그 시초로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민중문화를 80년대의 산물로만 봐야 하는가?하는 문제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것 같다. 그러면서도 70년대 정치적 경제적 중압감 속에서 우리의 전통적이고 주체적인 것들은 뒤로 하고 대량생산과 소비위주의 상업성을 근간으로 한 변태적 대중문화의 물결에 휩싸이게 되고 사회구조 또한 더욱 권위적 형태를 띠면서 대다수는 대중문화의 마력 앞에서 민족적 자기이해의 욕구나 의식이 마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일부 지식인이나 대학중심으로 형성된 80년대 민중문화가 정말로 헤게모니적이었는가? 라는 질문에는 의문이 생긴다.그렇지만, 87년 민주화 대투쟁의 힘은 어디서 왔는가라고 하면 역시 80년대 부각된 민중문화의 역할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80년대 민중문화의 헤게모니가 모든 사람이게 미쳤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87년민주화 대투쟁의 힘이 될 수 는 있었다는 생각이다‘
유창복씨는, ‘87년 민주화대투쟁 이후 90년대 운동의 중심이 기충민중운동 (전노협, 전농)으로 전환되면서, 학원은 상대적으로 정치적 이슈보다는 학내민주화 등의 이슈로 퇴조(상대적 탈정치화)하게 된다. 더욱이 90년대에는 전 시대와는 달리, TV, 잡지, 비디오 등 다양한 대중매체가 활성화되면서 대학가의 문화적 토대가 재편된다. 80년대의 탈춤(마당극)류로 대표되던 민중문화적 기운의 헤게모니는 상당히 약화된다. 그후 2000년대,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군사독재의 퇴출, 이른바 민간정부의 등장,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의 확보를 통해 형성된 정치적 공간 속에서, 기층의 민중들(노동자, 농민)은 조직역량을 확대하고 (노조의 설립, 전국적인 조직활동),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제도적 성취를 위해 투쟁(임,단협투쟁)을 발전시켜왔다. 한편 노동자의 임금수준 향상과 민간정부 아래 민주의식의 향상 등을 배경으로 대중들의 욕구는 생존의 욕구에서 생활, 나아가 삶의 질을 추구하는 추세가 두드러진다. 또한 그동안 ‘계급’(노동자 농민)으로 환원되던 기층의 민중이 이제는 다양한 소수자들로 구체화(분화)되어 둥장하게 된다.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노인, 외국인이주노동자 등이 그 것이다. 이는 지배-피지배, 자본과 노동자농민의 기본계급 간 대립구도로는 충분히 해석되지 않는 피지배의 현실들이다. 더욱이 지배의 양상은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깊숙이 침투해 있으며, 일상의 생활에서 사고와 감성을 재배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항이 과거처럼 명확한 기본계급간의 대립으로 현상되지 않고 오히려 이를 혼돈 약화시키는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오늘날 민중문화라 함은, 기본계급간의 대립과 민주화라는 명확한 정치전선에서 형성된 70, 89년대와는 다르다. 즉, 기본계급적 분류에서 더 나아가 자신의 구체적인 삶의 고통과 억압에 기초한 저항과 협동의 필요가 기초가 되는 탈주와 투쟁이 이시대의 역사적 과제를 돌파하는 주체들의 동력이 아닐까?노동자, 농민 등의 계급적 투쟁은 80년대와 같은 사회변혁적 전선에서의 주력군으로(혁명적 주도권) 드러나기 보다는 다양한 부문운동의 하나로 위축된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이들 기충계급의 운동과 함께, 다양한 소수자운동(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수자, 재소자 등등), 주민운동, 지역운동, 환경운동, 생명운동 등을 통한 횡적 연대가 이 시대의 역사적 주체로 역할할 것이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90년대이후 한국 사회는 내부적으로 정치에서의 절차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통한 군사통치문화의 종식을 가져오며 문화예술에서도 민중문화운동을 경험한 많은 인자들이 한국의 문화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위치에 있음으로, 문화향수권과 문화민주주의 신장을 만들어 내는 성과를 만들었다. 70-80년 민중문화운동의 결정체로서의 민예총만해도 국민의 정부,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과거, 정권에 저항하는 활동에서 일정정도 참여와 대안의 역할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사회의 또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속에 한미 FTA체결은 노동시장의 유연화, 국가의 공공적 기능의 약화로 인한 사회양극화는 더욱 거세질 것이며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의불식중에 끈임없이 ‘미국화’를 강요받으며 경제를 넘어 문화생활 전반의 신식민주의가 유포될 것이다. 근대의 ‘식민지’라는 것은 정치 군사 영토적 침략과 지배에 개념이었다면 현재의 모습은 너무도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고 있으며 가장 강력한 것이 ‘문화’가 아닌가?
그렇다면 ‘민중문화’는 어떤 모습으로 자기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앞서 애기했듯이 ‘민중’이란 개념에는 계급성이 개입된 것이다. 이에 반해 ‘대중’은 ‘계급성’이 개입되지 않은 개념이다. 그런면에서 ‘민중문화’의 기본주체는 노동자들이다. 또한 앞으로의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가리키게 될 것이다. 그것과 더불어 유창복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이 사회의 횡적연대로서 여성,장애,성소수자 등의 자주적 요구 또한 주요한 지점이랄 수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현실에서의 지배-피지배 관계속에서의 피지배의 이해와 요구를 형상화하고 대변하는 문화와 횡적관계에서의 지배이데올로기로부터 억압받는 다양한 부문의 요구를 실현하는 매개로서의 문화는 씨줄과 날줄로 엮여 진정한 민중문화로서 자기 역할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가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실현되었다 하더라도 한국 사회의 근본문제(미국화를 전면 요구하는 FTA / 미국의 동북아 군사기지로서의 패권전략 / 신자유주의에 의한 미국식 문화 수용 등등)로 인해 발생하는 첨예한 문제들은 향후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이런 가운데 ‘민중문화’는 그 존재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변화에 주체적으로 대응하고 주도하는 새로운 스펙트럼을 만들고 전망을 모색해야한다고 생각된다.
그러기위해서는 무엇보다 민중문화의 생산 주체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가 고민돼야 할 것 같다.
한편 이은영씨는, \'70년대 민족주의적 욕구에 걸맞는 \'전통찾기\'차원에서 출발한 문화운동으로서 비판적이고 실천적인 대학을 중심으로 일어난 탈춤(마당극)을 그 시초로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민중문화를 80년대의 산물로만 봐야 하는가?하는 문제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것 같다. 그러면서도 70년대 정치적 경제적 중압감 속에서 우리의 전통적이고 주체적인 것들은 뒤로 하고 대량생산과 소비위주의 상업성을 근간으로 한 변태적 대중문화의 물결에 휩싸이게 되고 사회구조 또한 더욱 권위적 형태를 띠면서 대다수는 대중문화의 마력 앞에서 민족적 자기이해의 욕구나 의식이 마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일부 지식인이나 대학중심으로 형성된 80년대 민중문화가 정말로 헤게모니적이었는가? 라는 질문에는 의문이 생긴다.그렇지만, 87년 민주화 대투쟁의 힘은 어디서 왔는가라고 하면 역시 80년대 부각된 민중문화의 역할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80년대 민중문화의 헤게모니가 모든 사람이게 미쳤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87년민주화 대투쟁의 힘이 될 수 는 있었다는 생각이다‘
유창복씨는, ‘87년 민주화대투쟁 이후 90년대 운동의 중심이 기충민중운동 (전노협, 전농)으로 전환되면서, 학원은 상대적으로 정치적 이슈보다는 학내민주화 등의 이슈로 퇴조(상대적 탈정치화)하게 된다. 더욱이 90년대에는 전 시대와는 달리, TV, 잡지, 비디오 등 다양한 대중매체가 활성화되면서 대학가의 문화적 토대가 재편된다. 80년대의 탈춤(마당극)류로 대표되던 민중문화적 기운의 헤게모니는 상당히 약화된다. 그후 2000년대,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군사독재의 퇴출, 이른바 민간정부의 등장,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의 확보를 통해 형성된 정치적 공간 속에서, 기층의 민중들(노동자, 농민)은 조직역량을 확대하고 (노조의 설립, 전국적인 조직활동),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제도적 성취를 위해 투쟁(임,단협투쟁)을 발전시켜왔다. 한편 노동자의 임금수준 향상과 민간정부 아래 민주의식의 향상 등을 배경으로 대중들의 욕구는 생존의 욕구에서 생활, 나아가 삶의 질을 추구하는 추세가 두드러진다. 또한 그동안 ‘계급’(노동자 농민)으로 환원되던 기층의 민중이 이제는 다양한 소수자들로 구체화(분화)되어 둥장하게 된다.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노인, 외국인이주노동자 등이 그 것이다. 이는 지배-피지배, 자본과 노동자농민의 기본계급 간 대립구도로는 충분히 해석되지 않는 피지배의 현실들이다. 더욱이 지배의 양상은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깊숙이 침투해 있으며, 일상의 생활에서 사고와 감성을 재배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항이 과거처럼 명확한 기본계급간의 대립으로 현상되지 않고 오히려 이를 혼돈 약화시키는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오늘날 민중문화라 함은, 기본계급간의 대립과 민주화라는 명확한 정치전선에서 형성된 70, 89년대와는 다르다. 즉, 기본계급적 분류에서 더 나아가 자신의 구체적인 삶의 고통과 억압에 기초한 저항과 협동의 필요가 기초가 되는 탈주와 투쟁이 이시대의 역사적 과제를 돌파하는 주체들의 동력이 아닐까?노동자, 농민 등의 계급적 투쟁은 80년대와 같은 사회변혁적 전선에서의 주력군으로(혁명적 주도권) 드러나기 보다는 다양한 부문운동의 하나로 위축된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이들 기충계급의 운동과 함께, 다양한 소수자운동(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수자, 재소자 등등), 주민운동, 지역운동, 환경운동, 생명운동 등을 통한 횡적 연대가 이 시대의 역사적 주체로 역할할 것이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90년대이후 한국 사회는 내부적으로 정치에서의 절차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통한 군사통치문화의 종식을 가져오며 문화예술에서도 민중문화운동을 경험한 많은 인자들이 한국의 문화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위치에 있음으로, 문화향수권과 문화민주주의 신장을 만들어 내는 성과를 만들었다. 70-80년 민중문화운동의 결정체로서의 민예총만해도 국민의 정부,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과거, 정권에 저항하는 활동에서 일정정도 참여와 대안의 역할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사회의 또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속에 한미 FTA체결은 노동시장의 유연화, 국가의 공공적 기능의 약화로 인한 사회양극화는 더욱 거세질 것이며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의불식중에 끈임없이 ‘미국화’를 강요받으며 경제를 넘어 문화생활 전반의 신식민주의가 유포될 것이다. 근대의 ‘식민지’라는 것은 정치 군사 영토적 침략과 지배에 개념이었다면 현재의 모습은 너무도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고 있으며 가장 강력한 것이 ‘문화’가 아닌가?
그렇다면 ‘민중문화’는 어떤 모습으로 자기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앞서 애기했듯이 ‘민중’이란 개념에는 계급성이 개입된 것이다. 이에 반해 ‘대중’은 ‘계급성’이 개입되지 않은 개념이다. 그런면에서 ‘민중문화’의 기본주체는 노동자들이다. 또한 앞으로의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가리키게 될 것이다. 그것과 더불어 유창복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이 사회의 횡적연대로서 여성,장애,성소수자 등의 자주적 요구 또한 주요한 지점이랄 수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현실에서의 지배-피지배 관계속에서의 피지배의 이해와 요구를 형상화하고 대변하는 문화와 횡적관계에서의 지배이데올로기로부터 억압받는 다양한 부문의 요구를 실현하는 매개로서의 문화는 씨줄과 날줄로 엮여 진정한 민중문화로서 자기 역할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가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실현되었다 하더라도 한국 사회의 근본문제(미국화를 전면 요구하는 FTA / 미국의 동북아 군사기지로서의 패권전략 / 신자유주의에 의한 미국식 문화 수용 등등)로 인해 발생하는 첨예한 문제들은 향후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이런 가운데 ‘민중문화’는 그 존재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변화에 주체적으로 대응하고 주도하는 새로운 스펙트럼을 만들고 전망을 모색해야한다고 생각된다.
그러기위해서는 무엇보다 민중문화의 생산 주체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가 고민돼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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