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주요나라, 헝가리, 폴란드,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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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주요나라, 헝가리, 폴란드, 러시아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제 2차 체첸분쟁
-> 체첸과 러시아는 1997년 5월에 평화조약을 체결했으나 1999년 8월 인적국인 다게스탄 공화국에서 이슬람 세력에 의한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체첸의 무장세력이 이에 연대하여 다게스탄에 침공, 이슬람 국가로서의 다게스탄 공화국의 독립과 러시아에 대한 성전을 주장했다.
이 무렵 모스브카에서 체첸의 범행으로 보이는 테러 사건이 발생하자 러시아가 다시 체첸에 대한 공격을 개시, 제 2차 체첸 분쟁이 발발했다.
제 2차 체첸 분쟁 사이에 옐친 대통령이 사임하고 대통령 대행으로 테러와 체첸 마피아의 암약으로 고조된 러시아인의 반체첸 감정을 배경으로 인기가 급상승한 푸틴이 취임한다. 푸틴은 체첸에 대한 완강한 자세를 취해 ‘강한 러시아’라는 입장을 국내외에서 확고히 하려 했다.
2001년 9월 미국의 9.11테러 이후 푸틴은 국제적인 테러와의 전쟁 분위기를 이용해 체첸 반군을 압박했다. 푸틴은 2002년 4월 군사작전 종결을 선언했으나 8월 체첸 반군이 러시아군의 대형 수송헬기를 공격하고 170명이 사망한 10월 모스크바 극정 점거 사건, 331명이 사망한 북오세티야 베슬란의 학교 인질 사건등을 비롯해 체첸군의 테러활동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석유를 둘러싼 싸움
-> 체첸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중요한 위치 이상으로 중요한 경제적 이득이 문제시 되고 있다. 체첸은 원유를 산출한 뿐만 아니라 중동 다음으로 많은 석유 자원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카스피 해와 원유 수출항이 있는 흑해를 연결하는 파이프라인이 통과하고 있다. 러시아에게 체첸의 독립을 인정한다는 것은 이 파이프라인을 잃는 것과 같다. 러시아가 이같은 작은 나라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이런 경제적 이유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역사적배경
-> 소련이 해체됨에 따라 1991년 독립을 선언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민족과 종교 모두 큰 차이가 있다. 터키와 우호관계에 있는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교 중에서도 시아파가 우세한 나라이다. 반면에 러시아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아르메니아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기독교를 국교로 선언한 기독교 국가이다.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제르바이잔 서부에 있는 산악지대로 주민의 4분의 3이 아르메니아인이며, 구 소련 시대에 스탈린의 민족정책(소련 내 각 민족의 결속을 약화시키기 위해 강제로 추진한 민족 분단 정책)에 따라 아제르바이잔 내의 자치주가 되었다. 이곳에서는 아르메니아인의 자치권이 인정되었는데, 소련이 해체되자 억눌려 있던 민족의식에 불이 붙었다.
1988년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아르메니아로 귀속시켜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자 아제르바이잔은 자치주를 폐지하고 직할 통치를 하는 강경 조치로 맞섰다. 이에 당연히 반발한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주민들은 1992년에 나고르노-카라바흐공화국의 독립을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전투에 돌입했다. 여기에 아르메니아까지 나고르노-카라바흐 편을 들어, 분쟁은 로켓포까지 동원된 본격적 전쟁으로 발전했다. 이 전쟁으로 인해 3만명이 넘는 사망자와 100만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했으며, 러시아와 프랑스의 중재로 1994년에 정전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가 계속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점거하고 있어 지금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조장안에는 ‘아르메니아가 점령한 아제르바이잔 영화를 반환할 것’과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아제르바이잔에 귀속시킨 수 자치공화국으로 승격시킬 것’등의 내용이 있었기 때문에 전쟁을 유리하게 진행하던 아르메니아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분쟁을 조정한 유럽과 미국이 바쿠에 유전을 가지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을 우대한 결과인데, 국외의 아르메니아인들도 이 조정안에 맹렬히 반발했다.
아르메니아는 21차 세계 대전 중 터키에 150만 명이 학살당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래서 아르메니아인들은 이슬람교도를 원수로 생각한다. 뿌리 깊은 민족 대립도 이 분쟁을 한층 해결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불가리아 분쟁>
-> 인구의 약 3분의 1정도가 종교를 가지고 있다. 그 중 73% 정도가 불가리아 정교 신자이고 카톨릭 및 개신교 신자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오랜 터키의 지배를 받은 영향으로 이슬람교 신자 수도 24%에 달한다. 1945년 불가리아가 공산정권을 수립한 후, 터키인은 불가리아인들보다 인구증가율이 높아 이를 우려한 불가리아는 본격적으로 터키 민족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다. 이런 민족동화정책의 일환으로 터키인에 대한 개명작업과 학교에서 터키어 교육을 금지하는 등 엄격한 동화 정책을 도입하여 주민들간에 불화가 심화되었고 불가리아-터키간의 관계도 악화되었다. 탈냉전 이후 불가리아 정부는 그간 마찰을 빚어오던 소수민족에 대한 민족동화정책을 1990년 1월 폐지하였으나 터키어의 교육문제와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어 양민족간 갈등이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출처-
유시민과 함께 읽는 동유럽이야기, 엘리자베스로버츠 지음, 유시민 옮김, 푸른나무, 2000년
지도로 보는 세계분쟁, 세계 정세를 읽는 모임 지음, 박소영 옮김, 이다미디어,2005년
한눈에 보는 세계분쟁지도, 마스다 다카유키 지음, 이성술 옮김, 해나무, 2004년
http://blog.naver.com/quellerin?Redirect=Log&logNo=20022597990
http://blog.naver.com/liskangel?Redirect=Log&logNo=140020471702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81&article_id=0000062899§ion_id=104&menu_id=104
http://blog.naver.com/jazzulove?Redirect=Log&logNo=30004165408
http://www.mofat.go.kr/ek/ek_a003/ek_huhu/ek_02.jsp (주한헝가리대사관)
http://www.polandseoul.org/ (주한폴란드대사관)
http://www.russian-embassy.org/ (주한러시아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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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11.29
  • 저작시기2014.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51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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